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에 대하여

신을 믿는 이들이 신을 저버렸다.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이 또다시 일어났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본 사람이라면 미국 가톨릭교회의 아동 성범죄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영화가 사건을 다루는 미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팀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쉽게 잊힐 수 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 올라오는 후일담을 보면 당시 보스턴 지역의 아동 성범죄 사건의 심각성과 보도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는 사실이 나온다. 영화에 따르면 보스턴 대교구 성직자 249명이 성추행으로 고소당했으며, 보스턴 대교구의 피해자 수가 10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동 성범죄 사건이 보스턴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아동 성범죄 스캔들이 무려 203개 교구에서 불거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바티칸까지 연루되어 있다는 생존자의 말은 과장이 아닌 셈이다. 영화 개봉이 2015년이었지만 실제 영화의 소재가 된 <보스턴 글로브>의 보도가 2002년이었으니, 벌써 16년이나 지난 이야기다. 지난 16년간 가톨릭은 교회 내 아동 성범죄 문제를 어떻게 다뤘을까? 개선은 있었을까? 16년이 지난 지금 펜실베이니아의 가톨릭 성직자들이 수십 년간 1000여 명의 아동들에게 성적 학대를 했다는 뉴스가 뜬 걸 보면 가톨릭이 어떤 노력을 했건 실제적인 효과는 분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제들은 어린 소년과 소녀들을 강간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책임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하는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일을 숨겼습니다. 수십 년 동안이나요.” 펜실베이니아의 대배심이 보고서에 쓴 말이다. 펜실베이니아의 6개 교구를 18개월 동안 조사한 이번 사건에서 대배심은 200만 건의 문서를 살펴보고, 가톨릭 내에서 아동 성범죄에 대한 조직적인 은폐가 있었음을 알아냈다. 6개 교구는 미국 전체의 교구 수에 비하면 매우 미미한 수라는 걸 생각했을 때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400쪽짜리 보고서에는 끔찍하게 성적으로 학대당한 이야기들이 쓰여 있다. 이리시에 사는 7세 소년은 한 사제에게 성적으로 학대당하고 그 ‘죄’를 학대한 사제에게 고백하고 참회받아야 한다는 얘길 들었고, 또 다른 소년은 13세 때부터 15세 때까지 사제에게 등을 세게 눌려 심각한 척추 손상을 입었다. 척추 손상을 입은 소년은 진통제에 중독되어 후일 진통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피츠버그시에 사는 또 다른 피해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포즈를 취하라는 강요를 받았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이 찍혔다. 사진을 찍히고 성적으로 학대당한 아이들은 학대에 ‘길들여졌다’는 의미로 사제에게 금색 목걸이를 받았다. 이 모든 끔찍한 일은 보고서에 적힌 사건 일부만을 <워싱턴 포스트>에서 옮겨 적은 것이다.

이런 일들이 상세한 조사로 명백하게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동 성폭력에 가담한 사제들을 처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펜실베이니아의 법무부 장관 조시 샤피로는 펜실베이니아주의 공소 시효 때문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말한다. 펜실베이니아에서 아동 성폭력 피해자는 30세가 되기 전까지만 민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50세가 되기 전까지만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피해자는 83세였다. 게다가 가톨릭교회의 가해자 감싸기는 처벌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샤피로는 “더 많은 이들을 기소하고 싶습니다만, 펜실베이니아 법의 약점을 이용한 교회 때문에 너무 많은 가해자가 손을 뻗칠 수 없는 곳으로 벗어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워싱턴 포스트>는 호주와 칠레에서도 일어난 최근의 성범죄 스캔들을 전하며 교회의 고위 성적자들이 여전히 범죄를 숨겨주고 있는 건 아닌지, 성직자 개인이 아닌 교회의 책임에 대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2002년에 있었던 보스턴에서의 사건 이후 이 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을 얘기한 것이다.

최근 들어 교회 성직자의 아동 성폭력 문제가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더 받는 듯하지만 이런 문제 제기가 새로운 일은 아니다. 2002년 <보스턴 글로브>의 보도보다도 훨씬 전이다. BBC 보도에 따르면 교회 성직자의 아동 성폭력 사건은 1950년대에도 있었지만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라고 한다. 1980년 미국과 캐나다에서 언론의 주목이 있었고 1990년에는 아르헨티나, 호주 등지에서 같은 일이 있었다. 1995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의 대주교가 성폭력 혐의로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 아일랜드에서 문제가 됐던 가톨릭 성직자들의 성폭력 사건은 TV 다큐멘터리 <스테이츠 오브 피어>로 보도됐다. 가톨릭 신자가 많은 아일랜드에서도 이 문제는 국민들의 신앙을 뒤흔들 정도로 심각했다. 올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일랜드를 방문했을 때 교회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 신도들 앞에서 용서를 구했지만, 아일랜드의 한 칼럼니스트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가 단순히 몰락했다는 걸 알게 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썼다.

