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추럴 와인의 떫은 맛

내추럴 와인을 향한 찬사가 불편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국내에서도 심심찮게 ‘내추럴 와인’이라는 단어를 듣게 된 지 몇 년 됐다. 내추럴 와인은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다이닝 신의 큰 움직임 속에서 태동했다. 그만큼 그 가치와 철학을 인정받아 큰 사랑을 받을 것이라 여길 만했다. 그런데 현재 전 세계 와인 시장에서 내추럴 와인은 ‘뜨거운 감자’다. 내추럴 와인을 향한 애정 어린 목소리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긍정하고 경도할 ‘내추럴’, 즉 자연 지향적인 단어가 수식어로 붙었거늘, 어째서일까. 여전히 내추럴 와인에 대한 법적 정의가 없고, 덩달아 이를 증명할 인증 제도도 부재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내추럴 와인에 열광하는 지금, 왜 그 누구도 법적 정의를 내리지 않는 걸까. 이쯤 되니 와인 종주국이자 내추럴 와인의 발상지인 프랑스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척 궁금해진다. 

자연주의 와인을 수입하는 네이처와인 한건섭 대표는 내추럴 와인의 법적 정의가 없는 이유를 따지기에 앞서 자연주의 와인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 한다고 귀띔한다. “오가닉 와인,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이라는, 현재의 내추럴 와인이 생기기 전부터 존재하던 개념이 있습니다. 인증 체계를 갖춘 이것들을 뭉뚱그려 부르던 용어인 내추럴 와인이 어느덧 와인의 한 카테고리로 취급되면서 혼란이 생긴 겁니다.” 한 대표의 말에 따르면 오가닉 와인은 말 그대로 제초제와 농약을 쓰지 않고 오로지 유기농 자연 퇴비만으로 재배한 포도를 원재료로 한 와인을 뜻한다.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은 우리말로 생명역동농법에 따라 배양한 포도를 재료로 한 와인이다. 생명역동농법이란 독일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루돌프 슈타이너가 개발한 농법으로 달의 움직임에 따라 농작물을 재배하는 기술을 뜻한다. 절차가 상당히 까다로운 생명역동농법을 두고 한 대표는 ‘자연주의 농법의 끝판왕’이라고 하는데, 이를 잘 들여다보니 우리의 절기 문화와 닮아 있다. 

오가닉 와인, 바이오다이내믹 와인 등의 자연주의 와인을 통칭하는 내추럴 와인을 와인의 한 종류로 분리하는 움직임이 생겨난 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 두 와인을 인증하는 제도가 농법을 규제하는 데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포도를 유기농법 혹은 생명역동농법으로 재배했더라도 양조 과정에서 화학 성분을 첨가하거나 상업 효모를 사용하면 그 의미가 희석되는 법. 그리하여 유기농법 혹은 생명역동농법으로 재배한 포도를 가지고 합성 첨가물 없이 최대한 자연적인 방식으로 양조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 결과물에 ‘내추럴 와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추럴 와인이 등장한 배경을 이쯤 들여다보니 궁금증이 더욱 증폭된다. 이렇듯 이상적이고 좋은 취지의 와인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제도가 왜 없는 걸까? 자연주의 와인 시장에 종사하는 한 대표 역시 항상 의문을 품는 사항이라며 그 이유를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현대 과학으로는 여전히 와인의 모든 성분을 분석하지 못합니다. 분석된 성분만 규제하는 거죠. 세상에는 무색, 무미, 무취에 질량도 없는 첨가물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를 증명할 수 있는 기술도, 인증 제도도 없는 거죠.” 한 대표는 오가닉, 바이오다이내믹 와인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을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증 제도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 번 더 강조해 말했다. 

