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물주의 위기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던 시대가 이제 끝날 것인가.

조물주 위에 건물주,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말이다. 건물주가 무슨 직업도 아니건만 한때 초등학생 장래 희망에서 연예인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에서 건물주는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제는 건물주가 다시 조물주 밑으로 내려올 때가 된 것 같다. 지금도 임대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지만 현재의 많은 위험 신호가 건물주, 정확하게 말하면 상가 투자의 위험을 알리고 있다.

일단 전국 맥도날드 매장 20곳이 올해 문을 닫는다고 한다. 20곳의 면면을 보니 신촌점(1998년 오픈), 종로 관훈점(1999), 서울대입구점(2001), 그리고 부산 서면점(1993)도 포함돼 있다. 맥도날드는 이런 대대적 폐점을 발표하면서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 대목에서 혹자는 건물주의 위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얼마나 높은 임대료를 받아왔기에 맥도날드 같은 글로벌 프랜차이즈가 무릎을 꿇는가. 그것도 20년 가까이 만남의 장소로 애용됐던 지역 매장을. 누군가는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 이면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현재 임대료 수준이 이런 맥도날드도 감당할 수 없다면 과연 그다음은 누구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해야만 한다. 요즘 언론에서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과 청담동 명품 거리의 공실 관련 르포 기사가 쏟아진다. 신사동 가로수길 공실 문제는 방송에서도 소개할 정도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주말에 조용한 시간 가지려면 압구정동 로데오에서 만나”라는 조언은 널리 알려져 있고, 가로수길에는 ‘상가의 꽃’이라 불리는 1층의 공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청담동 명품 거리는 상권 조성 후 최초로 쌓이는 공실 물량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참고로 구찌 매장과 디올 매장은 자체 건물이다).

이들 명품 브랜드가 떠나는 이유도 높은 임대료 때문이다. 평당(3.3㎡당) 150만원이 넘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다들 이런 알짜, 대형 상권을 떠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 용산역 인근 대규모 신규 상가도 예상과 달리 임대가 부진하며 서울 마곡지구, 경기 김포한강신도시, 광교신도시, 위례신도시 등 수도권 택지 지구에도 빈 상가가 즐비하다.

“그래도 건물주나 상가 주인은 임대료 내릴 생각이 전혀 없어요.”

부동산 중개업자들도 애가 탄다. 어떻게든 임대 계약을 성사시켜 수수료를 받고 싶지만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 임대료를 더 올리려고 하는 건물주의 요구에 다들 버티지 못하고 떠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포인트는 임대료를 ‘올린다’가 아니라 ‘떠난다’에 맞춰야 한다. 생각해보라. 임대료가 아무리 높다 한들 손에 쥐는 수익이 있다면 누가 떠나겠는가. 또한 떠나고 싶어도 대안이 없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남아 있을 텐데 이렇게 떠난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건가. 그렇다. 건물주가 진정 ‘갓물주(god과 건물주의 합성어)’가 되려면 세입자들이 절대 떠나지 못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미련 없이 떠나고 있다. 그럼 이곳에 누가 들어올까. 임대료만 내리면 들어올 사람이 줄을 섰다고? 그렇지 않다. 한번 지상으로 내려오면 그 순간부터는 추락할 일만 남게 된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이제 모두 떠나버린 베이비 부머

많은 부동산 전문가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했던 건 최근 약 10년간 건물주가 왜 이런 대박을 쳤느냐는 부분이다. 물론 임대업은 인류 역사상 항상 수입이 좋았다. 그러나 우리처럼 갓물주 반열까지 오른 적은 찾기 힘들다. 우린 과해도 너무 과했다. 특히 2008년 말 세계 금융 위기 이후 2018년까지 10년간 경기는 최악이었다. 상인들이 말하는 그나마 경기가 좋았던 시절은 2010년 정도뿐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유독 상가 수요는 폭증했던 것이다. 대체 경기는 안 좋은데 왜 상가의 인기는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건물주는 승승장구했을까. 이게 바로 전문가들이 풀 수 없었던 대목이다. 가령 지금 일본 대도시 핵심 상권의 공실률은 3%도 안 된다. 경기가 역대 최상이고 실업률이 무려 29년 만의 최저치에 일자리가 남아도는데 사람이 없어 허덕대니 당연히 상가가 인기를 끄는 거다. 하지만 우린 이런 메커니즘이 아니었다.

자, 이때 등장하는 키워드가 ‘베이비 부머’이다. 1952년생부터 1958년생까지 베이비 부머가 대량 은퇴하면서 이들이 모두 자영업(창업)으로 몰렸고, 이로 인해 10년간의 역설적 왜곡이 나타난 것이다. 참고로 이들 세대의 출생 시기는 연간 80만~100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던 때다. 1958년엔 99만8000명, 약 100만 명에 이르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분들의 은퇴는 2008년부터 본격화됐는데 평생 열심히 일하는 것이 몸에 밴 탓에 퇴직금으로 대부분 창업을 했다. 치킨집, 커피 전문점, 김밥집, 편의점, 국밥집, 중국 음식 프랜차이즈 등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창업에 반사이익을 얻은 사람들이 바로 건물주였다. 창업에는 상가가 필요했는데 당시만 해도 이렇게 많은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고, 공급이 부족하니 당연히 임대료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그렇지만 가족의 생계를 끝까지 책임지려고 목숨 바치던 은퇴한 베이비 부머들은 상가 주인의 갑질에도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갓물주 10년 시대’에는 베이비 부머 창업자들의 눈물이 한껏 배어 있다고 봐야 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건물주는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다. 지금도 임대료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많은 위험 신호가 건물주, 정확하게 말하면 상가 투자의 위험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2017년을 기점으로 상황이 확 바뀌고 있다. 우선 너무 안타깝게도 그간 창업에 뛰어들었던 다수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5년 생존율이 채 40%도 안 되니까 10년을 감안하면 가게 10곳 중 6곳은 폐업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공교롭게도 상가의 초과 공급이다. 건물주의 위상이 커지자 3~5년 전부터 너도나도 상가를 짓고, 다른 한편에선 이 상가를 분양받으면서 상가 투자가 절정에 달했다. 가령 작년 전국에서 분양한 상가 점포 수는 1만5982개로 2007년 이후 가장 많았다. 본격적인 초과 공급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뭐, 당연한 대응일 수 있다. 배춧값이 폭등하면 당장 농민들이 너도나도 배추 농사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제 베이비 부머는 떠났고 내수 침체가 지속되면서 창업이 폭감하고 있다. 당연히 상가 공실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배춧값이 폭등한 다음 해에는 여지없이 가격 폭락이 찾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상가 공실 문제는 대한민국 부동산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