한두 번도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몇십 년 동안 가톨릭교회에서 아동 성범죄가 일어났음에도 최근에야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보스턴 글로브>가 알아냈던 성직자의 잘못을 숨겨주는 교회의 조직적인 문화 때문이었다. 보스턴 사건을 보면 <스포트라이트>에서도 나오듯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과 사법 당국 사이에 공모가 있었다. 아동을 성폭행한 성직자들은 문제가 불거지면 교회에 의해 단순히 다른 교구로 발령이 났을 뿐이고 법적인 소송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사법 당국의 경우에는 가톨릭교회와 맞서는 것을 꺼려서 혐의가 불거져도 이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어쩌다 피해자가 목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하면 침묵하는 것을 조건으로 돈을 주고 합의했다. 교회는 가해자가 형사 처벌을 받게 하는 대신 참회와 용서가 필요한 종교적 의미의 죄인으로만 취급했다. 가해자들은 상급 성직자에게 영적인 상담을 받고 다시 교회로 돌아가 다른 아동들에게 성폭력을 행할 수 있었다. 단순히 교회 몇 곳의 문제가 아니었고, 이런 식의 자기 식구 감싸기는 가톨릭교회 내부의 뿌리 깊은 문제로, 보스턴 사건의 경우에는 추기경이었던 버나드 로까지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다.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의 기사를 보면 교회의 아동 성폭력 문제에 관해 숫자로 압도당하게 된다. 2002년 미국주교회의(USCCB)는 혐의가 있는 이들에게 관용은 없다며, 성직자들의 아동 성폭력을 샅샅이 조사하기로 했고, 형사 사법으로 유명한 존 제이 대학에 지난 50년 동안의 교회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조사를 위임한다. 이 조사로 1950년부터 2002년까지 4392명의 사제가 미국 전역에서 1만 667명의 아동에게 성희롱했다는 혐의를 받았다는 것이 알려졌다. 조사 대상 기간의 전체 미국 가톨릭 사제들의 4.3%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이들 중 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이는 252명뿐이고, 그중에서도 겨우 100명이 징역을 살았다. 2006년 조사에 따르면 교회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침묵하게 하는 대가로 총 5억 달러(약 5600억원) 정도의 합의금을 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가톨릭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다.

바티칸의 대응은 분명 아동 성범죄를 근절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질적인 대책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 듯싶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아동 성범죄를 ‘끔찍한 죄’라고 칭하면서도 가해자들을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하는 범죄자보다는 종교적 구원이 필요한 이들로 보았고, 뒤를 이은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는 등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정작 당사자가 1980년대 뮌헨에서의 대주교 시절에 성범죄 가해자인 사제를 다른 교회로 전출시킨 전적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현 교황인 프란치스코는 공개적으로 교회의 잘못을 사과하는 등 좀 더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비판자들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얘기한다. 칠레에서의 아동 성범죄 사건에서 다른 사제들의 잘못을 덮어줬다는 혐의를 받은 후안 바로스 신부를 두둔한 건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비판자들의 얘기가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올해 2월 성폭력 문제로 김희중 대주교가 공개 사과를 하는 일이 있었다. 수원 교구의 한만삼 신부가 아프리카 선교 봉사 활동을 갔을 때 여성 신도를 성폭행하려 했던 일에 대한 사과였다. 대주교의 사과가 있었지만 정작 가해자인 신부는 사제직을 박탈당하지 않았고 정직 처분만을 받았다. 종교계 내의 성폭력 문제는 가톨릭에 한정된 문제만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가톨릭보다 신자가 많은 기독교의 경우도 성폭력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교계와 기독교 시민 단체들의 반성이 계속되고는 있지만 정작 문제 해결은 지지부진해 보인다. 교회라는 폐쇄된 조직 내에서 권력을 가진 사제들의 성폭력은, 성직자라는 직업과 주변의 불신으로 피해자가 고발하기도 힘들고, 조직적으로 은폐되기 쉽다는 점에서 해외의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희중 대주교는 수원 교구의 사건에 대한 사과문에서 사제들을 ‘윤리 의식과 헌신의 종교적 표지가 되어야’ 하는 이들이라고 말했다. 일반인이 종교인에게 기대하는 바로 그것이지만, 쏟아지는 성직자의 성범죄 뉴스 속에서는 정말 사제들이 그러한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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