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당신께

미안합니다.

저는 신문기자였습니다. 

2004년 국회 어디에선가 스치듯 의원님을 처음 만났고 그 이후에도 방송과 신문을 통해, 또 집회 현장에서 의원님을 멀리서나마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주 수요일마다 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의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믿기 어렵나 봅니다. 당신의 부재를.

든든했습니다. 

언제라도 내 얘기를 들어줄 것 같은 사람이 국회에 단 한 명쯤은 있구나, 하는 생각에 든든했습니다. 답답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가서 말이라도 붙여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아주 외롭지만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만나는 수많은 소시민, 소수자, 약자가 마주하는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현실을 보면서 분노하고 좌절할 때 제 몸은 뒤로 숨는 대신 나의 시선은 당신을 향해 있었던 것도 고백합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노회찬이라는 사람이, 혹은 수많은 ‘노회찬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겠지, 나 대신 싸워주겠지 하며 비겁하게 안도했었나 봅니다.  

장미꽃 한 송이 들고 

무엇보다 여성으로서 제가 당신의 존재를 각인하게 된 계기는 2004년 9월이었습니다.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으로 진보 정당이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한 바로 그해, ‘국회의원 노회찬’의 첫 법안이 무엇일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호기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발의한 첫 ‘작품’은 다름 아닌 호주제 폐지를 핵심으로 하는 민법 개정안이더군요. 자녀가 아버지의 성과 본만 따르도록 한 불합리한 제도를 바꿔 어머니의 성도 따를 수 있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부계 우선주의를 바꾸도록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떤 남성 의원도 나서지 않을 때, 심지어 나서서 반대할 때 당신은 여성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 처음으로 발의한 법안이 호주제 폐지를 위한 개정안이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인기 끌기 차원의 퍼포먼스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기억합니다. 2007년 3월 2일 국회 정론관. 여성 국회의원, 여성 운동가들이 기자회견을 여는 자리였습니다. 2년 전 폐지된 호주제를 대신할 대체 입법이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며 대체 입법 처리를 촉구하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그 여성들 가운데 단 한 명의 남성, 노회찬 당신이 있었습니다.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다소 뻘쭘한 표정으로, 다소 무뚝뚝한 표정으로 서 있는 당신의 사진을 보면서 2년 전 그 ‘퍼포먼스’가 쇼가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의미 없는 ‘말’이 아니라, 그럴듯한 ‘척’이 아니라, 말하고 행동하고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쉬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당대표가 되면 최고위원은 꽃다발을 하나 주는데 당대표에게는 꽃다발을 세 개씩 주는 이런 불평등과 예산 낭비를 근절하겠습니다.”

당신의 유머는 시공간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당시 당대표 수락 연설을 시작하면서 모두에 꺼낸 이 ‘꽃다발 차별’ 농담도 비록 농담이지만 당신이었기에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았습니다. 웃음과 자극을 동시에 주는 당신의 시도는 이 사소한 애드리브에서도 비켜가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한 번 더 웃고,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그 유명한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 연설이 곧 시작됐죠.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서울 구로구에서 출발해 강남을 거쳐 개포동 주공2단지까지 약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 버스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4시에 출발하는 버스와 4시 5분경에 출발하는 버스는 출발한 지 15분 만에 신도림과 구로시장을 거칠 때쯤이면 좌석은 만석이 되고 버스 사이 복도 길까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앉는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매일 같은 사람이 탑니다. 이들은 새벽 5시 반이면 강남의 빌딩에 출근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 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지난 7월 27일 국회 영결식장에는 그 ‘투명 인간’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신께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그 뜨거운 뙤약볕과 싸우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지우며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회찬 당신이 이젠 더 이상 할 수 없기에 이정미 대표가 대신해 이들을 안아줬습니다. 청소 노동자들은 회고합니다. ‘우리를 인간 취급해준 의원, 직장 동료로 대해준 가장 인간적인 정치인’으로 말입니다. 국회 공간이 부족해서 휴게실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을 때 ‘내 사무실이라도 같이 쓰자’고 했던 노회찬을, 2005년부터 매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 돌아오면 장미꽃을 건네주던 노회찬을 이 투명 인간들은 기억합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것은 하나의 색깔 때문이 아닙니다. 일곱 가지 색깔이 서로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헌법에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나와 있습니다. 종교든, 사상이든, 양심이든, 학문이든,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해선 안 됩니다.”

