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색

서울 남가좌동에서 고양시 가좌동으로 이어지는 대서울의 길.

미국 최초의 고속도로 가운데 하나인 미국 국도 66호선은 미국의 메인 스트리트, 마더 로드 등으로 불리며 미국 문화의 상징이 됐다. 일본에서는 도쿄 근교의 수도권을 감싸는 국도 16호선이 미국의 국도 66호선과 같은 문화적 상징으로 부상하며 음악,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에서 다루어진다. 이와 같이 도로는 근대 문명을 대표하는 존재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주목받고 있다.

나는 서울시와 서울 근교 경기도 지역을 포괄하는 메트로폴리스를 ‘대서울’이라 부른다. 서울시와 대서울의 관계는 좁은 의미의 런던과 그레이터런던의 관계와 같다. 서울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이해하려면 현재의 행정구역인 서울시만 봐서는 안 된다. 서울시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서울 근교 경기도 지역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대서울을 구석구석 살피면서 느낀 건, 이제까지 서울시와 주변 경기도 도시들, 또는 서울시 내의 각 구(區)가 아마도 정치적 이유에서 자신들의 행정구역 안에 있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거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대서울 안의 행정구역은 지금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의 잠실은 1910년대에는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에 속한 잠실도라는 섬이었고, 한강 물줄기가 지금과는 달랐기 때문에 잠실도는 오늘날의 강남이 아니라 강북에 인접해 있었다. 그러므로 잠실이라는 지역을 이야기한다고 할 때 ‘강남 4구’라 불리는 2019년의 송파구 잠실동을 이야기하면 잠실의 전체 상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한 가지 더, 오늘날의 경기도 시흥시는 조선 시대의 시흥군과는 지리적으로 거의 겹치지 않는데, 이럴 경우에 시흥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 이야기는 과연 어떤 모습을 띠게 될까?

 

대서울이 이처럼 변화무쌍함을 경험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면, 대서울을 이해하고 답사하기 위한 전략도 그 변화무쌍함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단순히 시청이나 구청에서 공개하는 ‘○○둘레길’이나 ‘우리 시·구 위인의 행적을 따라’ 같은 것 말고, 또 ‘사대문 안 궁궐 체험’이니 ‘양반 고택 답사’ 말고, 민주공화국의 주인인 시민이 주체적으로 대서울을 답사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서울을 걸으며 나름대로 수립한 대서울 답사 전략 가운데 행정구역의 경계를 넘어 대서울을 관통하는 길을 걷는 법을 소개하려 한다. 말하자면 행정구역이라는 면(面)적인 관점이 아니라 길이라는 선(線)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거다. 길을 따라 걸으면 정치·경제·문화적으로는 하나의 덩어리지만 각 행정구역이 경계를 나누다 보니 임의적으로 분단되어버린 대서울의 곳곳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 먼 곳에 있는 행정구역의 중앙을 바라보며 산 것이 아니라, 내 집 앞에 나 있는 길을 따라 활동 반경을 넓히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걸은 길은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사천교 교차로에서 시작해 서울시 은평구 수색동 덕은교 교차로까지 이어지는 수색로, 그리고 덕은교 교차로에서 가좌마을 6단지 입구까지 이어지며 고양시를 관통하는 중앙로의 동남쪽 일부 구간이다.

사천교 뻥튀기 가게가 인상적인 사천교 교차로의 동쪽은 핫플레이스로 잘 알려진 연희동·연남동·성산동이고, 이들 지역은 식민지 시절인 1930~1940년대부터 이미 경룡교외순환철도 인접 구역으로 도시화가 진행됐다. 대학과 부유한 저택이 특징인 이 지역은 오늘날에도 대서울 속의 핫플레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80~90년 전부터 핫플레이스였던 연희동·연남동·성산동 등과는 대조적으로, 홍제천 너머 서북쪽 경성 서북쪽과 경기도의 경계 지역인 가좌역·수색역 일대에는 1930~1940년대에 일본의 대륙 진출을 위한 경성조차장이 건설되고 군인들을 위한 관사촌, 수색변전소 등이 들어서는 등 전혀 다른 분위기의 군사도시가 생겨났다. 타이완, 조선 등의 식민 통치가 안정되고 만주국 경영도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 일본 정부와 일본군은 본격적으로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대규모 철도-군사 시설을 한반도 여러 곳에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이 오늘날의 수색역에 해당하는 경성조차장이다.

