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생활화된다면?

에도 시대의 예쁜 책 속에 답이 있다.

요즘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들 한다. 예전에는 스마트폰이 없어서 사람들이 책을 더 많이 읽었다고들 한다. 그래서 출판사들도 영업이 잘되었다고들 한다. 책을 읽어야 사람이 현명해지고 사회적으로도 성공의 기회를 더 많이 얻는다고들 한다. 정말 그럴까?

일부 중년들을 보면 그들이 젊은 시절 책을 열심히 읽어서 현명해졌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1970~1980년대에 책 몇 권 읽고 갖게 된 세계관을 평생 발전시키지 않은 채로 답답한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몇 있다. 필자도 책으로 먹고사는 사람이지만 책을 읽지 않으면 큰일날 것처럼 말하는 요즘 분위기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요즘 세상의 첨단 정보는 책이 아니라 인터넷에 있다. 더 중요한 정보는 콘퍼런스 후의 미팅에서 낚아채야 한다.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어떤 지식이 종이 책으로 나오려면 최소한 몇 달은 걸린다. 책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여러 형태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속도 면에서는 결코 빠르지 않다. 책에 대한 종교적일 정도의 믿음은 무책임하다. 무턱대고 믿는 것도, 그 믿음을 무턱대고 강요하는 것도.

게다가 1970~1980년대에 한국에서 많이 팔린 책은 인테리어 용도의 전집이었다. 중대형 아파트에 입주하는 중산층 가정의 백과사전, 세계 문학 전집, 한국 문학 전집 같은 책 말이다. 당시 큰 아파트에 새로 입주하는 사람들은 무겁고 칙칙한 마호가니 책장을 집에 들여놓곤 했다. 그리고 출판업자들에게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책으로 채워달라’는 식의 주문을 하곤 했다. 그렇게 실내 장식품처럼 한쪽 벽을 채운 백과사전과 전집류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 많았을 것 같지는 않다.

요즘 개장하는 대형 도서관 중에도 도저히 사람 손이 닿지 않을 곳에 책을 채워둔 곳이 있다. 이렇게 해놓고 도서관이라 부르는 건 좀 민망하지 않을까? 하긴 서울 시내의 어떤 카페처럼 멀쩡한 책을 잘라 벽과 바에 인테리어로 붙여놓지는 않았으니. 비록 읽지도 못하는 책이지만 훼손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는 그나마 낫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독서가 생활화될 때 일어나는 일이다. 책이 정말로 생활 속에 들어오다 보니 책의 내용이 아니라 물질로서의 책의 느낌을 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심하시라. 이런 일이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니까. 옛 일본에서도 이런 일이 흔했다.

표지에서 피어난 꽃이 그려진 비단 조각. 책을 어디까지나 시각적 오브제로 그렸다.

책 문양의 비단 조각부터 살펴보자. 이 비단 조각은 기모노를 만드는 가게에서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판매한 것이다. 갈색과 회색의 격자무늬 비단 조각 안에는 세 가지 종류의 책 이미지가 들어가 있다.

첫 번째 책은 <햐쿠닌잇슈>다. 한국어로 읽으면 ‘백인일수(百人一首)’가 된다. 100명의 고대 시인이 지은 100편의 옛 일본 시 와카(和歌)다. 이 <햐쿠닌잇슈>는 오늘날까지도 일본인의 가장 중요한 교양으로 자리하고 있다. 에도 시대에는 <햐쿠닌잇슈>를 가르치기 위한 카드놀이까지 고안되었다. 이 카드놀이의 이름은 우타가루타(歌がるた). 비단에 낱장으로 그려진 카드가 우타가루타 카드다.

두 번째 책은 <우타이본>이다. 한국어로는 ‘요본(謠本)’이다. 일본 중세에 발생한 가면극인 노(能)의 대사만 실은 시나리오집이다. 이 <우타이본>을 보며 대사를 연습하고 간략한 형태로 연극을 하는 놀이가 에도 시대에 크게 유행했다. <우타이본>은 여성들의 교양으로도 간주되었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기모노의 문양으로까지 쓰이게 되었다.

표지에서 피어난 꽃이 그려진 비단 조각. 책을 어디까지나 시각적 오브제로 그렸다.