트럼프의 아마존 때리기의 이면

건물주와 상가 투자의 위기를 알리는 또 다른 신호는 유통 구조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쉽게 말해 온라인 쇼핑몰이 급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오프라인 점포가 역공을 받는다는 얘기다. 하긴, 이젠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사고 음식 배달도 시키고 교육도 하며 모든 걸 다 해결하는 세상이 됐다.

요즘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는 5번가보다 더 최고급 명품 브랜드 상점이 즐비하다는 메디슨 거리가 극심한 공실에 시달리고 있다. 마치 우리의 청담동처럼 말이다. 요즘 미국 경기가 아주 좋다는데 왜 이렇게 문을 닫는 걸까.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이 모든 책임을 세계 최대 전자 상거래업체인 아마존에 돌렸다.

‘세금 안 내는 아마존이 수천의 소매업자들을 파산시킨다’는 게 바로 트럼프의 주장인데, 워낙 강하게 아마존을 몰아붙이니까 주가도 급락하고 아예 반독점법을 적용할 거란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트럼프와 세계 최고 부자인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와 사적 싸움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베조스는 트럼프가 ‘가짜 뉴스’ 진원지로 취급하는 <워싱턴 포스트> 소유주이기도 한데, 2016년 미 대선 때 트럼프와 상당한 각을 세웠기 때문이다. 당시 베조스는 트위터에 ‘트럼프를 민간 로켓에 태워 우주로 날려버리겠다’고도 했고, 트럼프는 아마존을 절대악 취급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심상치 않다는 데 있다. 올 1분기 미국 상업용 건물 공실률은 8.4%를 기록했는데 2012년 4분기 이후 최고치이다. 미국 경제지표는 개선되는데 월마트로 대변되는 오프라인 소매업 매출은 급감하고, 명품 숍조차 버티지 못하는 현상.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은 ‘아마존을 필두로 전자 상거래를 근간으로 한 소비 패턴 변화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런 온라인과 모바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소비 행태와 유통 구조의 급격한 변화가 마치 ‘나비 효과’처럼 상가 공실이란 문제를 낳는 것이다.

이건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현재 전체 소매업종에서 온라인 매출 비중이 20% 정도이다. 지금까지와 같은 속도라면 곧 절반까지 치고 올라갈 거다. 그렇다면 외곽 지역의 대형 물류 센터와 편의점처럼 우리 생활 곁에 있는 곳을 제외하고 다수의 오프라인 점포는 힘들어진다. 그럼 결국 상가 공실의 강도는 더 커질 것이다.

결국 금리와 경기에 달렸다

현재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인하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상가 투자에 대한 부정적 견해나 건물주 시대는 끝났다고 하면 다들 반론을 제기한다.

“임대료, 아직 엄청 높아요. 건물주는 아직도 갓물주예요.”

이런 건물주의 행태는 기본적으로 저금리에 기인한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있다 해도 지금 우리의 기준 금리는 연 1.5%이고, 대출 금리가 올랐다고 해도 상가의 경우 아직도 연 4%대 담보 대출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건물주와 상가 주인이 임대료를 깎아줄 절실함은 크지 않다. 그러나 자칫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면 문제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이제 임대 사업자에게 RTI(임대업 이자 상환 비율)가 적용돼 아무리 잘나가는 건물주라도 대출이 쉽지가 않다. 임대료 수입과 대출 이자를 비교해 안정적인 임대가 이뤄지지 않거나 상가 공실이 심각하다면 자산 가치(빌딩 가격)와 상관없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다. 또 하나. 아주 기본적인 것인데,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건 현재 상가 투자의 태생적 한계다.

요즘 상가 투자 관련 재테크 강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유독 역발상 접근법에 대한 조언이 많다. 대표적인 게 ‘1층보다는 2층 이상의 지상 층을 공략하라’는 식이다. 요즘은 상가가 대형화하는 추세라 오히려 위층으로 올라가 공간을 넓게 확보하라는 주장인데, 비싼 가격에 1층 상가를 분양받아도 수익을 맞추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선호하는 광역 상권 대신 근린 상권에 접근해 실속을 챙기라는 조언도 쏟아진다. 모든 게 달라진 상가 투자 풍속도다.

혹시 독자 중에 건물주나 상당한 상가 투자를 하는 분이 있다면 기분이 상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길. 지금 제시하는 임대료를 내면서 세입자가 과연 장사를 제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를. 이제 건물주는 조물주 밑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솔직히 그동안 너무 오래 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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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정 철진(경제 칼럼니스트)
사진정 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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