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담판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과 트럼프, 이 의외의 조합이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

겁난다. 글 쓰는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글 쓰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유독 어려운 시기가 있다. 바로 요즘 같은 때다. 하루하루 새로운 소식이 쏟아진다. 뉴스를 따라가기조차 버거울 때가 많다.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기의 담판,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예측 기사를 쓴다는 것은 도박과 같다. 역사의 한복판에서 외로워지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전망해본다. 그들은 왜 만났고, 또 무슨 말을 할 것인지.

1984년생 김정은, 1946년생 트럼프가 만난다

북미 정상의 만남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의 영역’이었다. 역사상 한 번도 성사되지 않았던 만남인 데다 미지의 독재자 김정은과 정신건강까지 의심받는 트럼프의 악수는 더더욱 상상하기 어려웠다. 특히 지난해 8월 트럼프의 입에서 나온 ‘화염과 분노’라는 표현은 한반도 내에 긴장을 불러왔고 ‘괌 포위 타격’을 시사한 김정은과의 거친 설전은 곧 전쟁 위기설로까지 이어졌다. 지난 1월엔 신경전이 계속됐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위협했고, 이에 뒤질세라 트럼프는 즉각 트위터를 켜고 “나는 더 크고 강력한 핵 버튼이 있다”고 응수했다. 이를 두고 미국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트럼프가 유치한 1학년생 같다’고 비판했고, 미 언론과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정신건강을 또다시 걱정하게 됐다.

하지만 지난 3월 9일, 트럼프의 한마디에 국면은 완전히 전환된다. 김정은의 정상회담 제안을 전격 수용하면서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34세의 김정은을 향해 ‘작은 로켓맨’이라고 조롱했던 트럼프와, 72세의 트럼프를 ‘노망난 늙은이(dotard)’라고 되받았던 김정은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해 11월 29일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한 뒤 ‘핵무력 완성’을 주장했던 북한은 2018년 들어 비핵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놀라운 반전이다. 시기 면에서도 내용 면에서도, 마치 핵을 없애기 위해 핵을 개발한 형국이다. 김정은이 세상 밖으로 나온 이유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미국이 주도하고 중국이 참여한 제재와 압박이 유효했다는 분석이다. 반면 미국 본토까지 위협할 수 있는 미사일과 핵을 손에 쥔 김정은의 자신감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도 있다. 이에 더해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트럼프가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설명도 빠지지 않는다. 사실 모든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김정은의 태도 변화를 유도했다는 설명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태도 변화를 분석하는 이유는 상대의 의도를 해석하기 위해서다. 핵심은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진심이냐는 것이다. 단순히 북한의 시간 벌기용 전략이라면 미래를 전망하는 건 무의미하다. 또다시 화염과 분노가 언론을 도배할 것이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을 몇 주 앞둔 현재까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일단 믿어보자는 여론이 대세인 게 사실이다. 김정은은 ‘선대의 유훈’이라는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비핵화 의지를 여러 번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회담 날짜와 장소가 확정되자 미국 주요 인사들은 ‘조심스럽게 당근’을 언급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대표적인 ‘입’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이들은 5월 중순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비핵화 로드맵 구상의 일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북 제재 해제 및 경제 지원, 체제 보장 및 평화협정 체결 등이 그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인의 세금을 들여 북한을 지원할 수는 없다”면서도 “미국의 대북 민간 투자를 통해 북한의 전력망 확충, 인프라 건설, 농업 발전을 도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5월 11일 강경화 외교장관과의 회담에서 “미국은 북한이 우리의 우방인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것보다 구체적이다. 가장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온 볼턴 보좌관도 “북한이 세계 다른 나라들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싶다면, 우리는 최대한 빨리 북한에 무역과 투자를 개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부터 ‘네오콘’의 대표 선수 격이었던 그의 기존 입장에서 다소 진전된 표현이다.

하지만 북한의 관심은 경제 지원 이전에 다른 곳에 있다. 핵심은 체제 보장이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으로 체제 위협을 느껴 핵 개발에 매진해왔다’는 게 북한의 변치 않는 설명이었다. 결국 북한 정권 보장이 비핵화의 핵심 조건일 수밖에 없다. 정확히 표현하면 김씨 가문의 체제 보장일 것이다. 이에 대한 미 행정부의 모범 답안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물론 미국의 진심도 의심받고 있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비핵화를 이행한다면 북한 정권 교체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면서 “우리는 확실하게 안전 보장을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4~5월 사이 두 차례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난 폼페이오는 김정은에 대한 개인적 평가도 내놓기 시작했다. “대화는 전문적이었고, 김 위원장은 자신이 북한 주민들을 위해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 알고 있다. 그는 대화 과정에서 필요할 경우 복잡한 문제를 다룰 능력이 있다”고도 평가했다(<폭스뉴스> 인터뷰 중).

