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샌프란시스코로 간 까닭은?

삼성전자의 지금이 실리콘밸리의 다음과 만났을 때.

“하나하나 앱을 설치하고 하나하나 기능을 익히고 그때마다 터치로 구동하는 방식은 아주아주 귀찮은 일이에요. 조만간 우리 모두 더 나은 다른 방식을 찾아내야 할 거고 찾아내게 될 겁니다.”

샌프란시스코 도심 한복판 피츠커피에서 만난 세일즈포스의 엔지니어는 이렇게 말했다. 피츠커피는 샌프란시스코의 스타벅스로 불리는 커피 체인점이다. 소개 소개로 만난 사람이었다. 솔직히 세계 최대의 CRM 기업인 세일즈포스의 미래를 설계할 정도로 높은 임원은 아니었다. 그저 샌프란시스코의 평범한 엔지니어였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에는 어딘가 낯익은 구석이 있었다.

역시 소개로 만나서 그로브에서 마주 앉은 실리콘밸리의 벤처 캐피털리스트도 어딘가 낯익은 말을 쏟아냈다. 그로브는 지금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캐주얼 레스토랑이다. 프렌치토스트와 대용량 오렌지 주스가 일품이다.

“우리가 원하는 게 과연 새로운 앱일까요, 아니면 편리한 서비스일까요? 앱은 서비스를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누군가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가 원하는 서비스에 최적화된 앱을 알아서 찾아줄 수만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앱스토어에서 앱을 고르고 다운받는 귀찮은 일을 직접 하지 않게 될 겁니다.”

벤처 캐피털리스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요즘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자들과 점심을 먹다 보면 흔히 나누게 되는 이야기인걸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미래 기술에 대한 너드 토크가 매일같이 열심히도 벌어집니다. 언뜻 잡담 같지만 결국 그 안에서 새로운 생각이 태어난다는 걸 이젠 다들 알죠. 요즘의 너드 토크는 결국에는 인공지능과 음성인식 기술로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생겨날지로 모아지곤 해요.”

그런데 벤처 캐피털리스트가 들려준 이야기 역시 어딘지 참 낯이 익었다. 바로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이하 SDC)에서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였다.

“보이스가 터치를 대신하게 될 겁니다. 앱이 없는 시대, 그러니까 앱리스 시대가 오고 있어요.” SDC 2018에서 만난 삼성전자의 고위 임원한테 직접 들은 이야기였다.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솔직히 앱리스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설마 앱이 없어진다는 말은 아니겠지. 웹 시대에서 앱 시대로 넘어온 지가 얼마나 됐다고. 게다가 앱이 없으면 스마트폰은 어떻게 쓰나. 피처폰과 다를 게 무엇인가. 그래서 앱리스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정직하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필요한 앱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검색해서 다운받는 과정은 당연한 게 아닙니다. 지금의 방식일 뿐입니다. 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터치해서 원하는 서비스를 찾아내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보편화된 방식일 뿐이죠. 삼성전자는 빅스비를 통해 다음의 방식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빅스비는 삼성전자가 만들어낸 인공지능 서비스 이름이다. 갤럭시 사용자라면 누구나 빅스비와 간단한 대화 정도는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이 빅스비, 내일 날씨 알려줘” 정도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빅스비에 대한 삼성전자의 정의가 좀 달리 들렸다.

삼성전자는 빅스비를 인공지능 서비스 플랫폼이라고 확실하게 정의했다. 플랫폼 말이다. 플랫폼이라면 결국 빅스비가 다른 모든 서비스로 이어지는 허브 역할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빅스비는 플랫폼’이라는 의미를 되새기기도 전에 삼성전자 임원이 결론부터 내렸다.

“빅스비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터치가 아니라 보이스로 이해합니다. 손가락으로 터치해 앱을 구동하는 게 아니라 목소리로 빅스비와 대화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는 의미입니다.”

WHERE

SDC는 삼성전자가 추구하는 미래 기술의 청사진을 엿볼 수 있는 장소다. 세계 최대 스마트폰 브랜드인 갤럭시를 생산하는 스마트폰 제조사 삼성전자가 어디를 보고 있고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행사다.

SDC는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의 모스콘 센터에서 열린다. 모스콘 센터는 샌프란시스코의 IT 콘퍼런스의 성지 같은 곳이다. 구글의 유명한 콘퍼런스 구글 I/O도, 인텔의 개발자 콘퍼런스도 모스콘 센터에서 열린다.

