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근로시간 단축일까

좋든 싫든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실시된다.

혹시 ‘반공일(半空日)’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반공일은 토요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전에만 일하고 오후에 퇴근하는 반쪽 공휴일이었던 토요일. 1980~1990년대를 산 아재들은 당시 반공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반공일 오후 2~3시쯤 삼겹살이나 통닭을 사 들고 집에 오실 아버지를 기다렸고, 웬만한 직장에서는 점심 무렵 일을 마치고 낮술 한잔하며 한 주의 피로를 풀었다. 사회 초년병 시절에는 반공일에 저녁까지 홀로 남아 잡무 처리를 하면서 씩씩대기도 했다. 

그 반공일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04년 7월 ‘주 5일 근무제’가 단계적으로 시행됐다. 토요일이 반쪽이 아닌 하루 전체를 쉬는 날이 됐는데, 2011년 5인 미만을 제외한 대한민국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고 2012년 전국 모든 초중고교에서 토요일에도 등교하지 않는 ‘주 5일 수업제’가 시행되면서 비로소 ‘주 5일 근무제’가 완성됐다. 

그런데 올 7월 1일 주 5일 근무제만큼 혹은 그 이상 우리 삶을 바꿔놓을 새로운 제도가 시행된다. 바로 ‘주 52시간 근무제’이다. 먼저 직원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적용되는데 대기업들은 지금 이 새로운 근무 시스템을 준비하느라 아주 난리가 났다. 2004년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될 때 그랬던 것처럼 우왕좌왕하고 궁금증도 많고, 논란도 그리고 비난도 많이 쏟아지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 정말 우리에게 ‘저녁 있는 삶’을 주고 ‘워라밸(워킹&라이프 밸런스)’을 지킬 수 있게 해줄까.

 

일주일 최대 52시간 근무, 넘으면 불법 

이번에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무제는 300인 이상 기업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50~299인 기업은 2020년부터, 5명 이상 49인 이하 기업은 2021년부터 적용된다. 이제 어떤 일이 있어도 한 주에 52시간 넘게 일을 하면 불법이고, 이걸 신고하면 해당 기업 대표는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로, 개념이 잘 안 잡힌다. 그럼 지금까지 우리는 얼마큼 일을 했던 건가. 기존 법정 최대 근로시간은 법정 근로시간 40시간(8시간/5일)에 연장 근로시간 12시간과 휴일 근로시간 16시간 등 총 68시간이다. 하지만 이제 법정 근로시간 40시간과 추가로 일할 수 있는 시간 12시간 등 총 52시간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아마도 이 대목에서 의문이 들 것 같다. 가령 ‘의사도 주 52시간을 지키나?’ 같은 것이다. 수술을 하거나 응급 환자가 몰릴 경우 근로시간을 기계적으로 한정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에서는 일명 ‘특례업종’이란 예외를 두고 있다. 특례업종은 사업자가 노동자와 합의하면 초과근무가 가능한 업종을 말한다. 병원 의사도 있고 항공기 조종사나 여객선 선장 등이 해당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간 특례업종이 너무 많았다는 거였다. 무려 26개 업종이었는데 이번 개정안에서는 육상 운송업, 수상 운송업, 항공 운송업, 기타 운송 서비스업, 보건업의 5개로 확 줄였다. 

최근 과로사와 자살이 잇따라 발생한 집배원은 이제 주 52시간 대상이다. 집배원은 통신업종에 속해 있는데 이번에 특례업종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엄청난 노동 강도에 시달리는 방송 및 영화 쪽 스태프도 이제 과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영화 제작 및 흥행업도 특례업종에서 빠져서 그렇다. 물론 300명 넘는 외주 제작사가 많지 않아 당장 올 7월부터는 아니겠지만 2020년경에는 주 52시간 근무가 법적으로 보장된다.   

