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청와대 퇴거를 보는 세 가지 시선

전직 대통령 박근혜 씨가 청와대를 떠나는 광경을 본 <에스콰이어> 기자들의 세 가지 시선.

비선실세를 따르다 무너진 대통령은 청와대 퇴거조차 비선 루트를 따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거 과정과 경로는 모두의 기대와 예상을 빗나갔다.

청와대 앞에서 어떤 식으로든 탄핵 인용에 관한 대국민 담화를 할 것이라는 기대는 솔직히 크진 않았다. 박 전 대통령 일행은 예상을 깨고 광화문에서 사직터널 방향으로 직진해버렸다. 삼성동 사저로 가려면 광화문에서 좌회전을 해서 세종로를 지나 서울역으로 향하는 게 최단 경로다. 사직터널을 지나 독립문 앞에서 좌회전을 하려는 순간 박 전 대통령의 의도가 드러났다.

좁은 병목구간이었다. 취재차량들이 삽시간에 엉켜버렸다. 국방부에서 삼각지 방향으로 좌회전을 할 때도 그랬다. 반포대교에서 올림픽대로 방향으로 좌회전을 할 때도 그랬다. 비선 루트를 따라 서울시내를 종횡무진한 끝에서야 박 전 대통령은 겨우 삼성동 사저에 도착했다.

삼성동 사저 앞에서도 “헌재 판결을 수용한다”는 입장 발표는 끝내 없었다. 그래도 한때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었던 정치인 박근혜는 자신을 뽑아준 국민을 실망시켰는데도 최소한의 책임지는 자세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친박 측근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눴을 뿐이었다.

청와대 퇴거 과정에서 언론은 박 전 대통령의 경로를 예측하지 못해서 허둥댔다. 덕분에 국민은 박 전 대통령의 퇴거 과정을 온전히 직시할 수 없었다. 텅 빈 화면과 깨진 화면만 쳐다보고 있어야만 했다. 집권 기간 내내 불투명한 비선 정치로 일관했던 박 전 대통령다운 불투명한 비선 퇴장이었다.

-신기주(<에스콰이어> 편집장)

서울의 운전자 입장에서 보았을 때 박 전 대통령의 귀가로는 아주 흥미로웠다. 만약 취재진을 걸러내는 게 목적이었다면 이 귀가로는 기술적으로 아주 훌륭했다. 내가 꼽는 주요 지점은 여기다.

1. 사직터널 지나서 독립문으로 좌회전
오늘 귀가의 강렬한 하이라이트였다. 청와대에서 출발해 강남까지 운전하고 간다고 쳤을 때 가장 고르지 않을 법한 길이다. 좌회전을 해서 광화문광장을 지나 남산 3호 터널로 가거나 낙원상가 위까지 가서 우회전한 후 남산 1호 터널을 타는 게 훨씬 낫다. 운전해본 사람들은 알 텐데 굳이 돌아가는 루트를 고를 필요가 없으며 저 길은 평소에 은평 뉴타운 등등에서 오는 차들이 많아서 신호도 한참 잡힌다. 왜 저 길을 골랐을까.

이걸 포함해 박 전 대통령의 모든 귀로가 한 가지 목적으로 수렴된다는 가설을 짜 본다면 어떨까. 목적은 취재진 피하기다. 귀찮게 달라붙는 취재진을 거르는 게 이번 동선의 목표라면 사직터널과 금화터널 사이의 좌회전 구간은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동선이다. 사직터널을 지나 독립문 방향으로 좌회전하려면 대신고 앞으로 빠져나가는 병목구간을 지나야 한다. 여기서부터 운집한 취재진의 동선이 꼬이기 시작한다.

2. 통일로-한강대로 구간
통일로와 한강대로는 다른 남산터널 진입로와는 달리 버스전용차로가 있다. 같은 큰길이라고 해도 경호팀이 막을 차선이 하나 줄어드는 셈이 된다. 다만 여기서 KBS는 ‘국민의 방송’다운 용단을 내렸는지 버스전용차선으로 진입해 박 전 대통령의 차량을 취재했다. 나중에 과태료 잊지 말고 내셨으면 한다.

3. 국방부-미군부대 지나 반포대교 남단 방향으로 우회전
한강대로로 내려간 박 전 대통령의 경호차량 일행은 삼각지역에서 좌회전해 이태원역 방면으로 향한다. 여기도 차선이 넓지 않다. 그다음 반포대교 남단으로 빠지는 곳도 하나의 우회전 차선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병목현상이 일어난다. 경호팀은 서울의 도로망을 일종의 거름망처럼 썼다.

4. 반포대교
반포대교는 편도 2차선 왕복 4차선이다. 강남권으로 가는 한강 교량 중 가장 진입차선이 작다. 한남대교나 성수대교 혹은 영동대교로 진입했다면 지금처럼 취재망을 쉽게 떨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반포대교 북단에서부터 경찰의 바이크팀은 학익진으로 갈라져 취재차량이 박 전 대통령 측 차량으로 접근하는 걸 막았다. 취재진과 박 전 대통령 측 차량의 거리가 점차 벌어지기 시작했다.

