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터진 디저트

단군 이래로 이만한 디저트 열풍이 없었다.

에스콰이어 - 디저트

한반도에 빵이 상륙한 이래로 이렇게 뜨거운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었을까. 연일 빵과 관련한 따끈따끈한 뉴스가 쏟아진다. 스타벅스는 올 들어 디저트 판매액이 전체 매출 중 20%를, 투썸플레이스는 30%를 넘어서며 디저트 카페로 변신을 선언했다.

투썸플레이스는 널리 인식되지는 않았으나 애초에 디저트 카페를 표방했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커피와 간단한 디저트를 고집했기에 180도 달라진 태도가 놀랍다. 저가 커피 전문점도 질세라 제과·제빵에 뛰어들고 있다. 이디야커피는 2016년에 신설한 베이커리팀에서 개발한 빵을 같은 해 논현동에 문을 연 플래그십 스토어 ‘이디야커피랩’에서 선보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인기를 끈 제품을 전국 가맹점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후발 주자인 빽다방은 더 영리한 방법으로 역전을 노린다. 아예 베이커리 카페를 차린 것. 신사역 사거리에 맞닿은 건물 1층에 ‘빽다방 베이커리’라는 간판을 내건 이 플래그십 스토어는 이례적으로 50여 석의 자리를 확보하고 매일 아침 직접 구운 빵을 내놓는다. 빽다방은 앞으로 이 매장에서 성공을 거둔 제품을 전국 매장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빵을 전국의 매장에 납품하려면 공장화를 이뤄야 할 터. 신사동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백종원 대표가 본격적으로 베이커리 시장에 뛰어든다는 사실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유업계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매일유업의 ‘폴바셋’과 남양유업의 ‘백미당’에 이어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지난여름 자체 개발한 디저트 카페 ‘밀크홀 1937’의 첫 매장을 열었다. 밀크홀 1937 1호점은 종로 한복판에 위치하며 5층 규모다.

유업계가 디저트 카페 사업에 사활을 건 이유는 단순하다. 출산율이 감소하며 유업계의 주력 제품인 흰 우유의 소비량이 덩달아 감소했기 때문이다. 또한 원유는 빵과 디저트를 만들 때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재료다. ‘신선한 우유’라는 대외적 이미지와 원유를 적극 활용해 다양한 디저트를 개발하고 음료 메뉴를 잘 갖춘다면 기존 커피 전문점과 싸워 이길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2009년 매일유업이 자구책으로 내놓은 폴바셋은 기존 커피 전문점과 달리 커피를 직접 매장에서 볶는 로스터리 카페라는 점과 함께 아이스크림 등 유기농 원유를 활용한 디저트류를 차별점으로 내세우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지난해 폴바셋은 매출액이 756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15% 증가했으며 현재 매장 수가 100곳에 달한다. 가장 최근에 문을 연 100호점은 아예 ‘폴바셋 파티시에’라는 새로운 콘셉트 아래 매장 내에 아이싱룸을 두고 다양한 케이크류를 선보인다.

‘가격 대비 성능’을 뜻하는 가성비는 저성장 시대가 지속되며 소비생활의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식음료와 외식업계에서 이 경향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런데 최근 디저트 시장에서 오랜만에 새로운 단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심비’와 ‘나심비’라는 신조어다.

사람들은 빵과 디저트를 고를 때 가성비 대신 ‘가격 대비 만족’을 뜻하는 가심비를 넘어 ‘가격을 신경 쓰지 않는 자기 만족’을 뜻하는 나심비를 새로운 기준으로 삼는다. 소비자들이 디저트만큼은 가성비가 아닌 가심비와 나심비를 허락한다는 이야기. 그들은 아무리 양이 적고 비싸도 맛있거나 혹은 이색적이면 주저 없이 지갑을 연다. 케이크 한 점에 1만원이라는 가격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저항심을 심어주지만 그럼에도 행복을 사기에는 비교적 저렴한 금액이라는 심사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6년 국내 디저트 시장 규모는 9조원을 육박했다. 이는 전년도와 비교했을 때 약 14% 증가한 규모이며 앞으로 연평균 2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커피업계, 유업계, 유통업계 등이 앞다퉈 디저트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다.

