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구경

80년 전의 관광 지도를 들고 떠나는 경성 여행.

이 팸플릿의 이름은 <경성관광안내(京城觀光のしおり)>다. 그런데 언제 만들었는지가 적혀 있지 않다. 관광 안내 팸플릿은 그걸 집은 사람이 당장 여행 오기를 바라면서 만들기 때문이다. 훗날을 위해 인쇄일을 기록해두는 종류의 인쇄물이 아니다. 여러분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관광 안내 팸플릿을 가져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팸플릿에도 대체로 인쇄된 날짜가 적혀 있지 않다.

하지만 관광 안내 팸플릿을 열어보는 사람들은 제작자의 의도에 더해 좀 더 복합적인 감상을 품을 수도 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낯선 곳에 대한 환상, 팸플릿에 적힌 내용과 내가 실제로 걸으며 보는 것이 맞아떨어진다는 쾌감, 예전에 다녀온 곳에 대한 아련한 기억.

운이 좋으면 예전에 그 팸플릿을 가지고 있던 누군가가 메모를 남겨둔 것을 확인하게 될 때도 있다. 오늘 소개하는 팸플릿에는 아쉽게도 그런 메모는 없다. 그러니 팸플릿에 담긴 정보만으로 이 인쇄물의 인쇄 시점을 추정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추적의 실마리가 될 단서가 있다.

단서를 보기 전에 앞면을 보자. 이 팸플릿은 경성관광협회 안내소라는 곳에서 만들었다. 맨 앞에는 오늘날의 태평로에 해당하는 태평통(太平通) 사진이 보인다. 사진 왼쪽에는 오늘날 서울특별시 의회로 쓰이는 옛 부민관, 오른쪽에는 서울시청, 그리고 가운데로 멀리 북악산과 옛 조선총독부가 보인다. 사진 아래에는 경성의 일반적인 사항과 명소 안내가 실려 있다. 문의할 일이 있으면 4826번으로 전화를 달라고 적힌 문구도 있다. 아직 전화번호가 네 자리로 충분하던 시절의 서울 안내서다.

팸플릿 뒷면에는 ‘경성 안내도’라는 제목의 지도가 있다. 굵은 선은 경성을 달리던 전차 노선, 가는 선은 버스 노선이다. 오른쪽 아래에는 창덕궁 명정전 사진이, 왼쪽에는 ‘관광 일정’이라고 해서 경성 여행의 당일치기 및 1박 2일 코스, ‘요금’이라는 제목으로 교통기관 이용 요금과 각종 기관 입장료, 마지막으로 경성관광협회 안내소에서 하는 일에 대한 소개 글이 실려 있다.

‘경성 안내도’와 ‘관광 일정’이 결정적인 단서다. 우선 ‘관광 일정’을 보자.

반일(半日) 코스 비용 약 60전
경성역  남대문  조선신궁  창경원  경복궁  총독부  덕수궁

1박 2일 코스 가운데 첫날 일정 비용 약 1원
경성역  남대문  상공장려관(조선총독부 상품진열관)  조선신궁  남산공원  경성신사  은사기념과학관(恩賜記念科學館)  장충단공원 및 박문사(博文寺)  경학원(經學院)  창경원 내 동식물원과 비원  이왕직박물관(李王職博物館)  조선총독부  경복궁 및 과학관(조선총독부 종합박물관)  경찰참고관  덕수궁 및 미술관  여관에 도착해 밤에는 혼마치(本町)나 종로 등을 산책
박문사(博文寺):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한 사찰. 지금 신라호텔 자리.
경학원(經學院): 오늘날의 성균관.
혼마치(本町): 오늘날의 충무로.

1박 2일 코스 가운데 둘째 날 오전에는 첫날 빼놓은 곳들을 본다.
파고다공원 및 원각사 대리석 탑  종로통  화신백화점  조지야 백화점  미쓰코시 백화점  히라타 백화점  미나카이 백화점  혼마치 거리. 또는 경성제국대학  총독부 도서관  경성부 도서관 등 학술적 방면의 시찰도 좋겠다.

1박 2일 코스 가운데 둘째 날 오후
영등포 공장 거리  청량정(청량리)  인천 
개성  벽제관  세검정  한강  금곡릉 등 교외 지역 시찰
금곡릉(金谷陵): 오늘날의 홍유릉.

‘경성 안내도’에는 동북쪽과 서남쪽이 긴 모양의 경성 지도가 실려 있다. 동북쪽에는 전차·경원선·중앙선이 지나는 청량리·회기리(回基里) 등이 있다. 서남쪽에는 영등포역 앞·기린맥주(현재의 OB맥주)·삿포로맥주(현재의 하이트진로)·경성비행장 등이 보인다. 아직 한강 유역이 정비되기 전이라 여의도와 노량진과 영등포 사이를 흐르는 샛강은 보이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경성에서는 한강 남쪽의 존재감이 희박해서 대충 그렸을지도 모른다.

이 관광 코스와 지도를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이 팸플릿이 언제 만들어졌을지 생각해보자.

우선 이 팸플릿은 1931년 이후에 만들어졌다. 힌트는 1박 2일 코스의 첫째 날에 들어 있는 화신백화점(和信百貨店)이다. 화신백화점은 조선인 부자 박흥식이 1931년에 설립했다. 조선인이 세운 첫 백화점이었으니 기념비적으로 보존할 만한 이유가 충분했지만 1987년에 철거됐다.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라호텔, 충무로의 80년 전, 경성 시절.