물론 삼성전자가 SDC에서 어떤 기술을 소개할지도 몹시 궁금했다. 모두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기대하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솔직히 다른 궁금증도 있었다. 삼성전자가 왜 대규모 개발자 회의를 구태여 샌프란시스코 도심 한복판에서 여는 것일까.

삼성전자의 본산은 서울이고 수원이다. 서울의 테헤란로와 경기도의 판교에도 나름의 기술 생태계가 있다. 삼성전자의 위상이 샌프란시스코나 실리콘밸리보다는 훨씬 높은 곳이다. 삼성이니까 말이다. 인접한 소비 시장만 고려하면 중국의 선전이나 청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중국의 실리콘밸리가 형성돼 있다는 베이징도 따져볼 수 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2013년부터 매년 SDC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고 있다. 실리콘밸리라는 상징성이 필요했기 때문일까.

사실 삼성전자의 삼성 넥스트 부서가 수년 전 실리콘밸리에서 투자와 인수합병 업무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적잖은 테크 문외한들은 딱 그 정도로만 생각했다. 좀 더 진지하고 면밀하게 삼성전자의 행보를 바라보지 않았다는 말이다. 실리콘밸리는 너무 멀고 여전히 애플이나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동네였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매년 SDC의 규모를 키우고 밀도를 높이고 있다. 애써 가꿔나가고 있다는 말이다.

덕분에 올해만 해도 SDC의 위상은 분명 더욱 높아졌다. 5000여 명의 개발자가 모였다. 다 함께 삼성전자와 함께 미래의 청사진을 공유했다. 직접 관중을 목격했지만 그래도 궁금증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왜 샌프란시스코이고 왜 실리콘밸리일까. 삼성전자는 이곳에서 도대체 무엇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일까.

‘미래를 만나는 곳(Where Now Meets Next)’, 올해 SDC의 화두였다. 삼성의 미래 기술을 설명하는 삼성전자의 임원과, 실리콘밸리 기술 생태계에 빠삭한 벤처 캐피털리스트와, 샌프란시스코 테크 대기업의 일개 엔지니어한테, 언어와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상상을 담고 있는 스토리를 듣는 순간, 지금이 다음과 만나는 곳이라는 올해 SDC의 화두가 즉시 떠올랐다.

우리는 흔히 미래를 시간으로만 이해한다. 내일이나 내년처럼 말이다. 사실 미래는 시간보다 공간 개념에 가깝다. 같은 21세기여도 고색창연하고 구태의연한 공간은 과거다. 거꾸로 끊임없이 새로운 상상이 넘쳐나고 상상과 상상이 만나서 새로운 상상을 낳는 공간은 미래다. 지금이 다음과 만나서 끊임없이 미래를 상상해내는 그런 공간 말이다.

삼성전자의 임원과 샌프란시스코의 엔지니어와 실리콘밸리의 벤처 캐피털리스트의 상상이 포개지는 순간, 지금 이곳이 미래라는 걸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SDC는 바로 지금, 지금과 다음이 만나는 바로 그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삼성전자가 테크 기업으로 새롭게 뿌리내리고자 하는 곳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새너제이와 더불어 실리콘밸리의 양대 수도로 불리는 곳이다. 오히려 최근에는 새너제이보다 샌프란시스코의 위상이 더 높아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명실상부한 세계 기술 수도로 발돋움하고 있다. 덕분에 샌프란시스코의 부동산 가격이 미국에서도 뉴욕을 능가하며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치솟고 있다. 그런데도 샌프란시스코로 끊임없이 새로운 인재가 몰려든다.

샌프란시스코 한복판에 높이 솟은 세일즈포스 타워는 이런 미래 샌프란시스코의 상징과도 같다. 우뚝 솟은 세일즈포스 타워는 다소 낭만적이었던 샌프란시스코의 스카이라인을 미래 도시처럼 완전히 바꿔놓았다. 트위터와 우버와 에어비앤비 본사도 샌프란스시코 도심에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소마 지역은 이미 전통적인 실리콘밸리 지역인 팰로앨토 일대보다 더 많은 창업자가 우글거리는 스타트업 정글로 변한 지 오래다.

