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2차전

6·13 지방선거는 사실상 지난 대선의 연장전이다.

“여당은 본전이면 진다. 야당은 본전이면 이긴다.” 50여 일 앞으로 다가온 2018년 6월 지방선거 평가, 한 줄 요약이다. 또다시 선거다. 지방선거든 총선거든 때만 되면 야당은 어김없이 ‘정권 심판론’을 입에 올린다. 학생에게 중간고사가 반갑지 않듯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게도 선거는 항상 부담스러운 존재다. 게다가 이번 지방선거는 지난해 5월 조기 대선 이후 약 13개월 만에 치르는 다소 이른 중간고사다. 대통령 임기 중후반, 다소 힘이 빠진 상태에서 치르는 선거는 약간 자포자기라도 하련만 때아닌 이른 시험은 다르다. 반드시 보여줘야 하는 성적이 있기 때문이다.

탄핵 사태로 인한 조기 대선, 그리고 탄생한 문재인 정부. 문 대통령은 취임 1년이 다 돼가는 4월 현재 60%대 중반에서 70%대 초반에 이르는 정도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대통령의 인기에 힘입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율도 유례없는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현 상황이 이어진다면 이번 선거는 여당으로서는 무난히 이길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무난하기만 해선 안 된다는 데 있다. 이런 조건에서 기본만 한다는 건 사실 패배와 같기 때문이다. 기존 의석수보다 최소 1석이라도 더 가져와야만 체면을 살릴 수 있다. 여당이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다르다. 본전만 건져도 승리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엄청난 파고 속에서 지난 9년간의 여당 생활을 마무리한 한국당은 기본만 해도 다행이다.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간의 치열한 싸움. 광역단체장 단 1석이 그저 1석이 아닌 이유다.

민주당 9 + @, 한국당 6 + ?

“이번 선거는 대선 2차전이다.” 올해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민주당의 시선은 복잡하다. 보통 대선이 끝나고 나면 패자들은 당분간 전면에서 물러나 어느 정도 시간을 갖고 미래를 모색하곤 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대선 이후 정치권에 등장한 장면들은 다소 낯설었다. 대선 후보였던 한국당 홍준표는 불과 2개월 뒤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대표로 선출됐다. 대선 후보였던 안철수 역시 지난해 8월 국민의당 대표로 선출된 후 올해 초에는 사실상 당을 깨고 바른정당과 합당, 바른미래당 창당까지 마무리했다(2018년 2월). 역시 대선에 완주했던 유승민은 안철수와 손잡고 바른미래당을 창당, 현재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대선에 나섰던 후보 대부분이 정치 전면에 신속하게 등장한 것이다.

“2017년 대선 이후 6개월 안에 모든 (야당) 후보들이 정치 전면에 등장했고, 한 분은 서울시장 후보로도 나섰다. 이번 선거는 대선에서 결승을 치렀는데 다시 하자고 하는, 대선 2차전이다.”(4월 5일,  민주당 김영진 전략기획위원장 기자간담회)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선택받는 광역단체장 자리는 총 17곳이다. 이 가운데 서울, 광주, 세종, 충북, 충남, 전북, 강원 등 7곳이 민주당 소속이다. 원래 민주당 소속이던 대전시장(권선택 지사직 상실)과 전남지사(이낙연 총리)까지 합하면 9석이다. 민주당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자리는 그래서 ‘9석+@’다. 지금 분위기가 선거 때까지 유지된다면 그렇게 어려운 목표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선거에는 항상 반전이 따르게 마련이다. 현재 민주당 지지율은 문 대통령의 인기 덕분에 덩달아 높아진 수치라는 걸  부인하기 어려운 데다 지방선거에서는 유독 숨은 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명박, 박근혜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초유의 사태 속에서 한국당 지지자들이 자신의 속내를 감추는 건 당연하다. 제1야당인 한국당 지지율에 대해 “지금 한국당 지지율은 허수로 그보다는 훨씬 더 높다. 민주당 지지자는 다 의사를 표시하지만 한국당 지지자는 잠시 지지를 유보하고 있어서 엄청나게 숨겨져 있다”(김영진 위원장)는 발언이 엄살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광역단체장 6석을 지키지 못하면 (당대표직을) 사퇴하겠다!”

