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국밥집 1편 남해 김치국밥

흔한 음식도 맛과 사연을 담으면 치명적이다. 계획대로 남해의 산해진미를 먹진 못했지만 우연히 들어간 돼지국밥집에서 먹은 김치국밥 맛은 치명적이었다.

‘그곳’을 우연히 찾은 건 작년의 일이다. 겨울을 맞이하기 직전 따뜻한 도시 남해로 여행을 갔다. “남해 여행? 거기 가면 대방어부터 먹고 그 다음은 갈치조림이지. 멸치쌈밥이 남해의 명물인 건 알지? 맞다. 형 술 좋아하잖아. 다랭이 마을 가면 유자 막걸리가 있는데…(중략)”

남해를 여행 간다고 하니 미식가로 빙의한 후배가 침을 튀어 가며 열변을 토했다. 출생지가 동부이촌동인 걸로 아는데 언제 그렇게 남해를 오갔는지 남해군의 맛집 얘기도 모자라서 ‘바다’ 남해가 둘러싼 인근 도시들의 맛집까지 설명하려던 찰나, “야. 나 겨우 2박3일 가는 건데 그 정도면 충분해. 나머지 맛집은 갔다 와서 들을께”라고 말을 던지니, 그제서야 그는 입맛을 다시고서 남해홍보대사에서 친한 동생의 얼굴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남해군에 가니 어느 마을이나 바다와 맞닿아 있는 곳은 방어회, 갈치회, 멸치쌈밥을 파는 가게들로 즐비했다. ‘어쩌면 남해에 한두 번 다녀갔을 서울 촌놈이 남해 음식 전문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겠지’란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모쪼록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시장부터 먼저 간다. 볼거리 많고 맛있는 것도 많아서가 첫 번째 이유라면, 장터에 나온 상인들과 주민들에게 듣는 그 지역의 진짜배기 정보가 두 번째 이유다. 남해 읍내에 위치한 남해전통시장에 들어서니 마침맞게 행상을 하던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김치와 양하 장아찌, 각종 나물과 함께 먹는 국밥 한 그릇. 남해의 산해진미도 좋지만 아침부터 달려오느라 속이 출출해서 그런지 단순한 한끼를 먹고 싶었다. “이 근방에서 뒤로 돌아가면 돼지국밥집이 있어.” 식사를 하는 도중에도 귀찮은 내색없이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고 남해의 명물 ‘양하’를 사러 곧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며 발걸음을 나섰다. ‘부산, 밀양과 지척에 있다 보니 돼지국밥을 파는 건가’란 호기심이 들 때쯤 복례가마솥국밥을 찾았다. 점심을 하긴 이른 시간인데 식당에 들어서니 이미 손님이 제법 있었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다들 주인과도 잘 아는 눈치였다.

식당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돼지국밥을 시키려고 보니 김치돼지국밥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돼지국밥도 맛있을 텐데 김치가 들어간 국밥이라니 계획을 변경할 수 밖에 없었다. 둘 다 시키는 것이었다. 이내 주인 아주머니가 식탁 위에 올려준 김치돼지국밥. 빨간 국물 한 그릇에는 얼핏 봐도 수북한 돼지고기와 윤기 자르르한 묵은지가 먹음직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숟가락을 국밥 속에 푹 찔러 넣고 함께 나온 싱싱한 부추도 곁들인 다음 30초 가량을 기다렸다. 국밥 한 숟가락 크게 떠서 돼지고기, 김치, 콩나물을 얹은 후 입안에 넣었다. 집에서 어머니가 자주 해주던 콩나물 김칫국을 떠올렸는데 그 맛과는 사뭇 달랐다. 오히려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더 가까웠고 칼칼함 보다는 돼지 잡뼈를 우려낸 깊은 국물 맛에 매콤하면서도 돼지고기 비계가 들어가서인지 맛이 부드러웠다. 김치가 들어간 것은 신의 한수였다. 특유의 비릿한 내음을 좋아하지 않아 돼지국밥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도 쉽게 좋아할 맛이었다. 김치를 기름에 둘러 살짝 볶고 꾹 짠 후 미리 끓인 육수에 넣어서인지 김치의 식감이 무르지 않았고 간 역시 알맞았다. 빼곡히 들어간 콩나물, 양파, 대파 역시 시원한 국물 맛을 내는데 한몫 단단히 했다. 국밥이 너무 뜨거워도 맛있으면 입천장이 까지는 지도 모르고 계속 입에 넣기 마련인데 조심한다고 조심했는데도 이미 입 속이 얼얼했다.

물론 담백한 맛의 돼지국밥에 새우젓을 살살 풀어서 떠먹으니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입맛엔 김치국밥이었다. 후배의 열정만큼은 아닐지라도 남해의 산해진미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돼지국밥집을 만났고 이끌리듯 선택한 김치국밥은 치명적이었다. 인생은 계획한 것과 달리 김치국밥처럼 우연히 찾아온다. 그래서 재미있다. 치명적인 국밥을 알려준 행상 아주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길을 나섰다.

주소 경남 남해군 남해읍 북변리 282-4 문의 055-863-5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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