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은 왜 청주로 향했나

현대미술의 파도가 밀려온다.

기존의 전시장이 백화점이라면 이곳은 코스트코입니다.”

2018년 12월 27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의 공식 개관 행사에서 청주관을 소개하던 학예연구사가 이렇게 말했다. 코스트코가 주는 ‘꿈과 환상의 창고’ 이미지와 현대미술관이 지닌 초연한 화이트 큐브 이미지가 충돌하며 빚어내는 자극적인 호기심을 기자들이 놓칠 리 없었다. 이 멘트는 청주관 개관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뉴스마다 인장처럼 박혔고, 그 기묘한 인장에 이끌려 나는 목적지를 정했다.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상당로 314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코스트코 같은 미술관이란 대체 어떤 모습일까.

 

4층의 보이는 수장고. 보존에 취약한 작품 위주라서 유리창 너머로만 볼 수 있다. 긴 통로를 지나오다 코너를 돌면 불현듯 나타나는데, 이는 비록 실제로는 불가능하지만 마치 수장고에 들어와 있는 듯한 분위기를 관람객에게 전해주고자 한 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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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아까워라.” 새 미술관 1층의 새하얀 벽에 투영되는 영상을 보고 있을 때였다. 폐공장이 이곳 현대미술관으로 바뀌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었다. “역사적인 장소인데, 이렇게 비디오도 찍고 그랬는데, 벽 한 면이라도 옛날 모습 그대로 남겨두면 얼마나 좋아.” 혼잣말이라기엔 또렷이 들리는 목소리를 좇아 옆을 바라보니 어르신이 서 계셨다. 실방울 달린 개나리색 털모자를 쓴, 실례지만 귀여운 어르신이었다. 그는 공장의 낡은 타일을 부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당신의 등골이 서늘해지는 듯 신음 소리를 연발했다. “아구, 아구구.”

이곳이 역사적인 장소였느냐고 말을 건네자 어르신은 기다렸다는 듯 대화를 이었다. “그럼, 여기가 원래 담배 공장이었어요. 한 4만 평 되는데 이렇게 큰 공장이 없었지, 청주에 LG 들어오기 전에는. 해방하고 1946년에 지은 거니까 어마어마하지. 그런데 어디서 왔어요?”

팩트 체크를 먼저 하자면 어르신의 혼잣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가 청주의 옛 연초 제조창, 즉 담배를 생산하던 공장을 활용한 것은 맞다. 그러나 ‘옛날 모습 그대로’를 남겨두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작품 수장 등을 위해 장식 타일 등의 철거가 불가피했고 그 외에 기둥과 벽면, 외관, 굴뚝, 옥상의 물탱크 등 뼈대와 특징은 최대한 살려 페인트칠 등의 재단장을 거쳤다. 후에 만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운영과의 김재학 주무관은 옛날 모습을 없앤 것이 아니라 ‘리모델링’이라고 강조했다.

어쨌든 옛 모습과 똑같은 것은 아니니까 어르신이 표현한 아쉬움이 완전히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어르신은 고향에 새 미술관이 생겨 퍽 즐거운 듯 보였다. 서울에서 왔다는 대답에 그는 “서울관에서는 <뒤샹>전 하대?”라는 말로 남다른 조예를 보이더니, 먼 시선으로 미술관을 한 바퀴 훑었다. “나는 여기 생기고 한 30번 왔어요. 매일 와서 봐도 새로워. 볼수록 새로워. 한 달 봐야지, 제대로 보려면.” 67세 청주 시민 박인기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 이날은 2019년 1월 27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가 개관한 지 31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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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청주 혹은 청주관이라 불리는 이곳의 공식 명칭은 따로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품수장센터. 작품을 온전히 보관하고 보존하는 수장고, 수장 센터라는 의미다. 덕수궁, 과천, 서울관에 이은 국립현대미술관의 네 번째 분관이자 지방 첫 분관인 청주관에는 어째서 미술품수장센터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취재를 위해 만난 운영과 김재학 주무관은 인사를 나누자마자 어딘가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곧장 1층 전시관으로 안내했다. 백문불여일견이라는 무언의 분위기가 풍겼다. 버튼을 누르자 유리 출입문이 양옆으로 열렸다. ‘Open Storage’라 적힌 문장이 함께 갈라졌다. “여기가 개방 수장고입니다.”