이쯤 되니 우리에게 언제부터 ‘커피에는 디저트’가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됐는지 궁금하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다방커피에서 프라푸치노 등의 커피 음료를 거쳐 쌉싸래한 아메리카노나 카페라테에 입맛이 익숙해진 후 본격화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인기를 누리며 연신 화제를 모으는 디저트로 인해 미식업계에는 미뤄왔던 논쟁들이 스멀스멀 수면 위로 올라오는 눈치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디저트와 빵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인다. 9조원에 육박했다는 디저트 시장 규모는 제과·제빵업과 커피 전문점의 규모를 합친 숫자다. 즉 여기서 말하는 디저트에는 디저트 하면 으레 떠오르는 케이크나 구운 과자류는 물론 식사용 빵을 포함한 다종다양한 빵과 커피 등의 음료까지 포함된다. 전문가들은 빵과 디저트는 엄연히 다른 제품으로 이를 아울러 디저트라고 통칭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긴다. 반대로 디저트를 빵에 포함시키는 일도 꺼린다. 또 어떤 이들은 “한국인들은 한 번도 빵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충격적인 말을 뱉기도 한다. 어째서일까.

유럽 등 서양 국가는 대부분 밀가루로 만든 빵이나 파스타 등을 주식으로 삼는 분식 문화권이다. 그들에게 빵은 우리의 쌀밥처럼 포만감을 주는 동시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삶의 필수 요소다. 그런데 빵이 달거나 짜면 금세 질려 매 끼니 먹을 수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매일같이 가미한 밥을 먹는다면 곧 물릴 테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에서 빵은 본디 심심하다. 캉파뉴, 바게트, 치아바타 등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이때 빵과 대립되는 존재가 바로 디저트다. 디저트는 후식이기 때문에 배부른 상태에서 소량 먹어도 기분이 전환될 수 있도록 단맛을 강화했다. 한편 여전히 빵이 부식이자 후식인 쌀 문화권에서 빵이 심심해서야 살아남기 힘들다. 배부른 상태에서도 입맛이 당기도록 빵에 단맛과 짠맛 등을 가미해 조리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진열대를 가득 메운 조리 빵을 더러 빵이 아닌 달고 짠 스낵에 더 가깝다고 한다. 그들은 빵에 단맛을 입히니 정작 달아야 하는 디저트의 강한 당도는 허용하지 못한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이를 방증하듯 TV 예능 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유럽 친구들이 출연하면 국내 빵집을 방문하는 장면이 으레 등장한다. 고향에서 매일 먹던 빵을 굳이 왜 여기까지 와서 찾는지 의아한데, 그들의 반응을 보면 더 놀랍다. 유럽 친구들은 진열된 빵을 보며 하나같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그것은 마치 빵을 생전 처음 본 것 같은 표정이다. 이는 그들이 아는 빵과 우리가 아는 빵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르빵 대표 임태언 셰프는 우리 빵 문화가 유럽과 다른 건 당연한 일이라며 이러한 논란을 일축한다. “문화의 차이이며 다양성의 문제예요. 우리는 빵을 같은 쌀 문화권인 일본을 통해 들여왔어요. 그 영향으로 빵이 달고 짜죠. 예전에는 단팥빵, 고로케 등 달고 짠 조리 빵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프랑스 빵이 대세예요. 지금은 천연 발효종 빵이나 바게트, 크루아상 등을 잘 만드는 집이 더 실력 있다고 인정받고 각광받아요. 제과·제빵의 양대 산맥인 프랑스와 일본 양국의 빵 문화가 국내에서 고루 발전하는 것 같아 오히려 반갑고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임 셰프는 빵과 디저트, 제과와 제빵을 구분 짓는 일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귀띔한다. 사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임 셰프 또한 프랑스나 일본의 제과·제빵 수준을 따라잡기 위해 발버둥 치며 국내 현실을 한탄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프랑스와 일본에 고유한 빵 문화가 있듯 50년, 100년이 걸리더라도 우리 또한 독자적인 빵 문화를 구축하면 돼요. 그때가 되면 프랑스나 일본에서 역으로 우리나라로 한국 빵을 배우러 올지 또 누가 알겠어요.” 한식 재료나 조리법을 활용한 완성도 높은 디저트와 빵을 보면 그날이 임 셰프의 생각보다 더 빨리 올지도 모른다.