1932년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증거도 있다. ‘경성 안내도’ 오른쪽 위에 힌트가 보인다. ‘경성경마장 앞(京城グラウンド前)’이라고 적힌 부분의 약간 오른쪽 위에 알록달록하고 가는 철로 표시가 있다. 이 철로는 경성궤도 또는 기동차라고 불리던 노선이다. 1930년에 왕십리-뚝섬 간 운행을 시작해 1932년 동대문-왕십리까지 구간을 연장하고 오늘날의 동대문관광호텔 자리에 종착역을 만들었다. 경성경마장은 신설동에 있어서 동대문보다 동쪽이긴 하지만 이건 단순한 표기 오류로 보인다. 당시 경성궤도는 경성의 교외 지역 가운데 관광지로 인식되지 않던 동대문-왕십리-뚝섬-광진 구간을 운행했다. 당일치기나 1박 2일로 경성을 들르는 사람들에게는 이 지역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림 역시 그래서 대충 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1933년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증거도 있다. 1933년에 개업한 조지야 백화점이 지도에 표기되어 있다. 한반도에서 처음 맥주를 만든 삿포로맥주 건물도 영등포 쪽에 표시되어 있다. 조지야 백화점은 지금의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명동점 자리에 있었다. 영등포의 삿포로맥주는 오늘날의 하이트맥주다.

1936년도의 랜드마크도 보인다. 1박 2일 관광 코스에 등장하는 경찰참고관이 이해에 만들어졌다. 또한 경성은 1936년 대경성계획(大京城計劃)에 따라 영등포를 경성의 일부로 흡수했다. 그래서 이 팸플릿에 영등포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영등포는 경성 안의 공업 지대로, 나아가 경인 공업 축 핵심으로서의 의미가 컸다. 그래서 이 팸플릿에서는 영등포 공장 거리를 관광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그러니 이 팸플릿은 1936년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팸플릿은 1939년 이전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1939년에 개통한 사철(私鐵) 경춘선 노선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추정을 해볼 수 있다. 개통 당시 경춘선은 청량리역이 아니라 지금의 서울지하철 1호선 제기역 근처에 있던 성동역에서 출발했다.

1936년 이후부터 1939년 이전. 여기까지가 일단 추정 가능한 이 팸플릿의 인쇄 시기 상하한선이다. 거기 더해 추측을 덧붙인다면 1936~1937년 사이에 이 팸플릿이 만들어졌을 것 같다. 1937년 7월 7일 노구교 사건이 터지면서 중일전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중일전쟁 이후 일본은 전시 체제에 돌입했다. 1937년 이후는 민간인이 한가하게 관광을 다닐 분위기가 아니었다.

관광과 시대적 분위기는 아무래도 연결되어 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다. 한반도 출신의 조선인과 일본인이 징집되어 군대에 갔다가 전사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이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1943년 지금의 해방촌 자리에 경성호국신사(京城護國神社)가 세워졌다. 그런데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이 팸플릿에서 관광 명소로 거론되는 조선신궁이나 경성신사와는 달리 경성호국신사는 관광지로 기능하지 않았다. 엽서 같은 상품이 판매된 것 같지도 않다.

따라서 이 팸플릿은 식민지 조선과 경성이 일반적인 관광지로 기능하던 마지막 시점에 만들어졌을 것 같다. 이 팸플릿이 만들어지고 얼마 가지 않아 조선과 경성은 일본의 전쟁 최전방 기지라는 기능을 수행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일본제국은 붕괴한다. 이 팸플릿은 일본제국이 무너지기 직전에 식민지 조선의 중심 도시 경성이 제국 안에서 어떤 관광지로 상상되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팸플릿이 만들어졌을 거라 추정되는 1937년에서 약 80년이 지난 2018년 6월에 <서울 선언>이라는 책이 출판됐다. 부제는 ‘문헌학자 김시덕의 서울 걷기 2002~2018’. 책의 부제처럼 나는 고문헌을 연구하는 문헌학자이고, <에스콰이어>에 연재하는 글도 고문헌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력의 필자인 내가 왜 서울에 대한 책을 냈을까?

나는 지금 이 글이 실린 2018년 7월로부터 딱 1년 전인 2017년 8월호에 <에스콰이어>와 인터뷰를 했다. 그 인터뷰에서 나는 당시 직장 안의 일부 기득권 세력과의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인터뷰를 했던 7월부터 서울 걷기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직장에서 해고될 거라 예상하고 한국을 떠날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 자신이 최소한 2002년부터 사진 기록을 남겨온 서울에 대한 책을 마지막으로 한 권 남기고 한국을 떠나기로 했다.

<에스콰이어>에 인터뷰가 실린 뒤 많은 일이 있었다. 대체로 반갑고 감사한 일이었다. 낯선 분야의 여러 분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내 인생을 건 <서울 선언>을 출판했다. 이 이야기를 이 지면에서 알려드리게 되어 기쁘다. 

  • Kakao Talk
  • Kakao Story

Credit

에디터
김시덕(문헌학자, 작가)
사진정우영
출처

Tags

36381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허스트중앙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