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한다면 스타벅스처럼

스타벅스는 변명이 아니라 사과하는 법을 알았다.

지난 4월 12일 미국 필라델피아에 자리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두 명의 흑인 남성이 스타벅스에 들어와서 그중 한 명이 화장실을 쓸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스타벅스에서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는데 직원은 주문한 사람만 화장실을 쓸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했고, 두 사람은 스타벅스의 빈 테이블에 앉아 만나기로 약속한 지인을 기다렸다. 여기까지는 카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사건이 매우 이상하게 전개된다. 스타벅스 직원은 두 명의 흑인 남성에게 주문하지 않을 거라면 카페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한다. 약속이 있었던 두 사람이 이를 거부하자 스타벅스의 매니저는 이들을 불법 침입으로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은 이들에게 수갑을 채워 카페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스타벅스 같은 카페에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고 주문을 조금 늦게 하는 일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하지만 카페 직원에게 불법 침입으로 신고당하고 경찰이 거기에 응해 체포까지 당하는 일은 흔한 일이라고 보기 힘들다. 이 장면을 누군가 동영상으로 촬영해 트위터에 올렸다. 이 동영상은 1000만 번 넘게 조회됐고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이 체포당한 것은 주문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흑인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체포된 흑인들이 만나기로 했던 백인 남성은 영상 속에서 경찰에게 이렇게 묻는다. “무엇 때문에 신고했다는 건가요? 두 명의 흑인이 저를 기다리느라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인가요?” 체포된 흑인의 지인이 한 말이 아니라 해도 스타벅스 측의 신고와 경찰의 이해하기 힘든 대응에 화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분노한 사람들은 #BoycottStarbucks라는 해시태그를 트위터에서 유행시켰다. 문제가 된 필라델피아 매장에는 커피를 마시러 온 사람들 대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모였다.

스타벅스는 재빠르게 대응했다. 사건이 터진 지 이틀이 지날 무렵 트위터 공식 계정을 통해 사과문을 올렸고, CEO 케빈 존슨은 공식 홈페이지에 이번 사건이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라며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사건이 터진 지 나흘째 된 날, 사건이 촉발된 필라델피아 매장에서 다시 한번 이번 사건을 바로잡겠다고 말하는 동영상을 찍어 홈페이지에 올렸다. 또한 필라델피아 시장 짐 테니와 경찰청장 리처드 로스를 만나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고 피해 당사자인 돈테 로빈슨과 라숀 넬슨을 직접 만나 사과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CEO 케빈 존슨은 5월 29일 미국 전역에 있는 8000여 개의 매장 문을 닫고 17만5000여 명의 직원들에게 무의식적인 편견에 대해 교육하기로 했다. 365일 중 단 하루에 불과하지만 스타벅스로서는 1670만 달러 상당의 매출 손실을 감수하는 일이다.

이 사건에서 주목할 만한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인종차별에 관한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스타벅스의 위기 대응 방법에 관한 부분이다. 이번 사안에 인종차별이 있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백인들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 흑인들에게 일어났고 그들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 흑인 둘이 앉아 있는 것을 신고한 필라델피아 스타벅스 매니저의 인종차별적 편견도 문제였고 그 신고를 받고 흑인들을 체포한 경찰들의 편견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처음 불법 침입으로 체포를 강행한 경찰관들을 두둔했던 필라델피아 경찰청장 리처드 로스도 며칠 후에 피해자들에게 자신들이 잘못했음을 사과했다. 최근의 인종차별이 노골적이기보다는 은연중에 나타난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한 점이다. 스타벅스가 직원 교육을 통해 고쳐가겠다고 말한 ‘무의식적 편견’이 현실에서 어떻게 문제를 일으키는지를 이번 사건은 명백하게 보여줬다.

