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연금술

술과 음식의 퍼즐을 맞추는 순간, 미식의 경험치는극대화된다.

술과 음식을 페어링하는 문화는 유럽에서 너무도 오래되고 보편화해 그 기원을 찾기 어렵다.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전통적 개념의 페어링은 언어의 근원을 알 수 없지만 보편적으로 쓰이는 ‘함께 자란 것들끼리 잘 어울린다(What grows together, goes together)’는 정신에 입각해 일상화됐다. 다분히 보편타당한 논리다. 프랑스 북서부의 브르타뉴 지방은 낮은 기온 탓에 포도가 잘 자라지 못해 와인 대신 사과즙을 발효한 시드르를 주로 생산하며 메밀이 주 작물이다. 그리하여 시큼하고 달짝지근한 시드르와 메밀로 반죽한 쌉싸래한 갈레트, 크레페를 함께 즐기는 것을 공식으로 여겨왔다. 한편 부르고뉴 와인에 그 지역의 포도나무잎을 먹고 자란 달팽이 요리를 곁들이는 것 또한 불변의 법칙으로 통한다. 기후, 토양 등 같은 자연환경에서 나고 자란 식재료로 빚은 술과 음식을 함께 즐기는 일은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널리 행해졌다.

현대적 개념의 페어링은 1980년대 미국에서 비롯됐다.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로 인해 급속도로 성장한 미국의 와인 산업은 금주법이 시행되며 맥없이 스러졌다. 아예 대가 끊기다시피 한 미국의 와인 산업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으로 1980년대에 이르러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와인 산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미국 와인의 르네상스를 맞아 아예 전략을 새로이 짰다. 금주법 시행으로 공황을 겪은 그들은 와인이 단순히 취기를 부르는 술이 아니라 식사를 완성하는 하나의 요소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 많은 광고 비용을 들였다. 이로써 단란한 식사를 위해서는 와인이 필수 불가결한 존재라는 인식을 심는 데에도 성공했다. 양조자들은 자신들의 와인이 어떤 음식과 잘 어울리는지를 셀링 포인트로 삼았고, 그들 중 일부는 라벨에 아예 페어링하면 좋은 음식 이름을 넣었다. 이때 그들이 말하는 페어링은 음식과 술을 지역으로 묶는 전통적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다. 와인의 보디감, 당도, 산미, 타닌감, 풍미 등을 고려한 조합이었다.

우리의 음주 문화에 대한 애착은 유럽인 못지않다. 중국 송나라 때의 정사 <후한서>에는 ‘동이족은 모두 토착민으로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기를 좋아한다’고 우리 민족의 성향을 묘사해놓았다. 그럼에도 페어링 개념은 거의 없었던 듯싶다. 달걀옷을 입혀 기름에 얇게 부쳐낸 전에 시금털털하고 포만감이 큰 막걸리를 곁들이는 조합 정도가 떠오르는데, 이도 근대에 와서 유행했을 법하다. 음주와 풍류를 그 누구보다 즐기며 음양의 조화를 중시한 우리의 식탁에 술과 음식의 페어링이 없었다는 게 어쩐지 의아하다.

