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의 절정을 위하여

손흥민의 슬픔이 좀 더 늦게 찾아오길 바란다.

손흥민 선수의 인터뷰 중 잊지 못하는 대목이 있다. 문답 전체가 정확히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그는 “슬프다”고 말했다. 그가 슬픈 이유란 특유의 시원한 돌파에 실패해서가 아니었다. 손쉬운 골 찬스를 놓쳐서도 아니었다. 그는 “시간이 흐르는 게 슬프다”고 고백했다. “축구를 하는 게 너무 좋은데 언젠가 축구를 더 이상 못하게 될 거라는 점이 슬프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직감했던 것 같다. 내가 이 선수를 변함없이 지지하고,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

축구를 좋아한다. 어린 시절부터 애정 했던 스포츠 중에서 지금까지 꾸준히 챙겨 보는 종목은 축구가 유일하다. 해외 축구 리그뿐만 아니라 K-리그도 가끔씩 직관하는 진짜배기 축구 팬이라 자부한다. 다른 스포츠처럼 축구 역시 경기장에서 봐야 제 맛인데, 저 멀리 유럽까지 가서 축구를 보기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상상해본다. 언젠가, 대략 7,8년 정도가 흐르면, 손흥민 선수도 K-리그에서 축구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은퇴 경기가 열리는 날 관객석에서는 기립 박수가 터져 나올 것인데, 그건 정말이지 상상만으로도 근사한 장면이다.

이 글의 취지는 손흥민 선수에 관한 것이다. 내가 축구 전문가는 아니므로 너무 진지하게 읽지만은 않았으면 하지만 여러분의 신뢰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다음 몇 가지 사실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나는 선수를 꿈꿨지만 중도에 포기를 선언한 축구 꿈나무였다. 그렇다고 축구에 대한 내 열정이 식은 건 아니다. 나의 축구 외사랑은 여러분이 TV에서 한 번쯤은 봤을 축구 해설가들이 증명할 수 있다. 어쩌다 알게 된 그들과 가끔씩 만나 술 한잔 기울이며 축구 얘기도 하고 축구 게임도 한다. 전자의 경우, 그들의 대화에 제법 낄 수 있을 정도이고, 후자의 경우 거의 대부분 내가 승리한다. ‘위닝 일레븐’이건 ‘피파’ 시리즈 건 상관없다. 축구 게임할 때만큼은 내가 ‘흥민 쏜’이다.

일단 아시안 게임 금메달부터 복기해보자. 축구가 시작하기 전 나는 이런 글을 소셜 미디어에 남겨 꽤 많은 ‘좋아요’를 받았던 바 있다. 내 잔잔한 유머를 ‘페친’들이 알아준 덕분이리라.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국가주의일 것인데 왜 나는 손흥민이 ‘군면제’ 받기를 원하는 것인가. 태우려야 태울 수 없는 ‘국뽕’의 찌꺼기여.” 그렇다. 나는 ‘과도한 국가주의’를 혐오한다. 그럼에도 축구만이 아닌 아시안 게임 출전 선수들이 금메달 따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이유를 고민해본다. 그건 아마도, 글에서 언급한 손흥민 선수의 고백과 맞물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운동선수에게 20대는 자기 인생의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과거, 조세 무리뉴 감독에게 어떤 선수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 않나. “축구를 했던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어요. 내가 선수였나 싶을 정도로.” 게다가 20대는 우리 뇌와 육체가 절정에 달하는 시기다. 그중 거의 2년을 군대에서 보내면 필연적으로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군 면제에 대한 논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때문에 예술인과 체육인에 대한 면제가 좀 더 현묘한 방식으로 주어지기를 희망한다. 포인트제가 괜찮은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고, 궁극적으로는 모병제로 전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 맞다. 이런 얘기하면 꼭 단순하게 “너 군대 안 갔다 왔지?”라고 되묻는 사람이 있던데, 나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천도리에서 2000년 3월 5일에 포병으로 만기 전역했다. 민방위까지 다 마친 ‘진성 아재’란 뜻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손흥민 선수의 폼은 그리 좋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어제도 경기가 있었는데, 감각적인 패스로 페널티 킥 얻는데 도움을 주긴 했지만 골을 넣지는 못했다. 아시안 게임 후 복귀한 리그에서 아직 골을 넣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지금은 그저 컨디션을 조절하는 기간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 폭죽이 우리를 즐겁게 해줄 거라 확신한다. 그 정도의 레벨은 충분히 되는 선수인 까닭이다.

