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반칙, ‘한국 야구 선발 논란’

좋은 선수를 선발하지 않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다.

 이웃 나라 일본 체육계에서 기가 차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사건은 런던 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 무라타 료타의 입에서 촉발됐다. “낡고 악한 세력들은 이제 사라져줬으면 좋겠다.” 발언의 표적으로 지목된 일본복싱연맹 야마네 아키라 회장은 이렇게 반발했다. “무라타는 건방지다. 혼자 힘으로 금메달을 딴 줄로 착각한다. 내가 감독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외 전지훈련에 참가시키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무라타는 없다.” 덩달아, 회장이 공금을 횡령했다거나 특정 지방 출신 선수들이 이기도록 심판들에게 압력을 가했다거나 하는 의혹이 우후죽순처럼 불거져 나오고 있지만 회장의 실각을 노리는 반대파의 모략이라는 주장도 만만찮아 현재로서는 어디까지 진실인지 파악할 길이 없다. 

다만 확실한 것 한 가지. 올림픽 대표 선수 선발은 일본복싱연맹 회장의 ‘권한 밖’이라는 점이다. 해외 전지훈련 참가 선수 선발이건 올림픽 출전 선수 선발이건 모두 적법한 절차 아래에서 진행돼야 하고 그렇게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회장 아니라 일본 총리라고 해도 이래라저래라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무라타의 대표 선수 선발과 금메달 획득이 마치 자신의 공로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으니, 야마네 회장이 ‘악한 세력’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되 적어도 ‘낡은 세력’임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헛웃음만 내고 있을 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실정도 그리 투명해 보이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발표된 선수단 명단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11일에 발표된 제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선발 명단이 대표적인 예. 아시안게임 대표팀 구성과 관련해 논란이 끊이지 않던 끝에 현재는 각종 야구 커뮤니티에서 “은메달을 기원한다”는 저주에 가까운 비난이 줄을 잇고 있다. 

선동렬 감독이 대표팀 전임 감독으로 선정됐을 당시만 해도 팬들의 기대치는 높았다. 감독으로서의 역량은 둘째치더라도 올림픽, WBC 같은 국제 대회를 앞두고 대표팀을 구성하는 시기만 오면 불거져 나온 감독 선임 문제가 원만히 해결됐기에 팬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좋은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는 제대로 된 대표팀이 구성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이 널리 퍼졌다. 선동렬 감독 역시 대표팀 구성과 관련해 “최강의 전력으로 꾸리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막상 최종 명단이 발표되자 잡음이 끊이지 않으면서 팬들의 실망감은 극도로 치닫고 있다. 

비난의 초점은 오지환(LG 트윈스)과 박해민(삼성 라이온즈). 둘 모두 기량 좋은 선수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전문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걸맞은 선수인가 하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오지환은 유격수 전문 선수다. 다른 포지션을 맡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같은 포지션에 선발된 김하성(넥센 히어로즈)이나 3루수로 선발된 최정(SK 와이번스), 2루수 안치홍(기아 타이거즈)과 박민우(NC 다이노스), 1루수 자리의 박병호(넥센 히어로즈) 역시 마찬가지. 다시 말해 현재 대표팀의 내야 자리는 한 가지 포지션에만 익숙한 전문 내야수들로 채워져 있다. 현대 야구에서 여러 포지션을 두루 소화할 수 있는 선수, 그러니까 멀티플레이어 또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보자. 

선수 선발이 ‘병역 혜택 위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늘어놓고 실제로는 혜택을 노리며 대회 때까지 병역을 미룬 선수 몇 명을 슬그머니 끼워 넣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꼬리가 개를 흔드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대표팀 전임 감독제의 취지와도 전혀 맞지 않는다. 

승리를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경기에서 동점으로 맞선 8회 말 공격이라 치자. 무사 상황에서 선두 타자 최정이 1루로 진출했다. 1점이 절실한 상황이라 바보 아닌 다음에야 최정을 발 빠른 대주자로 교체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다음 타자의 병살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여차하면 활발한 주루 플레이로 2루까지 노릴 수 있을 테니까. 이후의 상황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고, 문제는 이어지는 9회 초 수비다. 최정이 빠졌으니 누군가가 3루수 수비를 맡아야 한다. 두산 베어스의 허경민이나 롯데 자이언츠의 신본기, 넥센 히어로즈의 김혜성처럼 여러 자리를 두루 맡을 수 있는 선수가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대표팀에서는 그런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선동렬 감독과 이강철 코치는 언론에 “주전 유격수인 김하성의 백업 선수로는 멀티플레이어보다 포지션에 특화된 선수가 더 낫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설명했는데, 솔직히 말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멀티플레이어가 없는 게 문제이지 않느냐고 지적했더니 없는 게 더 낫다고 대답한 격이기 때문이다. 오지환(또는 박민우까지)이 잡음의 초점이 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만약 다른 유틸리티 플레이어가 선발됐다면 내야수 선발에 관한 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멀티플레이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전문 내야수가 차지했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하필 그가 이번 아시안게임까지 병역을 미뤄온 오지환이었기에 비난의 중심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박해민 또한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다. 박해민은 수비 범위가 넓고 주루 능력이 좋은 외야수지만 우리 KBO 리그에는 그만한, 또는 그보다 더 대표팀에 어울리는 선수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절대 평가’였다는 이번 선발의 평가 기준을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 선발에서 가장 큰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 신인왕인 넥센 히어로즈의 이정후를 꼽을 수 있다. 처음 대표팀 명단이 발표됐을 때부터 이정후의 이름이 빠진 것에 대해 야구팬들은 극렬한 비난을 쏟아냈고, 갖은 논란 끝에 부상자와 교체된 새로운 명단에 이정후가 포함됐다. 그가 어떤 선수인지는 숫자가 증명한다. 부상에 허덕이면서도 3할 6푼에 이르는 높은 타율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만 20세 최고의 타율’에 도전하고 있다(현재 KBO 리그 기록은 김현수의 3할 5푼 7리). 필자 개인의 느낌을 굳이 말하면, 이 선수의 플레이를 볼 때마다 ‘역시 중요한 것은 DNA’라고 새삼 생각하게 된다. 

