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라면집 3편 55번지라면

흔한 음식도 맛과 사연을 담으면 치명적이다. 한정식집이 즐비한 삼청동 틈바구니 속에 자리잡은 라면집. 한국 라면의 고급화를 꿈꾼다는 이 집에서 치명적인 라면을 발견했다.

“라면이 요리야?” 라면을 취재 중이라고 하니 주변에서 더 아우성이다. 봉지라면 갖다 끓이는 게 대수냐는 뜻에서 하는 얘기일 것이다. JTBC <뉴스룸>의 간판 코너 ‘팩트 체크’가 뜬 이후로 우리는 일상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팩트를 대라는 팩트 요청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그러나 라면이 요리인지 아닌지에 대해 길고 긴 논쟁을 할 생각은 없다. 라면은 요리이니까.

종로구 북촌로에 위치한 ‘55번지라면’은 구 주소로 삼청동 55번지라서 그대로 이름을 지었는데 덕분에 손님들이 식당을 찾아 헤맬 일이 없다. 오래된 한옥을 리모델링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인지 입구에 들어선 순간부터 어린시절 외갓집을 온 듯 따뜻하고 포근하다. 대표 메뉴는 소불고기를 토핑한 불고기라면, 해산물이 가득한 오짬라면, 55백뽕, 그리고 된장라면이다.

이집 라면이 치명적인 첫번째 이유는 재료들이 아낌없이 들어가 고급스러운 식사 한끼를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짬라면, 55백뽕은 모두 해산물 라면으로 왕새우, 오징어를 기본으로 버섯과 채소가 첨가된다. 하얀 국물 라면인 불고기라면은 양념에 잰 소불고기와 각종 채소가 들어간 라면. 더러, 술집에서 후식 메뉴로 파는 짬뽕라면을 먹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교적 저렴한 해산물인 홍합, 오징어가 조금 들어가고 각종 파와 콩나물이 곁들여지면 약 5000원대의 가격이 형성된다. 물론 55번지라면의 가격은 7500원에서 8500원대로 그보다는 조금 더 비싸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왕새우와 바지락이 들어가고 불고기라면엔 소불고기가 들어가니 고급스러운 식사 한끼의 가격으론 납득할 만 하다. 라면으로 그냥 한끼 때우려 했는데’란 마음이라면 애초에 발길을 들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집 라면이 치명적인 더 큰 이유는 소의 뼈를 우려낸 사골 국물에 라면을 끓인다는 점이다. ‘55번지라면’의 이재현 사장은 부모 때부터 수 십 년간 삼청동 설렁탕집을 운영한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사골 육수와 잘 어울릴만한 라면들로 메뉴를 구성했다. 예를 들어, 해산물이 들어간 빨간 국물의 오짬라면은 단순히 생각하면 맵고 짠 게 정상이겠지만 그렇지 않다. 사골 육수 안에서 맛을 내는 요소들이 다 우러나기 때문에 조미료를 많이 넣을 필요가 없고 결과적으로 짠맛이 덜하면서도 다양하고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것. 소의 뼈를 우려낸 사골 라면에 소불고기가 올라가는 불고기라면은 음식끼리의 궁합이란 측면에서 더 논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물론, 소 한 마리 통째로 먹는 기분까지는 아니다.)

‘55번지라면’의 이재현 사장도 식당을 열기 전엔 기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제대로 된 라면전문점을 열고 싶었으나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당시, 그의 부모가 설렁탕집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재현 사장이 가업을 잇기를 바랐다. 이재현 사장의 지인들도 삼청동에서 음식점을 차리고 싶다면 차라리 한정식 식당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도 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라면전문점을 해보고 싶었다. “라면이 요리냐고요?(웃음) 당연히 요리이죠. 일본에선 라멘이 하나의 문화 코드로 자리잡아서 많은 관광객들이 오직 라멘을 먹기 위해서 일본을 갑니다. 반면에, 우리 나라에서 라면은 ‘봉지라면’ ‘끼니 해결용’ ‘심심풀이용’으로 여겨요. 한국의 라면도 우리의 문화 중 하나이지 않습니까? 대접받지 못하는 라면의 반란을 제가 일으켜보고 싶었어요.”

충분히 일으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면의 반란이라는 것을 말이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5가길 44-6 문의 02-722-2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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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이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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