코스트코를 닮은 미술관. 김재학 주무관의 표현을 빌리면 ‘히트를 쳤다’던 그 표현이 선명해졌다. 철제 선반을 채운 작품, 여기저기 놓인 거대한 조각상…. 밀도 높게 진열된 작품 사이를 걸어 다니는 관람객의 모습이 마치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아 고심하는 쇼퍼를 연상시켰다(물론 작품을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만 지금 162점 정도 있어요.” 그는 현재 5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개관 특별전 <별 헤는 날: 나와 당신의 이야기>를 예로 빗댔다. “그 기획 전시에는 23점 정도의 작품이 있습니다.” 162점과 23점. 이 차이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품수장센터가 생긴 이유이다.

약 1만 점. 현재 국립현대미술관과 소속 기관인 미술은행이 소장한 작품 수다. 그러나 기획 전시와 같은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하는 작품은 10%도 되지 않는다. 최소 90%가 창고에 있다. 특별한 방침이나 기밀이 있어서가 아니다. 큐레이터가 기획하고 풀어나가는 주제의 작품, 그 외의 대상은 창고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물리적 한계도 있다. 전시장에 아름답게 전시하는 데에, 혹은 큐레이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기획하고 큐레이팅하는 데에는 50~60점 정도가 최대 수량이다. 나머지 수장고에 보관되는 90%의 작품은 그간 덕수궁관, 과천관, 서울관, 그 외 외부 수장고에 나누어 보관해왔다. 그런데 수장 능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 국립현대미술관 미술품수장센터다.

우리는 안성금 작가의 ‘부처의 소리’, 김복진 작가의 ‘미륵불’, 김세중 작가의 ‘성모상’ 사이를 거닐었다. 미처 이름을 읽지 못한 여러 작품의 곁도 스쳤다. “1층 개방 수장고에는 조각 작품 위주로 모아놨습니다. 관람객이 드나들어도 문제없는 작품들로요. 원래 조각은 야외에 설치하기도 하잖아요. 비나 바람, 기타 위험 요소에 강한 편이죠.” 반대로 입장은 할 수 없고 유리창 너머로만 감상할 수 있는 ‘보이는 수장고’에는 회화나 깨지기 쉬운 설치 작품, 보존에 취약한 작품을 모아놓았다. 현재 청주관에는 개방 수장고 기준 약 280점이 있다. 2020년까지는 이동 중에 손상되기 쉬운 작품을 제외하고 5100여 점을 이전해올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의 절반가량이다. 제대로 보려면 한 달은 봐야 한다는 어르신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3층 개방 수장고. 이곳은 특히 국립현대미술관 소속 기관인 미술은행의 소장품을 모아놓았다. 미술은행은 보다 젊은 작가, 중견 작가의 작품을 수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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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당황했거든요.”
박미화 팀장의 억양에는 미지의 지역 사투리가 약하게 묻어났다. 박미화 팀장은 코스트코 발언을 남긴 그 학예연구관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품 소장 업무를 담당하며 청주관 TF로서 개관 준비를 진행했고 지금은 덕수궁관 전시기획팀장을 맡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해가 쉬울까 고민하다가 한 말인데 크게 이야기가 되어 당황했죠.” 재치 넘치는 발언의 배경을 묻자 의외의 한숨이 돌아왔다. “대형 할인 마트 이미지로 낮춰서 보도된 것도 있고 그래서….” 곧이어 그는 작게 웃음 지었다. 어떤 식으로든 관심은 나쁜 일이 아니라는 듯.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한국에 이런 미술관은 없었기 때문이다.

“코스트코가 그렇잖아요. 저장과 동시에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판매가 이뤄지잖아요. 백화점은 잘 팔리는 걸 선별해서 보여주죠. 여기는 그게 아니고, 물론 관람객에게 개방한 곳이니까 좋은 작품을 더 선보여야겠지만, 일단 2차적인 배열 없이 바로 보이도록 하는 게 중요한 공간이에요. 그런 의미였어요.” 작품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과 동시에 관람객에게 직관적으로 가닿게 하는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는 국내 최초의 수장고형 미술관이다.

사실 세계적으로 수장고형 미술관은 이미 흔한 모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는 특히 스위스 샤울라거 미술관이나 프랑스 루브르 랑스 박물관을 참고했다. 샤울라거 미술관은 ‘샤울라거(Schaulager)’라는 이름 자체가 독일어로 ‘보는 창고’라는 의미이고, 루브르 랑스 박물관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 일부를 따로 전시하는 별관이다. 청주의 국립현대미술관 미술품수장센터는 이를 참고하되 이보다 조금 더 시민을 향해 다가섰다. “수장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작품의 안전한 관리거든요. 그래서 웬만하면 유리장 속에 다 집어넣어요. 터치 못 하게. 그런데 우리는 방향을 조금 바꿨어요. 전시장처럼 작품을 노출시켰죠.”

