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한화

올해 한화의 호쾌한 야구를 보며 야구 칼럼니스트가 찾아낸 것들.

독수리가 드디어 독수리다워졌다. 사정권에 먹잇감이 들어오면 단숨에 낚아챈다. 한번 기세를 움켜쥐면 좀처럼 놓치지 않는다. 찬스를 살리는 타선, 견실한 수비, 안정된 선발진, 철옹성 같은 마무리. 도대체 얼마 만인가. 감독 한 명 바뀌었다고 팀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 

결국 핵심은 대담함이다. 예전의 이글스는 패배가 두려워 벌벌 떠는 팀이었다. 투구가 조금만 위로 흩날리면 여지없이 투수 교체가 이어졌다. 안타 맞는 게 두렵기 때문이었다. 이글스의 예전 감독이 방송 해설을 맡았을 때 한 말이 떠오른다. “저렇게 투구가 뜨는 것은 바란스(밸런스)가 흐트러졌다는 증거예요. 바꿔주는 게 옳지 않나 싶어요.” 

투수 출신에다 오랫동안 프로야구 코칭스태프로 활약했으니 아마도 그 견해는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판단의 옳고 그름은 둘째 치자. 문제는 현대 프로야구에서 그처럼 ‘조금만 투구가 흐트러져도’ 투수를 바꿔대는 야구 스타일이 빚어내는 부작용이다. 

잦은 투수 교체는 투수진의 피로를 불러온다. 더 치명적인 것은 결국 책임을 떠안는 투수들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앞선 중간 투수가 조금만 불안해도 구위가 좋은 한두 선수가 수험생 학원 가듯 마운드에 오른다. 시즌 초반에는 이런 투수 기용이 반짝 성공을 거둘지 모른다. 하지만 144경기나 되는 기나긴 시즌 동안 이런 방법으로 내내 성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어깨는 쓸수록 강해진다’는 예전의 믿음은 그야말로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마운드에 자주 오르면 언젠가 구위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예전의 이글스는 그 서슬에 시즌 중반만 되면 날개의 힘을 잃어갔고 끝내 하위권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한용덕 감독은 다르다. 2018시즌이 시작되기 전, 이글스의 불펜이 강하다고 평가한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불펜의 핵심 권혁과 송창식은 혹사의 후유증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박정진은 많은 나이에도
2년 계약(총액 7억5000만원)에 성공했지만 다시 예전처럼 날카로운 공을 던지지는 못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한화 이글스를 5강 후보로 꼽지 않은 것은 현대 야구에서 불펜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용덕 감독은 서균, 박상원이라는 이른바 ‘듣보잡’ 카드를 꺼내 들었다. 패배를 두려워했다면 마운드에 올리지 못했을 선수들을 과감히 불펜의 중심으로 기용했다. 그 선택은 현재 시점까지 완벽하게 들어맞고 있다. 곧 2군으로 사라질 것만 같던 카드들이 놀라운 성공을 거두며 한화 이글스의 초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특히 서균의 활약이 눈부시다. 물론 많은 이닝을 소화해내지는 않는다. 옆으로 던지는 스타일 탓에 주로 우타자를 원포인트로 상대한다. 그러나 0.98이라는 평균 자책점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이 글을 쓰는 6월 초 현재 10경기 이상 출장한 구원투수 가운데 0점대 평균 자책점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서균뿐이다. 이 정도 수치라면 마운드에 오르는 족족 맡은 임무를 훌륭히 완수해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 최근 들어 약간 페이스가 떨어진 느낌이지만 이대로라면 신인왕 후보로도 거론될 만하다. 서균은 2014년에 데뷔했지만 1군에서 뛴 경험이 거의 없어 신인왕 후보 자격을 갖추고 있다. 

새 얼굴들뿐 아니다. 안영명, 이태양 등도 불펜에서 제 몫을 다한다. 여기에 정우람이 완벽하게 예전 모습으로 돌아와 철벽 마무리로 자리 잡고 있다. 그 결과 이글스는 역전승은 많으나 역전패는 적은 이상적인 시즌을 꾸려나가고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투수 기용, 마운드 운용이 독수리 군단을 완벽하게 탈바꿈시켜놓은 셈이다. 

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시 한번 예전 감독의 말이 떠오른다. 타자가 초구를 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러다 죽으면 상대 피차(피처)가 얼마나 편한데.” 

한때 초구를 쳤다가 아웃되면 벌금을 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프로야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한참 전의 야구가 그랬다. 초구 아웃이 상대 투수의 투구 수를 확 줄여주기는 한다. 그러나 현대 야구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투수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볼넷이다. 그런 볼넷을 줄이기 위한 가장 긴요한 방법은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잡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타를 치기 가장 쉬운 공은? 스트라이크를 노리며 들어오는 초구다. 덧셈, 뺄셈만큼 쉬운 이치다. 

