쓸 때 쓰는 남자

대중문화에 돈을 쓰는 일이 남자답지 못하다고?

올 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 – 韓國·日本·中>전을 보러 갔다가 전시된 그림 앞에서 한참을 키득거리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중국과 한반도 사람들이 남긴 호랑이 그림과 달리 일본 사람들의 호랑이 그림은 아무리 봐도 고양이나 개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중국과 한반도와 달리 호랑이가 살지 않는 일본의 화가들은 호랑이를 상상해서 그렸을 테니 말이다. 호랑이라는 게 있다는 얘기도 들었고, 중국과 한반도에서 건너온 그림을 보면 대충 어떻게 생긴 놈인지 감은 오는데 직접 본 적이 없으니 체험의 빈자리를 상상으로 채워 넣어야 했던 것이다. 분명 그림을 남긴 이들은 당대를 대표하는 일본 최고의 화가였을 텐데, 천하 제일의 솜씨로 그린 대나무 숲과 하늘과 돌과 물 사이로 아무리 봐도 고양이 같은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 모습은 귀엽기 그지없었다. 문화를 소비하고 창조하는 과정에서 경험의 유무가 얼마나 많은 걸 좌우하는지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일본의 호랑이 그림 앞에서 나는 주변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힐끔힐끔 쳐다볼 때까지 한참을 키득거렸다.

미디어는 결국 세계의 거울이다. 미디어를 만들고 읽어내는 사람들이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과 감각을 얼마나 누적해놓고 있느냐에 따라 미디어에서 읽어낼 수 있는 정보의 총량은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이를테면 영화 <로봇, 소리>의 한 장면을 생각해보자. 해관(이성민)이 수중에 인공위성 소리를 손에 넣고는 수리를 위해 가든파이브에서 장사하는 친구 구철(김원해)을 찾는 장면은 해외 관객들에게는 흔한 주인공의 기술자 친구 캐릭터 정도로 소비되겠지만 한국인들에겐 폭소의 대상이 된다. ‘청계천 기계 공구 상가에선 마징가Z도 만들 수 있다’는 농담과 그 상인들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파리 날리는 가든파이브로 이전을 강요당했던 역사적 맥락을 알기 때문이다. 조금 더 유명한 예를 들어볼까? 영화 <살인의 추억>은 전 세계 영화 팬들이 사랑하는 작품이지만 전두환 정권 치하라는 역사적 맥락과 등화관제라는 제도에 대한 이해가 있는 한국 관객만큼 그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또한 류태호 배우가 여자 팬티를 모으며 숲속에서 자위하는 변태 용의자로 등장하는 장면을 그가 원작 <날 보러 와요>에서 10년간 3명의 용의자를 1인 3역으로 연기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감상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미디어 소비자들이 걱정될 때가 있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미디어 바깥 세계로는 좀처럼 문화 소비 활동이 없는 남성 소비자층이 걱정된다. 무슨 이야기인가 싶을 수도 있으니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다. 얼마 전 국립발레단이 공연한 <안나 카레리나> 관객의 남녀 비율은 15: 85였다. 2018 연극열전의 첫 번째 작품인 <킬롤로지>는 6 : 94였다. 이 두 공연만 특별한 게 아니다. 쌍용자동차 노조의 복직 투쟁을 다룬 차이무의 2016년 작 <김정욱들>은 29:71, 이해랑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유인촌, 김성녀, 윤석화, 손봉숙이라는 꿈의 캐스팅으로 무대에 올린 2016년 <햄릿> 공연은 27:73이었다. 2015년 팀 라이스의 뮤지컬 <체스> 국내 초연은 10:90, 고 백성희 선생이 자신과 고 장민호 선생에게 헌정된 연극 <3월의 눈>을 자신에게 헌정한 극장인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마지막으로 선보인 2013년 공연은 23:77이었다. 2012년 정보석이 주연한 <삼국유사 프로젝트 – 멸>은 17:83, 2011년 명동예술극장에 올린 국립극단의 <오이디푸스>는 20:80이다. 물론 남성 관객 비중이 40%대를 넘기는 <라이어>나 <옥탑방 고양이> <S다이어리> <극적인 하룻밤> 같은 작품도 있지만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특성과 프러포즈 이벤트를 진행하는 프로모션의 존재는 남성 관객의 상당수가 이런 작품을 데이트 코스의 일환으로 소비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한국의 남성들은 좀처럼 공연에 돈을 쓰지 않는다.

공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페미니즘 이슈를 다뤘다는 이유로 <빅이슈>를 불매하겠다고 선언했던 인터넷의 남성 독자들은 애초에 해당 매체 성비가 1 : 9에 이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아냥의 대상이 됐다. 페미니즘 이슈를 다룬 시사지는 절독하겠다는 선언과 밀려오는 항의 전화를 견뎌야 했지만 그 수많은 항의 전화 수에 비하면 실제 구독을 중단한 비율은 낮았다고 한다. 몇 년 전 일 때문에 만난 모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실력파 여성 가수들을 많이 확보해서 좋으시겠다는 나의 말에 안 좋은 낯빛으로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사실 저희가 요새 OOO(소속 남자 가수)에게 공을 좀 많이 들이고 있어요. 아무래도 문화 콘텐츠에 돈을 쓰는 건 여성들인데, 회사를 안정시켜야 하는 입장에서는 충성도 높은 여성 팬덤의 존재가 아쉽거든요.” 언뜻 남성 청중의 비율이 더 높을 것 같은 걸 그룹의 공연을 가봐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러블리즈,AOA 처럼 남성 팬덤이 압도적인 그룹도 있지만 f(x), 레드벨벳처럼 압도적인 여성 팬의 주도로 팬덤 기반이 유지되는 경우가 더 많다. 심지어 홍대 앞 클럽에서 활동하는 데스메탈 밴드의 공연을 가봐도 매 공연마다 잊지 않고 찾아와 환호해주는 리스너의 성비는 여성이 더 높다.