 

최종 목표는 ‘인간다운 삶’인데

이렇게 법으로 개인의 일할 수 있는 자유를 재단하는 궁극적 목적은 바로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다. 반쪽짜리 휴일이었던 반공일(토요일)을 온전한 휴일로 만든 주 5일 근무제와 궤를 같이하는데, 일과 생활(삶)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이에게는 일이 곧 삶의 전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에게는 일과 삶은 양극단에 있다. 야근을 하면 내 귀여운 어린 딸과 보낼 시간은 없고, 매일 밤 술자리에 시달리는 영업맨들은 50대 초반쯤 건강 종합 검진 결과에 눈물을 쏟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지금 하는 일이 내가 어릴 적부터 꿈꿨던 바로 그 직업인가. 그래서 이제 법이 우리 삶에 좀 더 개입해 일명 ‘저녁이 있는 삶’의 기반을 마련해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이처럼 주 52시간 근무제의 핵심은 ‘인간다운 삶’에 좀 더 가까이 가보자는 건데, 다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당장 세세한 기술적 문제에서부터, ‘돈이 없는데 무슨 저녁이 있는 삶인가?’라는 근본적인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 분위기는 주 5일 근무제가 처음 시행됐던 2004년을 떠올리게 하는데, 정착되기까지 앞으로 5~6년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다만 이번에는 일수(日數)가 아닌 시간을 조정하는 문제라 더 정교한 기술적 접근이 필요하다. 즉 ‘금요일까지만 일하고 토요일에는 쉰다’가 아니라 ‘무슨 요일에 얼마까지 일해야 하나?’를 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현장에서는 훨씬 더 우왕좌왕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업무 시간 내 티타임과 흡연, 화장실 가는 시간 등을 처리하는 문제를 보자. 대기업의 경우 벌써부터 벼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대기업 사무직은 근무시간이 줄었다고 월급을 깎을 수 없는 구조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업무 집중을 혹독하게 몰아칠 가능성이 높다. ‘유럽 대기업에서는 근무시간에 신문도 못 본다’면서 회사 규정으로 자투리 시간 줄이기에 총력을 기울이는데, 동의하는 대목도 있지만 수십 년 된 한국식 근로 문화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도 힘든 노릇이다.

각 업종의 영업 분야에서 일하는 영업맨들은 현재 가장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일지 모른다. 영업 쪽 근로자들은 점심이나 저녁 시간을 활용해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저녁 술자리는 술자리이면서도 법인 카드를 쓰는 업무의 연속인데, 이걸 업무 시간에 어떻게 반영할지 아직까지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일은 앞으로도 똑같이 할 텐데 수당은 깎일 테니 너무 답답하다.” 이렇게 하소연하고 있다. 

 

선택 근로제와 탄력 근로제 vs 재량 근무제와 포괄 임금제

게임업종으로 대변되는 정보 통신 기술 쪽에서도 궁금증이 많다.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살인적인 업무 시간에 시달리는 근로자이지만 게임이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 주 52시간이 넘었다고 딱 멈출 수도 없다. 은행과 증권보험사 등 금융업종도 대책 마련에 고심이다. “돈은 24시간 잠들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대응도 24시간으로 해야만 한다. 백화점 마트, 호텔 면세점에서 일하는 유통업종 노동자들도 걱정이 크다. 이분들은 영업시간 이후 물건을 정리하는 등 가욋일이 많은데, 지금은 초과근무 수당을 받지만 자칫 돈도 못 받고 노동 강도만 세지는 상황이 올까 노심초사다. 언론인, 가령 기자들은 어떨까. 역시 답답하기만 하다. 취재기자들의 출퇴근은 결국 ‘기사 마감’인데, 기자 수를 대거 늘리지 않고는 ‘기사 다량 생산’의 요즘 언론 현실을 맞춘다는 건 불가능하다.

“노동시간 단축에 언론 노동자는 결코 웃을 수 없다. 고용을 늘리는 게 가장 확실하다. 하지만 회사 사정을 고려할 때관행상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는 등 다양한 대안이 고민돼야”

