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유별

치즈라고 다 같은 치즈가 아니다.

내가 서울에서 식당 일을 시작한 건 2002년도였다. 그때 파르자노도 아닌 그라나 파다노(두 치즈는 비슷하지만 전자가 더 비싸다)가 1kg에 3만원이나 했다. 하지만 15년이 흐른 지금은 2만원대에도 살 수 있다. 모든 물가가 올랐는데 왜 치즈값은 내려갔을까. 수입량과 관련이 있다. 15년 전만 해도 제대로 된 ‘자연 치즈’를 쓰는 식당은 아주 드물었다. 그래서 당시 치즈 수입상을 하다가 손 털고 나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아직 시장이 성숙하기 전에 판을 빨리 벌인 아픔이다. 요즘은 저가의 피자·파스타점이 아니면 자연 치즈를 사서 쓴다. 수입량이 늘면서 값도 떨어졌다. 그래도 아직은 국제시장 가격에 비하면 국내 치즈값은 비싸다. 실제로 우리와 관부가세, 소비 실태가 비슷한 일본은 우리보다 수입 치즈값이 더 싸다. 많이 쓰니까 싸게 살 수 있는 거다.

한때는 속상한 일도 많았다. 가루 치즈를 주문하면 거래상에서 거의 100% 확률에 가깝게 이상한 물건을 가져오곤 했다.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싼 제품을 공급한다’는 공급상의 철칙을 따른 결과였을 것이다. 어떤 제품은 전분과 과당에 가루 치즈가 ‘조금’ 들어 있는 것도 있었다. ‘치즈 향’이라는 정체불명의 인공 향을 첨가해서 생산한 것이었다. 이것도 A급과 B급이 있었다. 전분이 거의 대부분인, 말만 치즈인 것과 요즘도 팔리는 다국적 식품 회사 크래프트사의 ‘파마산’ 가루 치즈였다(녹색 통에 든 그것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 전분으로 만든 그 가루 치즈가 안 팔리는 것도 아니다. 그 시절보다 더 팔리면 더 팔렸지. 배달 피자, 심지어 치킨에도 뿌리는 가루 치즈는 거개 그런 제품이다. 다 아신다고? 아, 미안하다.

코스트코의 등장은 치즈 시장에도 격동을 일으켰다. 원래 치즈를 구하는 식당과 카페 사업자에게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남대문시장 같은 도깨비시장을 통하는 것(“이봐 아저씨, 미군 PX 제품이야!”라는 호객 소리를 얼마나 많이 들었나)과 정상적인 제품을 공급상을 통해서 구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공급상들이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는 것. 자그마한 식당이나 카페에 공급상이 일일이 냉장차를 굴려서 수입 치즈를 가져다주기에는 무리였다(“도매상을 통해서 주문하시죠”). 그러니 그 시절 우리 선배들이 먹은 치즈는 남대문시장을 통해 들어온 것이 많았을 것이다. 물론 요즘은 남대문시장에서도 정품을 판다. 정식 수입한 제품을 판다는 거다.

코스트코가 생기자 소규모 업장들은 신이 났다. 맘대로 눈치 안 보고 제품을 구할 수 있었다. 값도 쌌다. 문제는 그곳에서 초기에 팔던 치즈의 다수가 살짝 야릇했다는 것. 이탈리아, 프랑스 치즈인 줄 알고 구입했는데 원산지를 살펴보면 호주나 미국인 경우가 흔했다. 포장지만 보면 나 같은 사람도 딱 속기 좋았다.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삼색기를 응용한 디자인에 상표도 무려 이탈리아 이름이었다. 수많은 뷔페 같은 곳에서 만나는 ‘카프레제 샐러드’에 들어간 치즈에서 고무처럼 질긴 맛이 나는 건 진짜 모차렐라를 쓰지 않았기 때문인 거다. 우리가 치즈에 대해 공부하는 게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데 기여하리라는 생각이 드는 건 이런 까닭에서다.

‘자연’이란 단어가 미식 마케팅에 쓰는 용어가 된 지는 오래됐지만 치즈에 관해서만큼은 여전히 쓸모 있는 말이다. 자연 치즈는 충분히 훌륭하다. 자연 치즈란 원유에 인공적인 가공품 대신 우유를 응고시키는 응유 효소 등만 넣은 것이다. 그만큼 원가가 높고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값이 비싸다. 3년 숙성한 파르미자노 덩어리를 6개월짜리 가공 치즈와 비교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나. 가공 치즈에 자연 치즈를 일부 섞어 쓰는 경우도 있지만 이 역시 ‘기본적으로’ 값이 싼 양산품을 만드는 데 쓰는 방식이다. 누구나 돈을 벌려고 생산하고 유통하지만 잡다한 치즈를 생산하는 것이 농부의 마음은 아닐 것 같다.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치즈의 신대륙이다. 치즈 소비량이 엄청나게 늘고 있다. 김치나 고기에 치즈를 넣는 방식은 이미 낡은 수법이며, 찌개에 치즈를 넣는 것도 불사한다. 치즈는 진하고 감칠맛이 있으며 그것에 익숙한 세대에 쉽게 어필할 수 있다. 치즈 넣어서 실패하는 메뉴가 별로 없다. 다만 우리가 그걸 치즈라고 알고 먹기에는 여전히 조잡한 방식이 판을 친다는 게 문제다. 한때 화제가 되었던 모조 치즈(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분자 요리다)가 그 대표 격인데, 기름으로 치즈를 창조하는 것을 두고 진기명기라고 칭송하기에는 뭔가 께름칙하다. 그것조차 과학적인 산물이라고 강변하는 식품과학론자들에게 그 치즈를 한 보따리 선물하고 싶다. 안 그래도 우유가 남아도는데 기름 치즈라니.

치즈는 지금 대단히 복잡한 시간을 맞고 있다. 요즘엔 국내 유제품 회사에서 생산되는 치즈의 종류도 대단히 다양해지는 상황이다. 무려 카망베르를 생산할 정도다(제발 깡통에나 넣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유는 간단하다. 점점 잉여의 산물이 돼가는 우유를 소비할 방법으로 치즈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호주나 뉴질랜드 같은 ‘산유국’에서는 저장한 우유로 언제든 싼값의 치즈를 만들 수 있고, 그것을 아시아 국가에 뿌려대고 있다. 고무적인 건, 외국 등에서 치즈 만드는 기술을 익힌 젊은이들이 귀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다양한 가격대의 제대로 된 치즈를 선보일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어차피 우유는 더 남아돌 게 분명하다. 아이를 낳지 않아 분유 소비까지 격감하고 있으니까.

한 가지 더. 제발 레몬 주스나 식초를 넣어 만든 ‘치즈 유사물’을 리코타 치즈라고 부르지 말았으면 좋겠다. 리코타는 엄연히 치즈를 만들고 남은 재료에 크림을 더해 신선하게 만들어내는 이탈리아식 치즈다. 산을 뿌려서 얻는 건 리코타가 아니다. 그건 그냥 생치즈다. 그 치즈가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올바르게 불러야 구분이 된다. 모든 것이 알맞은 이름으로 불리면서 제 몫을 찾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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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 찬일(로칸다 몽로 셰프)
사진 © GETTY IMAGES
출처
25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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