정식당 임정식 셰프는 유럽에서 우리에게 부재한 페어링 문화가 발달한 이유를 음식이 지닌 본질적 결함에서 찾는다. “전 세계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식사할 때 신맛을 찾아요. 요리에 레몬이나 라임을 뿌리는 이유는 비린내나 누린내를 잡기 위한 것도 있지만 산미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유럽에는 샐러드 같은 일부 음식을 제외하고는 신맛이 나는 음식이 드뭅니다. 그래서 식사할 때 산미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와인을 마신 겁니다. 반면 우리는 김치나 장아찌 등 신맛이 강한 발효 식품으로 산미의 밸런스를 맞췄습니다.” 임 셰프는 유럽인이 식사할 때 와인을 찾는 또 다른 이유로 수분감을 뽑았다. 우리는 국이나 찌개류가 발달해 식사하면서 적당한 수분을 섭취할 수 있지만, 유럽에서는 국물 요리가 드물다 보니 와인으로 중간중간 입을 헹구고 적셔야 한다는 이야기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들어 파인다이닝이 정착하며 와인 페어링의 개념이 생겼다. 특히 파인다이닝들이 알라카르트 메뉴를 정리하고 단일 테이스팅 코스 메뉴로 통일하는 최신의 경향으로 인해 와인 페어링은 다이닝에서 더 중요한 요소로 강조된다. 알라카르트 메뉴를 주문할 경우 하나의 와인을 기준 삼아 어울릴 만한 음식을 고를 수 있지만, 코스 메뉴는 그 속에 다양한 조리법과 식재료가 혼재하기 때문에 한 종류의 와인으로 최상의 조합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특히 여러 음식이 순차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식사 내내 지치지 않는 동시에 연결성이 유지되려면 여러 종류의 와인이 필요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유럽과 미국에서는 파인다이닝을 찾는 손님 중 절반가량이 와인 페어링 메뉴를 선택한다고 한다. 유명 셰프와 레스토랑이 내는 귀한 음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페어링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분위기다. 한편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국가, 대륙 간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새로운 음식과 술이 끊임없이 국경을 넘나든다. 이때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술과 음식을 효과적으로 소개하고 또 즐기는 방법으로 페어링이 적극 활용된다. 일본의 경우 사케가 일본 음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술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사케를 해외 시장에 진출시키지 않았는가. 또 기존 공식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내추럴 와인의 등장이 페어링을 또다시 화두로 떠올렸다.

페어링은 오랜 시간 양조자, 소믈리에, 셰프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행복한 고민이 그들만의 몫으로 국한되지 않는 눈치다. 일상 와인 편집숍 위키드와이프를 운영하는 이영지 대표는 페어링이 대중 사이에서도 점차 일상적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고 믿는다. “지난 10년간 다이닝과 주류 분야가 각각 독립적으로 발전한 결과, 기존에 전문가의 영역이던 페어링이 점차 미식을 즐기는 푸디를 거쳐 대중에게도 주목받는 영역으로 확장됐습니다.” 이 대표가 페어링에 중점을 두고 운영하는 와인 클래스,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을 상세하게 제시하는 와인 숍은 두꺼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잡지 기자였던 이 대표가 페어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와인 바에서 치즈 플레이트를 곁들여 와인을 맛본 이후부터였다. “와인을 전문으로 하는 바이니 별 의심 없이 레드 와인에 치즈 플레이트를 주문했는데, 그날따라 와인이 지독히 맛없게 느껴지는 거예요. 짭짤한 올리브를 먹고 와인을 입에 머금으니 금속성의 날카로운 기운만 남았어요. 또 단맛의 과일 치즈와 레드 와인은 입안에서 뒤엉켜 불쾌한 기운을 조성했고요. 와인의 인상을 오히려 해치는 안주를 경험하고 역으로 페어링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죠.”

이 대표는 최근 한식과 와인을 페어링하는 일에 푹 빠져 있다. “2007년 신입 기자 시절 프랑스 론 지역에 있는 몽티리우스 양조장의 주인 부부를 만나 함께 식사하며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식탁에 오른 갈비찜과 그분들이 만든 지공다스 레드 와인이 정말 잘 어울렸어요. 그 순간 한식과 와인이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고, 그 후로 재미 삼아 친구들과 한식과 와인의 페어링을 시도해왔어요.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 김치찜에는 아이스 와인, 송편에는 리슬링, 삼겹살에는 키안티, 감자전에는 스파클링 와인 등 최상의 조합을 찾아냈죠.”

이 대표는 한식과 와인의 페어링 중 남도의 한 굴비 전문점에서 맛본 어란과 이탈리아 팔랑기나 화이트 와인의 궁합이 무척 인상에 남는다고 한다. “짭짤하고 쨍한 팔랑기나 화이트 와인과 어란의 만남은 평생 기억에 또렷하게 남을 정도로 강렬했어요. 이처럼 천생연분 같은 술과 음식의 궁합을 발견할 때면 상생 효과를 내는 둘의 맛 때문인지 아니면 발견의 기쁨 때문인지, 그 순간 만족감이 최고조에 다다릅니다. 페어링은 음식과 술의 맛을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정서에도 영향을 주어 행복의 강도를 고양시키는 복잡 미묘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이 대표는 최근 강남구 신사동에 문을 연 미아전에서 한식의 전과 내추럴 와인을 페어링하는 일을 책임지기도 했다.