SDC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삼성의 테두리 바깥인 샌프란시스코 도심과 실리콘밸리의 계곡에서 다시 들었을 때 비로소 이 미래 도시의 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가 SDC에서 제시한 미래의 모습은 단지 삼성전자만의 상상이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라고 하는 전 세계 최고의 기술 밀집 지역에서는 이미 널리 퍼져 있는 상상이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흩어져 있을 뿐이다.”

윌리엄 깁슨의 잠언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이 말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매일 현실이 된다. 정말 도처에 미래 기술에 대한 상상이 흩어져 있다. 지금이 다음과 만나서 인크레더블 버거에서 점심을 먹고 피츠커피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미래를 소재로 대화를 나눈다. 삼성전자는 이런 미래 기술 생태계의 일원이 되려 하고 있다.

SDC에서 제시된 미래 기술의 청사진을 샌프란시스코 기술 생태계 안에서 다른 기업, 다른 분야, 다른 인종, 다른 언어로 다시 듣게 되면서 맨 먼저 떠올린 단어가 있었다. 바로 공진화였다. 삼성전자와 실리콘밸리 기술 생태계가 함께 진화하는 개념이다.

올해 SDC에서는 여러 핵심 개념이 등장했다. 앱리스, 심리스. 심리스는 여러 디바이스에서 소프트웨어가 끊이지 않고 연속해서 구동되는 개념이다. 이 중에서도 기술 생태계와 가장 밀접한 단어는 ‘together’였다. ‘함께’라는 단어는 결국 공진화를 뜻한다. 콘퍼런스 현장에서 만난 삼성전자 임원들은 빠짐없이 같은 말을 했다.

“앞으론 혼자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함께 공진화해나가는 기술 생태계 안에서 삼성전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았다. 삼성전자는 실리콘밸리 기술 생태계가 동시다발적으로 꿈꾸는 미래를 현실화하는 핵심 실행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SDC에서 삼성전자가 제시한 미래 기술은 분명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 기술 생태계가 지금 원하고 필요하고 꿈꾸는 것들이다. 생태계란 결국 내부에서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공간을 뜻한다. 삼성전자가 상상하는 미래와 실리콘밸리가 상상하는 미래가 서로 교차하면서 지금이 다음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정작 상상에만 그쳐서는 소용이 없다. 누군가는 비전을 구체화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건 상상만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치밀한 공정 관리가 일사불란하게 이뤄지는 협업이 필요한 영역이다. 어떤 면에서는 삼성전자가 가장 잘하는 영역 가운데 하나다.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을 거둔 기업은 모두가 이런 복잡한 난제를 대담한 전망을 바탕으로 명쾌하게 해결해냈다. 그런 비전과 실행력 덕분에 전 세계 자본과 인재를 끌어모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기업 혼자서 모든 문제를 전부 해결해낼 수는 없다. 기업 내부와 외부가 긴밀하게 협력해야만 한다. 비로소 SDC에 왜 5000명이나 되는 개발자들이 모여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삼성의 빅스비 개발자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왜 그토록 열심히 살펴봤는지도 알 수 있었다. 스스로 상상했던 다음과 닮은 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닮은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면 지금 당장 ‘민첩하게’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NOW

요즘 샌프란시스코 창업 생태계에서 가장 흔히 듣는 단어는 ‘애자일(agile)’이다. 민첩하다는 의미다. 민첩한 것과 빠른 건 다르다. 흔히 한국 기업의 성공 비결을 ‘패스트 팔로 전략’이라고 한다. 삼성전자의 성공 전략부터가 패스트 팔로 전략의 교과서라고 일컬어진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에서는 패스트보다 애자일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애플이나 구글 같은 대형 기술 기업이 밀집한 실리콘밸리 남부의 팰로앨토 지역보다 중소 규모 스타트업이 즐비한 샌프란시스코 도심 일대의 창업 정글에서 성공하려면 누구보다 민첩해야 한다고들 얘기한다.

민첩하다는 건 본질적으로 속도가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무작정 직진만 빠르게 한다고 민첩한 게 아니다. 수시로 방향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기회를 포착하면 언제든 모든 걸 걸고 전광석화처럼 달려들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늘 기민하게 움직이고 예민하게 내일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올 수 있다. 우연한 기회에 총력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이런 총체적인 태도가 민첩이다. 실리콘밸리 북부의 샌프란시스코와 남부의 팰로앨토나 새너제이 지역을 가르는 태도의 차이가 바로 이런 민첩함이다.