그런데 공연에도 돈을 안 쓰고 출판, 잡지에도 돈을 안 쓰고 가수의 팬질에도 돈을 안 쓰는 젊은 남자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넘어오면 적극적으로 지갑을 열기 시작한다. 2017년 CJE&M 메조미디어가 전국의 만 13~69세 남녀 15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39싱글 남성의 콘텐츠 유료 결제 경험률은 70%로 2039 싱글 여성(72%) 다음으로 높았다. 유료 결제 경험자의 64%는 음원을 돈 주고 구매해본 적이 있고,58%가 게임을,43%가 영화를,36%가 웹툰을,33%가 TV 프로그램을 돈 주고 소비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나 게임을 한다고 답한 비율은 81%로,1318 남성(80%),3049 기혼 남성 집단(70%)과 함께 게임 산업을 지탱하는 계층이 바로 2039 싱글 남성이다. 10년 전쯤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외국과 비교했을 때 좀처럼 공연장을 찾지 않는 한국 남성들을 고찰하며 가부장 제도를 무의식중에 체화한 남성들이 언젠가 짊어져야 할 가장으로서의 책무에 대비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자신에게 투자하는 걸 낭비라고 생각한다는 분석을 내보인 적이 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 급증세인 2039 남성의 온라인 미디어 소비량을 감안하면 과연 그 분석이 아직도 유효한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자신에게 투자하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게 되었는데 왜 여전히 공연장에는 남자 관객이 적고 잡지 시장 또한 여자 소비자층이 먹여살리는 걸까?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오늘의 즐거움을 위해 돈을 쓸 줄 알며, 문화 콘텐츠를 소비해본 경험도 있는 남성들이 왜 오프라인으로 오면 콘텐츠 소비에 좀체 돈을 안 쓰는 걸까? 남자끼리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하면 성 정체성 운운하는 말을 농담이랍시고 하는 풍토에서 남성들은 제 돈 주고 공연을 소비하는 습관을 훈련받을 기회를 잃어버린 게 아닐까?

이 차이는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흔히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오늘의 즐거움을 위해 돈을 쓸 줄 알며, 문화 콘텐츠를 돈을 주고 소비해본 경험도 있는 2039 남성들이 왜 오프라인으로 오면 콘텐츠 소비에 좀체 돈을 안 쓰는 걸까? 어쩌면 오프라인 콘텐츠를 돈 주고 사는 연습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인 건 아닐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러 다니며 대중문화에 돈을 쓰는 일은 종종 남성답지 못한 일로 간주되곤 했다. 남자끼리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하면 대뜸 세상이 생각하는 정상 남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으로 간주하며 성 정체성을 운운하는 무례한 말을 농담이랍시고 하고, 뮤지컬이나 연극을 보러 다니는 남성들을 희한한 눈으로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감수성을 드러내는 말을 하면 대뜸 “여느 남자들과는 달리…”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풍토에서 남성들은 제 돈 주고 공연을 소비하는 습관을 훈련받을 기회를 잃어버린 게 아닐까? 그 뿌리 깊은 편견의 역사에 비하면 온라인 콘텐츠 유료화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남녀 모두 편견이 쌓일 틈이 없이 같은 선상에서 출발한 셈이다. 오프라인 콘텐츠 소비는 편견 때문에 손도 잘 가지 않았던 탓에 해본 적이 없지만 온라인 콘텐츠 소비는 모두 같이 출발했으니 비교적 쉽게 손이 가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세상에 대한 감각이 풍성하게 쌓이면 쌓일수록 미디어가 제공하는 텍스트를 더 다층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힘이 쌓인다. 텍스트에 담긴 다양한 기호와 상징을 얼마나 잘 읽어내느냐에 따라 미디어 소비 체험의 깊이와 쾌감의 정도가 달라진다. 그러나 특정한 경험이 지나치게 적으면 읽어낼 수 있는 상징의 폭도 좁아질 수밖에 없고, 시청자의 미디어 독해력이 떨어지면 콘텐츠 제작자들도 별수 없이 텍스트 내용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온라인 미디어만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온라인 미디어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의 표현 폭을 좁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화면 바깥의 세계에 대한 감각을 풍성하게 쌓아두어야 화면 속에 제시되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세계와 연결시켜 사고할 수 있으니까.

나는 우리가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약동하는 인간의 육체가 그려내는 선은 아름답고 연극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토해내는 진심은 뜨겁다. 스마트폰이나 길거리의 소음과 떨어진 채 극장 안에서 온전히 눈앞에 펼쳐지는 콘텐츠에 집중하는 경험은 잊었던 감각을 일깨워줄 것이다. 가수를 직접 공연장에서 보는 건 음원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고, 활자도 온라인을 통해 보는 것과 종이를 손으로 만지며 보는 것 사이의 차이가 적지 않다. 그리고 그런 곳에 돈을 투자하는 건 결코 낭비가 아니다. 그렇게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지고 들으며 쌓아둔 감각의 기억은 온라인 미디어를 소비할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의 지평을 훌쩍 넓혀줄 것이다. 우리의 감각이 5인치 안팎의 액정 안에 갇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5인치짜리 화면을 보면서도 그 너머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라도 오프라인에서 돈을 주고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연습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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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 승한
일러스트송 민근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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