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조개구이집은 다 어디로 갔을까

대중문화 콘텐츠 시장도 대만식 카스텔라 시장처럼 무너질 것인가.

최근 몇 년 사이 소규모 독립 출판사와 일할 기회가 부쩍 늘었다. 여러 필자가 돌아가면서 연재했던 칼럼 꼭지를 묶어서 단행본을 내고 싶다며 연락을 해온 출판사도 알고 보니 1인 출판사였고,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인 팟캐스트를 일일이 활자로 옮겨 책으로 내고 싶다는 연락을 준 곳도 1인 출판사였다. 근래 가장 인상적이었던 좌담회를 마련했던 이들은 독립 잡지를 출판하는 사람들이었다. 서로 명함을 주고받는 자리,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소규모 독립 출판사 관계자들도 명함 아래에 책 두어 권을 겹쳐 들고 손에 쥐여준다. “저희가 만든 책인데 소소하지만 읽어봐 주세요.” 대형 출판사 책이라고 다 뻔하고 독립 출판사 책이라고 다 재기 넘치는 건 아니겠지만, 내가 운이 좋았던 건지 내가 만난 이들이 쥐여준 책들은 하나같이 반짝거렸다. 자본의 논리만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소소한 아름다움이 책장마다 빛났다. 

글 쓰는 사람들끼리 모여 저녁을 먹는 자리가 있었다. 이름만 대면 반가워할 독자가 적지 않을 이름난 글쟁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그 자리에서 그동안 독립 출판에 대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환상이 얼마나 유약한 것인지 깨닫게 됐다. 인문사회 과학 분야 책을 써서 잘 팔아봐야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일이 쉽지 않고, 그러니 필자에게 돌아올 인세도 뻔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누군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저자 입장에선 책이 안 팔려도 나름 좋은 책을 냈다는 자기만족이라도 있는데, 출판사에 계신 분들은 무슨 마음으로 책을 내는지 잘 모르겠어요. 품은 품대로 들고 시간은 시간대로 드는데, 출판사가 대체 어떻게 수익을 내는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책을 사 보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규모 있는 출판사들도 미풍에 휘청이는 요즘, 혼자서 책을 기획하고 저자를 독려해 출판하고 유통망을 뚫고 SNS에서 책 홍보하는 일을 다 해내야 하는 1인 출판사라고 일이 쉬울 리가 없지 않은가. 대형 출판사야 한 책에서 난 적자를 다른 책으로 보전하는 일이 가능하겠지만, 소규모 독립 출판사는 한 권 한 권이 전쟁일 것이다. 자리는 쓰디쓴 뒷맛을 남기고 파했다.

잡지 시장도 매한가지다. 잡지 시장이 위기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정기간행물 등록 현황만 보면 그 수는 연일 증가 추세다. 굵직굵직한 잡지들이 사라져간 자리를 소규모 독립 잡지나 1인 잡지가 메우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기성 잡지의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콘셉트의 잡지가 다양하게 나온다는 사실이 다품종 소량 생산의 시대에 걸맞은 출판 트렌드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 대부분은 시장이 유지될 안정적인 기반이 사라져가는 것을 걱정한다. 제조 원가와 인건비를 제하고도 유의미하게 이윤이 축적되어야 매체가 성장하고 새로운 실험도 해볼 텐데, 그럴 여력이 되는 회사들은 넘어지고 간신히 다음 호를 찍어내는 매체들만 우후죽순 늘어나 봐야 그게 무슨 소용인가.