이것은 내 주장이 아니다. 심지어 한국 선수에 왠지 호의적이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는 일본 매체에서도 손흥민을 ‘전 세계 톱 10 측면 공격수’ 중 하나로 선정했던 바 있다. 무엇보다 손흥민은 공간이 발생하는 경기에서 치명적인 활약을 펼칠 수 있다. 특유의 빠른 스피드 덕분이다. 오죽하면 ‘손사인 볼트’라는 별명이 영국에서도 언급되었겠나. 독일 전에서의 스프린트를 떠올리면 나는 아직도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글쎄. 굳이 등급을 나누자면 월드 클래스 바로 아래까지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아무리 국뽕의 찌꺼기를 제거하지 못했어도 차마 월드 클래스라고는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손흥민 선수 본인도 자신이 월드 클래스는 절대 아니라고 인터뷰에서 얘기했던 바 있다.

손흥민 선수가 좁은 공간에서 활약을 펼칠 수 없는 건 아니다. 아시안 게임에서 증명했듯 패스 및 경기 조율 능력도 과거에 비해 일취월장했다. 그러나 그의 최대 무기는 역시 시원한 속도감과 강력한 슛에 있다. 무엇보다 사이드에서 안쪽으로 치고 들어오면서 오른쪽 왼쪽 가리지 않고 때리는 대각선 슛은 가히 예술적인 경지다. 손흥민 선수에 따르면 이 훈련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손흥민 선수의 골 장면을 볼 때마다 한 인물을 머리 속에 떠올린다. 그의 아버지인 손웅정 씨다.

손씨 부자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당시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손흥민 선수는 18세의 나이로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었다. 아니, 그런데 훈련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것 아닌가. 손웅정 씨는 “한 번만 더”를 외치며 아들을 혹독하게 다뤘다. 이 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 손웅정 씨는 어디까지나 아들과 ‘함께’ 훈련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줄넘기는 팔팔한 나이의 아들보다 더 잘했다. 줄넘기를 하면서 동시에 “이걸 왜 못 허냐”는 타박과 함께 말이다. 그때 손흥민 선수의 표정과 내레이터의 다음 한 마디를 잊지 못한다. “아들은, 조금 괴롭습니다.”

누군가는 구시대적인 교육 방식이라며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조금 다른 이야기다. 각자 인생에 있어 동력이 되어주는 사람의 유형은 다양할 것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 동력으로 작용하는 사람은 대개 비슷했다. 나에게 ‘황홀한 좌절’을 맛보게 해주는 사람이다. 이런 측면에서 내가 푹 빠져있는 세 사람이 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 요리연구가 백종원 씨, 그리고 손흥민 선수다.

나는 자신의 취향이 직업으로 전이된 이후에도 그것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황홀한 좌절을 맛본다. 대상에 대한 애정은 능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조건일 테니까. 나 역시 음악을 사랑한다. 하나, 과연 그들만큼 애정 할까를 되물으면서 미세하게나마 나 자신이 나아지기를 희망한다. 내가 별 거 아님을 인지하는 그 황홀한 좌절의 순간마다 ‘아주 조금’이나마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비단 저 3명뿐만은 아니다. 진심으로, 도처에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손웅정 씨는 “선수 하나 키우는데 17, 18년이 걸린다”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아주 조금’을 견뎌내야 한다는 의미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 ‘아주 조금’을 견뎌내고 기어코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재능이다. 평생 재능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재능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이 재능만큼은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걸 나는 나보다 15살 어린 손흥민 선수에게서 배웠다.

손흥민 선수가 지금 위치에서 위로 올라가기란 아마도 힘든 일일 것이다. 18세의 소년이 어느덧 27세. 지금이 바로 축구 선수로서의 절정기인 까닭이다. “이제 흥민이가 해야 할 일은 관리 잘해서 은퇴시기를 아주 조금이라도 늦추는 것”. 손웅정 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주 조금의 역사가 아주 조금의 미래를 낳아줄 수 있는 셈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좋다. 부디,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축구를 더 오래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