선거가 다가오자 정장 재킷 대신 가죽점퍼로 갈아입은 홍준표의 선언이다. 가죽점퍼를 전투복 삼은 그는 한발 더 나아갔다. “일부 언론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우리가 참패하는 지방선거 한번 해보자”며 자신감까지 내보이고 있다. 대체로 잘나가는 쪽은 엄살을, 못 나가는 쪽은 과장을 통해 선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완전히 근거 없는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홍준표가 집어든 건 당 산하 정책 연구소인 여의도연구원 자체 여론조사 결과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당이 우세한 곳은 대구, 경북과 울산, 경남 그리고 대전이다. 반면 부산과 충남은 박빙, 수도권에서는 밀리고 있다고 인정했다.

현재 한국당 소속 광역단체장은 경기, 인천, 대구, 경북, 부산, 울산 6곳이다(홍 대표가 대선 전까지 자리를 지켰던 경남을 포함하면 7석). 결국 6석은 현상 유지 수준이지만 대표직까지 걸 만큼 의미 있는 숫자라는 뜻이다. “집권 1년 차에 여당이 지는 일이 별로 없다. 야당은 현상 유지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홍준표)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여의도연구소 조사 결과, 늘 그들만의 리그였던 부산이 경합 지역으로 분류됐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지난 6차례의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당선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대구-경북과 이른바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은 늘 한국당(최소한 보수 정당)의 놀이터였다. 호남이 민주당의 놀이터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부산은 물론 경남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부울경의 승리 여부는 홍준표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직결된다. 특히 자신이 지사를 지냈던 경남에 문재인의 복심이라는 김경수 의원이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대리전이다. 불과 3월 말까지만 해도 ‘김태호 전 지사 공천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던 그가 ‘올드보이’ 딱지가 붙은 김태호를 다시 소환해야 했던 사정에는 그 간절한 배경이 있다.

낮은 지지율, 혁신 없는 당과 품격 없는 당대표 등으로 한국당은 심각한 인물난에 직면했다는 언론의 지적에 홍준표는 예상대로 적극 반박한다. “우후죽순 난립하는 후보보다 우리는 각 지역별로 최적의 후보 한 사람만 선정되면 된다.” 하지만 이인제 충남지사 후보,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 등 잇단 올드보이 소환을 두고 ‘최적의 후보’라는 당대표의 자평은 다소 민망한 수준이다.

바른미래당은 안철수 전 대표를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웠다. 안철수 입장에서는 정말 내키지 않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2011년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한 그가 7년 뒤 경쟁자로 마주하게 된 것도 묘하다. 게다가 두 번의 대선 후보를 거친 안철수로서는 일종의 ‘하향 지원’일 수 있다.

선거는 합종연횡의 과거다

선거는 결과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하지만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선거 이후’다. 다시 말하면 패배한 자들의 이합집산, 합종연횡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앞으로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즉 민주당의 ‘무난’한 선거를 가정한다면 결국 한국당의 승패에 따라 보수 야당의 구도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 만약 한국당이 패배한다면 당장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는 홍준표의 사퇴다. 홍 대표는 이미 6석을 사수하지 못하면 사퇴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지난 3월 21일 그는 페이스북에 “나를 음해하고 있는 극소수의 중진들은 다음 총선 때 강북 험지로 차출하겠다지방선거가 끝나면 어차피 다시 한번 당권 경쟁을 하게 될 텐데, 그때를 대비해 당원들과 국민들의 마음을 사는 헌신하는 정치를 하라”고 썼다.