클라우드 펀딩 사이트에는 읽어볼 만한 영화 잡지를 만드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영화에 대한 사랑과 정성을 꽉꽉 눌러 담은 잡지들이 줄지어 펀딩을 기다리고 있는 광경을 보면, 한국인만큼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 저널리즘에 애착을 가진 사람들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필름 2.0>이나 <시네버스> <무비위크> 같은 영화 주간지가 동시대에 경쟁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그렇게 많은 영화 매체가 한꺼번에 전성기를 누리다가 어느 순간 <씨네21>만 살아남은 초라한 오늘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처럼 영화를 사랑해 안정적으로 잡지를 소비해줄 독자층이 두꺼운 나라였다면 <키노>는 왜 사라졌고 <필름 2.0>은 왜 문을 닫았단 말인가? “다섯 가지 덕질을 하는 덕후 만 명이 있는 게 아니라, 100가지 덕질을 하는 덕후 500명이 있는 것”이라는 일명 ‘덕후 500명 설’을 곱씹으며 클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둘러보고 있노라면, 이 잡지를 산 사람이 저 잡지도 사준 덕분에 그나마 이 시장이 버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활자 기반 콘텐츠만 그런 게 아니다. 사실은 영상 콘텐츠도 그렇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나. 규모 있는 외주 제작사들조차 스태프 임금과 연기자 출연료를 제때 주지 못해 소송이 들어가네 마네 하는 소식이 연일 전해져오는 동안, 유튜브에서는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일반인들과 기성 방송인들이 이를 악물고 콘텐츠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물론 포장하자면 못 할 것도 없다. 기성 방송 시스템과 달리 여기엔 이렇다 할 문턱이 없어서 기성 방송인들과 평범한 옆집 총각이 대등한 경쟁을 벌일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의 공간이라고. 하지만 한 달에 조회 수 100만 뷰를 찍는 채널 운영자조차 연봉이 2000만원이 채 안 된다는 풍문이 떠도는 시절, 경쟁은 치열하고 윤리는 사라진다. 그나마 활자 기반 콘텐츠를 제작하는 1인 창작자들의 상당수가 기성 출판업계에서 훈련을 받고 나온 이들이라 업계 내부 윤리를 의식하고 준수하려는 경향이 유지된다면, 장비 조작법과 어도비 프리미어 사용법 정도만 익히고 경쟁에 뛰어드는 영상 콘텐츠 크리에이터들 사이에서는 콘텐츠 윤리 같은 건 쉽게 증발하는 것이다.

당장 유튜브를 조금만 살펴보자. 잠긴 번호 키를 따는 방법을 알려주는 위험천만한 콘텐츠, 온 방 안에 피 칠갑을 해놓고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몰래카메라 같은 콘텐츠가 수십만 뷰를 찍지만, 경쟁이 치열하니 이게 잘못됐다는 인식 자체가 점점 희박해진다. 동어반복도 심해져서, 일반인이 뮤직비디오를 보는 리액션 비디오만으로는 이제 경쟁이 어렵다. ‘자신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일반인의 리액션 비디오를 보는 가수의 리액션 비디오’ 정도는 되어야 명함을 내밀고, 다시 ‘리액션 비디오를 일반인이 보면서 리액션하는 비디오’가 유튜브에 뜬다. 

