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라는 돌림 노래 ‘스타 이즈 본’

'스타 이즈 본'은 모두가 보고 싶어 하는 꿈의 영화다.

암전된 스크린 너머에서 함성이 들려온다. 비로소 불을 밝힌 스크린은 어디론가 향하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따라간다. 남자가 다다른 곳은 수많은 청중의 시선과 함성이 꽂히는 어느 야외 무대. 무대 옆으로 오르는 남자와 함께 팬들의 함성이 더욱 또렷해진다. 무대 옆에서 몇 개의 알약을 삼킨 남자는 무대로 나아가고 팬들의 함성은 더욱 거세진다. <스타 이즈 본>은 뜨거운 열광을 마주하고 선 스타의 위력적인 존재감을 전시하듯 시작되는 영화다. 

대단한 인기와 명성과 지위를 가진 록 스타 잭슨 메인(브래들리 쿠퍼)은 수많은 팬들 앞에서 공연을 마친 후 매니저에게 차를 돌려 술집을 찾아달라 주문한다. 그리고 술을 팔 만한 가게를 발견하고 차에서 내린다. 가게로 들어선 그는 그곳이 여장을 한 드래그 퀸들을 위한 술집, 즉 드래그 바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그에게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술만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날 그의 주의를 사로잡은 건 술이 아니었다. 그의 귀를 당기고 눈을 사로잡은 앨리(레이디 가가)의 노래였다. 우연히 드래그 바를 찾은 남자와 드래그 바 무대에서 노래하는 여자. 예정에 없던 만남은 예상치 못한 감정으로 발전하고, 예감할 수 없는 운명으로 나아간다. 

<스타 이즈 본>은 1937년에 공개된 <스타 탄생>의 세 번째 리메이크작이다. <스타 탄생>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지만 기회를 얻지 못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 톱 스타가 여자의 성공을 돕지만 정작 자신은 스타의 지위에서 쓸쓸하게 추락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스타 탄생>부터 세 번째 리메이크를 거친 <스타 이즈 본>까지, 네 편의 작품은 이러한 스토리라인을 동어반복적으로 이어왔다. 차이가 있다면 네 작품이 제각각 저마다의 시대성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작이라 할 수 있는 1937년 작은 고전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특성을 띠고 있다. 무엇보다도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배우야말로 당대 최고의 스타로 추앙받았음을 이 작품이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1954년 작은 전형적인 뮤지컬 영화의 형식으로 기획됐다. 이 작품은 당대의 뮤지컬 영화배우로 꼽히는 주디 갈랜드가 주연을 맡기도 했는데, 1950년대는 컬러 TV의 보급과 함께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사들이 큰 위기 의식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뮤지컬 영화와 같이 오락적인 기획물이 쏟아져 나오던 시대였고, 1954년의 <스타 탄생> 역시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작품이었다. 

1976년 작은 주인공을 뮤지션으로 설정하며 음악적 요소를 가미한 극영화로 기획했는데 당대의 스타 배우이자 디바였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주연을 맡은 작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록 스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 주목할 만한데 이는 1970년대 미국에서 큰 인기를 구가하던 포크록 음악의 위세를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큰 인기를 얻은 포크 뮤지션이자 배우였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을 주연으로 내세운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주연을 맡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처럼 두 남녀 캐릭터가 가수와 배우로 함께 활동하는 스타로 설정됐다는 것 역시 그렇다. 할리우드와 빌보드 차트로 대변되는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전 세계적인 영향력으로 확대되는 시대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스타를 위시한 작품을 기획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당연한 시대였다.