원래 실리콘밸리의 본산은 애플이나 페이스북이나 넷플릭스 본사가 모여 있는 팰로앨토나 새너제이 지역 같은 남쪽이다. 실리콘밸리 일대를 통칭하는 지명은 베이 에어리어다. 이 중에서도 남부는 사우스베이 지역이라 부른다. 사우스베이 지역의 주류는 우리가 유니콘이라고 부르는 기업들이다. 애플이나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시가총액 1조원짜리 기업들이다.

반면에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북부 베이 에어리어 지역은 다종다기한 크고 작은 창업자들이 몰려 있다. 캠퍼스 같은 남부와 달리 북부 일대는 도시 중심이다. 남부의 기술 기업들은 딥테크에 집중한다. 애플과 구글의 알파벳이 추구하는 기술은 미래 시장을 지배하고 바꿔낼 게임 체인저들이다. 우주 개발부터 암 정복까지 거의 모든 기술적 난제에 도전하고 있다.

반면에 샌프란시스코 도심 일대에 포진한 스타트업들은 지금 여기의 문제에 집중한다. 지금 소비자들의 삶을 개선시키고 돈을 벌 수 있는 현실적인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려고 여념이 없다. 본질적으론 온라인 기술을 활용해 오프라인에서 돈을 버는 게 최우선 과제다. 우버나 에어비앤비처럼 말이다. 우버와 에어비엔비는 딥테크 기업이 아니다. 오프라인 시장의 케케묵은 문제들을 온라인을 통해 해결해낸 기업들이다. 샌프란시스코 소마 지역의 스타트업들은 본질적으로 너도나도 제2의 우버나 에어비앤비를 꿈꾸고 있다.

우버와 에어비엔비의 본산이 전통적인 실리콘밸리의 차고가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소마 지역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술은 결국 도시에서 적용되게 돼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이런 기술이 최초로 적용되기에 최적의 도시다.

무엇보다 샌프란시스코는 다양성을 중시하는 자유로운 도시다.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샌프란시스코만큼 열린 도시도 없다. 집을 공유하고 차량을 공유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시도를 해보기에는 최적의 미래 도시다. 샌프란시스코야말로 미래 기술의 배양을 위한 최고의 실험 장소라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이렇게 기술을 현실에 적용할 사업 기회를 포착하려면 절대로 도시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샌프란시스코 일대 지역이 남부 베이 에어리어보다 더 뜨거운 창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중요한 건 샌프란시스코는 지금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려는 민첩함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지금 시장의 문제를 미래 기술의 해법으로 해결하려면 민첩하게 시장의 허점과 기술의 이점을 접목시켜야 한다. 결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민첩함이 도시 문화의 일부가 됐다. 남부의 유니콘들이 미래의 게임 체인저를 꿈꿀 때 북부의 창업자들은 바로 다음의 사업 기회를 민첩하게 찾고 있다.

앞으로는 소비자를 깊이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공지능이 소비자가 무언가를 원하기도 전에 원하는 걸 해주는 단계로 진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기 중심이 아니라 사용자 중심의 생태계에서 인공지능을 성장시켜야 이런 딥러닝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패스트한 삼성전자와 민첩한 샌프란시스코 창업 생태계는 최적의 궁합이다. 양쪽 모두 기회를 포착하는 데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SDC는 민첩한 개발자들한테는 일단 흥미로운 내용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모두 다 아는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일렉트로닉 제조사다. 비록 애플의 아이폰을 쓰고 있을지언정 삼성과 갤럭시를 모르지 않는다.

무엇보다 삼성전자는 애플과 달리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수많은 가전제품을 함께 생산하는 하드웨어 기업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삼성전자의 가장 큰 매력 요소다. 삼성전자는 SDC에서 스마트싱스를 강조했다.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모든 가전제품을 연결하는 개념이다.

삼성전자는 분명 스마트폰과 태블릿과 웨어러블의 모바일 기기부터 TV를 포함한 각종 가전제품, 여러 사무기기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폭넓은 IOT 기기를 제조하는 회사다. 고동진 삼성전자 IM 부문 사장은 올해 키노트에서 이걸 ‘커넥티드 싱킹을 넘어서 커넥티드 라이프’라고 표현했다. 삼성전자이기 때문에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었던 비전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말을 누구보다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의 창업자와 개발자들이다. 그들은 지금 이미 누구보다도 민첩하게 커넥티드 라이프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은 갤럭시S 시리즈가 10주년이 되는 해다.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본격화된 스마트폰 시대가 마침내 10년을 맞이하게 됐다는 말이다.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모든 비즈니스 기회는 바로 연결에서 나왔다. 연결이 생겨나고 연결이 강화되고 연결이 증가하는 고비마다 실리콘밸리의 유니콘들이 등장했다. 애플이, 구글이, 페이스북이 그 변곡점마다 등장했다. 그런 연결이 온라인을 넘어서 오프라인까지 확장될 때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생겨났다. 애플과 페이스북이 사람을 연결하자 아마존이 상품을 연결됐다.