거울 두 장을 맞대어놓은 것 같은 동어반복의 수렁에서 나오면, 뻔뻔하게 남의 콘텐츠를 가지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신문에 실린 기사나 칼럼 따위를 훔쳐다가 큼직큼직한 폰트로 박아서 사진 몇 장과 함께 올리는 조악한 비디오들이 수십만 뷰를 찍는데, 아무도 이에 대해 진지하게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텍스트로 읽으면 5분이면 소비할 내용을 20분짜리 영상으로 소비하는 이 괴상한 트렌드를 알게 된 계기도 서글프다. “작가님, 이번에 쓰신 칼럼 유튜브에서 잘 봤어요”라는 기괴한 인사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이란, 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제 대중문화에선 거의 모든 분야가 그렇게 됐다. 동네마다 한두 개씩은 있던 중견 서점들이 무너져 내린 자리를 이색 동네 책방들이 채운다. 자신만의 특색을 살린 자그마한 동네 책방은 문화 트렌드라고 소개하기 딱 좋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책만 팔아서는 수익을 낼 수 없어서 쉴 틈 없이 워크숍을 돌려야 하고 그럼에도 1년을 채 버티기 어려운 현실은 쉽게 간과된다. 비평의 권위가 사라진 자리는 온라인 리뷰가 채웠다. 모두가 활발하게 작품 평을 나눌 수 있는 민주적인 공간이라는 환상 뒤에, 제 마음에 안 드는 비평을 쓴 평론가에게 몰려가 머릿수로 상대의 입을 막으려 드는 온라인 반달리즘이 횡행한다. 언론사들이 맥을 못 추고 있는 동안 리스티클 기사나 해외 토픽 같은 것을 그럴싸한 헤드라인으로 장식하는 유사 언론들이 온라인을 수놓는다. SNS 친화적인 차세대 언론이라는 낯 뜨거운 자화자찬 뒤에, 뷰 수만 보장된다면 뭐든 보도해도 상관없다는 듯 일반인들의 SNS 게시물을 긁어다가 장사에 활용하는 등 언론 윤리가 실종되었다. 압도적인 규모와 힘을 지닌 대표 선수 몇몇을 제외하고 굵직한 회사들이 사라진 뒤 수많은 군소 회사나 1인 회사들이 그 자리를 채우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소비자야 다종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되어 좋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러는 사이 문화 산업의 전체 구조가 기형적으로 왜곡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된다. 

독립 잡지, 독립 출판, 1인 유튜브 크리에이터, 이색 동네 책방 등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보면 마음이 절로 따뜻해지고 응원을 아끼고 싶지 않지만, 판 전체가 돌아가는 걸 보면 자꾸만 IMF 외환 위기 직후에 갑자기 증가한 조개구이집을 보고 있는 듯한 기시감이 든다. 맛있는 조개구이를 먹을 수 있는 가게가 늘어나서 먼 길 나서지 않고도 싱싱한 조개구이를 먹을 수 있다면 분명 좋은 일일 게다. 하지만 그게 회사들이 줄도산해서 고용을 유지할 수 없어 정리 해고로 밀려난 이들이 차린 조개구이집들의 난립이라면, 그래서 퇴직금을 긁어모아서 간신히 조개구이집을 차렸지만 당장 이번 달 월세를 내기도 벅찬 형편인 사장님이 한둘이 아니라면, 그 와중에 별로 신선하지도 않은 조개를 싸게 가져와서는 익히면 티 안 난다며 태연하게 석쇠 위에 올려주는 가게가 등장한다면, 그래도 그게 마냥 좋기만 한 일일까.

이 판이라고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양한 콘텐츠가 등장하고, 창작을 원하는 사람들이 문턱 없이 더 쉽게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기존의 대중문화 콘텐츠 시장이 무너져서 <라이프>지 같은 매체조차 스러지는 와중에 1인 잡지가 늘어난다고 그걸 마냥 좋은 일이라고 볼 건 무엇이며, TV라는 올드 미디어가 모바일 시대에 더디게 적응하는 동안 룰도 없고 심의 규정도 없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해 자극 경쟁에 몰두하는 걸 콘텐츠 융성이라고 독려할 건 또 뭐란 말인가. 1인 창작자들을 위한 안정적인 지원 프로그램이 활성화된 것도 아니고, 하다가 망했을 경우 그 피해를 보전해줄 안전장치가 구비된 것도 아니다. 심지어 유튜브 같은 영상 콘텐츠 시장에는 과열 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업계 내 윤리 규정 같은 것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업계의 불안정의 결과로 이뤄진 1인 창작자 붐을 언제까지 긍정적으로만 봐야 하는 걸까? IMF 외환 위기 시절을 기억하는 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한때 블록마다 하나씩 있던 그 많던 조개구이집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약속한 듯 사라졌다. 벌꿀 아이스크림과 대만식 카스텔라가 뒤따라 걸은 그 길을, 대중문화 콘텐츠 시장에서도 반복할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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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 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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