<스타 이즈 본>은 1976년에 발표된 <스타 탄생>과 가장 유사한 판본처럼 보인다. 유명한 록 스타가 클럽에서 노래하는 무명 가수의 재능에 반해 성공을 조력한다는 서사부터, 레이디 가가라는 스타 뮤지션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것까지 여러 면에서 그렇다. 하지만 <스타 이즈 본>은 오히려 현재의 유행을 반영하는 작품이라기보다 오래된 노스탤지어를 회복하고자 하는 작품처럼 보인다. 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분위기에서 낡아가는 것들을 위한 송가처럼 느껴진다. 이를테면 “오래된 방식들이 사라질 때인가 봐”라는, 잭슨이 부르는 노래 가사는 빠르게 전진을 거듭하며 많은 가치를 뒤떨어진 것으로 여기게끔 만드는 현대사회의 쓸쓸한 내면을 되새기게 만든다. 또한 <스타 이즈 본>은 꿈과 사랑이라는 불변의 가치가 예나 지금이나 감동의 원석이 될 수 있는 것임을 증명해내기 위해 제시된 증거처럼 보인다. 스타라는 존재가 예나 지금이나 대중의 관심을 빨아들이는 강력한 중력임을 새삼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스타의 위력을 묘사하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건 스타를 완성시키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심리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잭슨과 함께 무대에 선 영상이 유튜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덕분에 세간의 관심을 얻은 앨리는 마침내 데뷔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본래 보컬리스트로서의 재능을 염두에 뒀던 것과 달리 수완이 좋은 매니저는 그녀를 팝 아이콘으로 만들기 위해 춤을 가르치고 무대에서의 퍼포먼스를 훈련시킨다. 반대로 청각 장애를 앓으며 뮤지션으로서의 삶에 위기를 느끼는 잭슨은 점차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는 데에서 오는 결핍을 술과 약물에 의존하며 버틴다. 그런 그에게 피로감을 느끼는 앨리와 잭슨의 갈등은 심화되고, 두 사람은 점점 스타라는 지위가 거대한 트로피이면서도 무거운 십자가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속이 썩어 들어가는 것 같지만 그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안고 사는 삶의 고충마저도 스타에게만 허락된 삶이라는 허무가 전해진다. 이는 결국 우리를 환호하게 만드는 스타의 삶이 필연적으로 위장될 수밖에 없는 것임을 실감하게 만든다. 

<스타 이즈 본>은 스타라는 존재를 향한 이중적인 태도와 대비적인 구도를 통해 극적인 흥미를 자아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대단한 환호와 열광 속에서 등장하던 잭슨 메인이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극 후반부는 수많은 이들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는 스타의 삶이 극단적인 이중성의 외줄 위에 놓여 있는 것임을 실감하게 만든다. 수많은 눈에 갇히고, 수많은 말 사이에서 살아가는 스타의 삶은 필연적으로 위장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한순간의 실수가 만회할 수 없는 실패로 회자될 수 있고, 한순간의 잘못이 돌이킬 수 없는 판결로 결정될 수 있는 삶. 많은 이들의 염원이 향하는 존재였다가도 경멸과 오욕으로 점철될 수 있는, 동전의 양면처럼 뒤집힐 수 있는 존재들. <스타 이즈 본>은 손쉽게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흥미만큼이나 스타라는 존재의 삶에 깃든 환상 아래의 고통을 마주하는 간접적인 체험이기도 하다. 

<스타 이즈 본>은 완성된 영화가 주는 흥미만큼이나 다사다난했던 제작 과정의 비화를 듣는 흥미도 상당한 작품이다. 결과적으로는 할리우드의 스타 배우 브래들리 쿠퍼가 처음으로 연출을 맡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진짜 슈퍼스타인 레이디 가가가 쇼 비즈니스 세계에서 스타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 존재로 분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화제성을 모은 작품이 됐지만 본래 지금과 다른 팔자를 타고난 작품일 수도 있었다. <스타 이즈 본>의 감독으로 내정된 건 본래 클린트 이스트우드였다. 앨리 역에는 이미 비욘세가 캐스팅된 상태였다. 잭슨 메인 역으로 기라성 같은 이름이 올라왔다. 러셀 크로, 윌 스미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존 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크리스천 베일, 톰 크루즈, 조니 뎁 등. 심지어 비욘세 남편인 제이지가 물망에 올랐다는 설도 돌았다. 새로운 스타 탄생의 지렛대가 될 슈퍼스타의 역할에 걸맞은 남자 배우들의 이름도 하나같이 반짝이는 것이었다. 