한국언론노동조합이 내놓은 성명이다. 정말이지 핵심 주제가 없다. 그렇다면 현재 나오고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대기업들이 속속 도입하는 ‘유연 근무제’가 첫손에 꼽힌다. 근로자가 자신의 여건에 따라 근무 시간과 형태를 조절하는 제도이다. 이 유연 근무제는 선택적 근로시간제(한 달간 일정 근로시간 외 나머지를 근로자 스스로 선택), 탄력적 근로시간제(최대 3개월 단위로 주 52시간을 탄력적으로 배분), 재량 근무제(노동시간 및 업무 방식을 스스로 결정) 등으로 나뉜다. 가령 선택 근로제가 도입되면 한 2~3년 후에는 오전 10~11시 출근 또는 오후 9~10시 퇴근 등 출퇴근 시간이 엄청 다양해질 것이다. 또 탄력 근로제의 경우 지금 게임업계는 이 기간을 6개월 정도로 넓혀주도록 원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 4개월 정도 죽어라 일하고 2개월 쉬면서 총량으로 주 52시간을 맞추며 업무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또 다른 이슈로 떠오른 게 ‘포괄 임금제’이다. 포괄 임금제는 시간외근로 수당을 급여에 포함시켜 지급하는 제도이다. 가령 ‘임금 총액에 모든 수당이 이미 포함돼 있다’는 조항이 들어간 근로계약서에 노동자가 서명만 하면 회사는 시간외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없다. 실제로 지금 대한민국 샐러리맨 두 명 중 한 명은 알게 모르게 포괄 임금제 방식으로 월급을 받고 있다. 따라서 주 52시간 근무제가 돼도 포괄 임금제가 존속한다면 인간다운 삶은 실패로 돌아간다. 회사는 다짜고짜 업무 달성만 외칠 것이고 노동자는 야근특근 수당도 못 받고 일감을 집으로 싸 들고 가 고3 수험생처럼 일해야 할 테니까. 다행히 정부가 곧 포괄 임금제 폐지 정책을 내놓는다 하고 삼성전자, 네이버, 위메프 등은 이미 포괄 임금제를 폐지했다. 

복병은 또 있다. 앞서 말한 유연 근무제 중 재량 근무제다. 재량 근무제는 포괄 임금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재량 근무제는 근로시간을 측정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근로자 ‘재량껏’으로 하루 12시간 일해도 ‘외면’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고액 연봉의 변호사나 디자이너 등 최고 전문직에만 재량 근무제를 적용하는데 우리도 이런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난 더 일하고 돈 더 받고 싶은데, 왜 막나요?”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 관련 우리 사회 한편에서는 입 밖에 내놓지는 못해도 맘 깊은 곳에서 격정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다. “난 더 일하고 싶은데, 더 일해서 몇 푼이라도 더 벌어 우리 아들 학원 보내고 싶은데 왜 주당 근로시간을 줄이냐”라는 목소리다. 아마도 한국의 웬만한 ‘가장’이라면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아예 ‘저녁은 있지만 돈은 없는 삶’이란 냉소적인 말도 나오고 있다. 솔직히 당국도 고민이다. 일은 덜 하지만 효율성과 생산성이 엄청 높아져 임금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더 많이 받는 게 분명 최선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현실은 당장 근로자 10명 중 2명은 임금이 바로 깎이게 된다. 

기업 입장에서도 할 말이 많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숨겨진 속내는 고용 창출과 연결돼 있다. 주 52시간으로 근로를 막으면 기업은 공장을 더 돌리고, 프로젝트를 더 진행하려면 새로운 인력을 충원해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기존 근로자가 좀 더 일해주는 게 신규 충원 인력보다 효율성이 더 높다는 게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자본의 속성을 생각해보면 고용을 늘리는 대신 또 어떤 꼼수로 이 상황을 피해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앞으로 많은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그래도 이젠 앞으로 갈 수밖에 없다. 

다만 꼭 한 가지, 진짜 중요한 걸 이번만큼은 반드시 챙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거 반공일은 온 가족에게 설렘 가득한 날이었다. 하지만 이 행복감은 주 5일 근무제에서 절대 더 커지지 않았다. 아빠들은 골프 치러 새벽부터 사라졌기 때문이다. 주 5일 수업제? 학생들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호연지기를 기르는 게 아니라 학원 뺑뺑이를 돌고 사교육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정말이지 모든 걸 다 떠나 주 52시간 근무제가 또 이렇게 흘러가지 않았으면 한다. 꿀맛 같았던 그 시절의 반공일. 그 ‘꿀맛’을 놓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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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정철진(경제 칼럼니스트)
사진정우영
출처
36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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