이런 가운데 미국이 비핵화 시기를 언급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5월 9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에 동행했던 브라이언 훅 국무부 선임 정책기획관은 한 인터뷰에서 북한의 의지에 따라 2020년까지 북한의 불가역적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핵 개발 수준을 감안했을 때 비핵화 과정이 몇 년이 걸릴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속도전’을 강조한 것이다. 2020년은 트럼프의 첫 임기가 끝나는 해다. 트럼프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맞춰 비핵화를 해야 한다는 노골적인 주장이다.

북미 정상의 만남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의 영역’이었다. 역사상 한 번도 성사되지 않았던 만남인 데다 미지의 독재자 김정은과 정신건강까지 의심받는 트럼프의 악수는 더더욱 상상하기 어려웠다.

김정은의 외교, 현란하다

영리하다. 김정은의 외교술은 아버지보다 업그레이드됐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은 지난해까지 만 6년 동안 자신의 입지를 튼튼히 다져왔다. ‘인민에겐 따뜻하게, 지도부엔 가혹하게’ 온도도 강약도 조절할 줄 알았다. 핵에 대한 집착도 숨기지 않았다. 집권 후 핵실험만 4차례(2013년 3차, 2016년차, 2017년 6차) 시행했고 수많은 미사일을 실험 발사했다. 그러는 사이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멀어졌다.

지난해 11월만 해도 시진핑 국가주석의 특사로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북한을 방문했지만 김정은과의 만남은 불발됐다. 그리고 약 4개월 뒤 김정은은 시진핑이 아닌 트럼프에게 말을 건다. 결과는 북미 정상회담 개최 결정. 북미 간 외교적 성과만큼이나 중국의 충격은 컸다. 한국전쟁 이후 많은 부침이 있었으나 혈맹 관계가 다시 한번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3월 12일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임에도 시진핑이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달려 나와 만난 이유다.

그리고 2주 뒤, 김정은은 집권 후 처음으로 해외 순방길에 오른다. 다름 아닌 시진핑과의 만남을 위해서다. 미국에 정상회담을 전격 제안하면서 중국을 소외시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을 유유히 방문,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북중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북한의 화려한 외교술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은 또다시 파격을 선보인다. 3월 말 제1차 북중 정상회담 이후 불과 40여 일 만인 5월 7~8일 시진핑을 다시 만난 것. 당시는 중국 내에서 우려와 불만, 심지어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시기다. 문재인 대통령과 합의한 ‘판문점 선언’ 때문이다. 합의문에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한다”고 명시돼 있다. 중국을 배제할 수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김정은은 다시 시진핑을 만나 안심시켰고, 본인은 중국이라는 든든한 보험에 다시 한번 가입한다. 시진핑은 김정은에게 ‘북중 양국은 사회주의 국가로 양자 관계는 중대한 전략적 의의가 있다’고 강조, 양국 관계가 향후 강화될 것임을 시사했다. 영리함과 현란함. 김정은 외교가 남긴 단상이다.

아베, 모기장 밖으로 쫓겨나다

불안과 초조. 일본식 표현대로 ‘모기장 밖으로 쫓겨난’ 아베의 심정이다.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고 트럼프의 대북 압박 정책에 편승해 정치적 이익을 최대한 끌어올렸던 아베는 말 그대로 내우외환이다. 부인 아베 아키에 여사가 연루된 ‘사학 스캔들’로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지던 와중에 트럼프마저 김정은과 만나겠다고 전격 발표한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아베는 4월 17일 미국에 달려가 트럼프를 만났지만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말만 듣고 사실상 빈손으로 귀국한다.

일본은 급기야 북일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등 떠밀린 회담. 하지만 쉬워 보이진 않는다. 북한은 일본과 풀지 못한 과거사 문제부터 2000년대 초반 6자 회담 과정에서 일본이 보인 딴지 걸기에 분노했다. 일본의 평양행 티켓 가격을 최대한 올리는 이유다. 당장 북한은 5월 말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에 국제 기자단을 초청했지만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만 초청했고 일본은 철저히 무시했다. 북한 매체들은 연일 일본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해방 전에는 우리나라를 강탈해 배를 불렸고 해방 후에는 조선의 분열에서 이익을 챙겼으며, 한국전쟁에서는 돈 소나기까지 맞은 일본이 당황망조하는 것”이라며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일본과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략이다.

그들의 악수

김정은과 트럼프의 만남은 ‘부강 번영하는 인민의 낙원’을 만들겠다는 김정은과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치적을 쌓아야 하는 트럼프의 악수다. 내심 아버지(김정일)와는 다른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김정은, 전임인 오바마의 행적을 모두 지우려는 트럼프의 조우다. 스위스에서 유학하며 세상을 바라봤던 젊은 독재자와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온 부동산 재벌의 뜻밖의 조합이다. 이 의외의 조합이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첫 페이지만 장식하고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역사에 많은 기록을 연이어 남길 것인가. 전 세계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