뉴 코리안 퀴진이 전 세계 다이닝 신에서 아직은 미미하지만 새로운 요소로 자리 잡으며 한식과 와인의 접점을 찾는 일이 가속화됐다. 저명한 셰프와 소믈리에가 그들의 예민한 미각으로 실마리를 찾아내며, 사람들은 이 둘의 조합을 조금씩 수긍해나갔다. 여기에 불황의 장기화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며 사람들이 외식보다 집밥, 회식보다 홈파티를 선호하면서 스스로 술과 음식의 궁합을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낯선 이국의 문화였던 페어링이 습득되고 체화됐으며, 특히 집밥에서 한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보니 한식과 와인을 페어링하는 일에 더 집중하게 됐다.

한편 쉑쉑버거 식음기획팀 강미 팀장은 최근 한식과 와인의 페어링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로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의 연령대를 꼽았다. 미국에서 와인을 공부하고 와인 수입사 CSR에서 경력을 쌓은 강 팀장은 한식과 와인의 페어링을 다년간 실천해왔다. “아무래도 연령대를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관계자가 아닌 이상 경험치가 어느 정도 축적되는 30대에 이르러 와인을 제대로 알게 되는데, 그 나이대가 되면 자연스럽게 한식으로 회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와인을 좋아하지만 음식은 한식이 더 편하니까 순리에 따라 둘의 조합을 고민하게 되는 거죠. 저도 어느 날부터 와인을 마시다 보니 속이 부대껴 국물이 당기더라고요. 부야베스나 홍합찜에 화이트 와인 혹은 라이트한 보디감의 레드 와인을 먹으면서, 찌개나 라면에는 와인을 곁들일 수 없다는 생각이 모순처럼 여겨졌어요. 그때 비로소 와인은 서양 음식과 어울린다는 고정관념을 깬 것 같아요.”

강 팀장은 자신이 경험한 사고의 전환을 일에도 적극 활용한 사례를 들려주기도 했다. CSR에서 벨기에산 레드 에일 ‘듀체스 드 부르고뉴’를 국내에 첫선을 보일 때의 일이었다. “행사를 위해 술에 어울리는 음식을 마련해야 했는데, 본사에서 내려온 지침은 벨기에 술이니 감자튀김 등 벨기에 음식을 페어링하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너무 느끼하고 겉돌 것만 같았어요. 레드 에일의 강렬한 산미가 음식의 기름기를 잡아준다는 사실에 집중하니 오히려 전이나 떡갈비, 기름떡볶이 같은 게 떠오르더라고요. 집에서 한번 페어링해보니 역시나 잘 어울렸어요. 그래서 주제를 아예 ‘광장시장’으로 잡고 닭강정, 떡갈비, 빈대떡, 기름떡볶이 등을 준비했죠.”

행사는 기대 이상의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실제로 그 자리에서 컨테이너 두 대에 해당하는 술을 추가 계약했다. “원래 듀체스 드 부르고뉴의 셀링 포인트는 ‘와인 같은 맥주’였어요. 와인보다 도수가 낮으면서 와인의 색을 지니고 있으니 술이 약한 여성이나 남녀가 와인 대용으로 마시는 술이었죠. 그런데 그 행사 이후 한식과 잘 어울리는 술로 인식되면서 예기치 않게 셀링 포인트가 바뀌었어요.” 아마 예정대로 벨기에 음식을 내놓았다면 이처럼 주목받지는 못했을 거다. 이는 페어링의 놀라운 능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강 팀장은 한식에는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 조리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술과의 페어링은 여전히 발전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믿는다. 한편 이영지 대표는 가자미식해, 진미채, 고추장멸치조림 등 맵고 자극적인 한식에도 충분히 어울리는 술이 있다고 조언한다. 드라이하고 날카로운 산도를 지닌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로 만든 로제 와인 등이 이에 속한다. 최근 술집에서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을 들이켜던 음주 문화가 점차 좋은 음식을 곁들여 술맛을 천천히 음미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강 팀장은 지금이야말로 ‘페어링이 트렌드가 아닌 머스트’라고 강조한다. 더욱 풍요로운 식문화를 제시하는 페어링의 매력에 빠져들 이유는 이미 충분하다. /글_이주연(미식 칼럼니스트)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