 

경성조차장의 규모는 오늘날에도 수색역의 방대한 구내 및 경성조차장 부설 시설로 조성된 수색 쌍굴, 철도 시설을 지키기 위해 이 일대에 주둔한 상암동의 일본군 관사, 경성조차장 공사 당시 공사장에 있던 무연고 묘지를 일괄 이전한 화전 공동묘지 등을 통해 상상할 수 있다. 광복 후에도 30사단, 국가 기간 시설인 항공 분야의 육성을 위해 설립한 한국항공대학교 그리고 얼마 전 논산으로 이전한 국방대학교 등이 수색로-중앙로에 인접한 서울시-고양시 경계 지역에 자리한 것도 경성조차장 시절 군사도시로 성장한 이 지역의 성격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다.

오늘날 상암동 지역은 월드컵경기장과 여러 방송사가 들어서면서 그 성격이 크게 바뀌고 있다. 용산구 보광동의 보광변전소와 함께 석양이 질 무렵이면 황폐하면서도 독특한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던 수색변전소 일대에서도 대규모 재개발이 이루어지는 중이다. 1930~1940년대에 형성된 이 지역의 모습이 거의 100년 만에 근본적으로 바뀌려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 이 지역의 옛 흔적은 가좌역 건너 모래내시장과 한국 최초의 주상 복합 건물인 좌원상가아파트, 수색역·수색변전소 근처 옛 마을, 철물점 거리, 역전 이발소, 상암동 옛 마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지역이 앞으로 10~20년 내로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서울시 서북부를 관통하는 수색로의 답사 포인트다.

이처럼 대서울의 여타 지역과는 달리 국가 기간 시설 밀집 지역으로 개발된 역사를 지닌 수색로-중앙로 인접 지역 대서울의 서북부에는, 광복 후에도 안보 문제 또는 안전 문제로 주변 지역을 상당 부분 비워두어야 하는 국가 기간 시설이 들어섰다. 1973년에 석유파동이 일어나면서 난지도 동북부에 들어선 마포석유비축기지, 그리고 1992년에 수색로에서 중앙로로 이어지는 지점에서 가까운 지점에 들어선 서울북부저유소, 일명 고양저유소는 국가 기간 시설로서 안보 문제를 고려해야 함과 동시에 강한 폭발성을 띤 시설이기 때문에 안전거리 확보를 위해 수색로-중앙로 인근의 서울시-고양시 경계 지대에 배치됐다.

1970~1990년대에는 서울 마포구 난지도에 쓰레기 하치장이 들어섰고, 오늘날에도 이와 인접한 고양시 지역에 서울특별시 난지물재생센터가 설치됐다. 서울시와 고양시라는 두 개의 행정구역 경계 지점에 위치해 있고 군사·철도·기타 기간 시설이 밀집해 있다 보니 일반 시민이 좀처럼 접근하지 않는 지역이라는 점이 난지도 쓰레기 하치장과 서울시의 이름을 붙인 물재생센터를 이곳에 설치하게 된 심리적 요인이 됐을 것이다. 이처럼 국가 기간 시설인 군사·철도·저유소와 쓰레기 하치장, 물재생센터, 그리고 각종 공장, 폐기물 처리업체, 창고가 공존하는 수색로-중앙로 인접 서울시-고양시 경계 지역의 경관은, 그 밖의 서울시-경기도 도시들 사이의 경계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이 지역 고유의 정경을 만들어낸다.

 

수색로에서 중앙로로 바뀌는 지점에서 서울북부저유소로 향하는 길은 넓고 휑하다. 일반인과는 관련이 적은 군사적·산업적 성격을 띤 시설만 띄엄띄엄 들어선 이 길을 걷다 보면 마포물류보관창고, 수색물류 등의 이름이 붙은 업체를 만나게 된다. 한때 다른 지역에 비해 막강한 힘을 지녔던 서울시는, 서울시의 넘치는 난민을, 고아원을, 화장장을, 군사 시설을 서울시 경계 지역의 경기도 도시들에 떠넘겼다.
이들을 받아들이는 경기도 도시에서는 일부 시설의 이름에 자신들의 행정구역명을 붙이는 대신 ‘서울북부저유소’(고양시), ‘서울시설관리공단 서울시립승화원’(고양시), ‘서울특별시난지물재생센터’(고양시), ‘서울공항’(성남시)과 같이 ‘서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울시에 대한 경기도 각 도시들의 저항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서울시와 인접한 경기도 지역의 시민들 가운데 일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이유에서 적극적으로 서울시의 지명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서울북부저유소 인근의 ‘마포물류보관창고’나 ‘수색물류’ 같은 상호가 그런 심리의 반영이라고 하겠다.

지도에서만 보면 깔끔하게 경계선이 그어져 있는 서울시와 고양시이지만, 실제로 수색로-중앙로를 따라 두 도시의 경계 지역을 관통하면 지도상의 선처럼 명확하게 잘릴 수 없는 두 도시 시민들의 미묘한 심리적 혼재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서울시나 고양시의 시민인 것 이상으로 대서울의 시민임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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