이 짧은 글에는 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일단 ‘다음 총선 때 강북 험지로 차출’은 공천권을 쥐고 있는 사람만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이다. 홍준표의 대표 임기는 내년 7월까지다. 그렇다면 무슨 뜻일까? 요약하면 지방선거에 지더라도 다시 전당대회에 도전해 재신임을 묻겠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2020년 7월까지 임기가 연장된다. 총선은 2020년 4월이다. 그리고 총선은 2년 뒤 치러지는 대선과 직결돼 있다. 대선 후보 ‘재수’까지 염두에 둔 발언이다.

선수들은 이 메시지를 해독하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4선 중진 정우택 의원은 바로 다음 날 국회에서 중진 간담회를 열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좋은 결과가 안 나오면 (홍 대표) 스스로 물러나고 전대를 열겠다는 계산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깔려 있다모든 것을 걸고 지방선거의 승리를 이끌어야 하는 당대표가 총선 공천권까지 행사하겠다는 마각을 드러내고 있다!”

보통 ‘마각’이란 말은 쉽게 쓰지 않는 단어다. 그만큼 당대표에 대한 일부 의원들의 분노 지수가 어느 정도인지 느껴지게 하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바른미래당은 안철수 전 대표를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웠다. 안철수 입장에서는 정말 내키지 않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2011년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한 그가 7년 뒤 경쟁자로 마주하게 된 것도 묘하다. 게다가 두 번의 대선 후보를 거친 안철수로서는 일종의 ‘하향 지원’일 수 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이런 독배를 피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창당한 바른미래당의 지지율이 바닥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바른미래당이 ‘안철수 서울시장 당선’ 정도의 상당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지금처럼 지지부진한 상태를 이어가게 된다면 한국당과의 거리는 더욱 좁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홍준표 입장에서도 과거 친박 세력으로 채워진 당내 세력 분포보다 새로운 우군이 필요하다. 과거 바른정당에서 다시 넘어온 복당파(김무성, 김성태 등)를 우군으로 삼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물론 국민의당에서 넘어온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들의 저항이 있겠지만, 이미 유승민 등 과거 새누리당 세력과 손잡고 창당할 때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만약 홍준표의 공언대로 6석 혹은 그 이상을 석권하면서 한국당이 현 상태를 유지(그들 표현대로는 승리)한다면 한국당은 바른미래당에 대해 더 강도 높은 무시 전략을 쓰거나 일부 의원들을 상대로 투항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선거에 승리한 제1야당 입장에서는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는 바른미래당의 싹을 잘라버리거나 흡수하는 방법 외에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 다만 어떤 경우든 양당이 합당 수준으로 가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합당, 분당 등 실질적인 지각변동은 총선과 대선을 전후한 시점에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게 마련이다. 따라서 2020년 4월 총선까지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실질적 혹은 형식적 경쟁 구도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진보 진영에서는 어떤 흐름이 보일까. 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의석수다. 제1당은 실질적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당장 선거에서 ‘기호 1번’을 누가 다느냐도 의석수로 결정된다. 민주당 지도부가 높은 지지율에 너도나도 출마하겠다는 자당 의원들을 주저앉힌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의원들의 출마 및 사퇴가 많아져 의석수가 줄어들게 되면 민주당 후보가 ‘기호 2번’을 달고 출마해야 한다. 여당으로서는 악몽이다. 4월 15일 현재 민주당과 한국당의 의석수는 각각 121석, 115석이다. 불과 6석 차이다. 그래서 주목하는 것이 민주평화당이다. 민주평화당은 호남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과거 안철수와 함께 국민의당으로 분당(2016)하며 나갔던 반갑지 않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집권 여당으로서는 국회,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된다면 악마와도 손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결국 총선 등을 앞두고 민주당과 민주평화당 간 불편한 ‘재동거’가 언제 다시 시작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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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 승원(정치 칼럼니스트)
사진정 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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