그렇다면 내추럴 와인 생산자와 종사자, 그리고 애호가들은 이를 어떻게 정의할까? ‘유기농 포도밭, 손 수확, 자연 효모, 화학 성분 미첨가, 이산화황 미첨가 혹은 극소량 사용’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확인하거나 증명할 인증 제도가 부재하다는 사실. 게다가 유기농 포도밭이 우선적인 자격 조건이라고 내세우면서도 오가닉 혹은 바이오다이내믹 인증서 제출은 의무화하지 않는다. 이는 내추럴 와인 생산자 중 다수가 기존 체제를 반대하고 저항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인증서를 취득하려면 성분 분석 평가를 받는 데 평균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며, 매년 성분 분석표를 제출하여 통과해야 이를 연장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노력과 시간, 비용이 소요되다 보니 일부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이 그 시간과 비용을 오히려 더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 데 할애하겠다며 인증제를 거부한 것. 즉 그들이 스스로 유기농법 혹은 생명역동농법으로 재배한 포도를 이용해 첨가물 없이 양조했다고 하면 멀찍이 떨어져 있는 소비자들은 그 말을 믿는 수밖에 어찌 확인할 도리가 없다. 한 대표는 이러한 생산자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와인은 우리 몸에 들어가 건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인 만큼 신중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최소한의 안전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인증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잘못 만들어 결점이 있는 와인을 내추럴 와인이라고 포장해 판매하는 일이 빈번합니다. 이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장기적 관점으로는 그런 와인이 맛이 없으니 소비자들이 내추럴 와인을 외면하는 최악의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내추럴 와인의 정의가 모호하다 보니 이를 시장에서 악용하는 경우도 많다. “잘못 만들어 결점이 있는 와인을 내추럴 와인이라고 포장해 판매하는 일이 빈번합니다. 이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장기적 관점으로는 그런 와인이 맛이 없으니 소비자들이 내추럴 와인을 외면하는 최악의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내추럴 와인을 단순히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일은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빈번히 일어난다. “예를 들어 굉장히 서늘한 지방에 위치한 한 와이너리가 내추럴 와인이라고 홍보하는 제품의 알코올 도수가 12도로 높으면서 당도도 있다면, 이는 거짓입니다.” 이는 서늘한 지역에서 자란 포도가 알코올 도수를 12도까지 높이고도 잔당이 남을 정도로 당분을 많이 함유할 리 없다는 이야기다. 즉 설탕이 들어갔다는 결론에 다다르며, 이는 곧 내추럴 와인으로서 실격 사유에 해당한다. 최근 이러한 부작용이 수차례 수면 위에 떠오르며 내추럴 와인 관계자들의 태도도 점점 변화하고 있다. ‘오가닉, 바이오다이내믹 중 하나의 인증서를 취득하고, 양조 시 이산화황은 최소 단위로 넣더라도 다른 첨가물은 일체 넣지 않는다’는 쪽으로 입장이 많이 기울었다. 물론 기존에 인증서 없이 내추럴 와인을 만들어온 사람들은 반감을 가질 만한 시장의 변화다. 

이산화황은 산화 방지를 위해 첨가하는 보존제 중 하나로 소비자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첨가물이기도 하다. 이산화황이 일부 사람들에게 기침, 천식, 가려움 등의 알레르기 증상을 유발하고 숙취의 원인 중 하나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내추럴 와인 시장에서 가장 큰 권위를 지닌 프랑스의 내추럴 와인 협회는 초기에 내추럴 와인의 조건으로 이산화황 미첨가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산화황을 첨가하지 않을 경우 이동 중 뜻밖의 이유로 휴면 중이던 효모가 잔당을 섭취하여 추가 발효가 일어나는 등으로 인해 수출에 심각한 문제가 왕왕 발생했다. 그리하여 내추럴 와인 협회는 이산화황이 검출되는 일을 허용하되 그 범위를 한정했다. 레드 와인일 경우 30mg, 화이트 와인은 40mg, 스위트는 와인은 80mg 미만이다. 일부 사람들은 발효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이산화황이 생성되기 때문에 최소한의 검출을 용인한 것이라며 내추럴 와인의 정의를 여전히 ‘이산화황 미첨가’에 국한시킨다. 하지만 양조학을 전공한 한 대표의 말에 따르면 발효 시 발생하는 천연 이산화황의 수치는 많아 봤자 20mg이라고 한다. 즉 30mg 이상부터는 이산화황을 인공적으로 첨가했다는 이야기다. 