다만 조각 작품에 한해서 그럴 수 있다. 회화 작품은 훼손 위험이 높아 그러지 못한다. “그래도 다른 데에 비하면 많이 노출시켜놓았어요. 창고형 마트처럼 선반을 넣은 것도 비슷한 이유예요. 수장고란 개념 자체가 작품이 집약적으로 많이 들어가 있는 거잖아요. 수장고라 해놓고 작품을 80점, 90점, 조금만 늘어놓으면, 전시장처럼 예쁘게 꾸미면 안 된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공간 중간에 선반을 넣고 소품 위주로 해서 많이 쌓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죠.”

어떻게 국내 첫 수장고형 미술관을 준비했는지, 왜 이렇게 구성했는지 힘있게 이야기하는 박미화 팀장의 모습에서, 청주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김재학 주무관의 모습이 겹쳐졌다. 행정직 공무원인 김재학 주무관은 문화체육관광부 재정담당관실에서 근무하다 청주관 운영과로 발령받아 왔다. 그는 관람객 대신 수혜자라는 표현을 썼다. “개방 수장고에 신경을 더 많이 썼죠. 수장하는 것을 수혜자들이 볼 수 있도록요.” “타깃요? 그런 건 없어요. 국민 전체를 수혜자로 보는 거죠. 그건 국립 시설 전체가 다 그럴걸요?” “국립은 수혜자가 국민이에요. 투입 대비 아웃풋을 요구하지 않아요. 아웃풋을 관람객 수로 보지 수익으로 보지 않거든요. 국민들이 혜택을 많이 누리는 게 목표니까. 그래서 이 수장고도 굳이 개방형으로 만든 거겠죠.”

 

 

작품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과 동시에 관람객에게 직관적으로 가닿게 하는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는 국내 최초의 수장고형 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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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수장고는 왜 필요한 것일까. 고작 10%만 내보일 수 있고 90%가 창고에 쌓여 있는 현실인데 소장품이 그렇게 계속, 여전히, 많이, 필요할까. 미술관의 ‘ㅁ’도 모른다고 타박할 만도 한데 박미화 팀장은 흐트러짐 없이 대답했다. “미술관의 기본 미션은 동시대 미술 혹은 과거의 것이든 언제 것이든 미적인 향유를 대중과 함께하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소장품이 있어야 해요. 어떤 미술관이든 기본 출발은 전시관이고 작품 수집이에요. 소장품이 있고 난 뒤에 미술관이 생기는 거죠. 소장품 없이 작품을 계속 빌려서 전시를 하거나 그럴 수 없잖아요. 누가 빌려주겠어요.”

수집과 소장은 미술관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다. 소장 활동을 통해 미술관이 채워지고 세워지고 나아간다. 여기서 활동이란 전시, 교육 등 미술관이 행하는 반경의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더불어 안전한 관리를 통해 문화유산을 보전한다. 그렇게 미술관이, 시대의 미술이 자라나고 기억된다. 박미화 팀장이 단호하게 되짚었다. “소장품은 반드시 있어야 해요. 그 개념으로 출발하는 거예요. 어떤 곳이든 소장품이 없는 곳은 미술관이라고 할 수 없어요.”

미술사적으로, 역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작품,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런 작품을 모은다. 소속 기관인 미술은행은 보다 젊은 작가나 중견 작가의 작품에 집중한다. 어떤 작품을 수집하고 구입했는지, 작품 구입 관련 심사위원은 누구인지, 수집과 소장 활동에 대한 기록은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 낱낱이 공개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1971년부터 소장품 수집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수집한 작품 수는 8164점에 이른다. 자료라고 부르는, 작품이라 하기에는 가치가 조금 떨어지는 대상 2000여 점은 제외한 수치다. 근현대미술이 응집해 있다. 이 중 1차적으로 일부만 청주관으로 옮기는 데 꼬박 7일이 걸렸다. “제가 1997년에 입사했어요. 그때 창고에서 본 작품들을 이번에 전시장(청주관)에 다 꺼내놓는데, 얼마나 감격적이었는지 몰라요.” 박미화 팀장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품을 집약적으로, 직관적으로 저장하는 수장고의 역할을 살리기 위해 특별 제작한 선반. ‘코스트코를 닮은 미술관’이라는 친근한 비유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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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 완성형인 것은 아니다. 특히 이전에는 없던 창고형 미술관, 개방 수장고의 모습을 낯설어하는 이도 많다. 무엇보다 작가나 작품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인상이 있다. 개방 수장고의 각 작품에는 따로 소개나 정보 없이 작가명과 작품명만 기재되어 있으며, 보이는 수장고에는 그마저도 적혀 있지 않다. 작품을 계속 옮겨오는 중이고 아직 채워나가는 단계라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원래 수장고란 말 그대로 창고인 만큼 작품 넘버 정도만 기록해두는 환경을 감안하면 어디까지가 수장고형 미술관의 역할인지 모호한 상황이기도 하다. 수장고형 미술관을 직접 경험하고 있는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친구와, 아이와, 연인과 미술관을 찾은 이들에게 물었다. 청주관, 국내 첫 수장고형 미술관에 와보니 어떠세요?

