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 루트가 시작이다

남북 경협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철도부터 연결되어야 한다.

1936년 6월 4일, 당시 일본에서 훈련하던 손기정과 남승룡은 느닷없이 짐을 싸라는 통보를 받고 부산역에 도착했다. 이들은 곧 경성(서울)을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다. 이 기차는 손기정 선수의 고향인 신의주로 향해 달렸고, 국경을 넘어 하얼빈을 지나 만주로, 이후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이용해 소련으로 향했다.

손기정은 열차가 멈출 때마다 내려서 철길을 따라 뛰었다고 한다.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모스크바. 이곳에서 손기정과 남승룡, 그리고 일본 마라톤 선수 등 3명은 독일 베를린행 국제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7월 17일, 부산역에서 출발한 후 한 달 13일 만에 베를린 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다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두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제11회 베를린 하계올림픽 마지막 날 마라톤 경기, 메인 스타디움에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바로 손기정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남승룡이 들어왔다.

본격적인 월드컵 시즌인데 왜 갑자기 마라톤의 손기정 선수 이야기를 꺼내는지 의아해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독일 베를린까지 달렸다는 대목에서 이번 달의 주제를 찾을 수 있다. 단지 기차만으로 유럽 대륙으로 갈 수 있다니. 지난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와 판문점 선언 직후부터 남한과 북한의 경제협력(경협) 기대감이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의 핵심에는 바로 철도가 존재한다. 남북 경협. 물론 아직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끝난 게 아니고 ‘통일 비용’이라 불리는 현실적인 돈 문제도 남아 있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하든 우린 역사적인 첫발을 떼고 분명 앞으로 한 발을 내딛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그리고 철도와 자원 개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눈물을 흘렸고 전 세계가 박수갈채를 보냈다. 물론 북미 정상회담에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더 중요한 합의가 남아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담판 또는 지속적인 협상 과정에서 많은 변수가 생겨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남북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당장 남북통일을 기대하는 게 아니다. 그간 완전히 막혀 있던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고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싶다는 염원인 것이다. 그래서 당장 떠오른 이슈가 바로 남북 경제협력, 즉 남북 경협이다.

그런데 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 경협은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미국 주도의 국제사회 경제 제재가 아직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물밑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개성공단은 2016년 폐쇄됐고 금강산 관광은 2008년부터 멈췄는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그간 북한의 달러 박스였기에 북한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지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경제에 올인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지난 노동당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기존 ‘핵과 경제의 병진’에서 ‘경제 건설 집중’으로 노선 전환을 선언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경제 제재가 풀릴 정도의 결론이 나온다면 남북 경협은 바로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남북 경협 중 구체적인 사업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다음으로는 바로 철도 개발이 첫손에 꼽힌다. 제대로 된 남북 경협을 하려면 철도와 도로가 먼저 깔리고 이후 항만(또는 공항)까지 더해져 물류 산업에 숨통이 트여야 한다. 그래야 전기와 전력, 가스 등 뭔가 그다음으로 이야기를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철도 사업이 구체화되고 본격화되면 자연스럽게 북한의 자원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손기정 루트와 러시아 가스 운송

요즘 증시에서 일명 남북 경협 테마주가 들썩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철도 개발로 분류되면 더 주목을 받는다. 철도가 있어야 북한의 자원도 운송할 수 있을 것이고 물류 산업뿐 아니라 관광 산업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니까 말이다(다만 테마주 투자는 반드시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며 자칫 ‘폭탄 돌리기’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일단 서울-신의주를 잇는 경의선과 부산-원산을 잇는 동해선 같은 철도 복원과 현대화 사업은 많은 준비가 돼 있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내놓은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보면 서해안과 동해안, 비무장지대(DMZ)를 H자 형태로 동시 개발한다는 게 핵심 내용인데 철도의 연결과 맥락을 같이한다.

구체적으로 알파벳 H자의 왼쪽을 보면 목포에서 출발해 수도권-개성공단-평양남포신의주를 연결한 서해안 경협 벨트가 존재한다. 이것은 경의선 복원과 관련이 있다. 알파벳 H자의 오른쪽인 부산에서 시작해 원산-단천-청진-나진선봉 지역을 연결한 동해안 에너지 및 자원 벨트도 철도와 관련이 있다. 일명 ‘동해선 복원 사업’인데 이게 가능하면 ‘손기정 루트’를 꿈꿀 수도 있다. 손기정 루트. 정말 동해선이 복원돼 남북 철도가 연결되면 부산에서 출발해 경기도 광명역을 거쳐 북한까지, 이후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육로로 갈 수 있다. 특히 동해권 에너지 및 자원 벨트는 러시아의 천연가스와 원유 등 에너지 개발 사업까지 확대될 수 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운송 프로젝트는 지난 MB 정부 때부터 많은 연구가 돼 있는 분야이다. 쉽게 말하면 동해안 벨트를 따라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우리가 수입하는 거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중동과 동남아시아, 미국 등에서 액화가스(LNG)를 배로 운송하느라 써야 했던 돈을 아껴 가스 요금을 대폭 낮출 수 있다. 북한은 안정적인 통관 수수료 수익을 올릴 수 있고 파이프라인 건설 사업 참여에 끌어들일 수 있다. 반면 러시아는 유럽 중심의 천연가스 수출 전략에서 벗어나 시장 다변화에 성공할 수 있고, 정치외교적으로는 태평양 쪽으로 진출하는 교두보가 완성된다. 이 때문에 현실론자들은 사업의 우선순위를 따져보면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을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 알파벳 H자의 가운데 축은 설악산-금강산-원산-백두산 관광 벨트 및 DMZ 생태평화안보 관광지구 개발인데, 서울과 금강산을 가로지르는 경원선 복원과 연결돼 있다. 이렇듯 모두 결국 철도와 궤를 같이한다.