갤럭시 10주년을 맞아서 삼성전자는 이제 모든 사물을 연결하려는 스마트싱스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누가 봐도 종합 가전 브랜드 삼성전자가 가장 잘할 수 사업 영역이다. 삼성전자가 모든 테크 기기를 더 밀접하게 연결하겠다는 비전을 선보였을 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은 모두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연결’이라 쓰고 ‘비즈니스’라 읽는다.

SDC는 이걸 민첩하게 읽어낸 베이 에어리어의 창업자와 개발자들로 뜨거웠다. 무엇보다 삼성전자는 개발자들을 위해 빅스비 개발자 스튜디오와 빅스비 캡슐 같은 개발 장치를 마련했다. 일반 소비자들한테는 다소 생소한 개념일 수 있다. 개발자들한테는 삼성전자의 갤럭시 하드웨어와 빅스비 소프트웨어를 활용해서 민첩하게 비즈니스 기회를 찾아보라는 신호탄과 같다.

모스콘 센터 한가운데에 설치된 개발 부스에서는 직접 빅스비 캡슐을 만들어보는 개발자들을 수없이 목격했다. 빅스비는 올해 5개 자연어를 추가해 소통 영역을 더욱 확장했다. 정작 삼성전자와 실리콘밸리는 한국어도 영어도 아닌 기계어로 완벽하게 소통했다. 무엇보다 서로 비슷한 미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깊이 대화할 수 있었다.

MEETS

사실 삼성전자는 한국에서는 대기업일지 몰라도 실리콘밸리에서는 오히려 도전자다. SDC만 해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수많은 콘퍼런스 중에서 중급 정도에 해당된다. 샌프란시스코 한가운데에 마천루를 세운 세일즈포스의 드림 콘퍼런스가 열리는 시기에는 아예 도심 교통이 마비될 지경이다.

구글의 콘퍼런스 구글 I/O는 개발자들의 축제에 가깝다. 애플 세계 개발자 대회는 아예 이름부터 애플 개발자가 아니라 세계 개발자라고 했다. 실리콘밸리 현지에서 삼성전자의 이미지는 세계 최대의 일렉트로닉 회사이다. 막강한 브랜드 가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테크 기업의 이미지가 약하다는 뜻도 된다. 삼성전자가 SDC를 통해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다. 삼성전자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애플이나 구글 못지않은 파트너사로 각인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사실 삼성전자는 SDC뿐만 아니라 삼성 리서치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AI 관련 포럼도 현지에서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당당한 플레이어 가운데 하나가 되려고 애쓰고 있다는 말이다.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만만찮은 과제다. 경쟁자는 즐비하다. 현재 실리콘밸리는 미래 기술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쟁터다. 특히 알리바마나 텐센트 같은 중국 기업의 공세가 무서울 정도다. 중국 기업은 무엇보다 자본이 막대하다. 실리콘밸리는 늘 자본이 넘쳐나지만 중국 자본은 단위가 다르다. 가공할 자본력을 앞세워 실리콘밸리의 기술과 인재들을 무서울 정도로 빨아들인다. 게다가 중국은 어느 부분에서는 미국을 넘어서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21세기의 밀라노라고 불린다. 르네상스 시대에 창조의 메카 역할을 했던 밀라노처럼 실리콘밸리는 21세기 기술 생태계의 대체 불가능한 중심지다. 그런데도 중국이 실리콘밸리보다 잘하는 게 있다. 바로 B2C 영역이다.

알리바마나 텐센트 같은 중국 기업은 소비자들이 지금 어떤 서비스를 원하는지 누구보다 민첩하게 이해하고 실행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유니콘이 있다면 중국에는 이런 여의주를 품은 황룡들이 있다. 구글이나 애플이 딥테크에 집중할 때 중국 기업이 스스로를 차별화한 결과다. 텐센트 창업자 마화텅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고양이를 보고 호랑이를 그린다.” 마화텅의 말은 일부 영역에서는 분명 현실이 됐다.