송윤경, 48세
“아이가 느끼는 것, 제가 느끼는 것, 서로 이야기하기로 정하고 와서 그렇게 보고 있어요. 설명이 없어도 별로 신경 안 쓰여요. 어차피 우리가 느끼는 대로 보면 되는 거니까. 감상하러 온 거니까. 동하야, 어때?”

서동하, 10세
“저도 신경 안 써요.”

박석순, 76세
“청주 사람은 영광이지. 이런 거 언제 봐. 예술을 음미할 수 있고 상당히 좋은 일이지.”

김수민, 25세
“저는 미술을 전공하는데, 수장고형 미술관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 설명이 없어서 전공자가 아닌 분들은 일반 전시장인 줄 알고 왔다가 당황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수장고 자체에 대해서 모르는 분이 더 많을 테니까. 작품 수는 많은 것 같아요, 엄청.”

유지효, 25세
“두 번째 왔어요.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 있어서요. 5층의 기획 전시 중에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라는 작품에 매료되어서 거기 한참 서 있었어요. 움직이는 작품이라서 사진으로 다시 본다고 그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잖아요. 직접 와서 또 보고 싶었어요. 가까이에 미술관이 생겨서 좋아요.”

익명, 50대
“젊은 사람한테 물어보지, 왜. 이제 막 와서, 아직 다 못 봐서 모르겠어요. 문화 수준을 높여주는 것은 확실하네요.”

고영준, 17세
“저는 설명이 없는 게 더 좋아요. 나만의 판단으로 그림을 볼 수 있으니까. 설명을 보고 단정 지으면 미술관이 그냥 소개한 거잖아요. 자기 생각을 늘리는 데에는 설명이 없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저기 나무 그림이 마음에 들어요(보이는 수장고의 유리창 너머, 유화로 추측되는 그림 속 나무를 가리켰다). 눈이 계속 간다고 할까. 그림에 파란색이 많은데 나무만 유독 노란색이라서 애잔해요.”

김종은, 17세
“작품에 대한 설명이 더 있으면 더 좋겠어요. 봐도 뭔지 모르겠어요.”

이효정, 40세 & 서이수, 5세
“지나가다가 미술관이 있다는 간판을 보고 와봤어요. 좋네요. 어차피 작품은 보고 느끼는 거니까 굳이 설명이 없어도 될 것 같아요. 또 책자에서 설명을 해주더라고요(미술은행 소장품 특별전 <하이라이트 미술은행>이 열리고 있는 3층 개방 수장고에는 미술은행의 주요 작품을 소개해놓은 안내 책자가 준비돼 있다). 궁금하면 책자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까, 이렇게 해놓은 게 괜찮은 것 같아요.”

반으로 갈라진 부처의 모습에 ‘텅 빈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던 관람객도, ‘어떻게 잘랐을까’ 궁금해하던 관람객도 있었다. 큐레이터의 시선을 제외한 수장고 안에서 틀린 답이란 없다. 해석은 보는 이의 것이다. 작품은 안성금 작가의 ‘부처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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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형 미술관에 없는 단 한 가지를 고르라면 그것은 큐레이터의 시선, 그에 따른 해석이다. 기획 전시는 큐레이터의 사고와 의식과 하고 싶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기 마련이다. 그 모든 외부 요소를 제외하고 오롯이 작품과 일대일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다. 김복진 작가의 ‘미륵불’ 작품을 지나갈 때 미륵불의 등을 바라보던 김재학 주무관이 생각난다. “이렇게 불상의 뒷모습도 볼 수 있어요. 일반 전시에서는 작품의 뒷모습을 볼 일이 거의 없잖아요.” 작품 사이를 거닐고 있었으나 막상 질문하느라 제대로 주위를 바라보지 못했던 나는 그제야 수장고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작품들이, 원한다면 주위를 빙 둘러가며 조각상의 이마부터 등, 새끼발가락까지 세심히 관찰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 있었다. 작품과 이렇게 가까이 마주한 적이 있었나. 마지막으로 본 전시가 무엇이었는지도 아득해서 미륵불 옆에서 머쓱해졌다. 뒤에서 바라본 미륵불의 어깨는 둥글었다.

