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더머니’가 한국 힙합의 미래일까?

'쇼미더머니'가 한국 힙합을 좌우하던 시대가 있었다. 우리는 시대의 도래를 막을 수 없었고, 이제 터널을 빠져나오려 하는 중이다.

에스콰이어 - 쇼미더머니

올해에도 <쇼미더머니>는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왔다. 엠넷의 이 힙합 경연 프로그램은 이제 무려 7년째다. 일곱 번째 시즌. 정확히 말하면 777(트리플 세븐) 시즌. 이명박 시대에 시작한 이 프로그램이 박근혜 시대를 거쳐 문재인 시대에 도달한 것도 모자라 BTS 시대의 한복판에 여전히 살아 있을 줄은 몰랐다. 지금은 BTS 시대.

하지만 시청률은 좋지 않다. 사실 지난 2~3년 동안 시청률은 이미 하락세였다. 단적으로 다섯 번째 시즌의 최고 시청률은 2.9%였지만 여섯 번째 시즌의 최고 시청률은 2.5%였다. 그리고 이번 시즌 시청률은 내내 1.5% 부근을 맴돌고 있다. 보기에 따라 드라마틱하게 하락했다고 분석할 수도 있는 수치다. 엠넷이 그룹 대항전 무삭제 버전을 따로 떼어내 특별 편성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부분을 원본으로 재방송한 셈이다.

왜 갈수록 시청률이 떨어지는 걸까?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프로그램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일은 이상하기보다는 자연스럽다. 하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쇼미더머니777>의 시청률 부진은 힙합 팬인 나에게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유가 있다. 예술적 성취도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번 시즌이 역대 가장 훌륭한 시즌이(될 것이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친구와 대화하듯 표현하면 이렇다. ‘힙합적으로 가장 멋있는 시즌.’

실제로 이번 시즌 프로듀서로 출연 중인 더콰이엇은 프로그램 방영 전 나에게 이렇게 연락해오기도 했다. “유튜브로 리뷰할 계획이라고 하셨죠? 그거 꼭 하셨으면 좋겠네요. 이번 시즌이 수준이 좀 높아요. 볼만해요.” 또 두 번째 방영분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저희가 예전에 1 대 1 배틀한 건 웬만한 무대는 다 비슷하고 몇몇 무대만 인상적이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의 무대가 재미있고 신선하고 충격적이에요.” 또 더콰이엇과 마찬가지로 프로듀서로 출연 중인 딥플로우는 세 번째 방영분에 관해 자신의 SNS에 이런 말을 남겼다. “역대 <쇼미더머니>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회가 아니었을까. 현장의 재미는 티브이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났다. 이렇게 긴 호흡의 랩 배틀을 최대한의 분량으로 담아낸 제작진(엄지 척).”

힙합 팬 사이에서도 반응이 좋다. ‘지금까지는 <쇼미더머니>를 욕했지만 이번 시즌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는 사람을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쓸데없고 멋도 없는 ‘사연팔이’, 제작진의 권한이라는 미명으로 사실을 멋대로 조합하는 ‘악마의 편집’이 대폭 줄거나 사라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래퍼들의 실력은 상향 평준화되었고 무대를 보여주는 비중이 늘어났다. 어쩌면 <쇼미더머니777>은 (과장을 조금 보태) 그동안 힙합 팬들이 꿈꾸던 모습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시청률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쇼미더머니777>은 그동안의 어떤 시즌보다 훌륭한 힙합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시청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힙합 팬과 대중 사이에 괴리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더 다양하고 더 훌륭한 랩 퍼포먼스로 가득해진 <쇼미더머니>를 대중이 오히려 ‘노잼’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동안 이 프로그램을 프로레슬링 보듯 관전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엔터테인먼트는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가 줄면 떠나는 사람이 있고 엔터테인먼트가 줄어도 남는 사람이 있다. <쇼미더머니>의 인기는 정말 힙합의 인기였던 걸까? 극단적인 질문이었다면 다시 균형을 갖춰 질문해보자. <쇼미더머니>의 인기에서 힙합의 비중은 어느 정도였을까?