2012년 브래들리 쿠퍼가 캐스팅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욘세가 임신 소식을 알리며 하차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비욘세를 대체할 만한 인물을 찾아야 했다. 에스페란사 스폴딩, 제니퍼 로페즈, 샤키라, 리아나, 셀레나 고메즈, 저넬 모네이 등의 뮤지션이 언급되기도 했지만 좀처럼 진전이 없었다. 프로젝트는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브래들리 쿠퍼가 감독을 맡을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브래들리 쿠퍼는 2014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주연과 제작을 맡았다. 그 이후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브래들리 쿠퍼를 <스타 이즈 본>의 감독으로 추천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리고 2015년 워너브러더스에서는 <스타 이즈 본> 감독으로 브래들리 쿠퍼를 내정했다. 브래들리 쿠퍼에게는 본래 감독으로서의 야망이 있었다. 다만 그의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온 것이다. 그리고 <스타 이즈 본>에 대한 논의가 다시 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당시 앨리 역으로 물망에 오른 건 레이디 가가였다. 비욘세가 다시 캐릭터에 관심을 보인다고도 했지만 브래들리 쿠퍼의 시나리오는 비욘세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이미 레이디 가가를 포석으로 자신의 첫 연출작을 구상하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은 <스타 이즈 본>을 향한 평단의 호평으로 증명된 것 같다. 

<스타 이즈 본>에서의 레이디 가가는 특유의 전위적인 캐릭터를 지우고 앨리라는 캐릭터의 열망을 입었다. 하지만 출중한 보컬 실력은 레이디 가가라는 뮤지션을 다시 환기시킨다. 이를 통해 <스타 이즈 본>은 근사한 청각적 쾌감을 선사하는 음악영화로서의 성취를 거둔다. 브래들리 쿠퍼는 레이디 가가가 노래 부르는 장면에서 라이브로 소화하길 원했다. 레이디 가가 역시 영화 속에서 가수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립싱크가 엉망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결국 두 사람은 공연 장면에서 실제로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덕분에 브래들리 쿠퍼는 보컬 트레이닝을 받아야 했고, 레이디 가가는 그의 선생님 노릇을 하기도 했다. 레이디 가가의 라이브 실력은 앨리라는 무명 가수가 폭발적인 재능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단박에 설명해주는 동시에 관객이 레이디 가가가 아닌 앨리라는 언더도그가 스타로 성장하길 응원하도록 이끄는 데 완벽하게 기여했다. 게다가 극 후반부에 비극적인 상황을 마주한 앨리가 부르는 추모곡은 페이소스의 울림을 선사한다. 

공연의 현장감도 사실적인 촬영을 통해 얻어낸 성취다. 잭슨이 수많은 청중 앞에서 공연을 하다 앨리를 무대 위로 불러 듀엣으로 노래하게 되는 신은 실제로 2017년에 열린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촬영한 것이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 사전 유출을 방지하고자 촬영 기구 소지를 금하는 대신 단 10달러로 레이디 가가의 공연을 볼 수 있게 해준 덕분에 관객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흥미로운 건 레이디 가가가 헤드라이너로 선 그 무대의 주인공이 본래 비욘세였다는 사실이다. 넷째 아이를 임신한 비욘세가 불가피하게 공연을 취소한 덕분에 레이디 가가가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섰고, <스타 이즈 본>의 촬영이 이뤄졌다. 브래들리 쿠퍼는 메탈리카의 프런트맨 라스 울리히의 도움을 받아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의 피라미드 스테이지에 선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공연을 촬영해 영화 속 공연 장면 일부를 구성하기도 했다. 1976년 작인 <스타 탄생>의 주인공이기도 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무대라는 점에서도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흥미로운 건 이 모든 것이 결국 스타라는 존재를 소재로 한 허구의 쇼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스타 이즈 본>을 보고 싶은 건 어쩌면 진짜 스타들의 얼굴을 빌린 영화 속 스타들의 삶이 우리가 궁금해했던, 스타라는 경계 너머의 삶이길 바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처럼 웃고 울고 사랑하고 상처받고 성공하고 실패하는 존재이길 염원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국 <스타 이즈 본>은 영화화된 쇼 비즈니스로서 그런 갈증과 결핍을 해갈해주고 충족시킨다. 스타라는 존재에게 부여된 명암을 드라마틱하게 전함으로써 스타라는 존재의 환상을 강화시키면서도 친밀하고 가까운 존재처럼 위장한다. 그럼으로써 신화화된 매력을 강화하고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역설한다. 예나 지금이나 팔리는 환상과 매력을 진열하고 소비를 권한다. 예나 지금이나 모두가 보고 싶어 하는 꿈을 판다. 동경과 호기심을 부추긴다. 결국 <스타 이즈 본>은 끊임없이 유행하는 돌림노래 같은 영화다. 스타가 존재하는 이상, 영원히 멈추지 않는 노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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