실제로 이번 시즌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LG 트윈스는 초구를 쳐서 재미를 단단히 보고 있다. 초구 공략 확률이 가장 높으며 성공률 또한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높다(6월 초 현재 314타수, 132안타, 타율 0.420). 2위 SK 와이번스의 초구 안타 확률도 높기는 마찬가지. 302타수, 107안타로 3할 5푼 4리를 기록 중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구단의 성공률도 높기는 마찬가지여서 10개 구단의 초구 안타 확률 평균은 3할 6푼 3리가 조금 넘는다. 수치로만 따졌을 때 초구를 치기만 하면 평균 타자도 이대호의 타율을 기록할 수 있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 파울로 끈질기게 버티며 상대 투수의 투구 수를 늘리는 것도 물론 좋다. 그러나 스트라이크를 2개나 먹고 나면 타자의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지며 자연스럽게 삼진 확률이 높아진다. 구종 하나를 선택하고 풀스윙하기보다는 변화구와 직구 양쪽에 초점을 맞춰 선수들이 말하는 ‘반반’으로 타이밍을 잡는 탓에 예상한 공이 들어와도 정타 확률이 떨어진다. 스윙이 작아지니 장타 확률도 낮아진다. 그 결과 투 스트라이크 이후 안타 확률이 3할을 넘기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한·미·일 세 나라 프로야구 리그 가운데 타고투저 현상이 가장 심한 한국의 KBO 리그에서도 마찬가지다.

한화 이글스 역시 초구 타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 야구의 흐름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이글스 선수들은 올 시즌 6월 10일까지 모두 316타수에서 초구에 결과를 만들었다. 그 가운데 103개가 안타가 됐다. 타율 3할 5푼 2리. 초구를 친 타수가 많기로는 10개 구단 가운데 4위, 타율은 5위다. 투 스트라이크까지 참아낸 뒤 파울을 쳐가며 끈끈하게 버티는 식의 타법이 환영받던 예전과 달리 초구에 과감히 배트가 나가고 있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쉽다. 투수는 적극적으로 스트라이크를 던진다. 그래야 팀 패배의 씨앗인 볼넷이 줄어드니까. 타자는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휘두른다. 그래야 안타 확률이 높아지니까. 선수 기용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인이든 무명이든 가능성이 보이면 과감하게 기용한다. 3연투로 대표되는 혹사는 금물이다. 당장의 승리보다 선수들의 몸 상태가 더 중요하니까. 그런 생각으로 상식적이고 안정적으로 투수진을 운용한다 다시 말하지만, 얼핏 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대담한 팀 운용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니, 무척이나 어렵다. 감독으로서 또는 코칭스태프의 일원으로서 팀이 위기를 맞으면 당장 모면하기 가장 좋은 방법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코칭스태프는 투수 못지않게 안타 맞는 게 두렵다. 타자 못지않게 병살타가 두렵다. 패배의 두려움을 과감히 떨치는 것 역시 선수 못지않게 어렵다. 

또 하나 두려운 것이 있다. 팬들의 비난이다. 리빌딩을 하겠답시고 위기 상황에서 신예를 기용했다가 자멸하기라도 하면 SNS는 당분간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다. 헛스윙을 연발하는 타자가 있다 치자. 그가 언젠가 자신의 타격을 할 수 있을 거라 믿고 꾸준히 기용해보라. 그러면 양자니 뭐니 하는 비난으로 SNS뿐 아니라 인터넷 자체를 끊어야 한다. 

감독과 코치의 판단이 언제나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신이 아닌 다음에야 틀릴 때도 있다. 그랬을 때 어김없이 따라오는 팬들의 비난.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다. 

“욕을 먹지 않겠다고 팀을 운영하면 언제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2018시즌 도중 경질된 전 NC 다이노스 감독 김경문은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감독 당시 왼손잡이 투수 이와세가 마운드 위에 올라 있을 때 대타로 왼손잡이 김현수를 기용했다. 기자는 “실패했을 때 팬들의 비난이 두렵지 않았느냐?”라고 물었다. 김경문은 금메달을 따낸 뒤, 욕을 먹지 않겠다고 팀을 운영하면 결과가 좋지 않다는 말 뒤에 덧붙였다. “감독은 비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한용덕 감독은 신인 투수가 볼넷을 허용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면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볼넷 주면 어디로 가지?”

이 질문의 정답은 서산 캠프, 즉 2군이다. 

이 질문과 대답은 한용덕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 스타일을 그대로 드러낸다. 투수라면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한다. 안타를 맞건 홈런을 맞건 일단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야구가 된다고 그는 생각한다. 타자라면 적극적으로 스윙해야 한다. 상대 투수의 투구 수를 줄여주든 어떻든 일단 방망이를 휘둘러야 야구가 된다고 그는 생각한다. 

도망가는 피칭으로 볼넷을 뿌려댄다. 위기만 오면 투수를 갈아치운다. 주자만 나갔다 하면 번트로 아웃카운트를 헌납한다. 치졸한 작전은 이기고서도 팬들의 가슴에 뭔가 찜찜한 기분을 남긴다. 게임의 본질을 꿰뚫는 당당한 운영과 작전으로 승부를 보는 야구는 어떤가. 이런 야구 스타일은 보기에도 후련할 뿐 아니라 현대 야구의 이론에도 부합한다. 한용덕 감독은 이번 시즌 초반, 이 글을 쓰는 6월 초순까지 그런 야구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을 때 한화 이글스가 순위 표의 어디쯤 위치해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생각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 있을 수도 있다. 예기치 않은 돌발 변수로 급전직하, 염원하던 가을 야구 진입에 실패할 수도 있다. 결과가 어떻든 나는 지금 한용덕 감독이 보여주는 야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마도 대전구장을 꽉꽉 메우는 수많은 관중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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