2007년 6월. 지금으로부터 무려 11년 전. 성 소수자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무지개 깃발들과 함께 서서 ‘무지개가 아름다운 이유’를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성 결혼 합법화, 성 전환자 성별 변경 입법화를 약속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인간은 다 똑같으니까. 인간은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으면 안 되니까. 차이가 차별이 되어선 안 되니까.

2007년 6월, 민주노동당 대선 예비 후보 신분으로 성 소수자들과 간담회를 여는 파격을 보여준 당신은 17대 임기가 끝나기 얼마 전인 2008년 1월, (또다시) 국회의원 가운데 처음으로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합니다. ‘성별, 장애, 나이, 인종, 신체 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성 소수자에게 했던 그 약속을 지키려는 시도는 그 이후에도 말과 행동을 통해 멈추지 않았습니다. 

“예고편 보고 울컥하기도 처음입니다. 우리 모두가 ‘변호인’이 되어야 할 현실을 감동적으로 다뤘습니다. 영화를 보는 것부터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실천입니다.”

2014년 2월경 당신이 트위터에 남긴 글입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개봉하기 전이었습니다.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인 고 황유미 씨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었습니다. 황유미 씨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여러 명이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지만 삼성은 회피했고 결국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때 당신은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인해 더 이상 국회의원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었습니다. 당신은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들의 명단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했습니다. 아니 강탈이라고 해야 정확할까요. 일반인의 눈에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할 내용이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앞다퉈 국민들에게 친절히 알려줘야 할 ‘알 권리’였습니다. 떡값을 받은 검사들이라니. 하지만 법원은 역시나 국민들과는 다른 곳에 서 있었습니다. 법원은 당신에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며 유죄를 선고했고 당신은 곧 무직자 신세가 됐습니다. 여전히 이토록 노골적인 세상을 무력하게 바라만 봐야 한다는 게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쉬지 않더군요. 그 낡은 한 켤레 구두를 신고 여기저기 참 부지런히도 돌아다니시더군요. 노동자 곁에, 장애인 곁에, 억울한 죽음 앞에. 

당신의 영정 앞에 누군가가 사다 놓은 새 구두 한 켤레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마지막 인사

생각해보면 당신은 거짓말 같은 사람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지치기 마련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하다가 힘들면 쉬기 마련입니다. ‘이 정도 했으면 됐다, 이쯤 했으면 그만해도 된다’ 하기 마련입니다. 행동하다 멈추고 말만 하기 마련입니다. 말만 하던 것마저 멈추고 생각도 멈추기 마련입니다. 나 자신을 위한 고민이 아닌 타자를 위한 고민은 대부분 그렇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남긴 글, 하지만 직접 전하지 못한 글이, 글쎄 반올림과 승무원 복직에 대한 축하 글이었다고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바로 그 순간까지 그들에게 ‘축하 인사’를 쓰고 있었다고요? 당신의 운전기자에게 마지막 던진 말이 ‘힘들지 않느냐’였다고요? 이쯤 되면 화가 납니다.

당신은 그 많은 약자들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당신이 어려울 때 손을 잡아준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느꼈을 그 고립감, 쓸쓸함, 좌절과 분노를 미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나오는 당신의 재치와 유머 그리고 쓸쓸한 낭만이 당신의 고통을 가렸습니다. 우리는 몰랐거나 모른 체했습니다. 이 미안함이 얼마나 오래갈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부디, 이젠 좀 쉬시길.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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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승원(정치 칼럼니스트)
일러스트최혜령
출처
37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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