마미손 열풍은 이런 맥락으로도 조명해볼 수 있다. 마미손의 ‘소년점프’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유튜브에서 현재 1892만 회다. 오타 아니다. 이제 2000만 회를 앞두고 있다. 프로그램 시청률은 사상 최악을 기록하고 있는데 마미손의 뮤직비디오는 가히 혁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이 성공에는 전략도 주효했다. 즉 ‘소년점프’ 뮤직비디오를 유튜브에만 공개하는 동시에 어떤 음원 사이트에도 등록하지 않았기에 저 거대한 숫자가 가능했다.

그러나 설령 그렇지 않았더라도 아마 ‘소년점프’는 지금처럼 <쇼미더머니777>의 이슈를 모두 빨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소년점프>라는 음악, 영상, 서사, 태도, 유행어, 마케팅은 그동안 <쇼미더머니>를 즐겨온 대중이 원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쇼미더머니777>은 얼굴 몰아주기 사진이라도 찍듯 마미손에 모든 엔터테인먼트를 몰아준 뒤 대중의 관심을 잃고 힙합 팬의 지지를 얻었다. 아마도 본의 아니게.

<쇼미더머니>는 올해가 마지막일까?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 자체가 중요하다. ‘나올 사람 다 나왔잖아’, ‘이제 재미없어진 것 같아’, ‘이번이 마지막 시즌일지도 몰라’ 같은 말이 지속적으로 흘러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신호다. 이 신호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쇼미더머니> 이후가 오고 있다.

한편 프로그램의 부진은 <슈퍼스타K7>을 떠올리게 한다. <슈퍼스타K7>은 참가자들의 실력이 부족해 시청률이 부진했던 게 아니다. 물론 여러 작은 요인이 존재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요인은 그냥 프로그램 그 자체였다. 긴 세월 동안 반복돼온 비슷한 포맷이 사람들을 질리게 했다. 다시 말해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대가 갔기 때문이었다. 큰 흐름으로 볼 때 <쇼미더머니777>도 어쩌면 <슈퍼스타K7>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쇼미더머니>는 올해가 마지막일까? 공교롭게도 둘 다 일곱 번째 시즌이다.

이 큰 흐름을 한국 힙합의 입장에서 다시 바라보자. <쇼미더머니> 초기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비로소 눈에 잡힌다. 지난 7년간 한국 힙합은 돈과 성공으로 상징되는 한 시대를 지나왔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것을 가리켜 ‘시대정신’이라고 부르기 찝찝하다면 한 시대를 뒤덮었던 기운 정도로 해두자. 많은 래퍼가 처음으로 큰돈을 만졌던 시대, 많은 래퍼가 성공을 누리고 성공을 꿈꿨던 시대, 축제나 행사에 래퍼가 섭외 1순위였던 시대, 10대의 꿈이 래퍼였던 시대, 그리고 <쇼미더머니>가 한국 힙합을 좌우했던 시대. 옳든 그르든 우리는 이 시대의 도래를 막을 수 없었고, 이제는 이 터널을 빠져나오려 하는 중이다.

한국 힙합이 몰락한다거나 위기에 빠진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지난 한 시대에서 얻은 것을 발전적으로 활용해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는 뜻에 가깝다. 이쯤에서 더콰이엇의 말을 다시 한번 인용해야겠다. 나의 생각과 꼭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 전 나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쇼미더머니>가 한국 힙합을 망쳤다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그렇게 말하기에는 우리가 얻은 게 너무 많거든요. 힙합 신이 얻은 것이요. 하지만 <쇼미더머니> 때문에 방송에 의한 시스템밖에는 존재하지 않게 된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서 이제부터 우리가 준비를 해야 하는 거예요. 우리의 집을 다시 지어야 하는 거죠. 우리의 자생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일까, 더콰이엇이 새로 론칭한 언더그라운드 공연 브랜드 이름이 ‘랩하우스’다. 말 그대로 한국 힙합의 집을 다시 짓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번 시즌이 마지막 시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 자체가 중요하다. ‘나올 사람 다 나왔잖아’, ‘이제 재미없어진 것 같아’, ‘이번이 마지막 시즌일지도 몰라’ 같은 말이 지속적으로 흘러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신호다. 이 신호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쇼미더머니> 이후가 오고 있다. 이제 한국 힙합은 진짜 시험대에 올라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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