임 셰프는 다양성을 추구하며 긍정적으로 변하는 국내 빵 시장을 마카롱을 예로 설명했다. “10년 전 가게를 오픈할 때 마카롱이 너무 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사 가지 않을 게 자명해 판매가를 파격적으로 1200원에 맞췄죠. 역시나 허용 범위를 넘는 단맛에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예상대로 몇 년을 고전했죠. 그런데 지금은 손님들이 오히려 저희 집 마카롱이 다른 집보다 덜 달다고 말씀하세요. 마카롱 제품의 절반 이상을 10년 전 레시피 그대로 만드는데도 말이에요. 그만큼 마카롱이 대중화된 거죠.” 임 셰프는 우리 빵 문화가 여전히 정체성을 찾기 위해 변화하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20~30년 전만 해도 버터크림이 유행했는데 요즘은 아무도 안 먹어요. 현재 생크림을 거쳐 무스 케이크로 유행이 넘어가는 추세예요. 이런 변화를 보며 우리도 점점 미국과 프랑스를 따라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요. 어떨 때는 오히려 우리가 프랑스를 앞지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프랑스는 변화를 굉장히 싫어해요. 아무리 새로운 디저트를 내놔도 여전히 오페라, 몽블랑 등 클래식 디저트를 찾죠.” 임 셰프는 현재 전 세계 디저트 시장을 이끄는 미국을 디저트 본고장인 프랑스보다 우리가 더 빠른 속도로 따라잡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개인 매장을 운영하는 셰프로서 대기업이 디저트 시장에 뛰어드는 최신 경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했다. 물론 원망과 비난이 섞인 대답을 기대했다. 그런데 임 셰프는 대기업과 동네 빵집이 대립하며 발전을 앞당겼다는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1980년대만 해도 호텔 빵, 동네 빵이 정말 잘 팔렸어요. 호텔 식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동네 빵은 만드는 족족 팔려나갔죠.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때 매장이나 주방 환경이 그리 위생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깔끔한 인상에 위생을 중요하게 여기는 프랜차이즈 빵집이 등장하자 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리기 시작했죠. 제 생각에 당시 빵집 주인들이 좀 안일했던 것 같아요.” 임 셰프는 동네 빵집들이 프랜차이즈 빵집에 대항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여전히 잠식되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본다. “프랜차이즈가 만들 수 없는 빵을 만드는 거예요. 자기만의 개성 있는 천연 발효종을 개발하고 개량제, 유화제, 방부제 등을 넣지 않는 거죠. 때마침 건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며 소비자들은 프랜차이즈의 크고 오래가는 빵을 의심하고 불편하게 여기게 됐어요. 그때부터 사람들은 동네 어귀마다 있는 프랜차이즈를 지나쳐 구석진 골목에 숨은 동네 빵집을 찾기 시작했죠.” 물론 임 셰프도 대기업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매장 때문에 타격을 많이 받았다. 그 돌파구로 커피 전문점이 디저트와 베이커리 사업에 진출하듯 임 셰프도 매장에 앉을 자리를 마련하고 음료 개발에 나섰다. 그 덕에 프랜차이즈의 등쌀에도 매장을 늘리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임 셰프는 차별성을 갖기 위해 지난해 페이스트리 셰프로서는 드물게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이는 매장에서 음료와 디저트를 함께 파는 차원을 넘어 음료에서 빵, 디저트, 식사로 영역을 넓혀가는 커피 전문점과 같은 시도다. 망원동에 위치한 르빵더테이블은 여느 레스토랑과 같이 애피타이저, 메인, 디저트에 이르는 섬세한 요리를 선보이며 기존 빵집의 가능성과 페이스트리 셰프의 영역을 확장했다. 디저트는 국내 파인다이닝의 코스 메뉴에서 가장 아쉬운 요소로 통한다. 애피타이저와 메인 디시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디저트가 코스 요리의 전체 인상을 떨어뜨리곤 한다. 르빵더테이블은 디저트도 엄연한 요리이며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분자 요리 기술을 접목하고, 손님에게 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테이블에서 독주에 불을 붙여 따르거나 뜨거운 우유를 부어 모양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라이브 디저트’를 선보인다. “빵과 요리의 경계를 허물고, 동결 건조기를 이용하는 등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을 모색하고 있어요.” 커피는 이미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커피에 디저트를 곁들이는 문화도 커피만큼 일상에 스며들 것이다. 이를 미리 내다본 커피 전문점과 유업 회사, 유통 회사 등이 디저트 카페 시장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그렇다고 동네 빵집이 주눅 들 필요는 없어 보인다. 기존에 디저트와 빵을 만들며 개성을 쌓아온 집들은 음료만 잘 갖추면 오히려 더 경쟁력이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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