박미화 팀장이 전한 메시지 역시 다르지 않다. 그는 ‘밀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창고에 들어오는 것을 과연 사람들이 좋아할까, 처음에는 저도 반신반의했어요. 하지만 준비하면서 확신했어요. 미래지향적인 미술관의 형태라는 걸요. 익숙한 기획 전시가 아니라 관람객이 선택적으로 작품을 볼 수 있어요. 작품과 굉장히 밀착되어 있죠. 청주관은 다른 세 곳의 분관보다 훨씬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모두의 답이 같지는 않을 것이다. 예술을 즐기는 방법 역시 모두 다를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품수장센터는 일단 닫아놓았던 창고 문을 여는 일로 예술에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이 기회를 어떻게 이용할지는 그 문을 통해 들어오는 이들의 몫이다.

이에 더해 나름의 조력을 다할 것이라고 미술품수장센터는 말한다. 당장 2월 말에 열흘 동안 ‘개방 수장고에서 만나는 미술사 강좌’를 열 예정이다. 수장고를 둘러보며 한국 근현대미술사와 동시대 주요 소장 작가에 대해 살펴보는 프로그램이다. 수장된 작품의 자료를 모아놓은 라키비움(도서관과 아카이브의 개념을 결합한 공간)도 올해 내 개장을 계획하고 있다. 선택적으로, 주체적으로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길이 무진하다.

그런데 국내 최초의 수장고형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 미술품수장센터는 왜 굳이 청주에 생겼을까. 문화체육관광부 문화기반과 전영웅 과장과 임승현 사무관이 응답해주었다.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마치 견우와 직녀, 환웅과 웅녀 같았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산업의 변화로 옛 연초 제조장이 폐지되자 청주시는 건물과 해당 부지를 문화적으로 되살리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었고, 마침 포화된 수장고 대신 새 장소가 필요한 국립현대미술관으로서는 비어 있는 공활한 공장만큼 적절한 공간이 없었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여느 때처럼 서울이나 경기도에 지을 수도 있었던 네 번째 분관의 도시로 청주를 택했고, 청주는 심지어 무상으로 부지를 양여해주었다. 왜 청주시에 지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런 공간이 어떻게 생길 수 있었는지가 중요한 일이다.

도시 재생, 상생의 일환으로 생각해보면 이상할 일도 아니지만 쉽게 이뤄지는 일도 아닐 것이다. 그 근원은 무엇일까. 어떻게 가능했을까. 청주시청에 전화해 청주시는 왜 무상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자리를 내주었는지 묻자 몇 번의 전화 돌림 끝에 드디어 문화예술과 문화정책팀 신현정 주무관과 연락이 닿았다. ‘레’ 음계 정도의 목소리를 지닌 그는 신속하고 간결하게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 무상으로 양여하고 이런 과정은 저희 문화예술과 사업이 아니라 도시재생사업과나 다른 부서에서 준비한 상황이라 제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려운데요, 저희 문화예술과 측면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청주시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 자산에 <직지심체요절>이라고 있어요.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역사 시간에 배운 <직지심체요절>을 모를 리가. 실은 듣고 나서야 퍼뜩 생각났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청주는 직지의 도시였다. “그 책이 청주 흥덕사지에서 인쇄된 거예요. 그래서 청주시는 ‘기록문화 창의도시’라는 가치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현대미술을 모으고 기록하고 키워나가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청주시에 자리 잡게 된 연유에는 역사적인 필연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청주시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연결 고리에는 ‘기록’이 있다. 기록. 문화. 창의. 보전. “기록이라는 것은 과거부터 미래, 현재를 이어주는 열쇠잖아요. 기록과 창의의 가치를 지향하는 연장선에서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개관도 순조로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신현정 주무관의 말마따나 청주는 도시 재생의 꿈을 문화와 함께 피워내려고 한다. 문화의 힘을 믿는다. 이 도시에 봄이 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다 보니 한 달 새 청주관에 세 번 방문했다. 매번, 그전에 갔을 때는 보지 못한 새로운 작품을 발견한다. 세 번째 방문 때 처음 본 작품은 묵묵히 아름다워 한참을 곁에서 두리번거렸다. 물론 세 번 방문하는 사이 새 작품이 놓이거나 배치가 바뀐 적은 없었다.

보면 볼수록 새롭다. 매일 와서 봐도 새로울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 한 번쯤, 혹은 두어 번쯤 더 가서 들여다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요하게 빛나던 그 작품의 이름을 적어둔다. ‘파도 Waves, 2014’, 김윤수. 현대미술의 파도가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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