물론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이정후 대신 박해민을 더 선호했을 수도 있다. 중견수 수비로만 볼 때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면 나름의 설득력도 있다. 그러나 또 한번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으로 하필 박해민이 오지환처럼 만 27세의 나이로 이번 아시안게임 때 병역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하면 자칫 현역으로 입대해야 할지 모르는 처지여서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올림픽과 달리 아시안게임에는 전통적으로 사회인 야구 선발 팀을 출전시킨다. 반면 우리는 아시안게임이건 올림픽이건 최정예 팀을 내보낸다. 국내 프로야구의 인기가 매우 높고 WBC, 프리미어 12 등 국제 대회가 늘어나 아시안게임 정도면 2진급을 출전시켜도 될 법하건만 굳이 최정예 프로 선발 팀을 내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협회 관계자가 아닌 다음에야 그 이유를 명백히 알기는 힘들겠지만 그 가운데 ‘병역 혜택’이라는 민감한 문제가 자리 잡고 있는 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국민의 사기를 드높였다면 병역 혜택을 받아 마땅하다. 아마도 혜택을 받은 선수는 그렇게 손에 쥔 2년여의 기간 동안 더 좋은 활약으로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주장하고 싶은 것은 그렇다고 선수 선발이 ‘병역 혜택 위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최강의 전력을 꾸리겠다고 공언했다면 그렇게 하면 될 일이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늘어놓고 실제로는 혜택을 노리며 대회 때까지 병역을 미룬 선수 몇 명을 슬그머니 끼워 넣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꼬리가 개를 흔드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대표팀 전임 감독제의 취지와도 전혀 맞지 않는다. 

이번 아시안게임 선수 선발이 완전히 엉망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 이번 대표팀은 역대 아시안게임 대표팀 가운데 병역 혜택 대상자가 가장 적다. 그럼에도 적잖은 야구팬들이 게시판마다 “은메달을 기원한다”는 저주를 하는 것은 병역 미필인 한두 선수의 선발로 대표팀 선발의 공정성 자체가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아시안게임에 관한 한 야구 대표팀 전체를 병역 미필인 젊은 선수들로 채우는 것이다. 거기에 프로야구단 팀별 선발 인원 숫자를 사전에 결정하는 방식, 이를테면 10개 구단 모두 공평하게 같은 숫자의 선수를 선발하거나 전년도 시즌 성적에 따라 차등을 부여하는 세부 조항을 더한다면 공정성에 관한 논란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특히 병역 관련 논란은 원천 봉쇄할 수 있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승리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에 참패한 뒤로 우리 야구계가 패배(특히 일본전 패배)를 지나치게 두려워하지는 않는지 돌아보라고 제언하고 싶다. 당시 우리 사회가 떠들썩했던 것은 사실이다. 감독에게 패배의 책임을 혹독하게 물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일본에 패배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선수 선발 과정에서부터 병역 혜택 문제를 둘러싸고 시끄러웠던 데다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무책임한 발언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마저도 벌써 10년도 넘게 지난 일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아시안게임에서 선전하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옛날처럼 한 번 이겼다고 독립운동한 것처럼 호들갑 떨지도 않고 한 번 졌다고 나라 망신까지 들먹이며 닦달하지도 않는다. 공정하게 뽑아서 최선을 다해 플레이했다면 박수를 칠지언정 회초리를 들지는 않는다. 필자는 그 점을 올해 동계올림픽을 지켜보며 확실히 느꼈다. 실은 감독 전임제가 결정되고 초대 감독으로 한국 야구계의 레전드인 선동렬 감독이 선택되며 마음속으로는 대표팀이 그렇게 구성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찌된 셈인지 선 감독은 예전에 수많은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논란의 카드를 꺼내 들고 말았다.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지금으로서야 어쩔 도리가 없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8월 6일 보도 자료를 통해 “선동렬 감독은 오는 10일을 기준으로 부상 등 KBO 현역 선수 엔트리에서 제외된 선수를 비롯해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판단에 몸에 이상이 있어 대회 기간 동안 국가대표 선수로서 정상적인 기량 발휘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선수는 이번 아시안게임 엔트리에서 교체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최정, 박건우(두산 베어스) 등 부상 선수들을 대신할 선수를 새로 뽑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정후를 비롯해 네 명의 선수가 교체된 새로운 명단을 발표했다. 하지만 야구팬들은 여전히 대표팀 선발 기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결국 경기력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세간의 비난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좋은 경기를 펼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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