세 번째 책은 펼쳐져 있다. 흐름을 보아하니 <우타이본> 같다. 그 흐름대로라면 ‘노’의 대사가 보여야 한다. 하지만 글자는 없고 캔버스처럼 그림만 그려져 있다. 여기 보이는 그림은 ‘노’ 중에서도 중요한 작품의 명장면이니 영 억지는 아니다. 다만 이게 <우타이본>의 원형도 아니다. 기모노를 만들 비단이라는 원단에 어울릴 만큼 책의 원형을 바꾼 셈이다.

요컨대 이 비단에서는 책의 본문이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무늬나 인테리어의 한 요소로 책이라는 물질성이 주는 특유의 느낌을 선호했고, 그게 더 중요했다. 옅은 초록색으로 염색한 다른 비단 조각을 보면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이 비단 조각에 있는 책 문양에도 글자는 적혀 있지 않다. 대신 표지에서 피어난 꽃이 책 밖으로 뻗어 나오게 그려져 있다. 책의 내용보다는 책의 물질성 그 자체를 시각 요소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지금 서울의 모 카페와 똑같은 발상이다. 책을 절단하지 않았을 뿐이다.

잇세이도에서 파는 요메이리본. 실제로 손바닥만큼 작다.

이렇듯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인테리어나 소품으로 쓰는 경우 책의 느낌만 이용하고 본문에 대해서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 풍조가 있었다. 이런 경향은 <요메이리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어로 읽으면 가인본(嫁入本)이다. ‘시집갈 가(嫁)’ 자를 썼다. 전근대 일본 여성이 결혼할 때 지참하던 책이 <요메이리본>이다. <겐지 이야기> 같은 고전 작품, 남녀 간의 교합을 묘사한 춘본, 그리고 사진 속의 책과 같은 와카 시집이 주로 실려 있다. 결혼은 늘 있는 법이고 인구도 계속 늘어나던 시대다. 그런 만큼 출판인 입장에서 보면 <요메이리본> 같은 책이 수지맞는 스테디셀러였다.

사진 속의 책은 <고센와카슈(後撰和歌集)>라고 하는 10세기의 와카집이다. 고대와 중세의 중요한 와카집 21점을 묶어서 ‘21대집’이라고 총칭하는데 그중 두 번째로 오래된 것이다. 사진 속의 책은 에도 시대에 <요메이리본>으로 쓰려고 작게 만들어 찍어낸 히나본(雛本)이다. 한국어로는 ‘병아리 추(雛)’ 자를 써서 ‘추본’이라고 읽는다. 실로 병아리처럼 작다.

이 책은 5년 전에 일본인 지인 선생님에게서 취직 선물로 받았다. 도쿄의 고서점가 진보초(神保町)에 자리한 고서점상 잇세이도(一誠堂)에서 1만 엔(약 10만원)에 구입했다고 들었다. <요메이리본>은 원래 세트가 있다. 원래 세트를 담았던 소형 책 상자까지 남아 있는 경우는 매우 비싸다. 만약 21대집이 이런 식으로 다 모여 있다면 가격이 수천만원대까지 나갈 수도 있다.

이 <요메이리본>이 문헌학에서는 참으로 흥미로운 존재다. 물건이 좋다. 책은 예쁘게 잘 만들었다. 종이도 보통 닥지가 아니라 도리노코가미(鳥の子紙)라고 하는 고급 종이다. 본문 글씨도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그런데 내용이 이상하다. 막상 본문을 읽어보면 틀린 부분이 많다. 실제로 이 책을 읽은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교양 있어 보이려고 혼수감으로 가져갔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책의 겉모습은 아름답게 만들었지만 본문을 정확히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책의 본문보다는 책의 물질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정보와 지식을 담은 디바이스로 쓰는 게 아니라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한다. 익숙한 모습 아닌가? 그렇다. 1970~1980년대 한국 집 안의 마호가니 책장에 꽂혀 있던 문학 전집과 동일한 발상이다. 독서가 정말 생활화되면 결국 어딘가에서 이렇게 본말이 전도된다. 300년 전의 일본이나 30년 전의 한국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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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 시덕(문헌학자, 작가)
사진정 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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