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스와 소주가 만났을 때

제주 사람들은 방어 대신 히라스를 즐긴다. 특히 ‘이곳’에서.

한반도에서 겨울과 가장 먼저 이별을 하는 섬 제주도. 영원할 것처럼 불어오던 시린 겨울바람도 서서히 꼬리를 보이기 시작했다. 만남의 설렘보다는 이별의 아쉬움의 여운이 더 깊다 하지않던가. 제주에서는 겨울과의 이별이 기쁘지만은 않다. 나이가 드는 것처럼 겨울과의 이별이 서운한 이유가 겨울 대표 횟감 ‘방어’ 때문이다.

방어는 차디찬 바람이 불어오는 11월부터 눈 내리는 2월까지 겨울에만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다. 방어는 꽤 몸짓이 있는 생선이다. 몸의 길이는 보통 60cm 내외 이지만 1m 넘는 것들도 있다. 2kg은 소방어, 4kg 중방어. 5kg 이상이면 대방어로 구분하는데 크기에 따라 맛도 조금씩 다르다. 특히 대방어가 맛이 좋은데 지방 함량이 많아서다. 크기가 커서 참치처럼 부위별로 맛도 달라 골라 먹는 재미도 있는 횟감이다. 이른 겨울의 방어보다는 눈이 많이 내리는 1~2월의 방어가 살이 올라 으뜸으로 친다. 방어시즌에 찾아오는 반가운 생선이 하나 더 있다. 방어의 사촌 격으로 불리는 부시리다. 제주인들은 ‘히라스’라고 부르는데, 방어와 겉모습이 비슷한 전갱이과의 대형 어종으로 방어보다 기름기가 적고 살이 더욱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방어 사촌 격으로 불리는 부시리(히라스). 횟감을 자주 먹는 제주 사람들은 기름기 많은 방어보다 씹는 맛이 좋은 히라스를 찾는다.

때문에 현지인들은 방어보다는 히라스를 찾는다. 횟집에서 히라스 먹는 손님들은 대부분 현지인이다. 방어와 히라스의 맛은 기호에 따라 다르겠지만, 맛있는 횟감을 자주 먹기 때문에 기름기가 많은 방어보다는 씹는 맛이 좋은 히라스를 찾는다. 겨울철이 되면 제주 전역의 횟집에서 방어와 히라스를 찾을 수 있다.

어둠이 능청스럽게 슬며시 찾아오는 저녁이 되면 서귀포시 동홍동은 현지인들로 북적이기 시작한다. 동홍동은 서귀포시의 대표적인 주거지역으로 주택과 아파트들이 많아 낮보다는 밤에 활기를 띤다. 그 때문에 여행객보다는 현지인들에게 맛집으로 소만 난 곳이 즐비하다. 방어로 현지인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횟집은 ‘혁이네수산’이 있다. 계절마다 대표하는 횟감을 판매하는 곳이지만 겨울철에는 방어와 히라스가 맛있기로 유명하다.

방어와 히라스 맛집 혁이네수산

오래된 아파트 상가에 자리 잡은 혁이네 수산의 첫 모습은 남루하다. 상가로 쓰였던 작은 공간 두 곳에 테이블 몇 개가 전부지만 언제나 현지인들로 가득하다. 횟집의 맛이 비슷하리라 생각 할 수 있지만 혁이네수산이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이유는 단순하지만 특별하다. 직접 어선들과 계약을 해 당일에 잡히는 자연산 회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씨에 따라 수족관이 매번 다르다. 횟감을 주문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횟감을 바로 잡아 회를 뜬다. 미리 주문하면 회를 저온 숙성한 회를 먹을 수 있어 미식가들은 가게를 찾기 전 예약을 한다.

탄탄한 식감, 담백한 맛이 매력적인 히라스.

히라스를 한 접시 주문하고 술을 주문했다. 히라스와 방어에는 당연히 소주가 최고의 궁합 이다. 그중에서도 현지인들이 ‘하얀거’ 라고 부르는 투명 병에 담긴 한라산소주가 으뜸인데, 특히 ‘노지 것’이 좋다. ‘노지 것’은 냉장고 밖 상온에서 보관하는 소주다. ‘한라산 노지 것’은 제주 애주가들만이 즐기는 소주 스타일로 도수는 21도로 꽤 높은데, 미지근한 소주로 마시면 강한 술맛이 느껴지면서도 알코올 향이 느껴지지 않아 신선한 회에 먹기에 아주 좋다. 처음에는 강한 소주 맛에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회의 씹는 소주와 잘 어울린다.

아주 관능적으로 접시에 누워있는 신선한 히라스 회가 나온다. 방어가 붉은색을 띈다면 히라스는 흰색에 가깝다. 탱탱한 생선 살에 붉은 살과 하얀 지방이 골골로 섞여 겉모습이 미학적으로도 아름답다. 적당한 기방 때문인지 회에서 윤기가 흐르는 것 같다. 두툼하게 썰린 회를 적당한 간장과 고추냉이에 묻혀 입속으로 넣는다.

‘한라산 노지 것’과 함께 먹어야 한다.

‘아…….’ 말이 필요 없는 맛이다. 살이 단단해 씹는 맛이 아주 좋고 기름기 때문에 아주 고소하다. 적당히 부드럽고 적당히 탱탱해 감칠맛이 느껴진다. 기름 맛이 느껴지지만, 회의 비린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풍미가 넘친다. 계속해서 손이 간다. 점점 줄어드는 회가 아쉬울 따름이다. 덕분에 소주에도 자연스레 손이 간다. 하얀 거 노지 것 한 잔을 마신다.

‘캬~~~~~아’ 소주의 쓴맛이 아니라 단맛이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때문에 히라스에 바로 바로 손이 간다. 회에 함께 먹는 신김치와 김 그리고 초장이 나온다. 제주에서는 방어나 히라스를 신김치를 함께 먹는데 아삭한 신김치와 부드러운 방어와 히라스의 궁합이 꽤 좋다. 김에 싸서 초장에 찍어 먹는 것도 별미다. 혁이네 수산이 유명한 이유는 횟감 때문 만은 아니다. 회를 먹고 난 후 다양한 요리들 나오는데, 노릇노릇 구워 나오는 한치 파전과 붉은 고등어조림도 맛이 아주 좋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맑은탕은 일품이다. 방어 머리로 오래 우려낸 육수는 담백하고 시원해 먹다 보면 마치 해장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술을 마시면서 해장을 하는 것은 애주가의 기본 아니던가. 덕분에 또 술잔에 손이 간다.

겨울이 간다는 것은 방어와 히라스를 일 년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제주의 애주가들에게는 추운 겨울이 지나는 것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는 것만큼이나 아리고 시리다. 그래도 떠난 그녀는 돌아오지 않지만 방어와 히라스는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그래서 일 년의 기다림은 행복한 고통이다. 다만 히라스와 소주가 있는 이 밤을 보내야 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주소 제주 서귀포시 동홍중앙로 10
전화 064-733-5067
영업16:00~22:00 휴무_연중무휴(배가 뜨지 못한 날은 일부 횟감이 없거나 휴무)
가격 히라스, 방어 1kg 40,000원(시세)

writer is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작가이자 제주도민. <설렘 두배 오키나와> <그들은 왜 파리로 갔을까> <제주 탐닉> 등 구석구석 여행 다닌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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