남북 경협의 구체적인 사업은 철도 개발이 핵심이다. 남북을 잇는 철도와 도로가 깔리고, 이후 항만과 공항까지 연결이 이뤄져 물류 산업에 숨통이 트여야 한다.

4000조 북한 지하자원 vs 2100조 통일 비용

한국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북한 광물 매장량은 석탄 227억 톤, 금 972만 톤, 철 47억 톤, 아연 2800만 톤, 동 15만 톤, 마그네사이트 76억 톤 등 약 4000조원 가치가 넘는, 그야말로 자원의 보고이다. 4차산업 혁명의 핵심인 희토류도 2000만 톤 이상 매장돼 있다고 한다. 현재 희토류의 90%는 중국이 공급하는데 학자에 따라 매장량으로는 북한이 중국을 능가한다는 주장도 한다.

심지어 원유 매장에 대한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영국 지질학자인 마이크 레고 박사는 이미 오래전에 북한 전체 원유 매장량을 40억~50억 배럴로 추정했고, 1998년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은 “평양이 기름 위에 둥둥 떠 있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도 북한 황해도 쪽 서해안 연안의 서한만 분지에 약 60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는 발표를 했다. 그래서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긍정적으로 풀리고 이에 따라 대북 경제 제재가 풀리면 남북 공동 조사 연구 작업에서 북한의 광물자원 규모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이뤄질 것 같다. 다만 조금 걸리는 건 남북 경협에 중국이 어느 정도까지 개입하느냐 하는 점이다. 현재 북한 자원에 대한 개발권은 중국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북한 광물자원 개발 사업의 90% 정도를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훨씬 더 중대한 문제가 있다. 돈이다. 솔직히 남북 경협이 궤도에 오르면 당분간 모든 비용은 한국 정부에서 부담해야 한다. 현재 북한의 경제개발 비용은 수백조원으로 추산된다. 지난 정부의 금융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20년간 약 5000억 달러, 그러니까 500조원 이상이 필요한데 이 중 철도 등 인프라 투자와 광업, 전기전자 공업 등 산업 육성에만 약 180조원이 들어간다. 물론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고려하고 정말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 사업이 상당한 경제성이 있다면 이런 비용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자칫 중국이 개입할 경우 원치 않는 문제가 나올 수 있고 민간 자본까지 들어오려면 더 확실한 신뢰성과 투명성이 갖춰져야 해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당분간 정부 재정만으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 국민들이 이런 부담(세금)을 얼마나 받아들일지 논란이 될 수 있다.

이쯤 되면 우린 이제 통일 비용을 감안해야 한다. 앞서 경협에 들어가는 비용은 우리도 즉각적으로 얻는 수익이 있어 주고받는 협상 관점에서 풀어갈 수 있다. 하지만 통일 비용은 남한이 북한을 도와주는 형식이기에 일부 국민들의 반발이 나올 수 있다. 현재 추산되는 통일 비용은 10년간 약 2조 달러(2139조원). 참고로 1989년 독일 통일 이후 서독이 동독에 투입한 통일 비용도 1조2000억 유로(약 2100조원)였다. 그런데 당시 동독과 지금의 북한을 비교하면 북한이 너무 낙후돼 있어 2100조원도 부족하다는 의견도 많다. 실제로 부정론자들 중에서는 지금 계산된 통일 비용이 너무 단순하다고 지적한다. 가령 영양실조에 걸린 북한 주민들의 생산성 감소 비용 등 ‘보이지 않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져 비용은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라는 주장이다.

지난 남북 정상회담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뗐을 뿐’이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기대에 들떠 있다. 이미 파주, 연천, 고성, 철원 등의 땅값이 급등하고 있다. 이쪽 경기 북부 휴전선 접견 지역 땅값은 연초 대비 40% 넘게 올랐다는데 현재 가격은 의미가 없다. 땅 주인들이 더 오를 것이란 생각에 매물을 거둬들여 거래가 끊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얻는 확실한 혜택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소일 것 같다. 그간 우리는 북한과의 대치 상황 때문에 주식도 저평가받았고, 부동산도, 채권도, 그리고 국가 브랜드에도 ‘할인’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제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중대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정말이지 이제는 그 지긋지긋한 남북 지정학적 리스크 같은 말은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다.

지금으로부터 82년 전, 손기정 선수는 부산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서울역에서 멈출지는 상상도 못 했을 것 같다. 1927년부터 1945년까지 부산-서울-평양-신의주-중국-시베리아를 거쳐 유럽 각국과 철도로 연결됐으니까. 당시 베를린 올림픽에서 시상대에 오른 손기정은 일본 국가 연주와 함께 일장기가 올라가자 마라톤 우승자에게만 수여된 월계수를 벗어 가슴 쪽에 갖다 댔다. 바로 유니폼에 새겨진 일장기를 가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우리 선조들은 대한 독립을 이뤄냈다. 그러나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는 되찾았지만 한반도는 반 토막이 났다.

“철마(鐵馬)는 달리고 싶다.” 강원도 철원군 민간인 통제 구역(민통선) 월정리역에 있는 표지판에 새겨진 글이다. 이제 시작이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고, 그러다 속도를 높이고, 그 후에 격하고 힘차게 달려보자. 급할 필요 없다. 이미 달리기 시작했다면 절대 늦은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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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정철진(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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