한편으로 이 글에서 좀 더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스타벅스의 위기 대응 방법에 관한 부분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위기 대응 방법 중에서도 사과의 방법에 관한 내용이다. 스타벅스의 CEO 케빈 존슨이 보여준 사과의 방식, 즉 위기 대응 능력이 거의 만점에 가깝기 때문이다. 왜 만점에 가까운 사과인지를 알려면 만점짜리 사과가 어떤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포브스>에 실린 ‘사과의 심리학: 스타벅스의 CEO 케빈 존슨은 어떻게 해냈나’라는 글에 따르면 사과가 필요한 기업의 위기 대응 방식에는 일곱 가지 필수 요소가 있다. 첫 번째,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은 이가 있다는 즉각적이고 방어적이지 않은 인정. 두 번째, 사건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을 지는 모습. 세 번째, 기업의 행동이 피해자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 네 번째, 변명이나 합리화를 피하고 피해자에게 조금이라도 책임을 떠넘기려는 티를 내지 않는 것. 다섯 번째, 기업의 실수나 나쁜 행동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 제공. 여섯 번째, 특히 시스템의 문제일 경우 문제의 원인을 고쳐나가겠다는 구체적인 계획. 일곱 번째, 후속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증거와 후속 조치에 대한 약속 이행. 올바른 사과문은 이 일곱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 대부분의 사과문이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에 비해 케빈 존슨의 사과문은 이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다.

케빈 존슨은 스타벅스라는 브랜드가 입은 피해보다 피해자와 대중이 받은 피해를 바로잡는 데 더 집중했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식 사과문에서 존슨이 이번 사건을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미 여러 언론이 인용한 부분이다. 존슨은 변명하지 않았고 합리화하지도 않았다. 피해자들이 음료를 주문하지 않았다는 점을 앞세워 합리화하려 들 수도 있었겠지만 존슨은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았다. 존슨의 사과에서 특히 빛나는 부분은 신고한 매니저에게도 책임을 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당 매니저의 개인적인 잘못으로 돌릴 수도 있는 사안이었지만, 존슨은 직원을 탓하는 대신 시스템상의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를 직접 일으킨 직원에게 책임을 떠넘기곤 했던 수많은 기업의 사례를 상기해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포브스>의 글이 인용한 말 그대로 “한두 명의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보다는 나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더 높다. 그것은 희생양을 만들거나 더 큰 문제를 덮어두려는 시도로 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존슨은 피해자들도 직접 만났다. 피해자를 직접 만나 사과하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그 전에 자신을 만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피해자들이라고 명시한 것도 좋았다.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인 보상을 한 것은 당연했다. 피해자인 넬슨과 로빈슨은 존슨과 만남을 통해 금전적인 보상을 받았고, 애리조나 주립 대학의 온라인 학사 학위를 등록금 없이 수료할 기회도 얻었다. 5월 29일 미국 전역의 스타벅스 매장 문을 닫고 직원 교육을 하겠다는 것으로 문제의 원인 자체를 고쳐나가겠다는 구체적인 계획 또한 훌륭했다.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진 이 모든 사과와 대책은 말 그대로 교과서에 나올 법한 것이었다.

사과에 관해서라면 우린 너무나 많은 잘못된 사과를 보았다.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 위주로 쓴 사과문은 아주 흔하다. 피해자가 아니라 나를 위해 사과문을 쓰니 사과문에서 피해자를 비난하는 티를 내게 되고, 책임을 온전히 떠안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기도 한다. 개인 차원이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2017년 비슷한 인종차별 문제로 위기를 겪은 유나이티드 항공의 예를 보자. 당시 아시아 남성 승객이 자신이 예매한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항공사의 오버부킹 문제로 착석하지 못하게 된 것에 항의하다 항공국 소속의 보안 요원들에게 끌려 나간 사건을 두고 유나이티드 항공의 CEO 오스카 무노즈는 승객이 ‘호전적’이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피를 흘리며 비행기에서 끌려 나간 피해자에게 조금이라도 공감하고자 노력했다면 결코 하지 말았어야 할 발언이었다. 타인에게는 한없이 가혹해질 수 있지만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워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진정성 있는 사과문을 쓰려면 그런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야 한다.

소셜 미디어가 생활화되고 개인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것이 과거보다 매우 쉬워진 세상에서 개인의 사과와 기업의 사과를 명확히 구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물론 개인의 사과와 기업의 사과가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둘에 공통점이 있다면 좋은 사과와 나쁜 사과가 구분된다는 것이고, 좋은 사과의 기준을 개인의 사과와 기업의 사과 모두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구라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런데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돼야 하는 건 잘못의 경중보다도 ‘그 잘못을 어떻게 사과하고 고쳐나가는가’여야만 한다. 적절한 사과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아도 좋다. 반대로, 내가 잘못했을 때 누군가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면 스타벅스의 이번 사례를 떠올려보자. 나로 인해 피해 본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 좋은 기준점으로 삼을 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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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윤지만(칼럼니스트)
사진정우영, ©GETTY IMAGES
출처
3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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