5. 반포대교 남단 올림픽대로 종합운동장 방면 진입로
반포대교가 끝나면 신호를 받아 좌회전으로 올림픽대로 종합운동장 방면으로 진입한다. 여기서는 아예 경호 차량의 바이크 팀이 바이크에서 내려 인간방패 식으로 진입로를 막았다. 취재차량들은 박 전 대통령 측이 올림픽대로를 타고 가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의 출발에서부터 따라온 취재팀은 여기서 전원 걸러졌다. 이다음에 나온 방송국 영상은 모두 박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 촬영되고 송출되었다.

6. 동호대교 남단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는 영동대교 남단을 빠져나와 진입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호송팀은 지금까지의 일관성을 어기지 않았다. 이들은 반포대교 남단 진입로에서 취재차량을 틀어막고 동호대교 남단으로 빠져나왔다. 동호대교 남단 역시 올림픽대로에서 강남으로 진입하는 길 중 가장 빠져나가는 길이 좁다.

사실 이건 하나마나 한 이야기다. 효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추정만 할 수 있을 뿐, 취재진을 거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는 것도 가설에 입각한 추정일 뿐이다. 하지만 일국의 전 대통령이 굳이 넓고 효율적인 길을 두고 좁은 진입로를 군데군데 섞은 이유는 결국 잘 모르겠다. 왜 그랬을까?

박찬용(<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6시에 나간다고 했다. 그러더니 30분 밀린다고 했다. 6시 30분에 나간다고 했다. 그러더니 또 30분 밀린다고 했다. 7시에 나간다고 했다. 그런데 7시가 돼도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젠 몇시에 나가겠단 이야기도 없다. 기존에 청와대에서 한솥밥을 먹던 관계자들과 인사가 길어진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다. 4년이 넘도록 함께 동고동락했던 처지이니, 그 정도 관용은 베풀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청와대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되는 곳이니 엄연히 국민이 건물주인데 왜 건물주에게는 아무런 의사 표명이 없으신 걸까요?

그 시각 박근혜가 돌아갈 삼성동의 자택 주변에선 태극기를 흔드는 박사모가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정치인 지지자들이라기 보단 교주를 기다리는 신도들 같았다. 태극기교라고 불러도 될까. 그럼 태극기에게 너무 미안해지는 걸까.

그들은 19세기 웨스턴 무비에서나 등장하던 무법자들 같았다. 20차에 이르도록 단 한 사람의 사상자도 없었던 촛불집회의 평화로운 풍경을 건너 맞이한 탄핵 직후 태극기를 든 탄핵 반대 집회자들은 법치를 깡그리 거부하듯 무법적인 시위를 벌이다 결국 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경찰도 여럿 다쳤다. 태극기의 시간은 거꾸로 펄럭인다. 유감이다.

청와대를 불법점거 중인 박근혜 씨는 할 말이 없는지 직접 물어보고 싶었지만 당연히 그럴 권리가 없으니 답답한 마음에 청와대 홈페이지에 접속해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상석에 앉아 있는 회의실 이미지가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저는 국회와 국민의 목소리를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으며 지금의 혼란이 잘 마무리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특검의 수사에 차분하고 담담한 마음가짐으로 대응해 나갈 것입니다.”

이미지 속에 명기된 문장은 한때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의 발언을 인용한 것이었다. 청와대 소식란을 보니 2016년 12월 9일에 개최된 국무총리 및 부처장관 간담회 장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그러니까 대통령 박근혜의 시간은 2017년으로 넘어오지 못했다. 청와대의 시간은 2016년에 멈춰 있었다.

청와대는 개인 별장이 아니다. 대통령은 취미 생활이 아니다. 탄핵은 장난이 아니다. 그런데 박근혜에게 이 모든 건 장난 같다. 모든 게 사소해 보인다. 이젠 더 이상 화가 나지도 않는다. 그저, 이후에 굴러갈 시간들이 촛불을 켜며, 광장에 서서 그렸던, 정상적인 시간으로 우리의 시간이 되돌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박근혜가 서울을 우회하며 뒤늦게 자택에 도착하니 태극기를 흔들어대며 환호하는 이들이 보인다. 태극기의 시간은 여전히 거꾸로 펄럭인다. 그들의 환호에 만개한 미소로 화답하는 박근혜의 얼굴을 봤다.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이니 그녀의 행복한 시간에 딴지걸 생각은 없다. 다만 혹시라도 그녀가 검찰에 소환되고 구속되고 죗값을 치르게 된다면 그때도 그는 웃고 있을까? 정말 궁금하다. 그러니 검찰이 엄정한 수사를 통해 나의 호기심을 해결해주길 고대한다. 제발.

민용준(<에스콰이어> 디지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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