실리콘밸리 일대에서 샌프란시스코 스타트업 정글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또 다른 이유다. 도시 창업 생태계에서 실생활에 더 밀접한 서비스를 민첩하게 창조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전체가 두꺼운 롱테일의 도시다. 다품종 소량 수요의 서비스 소비자들이 두껍게 포진해 있다.

어쩌면 바로 이 지점에서 삼성전자가 제시한 빅스비 생태계나 스마트싱스 같은 전략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소비자 테크 영역에서 삼성전자만큼 빅데이터를 축적하고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업도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IT 황룡들처럼 자금 규모로 승부할 수는 없지만 수십 년 동안 축적된 기술 제조의 노하우와 그걸 연결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있다면 실리콘밸리와 밀접하게 연결될 가능성은 아주 높다.

역설적으로 실리콘밸리 역시 삼성전자 같은 기업을 필요로 한다. 중국 기업들이 삼성을 견제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구글과의 연결을 통해 스마트폰 패러다임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이번에는 실리콘밸리의 유니콘이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창업 생태계 전체와 좀 더 밀접하게 연결되려고 도전하고 있다. 단순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이 아니라 미래를 공유해서 공진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말이다.

SDC는 그런 연결의 가교 가운데 하나다. 분명한 게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지금 가장 핫한 테크 기업이 어디인지 아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지금 가장 실력 있는 엔지니어들이 어디에 몰려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지금은 구글과 페이스북이지만 언젠가는 삼성전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NEXT

샌프란시스코는 1900년대 초반에 황금을 캐기 위해 몰려든 황금광 시대를 경험한 도시다. ‘골든게이트 브리지’라는 이름이 그 황금빛 역사를 말해준다. 동시에 샌프란시스코는 1960년대 히피즘의 중심지였고 지금도 어쩌면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성을 가장 중시하는 자유로운 도시다. 지금과 다음이 만나서 도전과 창조가 수시로 반복되는 21세기 르네상스의 수도다.

우버 덕분에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아예 차를 팔아버리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차량 공유 서비스가 미래 자동차 시장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미리 보고 느끼고 싶다면 샌프란시스코의 도시 문화를 관찰하면 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우연히 만난 우버 기사가 말했다. “나처럼 직접 운전하고 싶은 욕망만 잊는다면 이용자들에게 자동차는 필요 없는 물건이 될지도 몰라요.” 샌프란시스코 거리 이곳저곳에는 이미 우버를 넘어서 공유 전기 스쿠터가 넘쳐나고 있다. 새로운 도심 운송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들이다.

21세기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다시 한번 골드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금덩어리는 바로 인재다. 기업들은 베이 에어리어 일대의 인재를 모으기 위해 서부로, 샌프란시스코로 몰려들고 있다. 자유로운 문화에서 인재들이 만들어내는 민첩한 창업 아이디어는 점점 더 빠르게 공진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SDC 같은 수많은 연결 고리를 통해 민첩하게 실리콘밸리의 일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물론 갈 길이 멀다. 삼성이라는 브랜드는 강해도 테크 생태계에서 삼성전자의 존재감은 아직은 절대적이지 않다. 삼성전자 임원이 말했다. “시간이 걸리겠죠. 시간이 걸려도 그 길로 가겠다는 겁니다. 그 방향으로. 그것이 우리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겁니다. 삼성전자는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더 개방적이고 더 유연해지고 있습니다.”

SDC에서 삼성전자가 선보인 혁신 제품 중 하나는 인피니티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기반으로 한 폴더블폰이었다.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는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지게 만들고도 남았다. 사실 보기에 따라서는 폴더블폰보다 더더욱 혁신적인 건 삼성전자라는 기업 자체의 유연성이었다. 삼성전자 임원이 말했다. “우리는 언제나 푸시 더 리미트를 해요. 그것이 삼성전자의 가장 큰 강점이 아닐까 싶어요.”

언제나 한계에 도전하고 필요하면 스스로를 내려놓고 유연해지는 사고의 개방성과 유연성을 지닌 민첩한 테크 기업. 이것이 바로 지금 삼성전자가 꿈꾸는 삼성전자의 미래였다.

삼성전자, 연결과 확장, 협력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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