한 대표는 내추럴 와인의 이면을 누구보다 불편해하면서도 이를 수입하는 일에 종사한다. 그와 대화할수록 내추럴 와인에 관한 궁금증이 해소되는 한편, 그가 이 일에 종사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영국 브라이턴 대학에서 포도 재배학과 양조학, 성분학을 공부한 후 해외의 와이너리 양조 팀에서 몇 년간 일했어요. 그 전에도 와인업계에 종사했지만 그때 실제로 양조 과정을 지켜보며 얼마나 많은 첨가물이 들어가는지 새삼 깨달았어요. 포대로 붓곤 했죠. 지금은 현실적인 부분을 깨닫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때는 충격이 꽤 컸어요. 그러면서 오히려 아무것도 넣지 않은, 고대 방식의 와인이 있지 않을까 하는 갈증이 생겼죠.” 이제는 와인 생산자들이 다양한 첨가물을 넣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자연주의 와인에 지속적으로 집중하는 이유는 ‘커머셜 와인이 재미없어져서’라고 한다. “어느 날부터 맛없는 와인이 없는 거예요. 맛이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졌어요. 어느 해는 비가 많이 와서 분명 와인이 맛이 없어야 하는데 그때조차 맛있는 거예요. 아무래도 첨가물과 기술이 점점 발달한 까닭이겠죠. 그러면서 기존 커머셜 와인이 재미없게 느껴졌고, 어느 해는 맛이 없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머리에 미쳤어요. 지금은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아요.”

한편 내추럴 와인과 ‘팜 투 테이블’ 정신을 담은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어반팜테이블의 로이든 셰프는 내추럴 와인의 매력을 발효취에서 찾는다. “파리에서 운 좋게 내추럴 와인을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그때 내추럴 와인을 맛보고 강렬한 발효취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죠. 제가 원래 발효취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와이너리 갔을 때 오크 통에서 맡았던 향이 병 안에 그대로 살아 있는 게 신기했어요. 내추럴 와인을 따서 마실 때마다 와이너리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소믈리에 중 일부는 강한 발효취가 다른 향을 가리고 그로 인해 존재감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오히려 저는 내추럴 와인이 더 큰 한 방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요.” 로이든 셰프는 사튀른(Saturne), 베르 볼레(Le Verre Vol), 세프팀(Septime) 등 프랑스에서 내추럴 와인에 특화된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내추럴 와인과 페어링할 수 있는 음식을 꾸준히 개발하는 로이든 셰프는 무조건 많이 마셔보기를 권한다. 한편 한건섭 대표는 좀 더 안전한 방법을 제안한다. 내추럴 와인을 잘 아는 숍이나 레스토랑에 가서 추천을 받되, 깨끗한 스타일의 내추럴 와인을 선호한다고 귀띔하는 방법이다. 기본적으로 흙 내음이 나는 것이 내추럴 와인의 특징이다. 그런데 간혹 분뇨를 연상시키는 냄새가 나기도 한다. 물론 그 냄새 때문에 내추럴 와인을 마시는 사람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입문자로서는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앞선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다. 한 대표는 현재 오가닉 혹은 바이오다이내믹 인증을 받은 와인 중 이산화황 수치가 프랑스 내추럴 와인 협회가 제시한 기준 이하인 경우에 한해 소비자에게 내추럴 와인이라고 안내한다. 물론 모든 수입 전문가가 한 대표의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내추럴 와인, 더 정확히 말해 몸에 덜 해로우면서 자연의 맛에 가까운 와인을 찾고자 한다면 소비자도 생산자, 수입업자와 함께 발 맞추어 공부하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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