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2.0시대?

전통주의 시대가 도래할까?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오히려 나야말로 되묻고 싶다. 왜냐하면 나야말로 전통주의 미래가 몹시도 궁금하기 때문이다. 한때 높은 도수의 전통주를 판매하는 바를 운영했으며, 전통주 교육기관에서 수업을 들었고, 실습 공방을 빌려 열심히 술을 빚은 사람으로서 나는 무척 궁금하다. 과연 전통주가 하나의 온전한 식문화로 정착할지 말이다. 지난해 한식재단은 전통주 소믈리에의 명칭을 공모한 바 있다. 의아했다. 전통주를 무엇이라고 부를지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그와 연계한 직업의 명칭을 공모할 수 있을까. 어느 나라가 전통적인 자기 나라 술을 ‘전통주’라고 통칭하는가. 일본만 해도 ‘니혼슈’, 즉 ‘일본 술’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적어도 우리 술의 통합 명칭부터 고민하는 게 올바른 수순 아닐까. 최소한 ‘한주(韓酒)’란 식으로 전통주의 정체성을 정리한 뒤 파생된 이름을 고민해야 한다.

값싸고 배부른 술, 숙취를 부르는 술로 오랫동안 인식되어온 막걸리가 처음 미식의 영역에 발을 들인 건 2009년이다. 그런데 그 과정이 참으로 의아했다. 몇몇 막걸리 양조장이 품귀 현상을 겪었는데 그 이유를 추적해보니 막걸리가 일본에 대량 수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진부한 술이 일본에서 진보한 술로 취급받고 있었다. 이 뜻밖의 현상 뒤에는 애초에 한류 열풍이 있었다. 그 열풍을 타고 한국에 상륙한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막걸리는 사케처럼 쌀로 빚은 술이어서 쉽게 받아들여졌을 터. 게다가 사케보다 맛이 달고 가격이 저렴한 데다 도수도 한참 더 낮았다. 당시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의 주류 키워드는 알코올 도수가 낮은 ‘저도주’였다. 특히 한류 열풍의 주 소비층인 일본 여성들이 달고 부드러운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그 덕에 도쿄 한복판에서 소위 커리어 우먼이라고 부르는 포멀한 복장의 여성 직장인들이 막걸리를 마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덕분에 막걸리를 향한 우리의 시선도 환기됐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일본의 한참 앞선 문화를 열심히 좇던 우리이기에 하루아침에 막걸리가 달리 보였을 테다. 물론 곳간에 남아도는 쌀을 소비하는 데 혈안이었던 정부의 입김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국내에서도 막걸리 열풍이 뜨거워질 무렵, 나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해방촌에 소재한 한 막걸리 전문점을 취재차 방문했다. 서울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막걸리를 구비한 집이었다. 그곳에서 인기 있다는 막걸리 샘플러를 맛보며 인공적인 단맛에 시큼털털한 줄만 알았던 막걸리를 향한 편견을 깼다. 특히 샴페인을 따 듯이 조심히 다뤄 개봉해야 하는 복순도가 손막걸리는 달큼하면서 크리미한 동시에 입안에서 기분 좋게 기포가 터지는 향미와 식감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그때부터 전통주를 향한 관심이 조금 더 구체화됐다. 하지만 막걸리 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일단 한류라는 큰 그림이 흐릿해지면서 자연스레 해외에서부터 그 거품이 꺼졌고, 국내에서도 젊은이들의 흥미를 끌기에는 패키지 디자인이 너무 구태의연했다. 물론 제품의 질이 가장 큰 문제였다. 막걸리는 대체로 너무 달고 포만감이 크며 여전히 숙취가 심한 술로 통했다.

막걸리와 청주, 소주는 그 뿌리가 같다. 쌀에다 누룩 등의 효모를 넣고 버무려 발효하면 맑은 술이 뜨고 찌꺼기가 가라앉는다. 이때 맑은 술만 걸러내면 청주요, 이를 증류하면 소주, 지게미 혹은 맑은 술과 지게미의 혼합물에 물을 타 농도를 묽게 하면 막걸리다. 그중 막걸리는 으깬 쌀알이 고스란히 섞여 있기 때문에 포만감이 강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에 막걸리만큼 배부른 술이 있을까. 우리와 같이 쌀이 주식인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도 주로 쌀로 술을 빚지만, 거의 대부분 증류하거나 여과하여 맑은 부분만 취한다. 물론 일본에도 탁주가 있다지만 거의 대중화되지 않았다. 실제로 일본에서 막걸리가 유행했을 때 젊은이들이 막걸리는 마셔봤어도 자국의 탁주는 마신 적이 없다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막걸리가 숙취 유발자로 취급받는 이유는 첫째로 인공감미료의 사용 때문이고, 둘째로 술을 빚을 때 쌀을 일본처럼 많이 도정하지 않아 잡맛과 함께 숙취를 유발하는 단백질, 지방 성분이 섞여 있는 탓이다. 아스파탐 등의 인공감미료를 쓴다고 무턱대고 양조장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막걸리는 싼 술’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지 않는 이상 양조장들은 단가를 맞추기 위해 쌀의 함량을 줄이고 그 맛의 여백을 저렴하면서도 효율적인 인공감미료로 채울 수밖에 없다. 싸고 배부른 술을 찾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온 양조장들 입장에서 막걸리 붐은 필연적으로 꺼져가는 거품일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증류주가 새롭게 조명됐다. 오랜 시간 한식기를 만들어온 광주요가 2005년 ‘화요’라는 증류주를 선보인 이래 꾸준히 인지도를 쌓았고, 문배술, 안동소주, 진도홍주 등의 전통 증류주도 나름 선전했다. 그 덕에 콩알만 하던 시장이 한 줌만 해지자 하이트진로가 ‘일품진로’를, 롯데주류가 ‘대장부’를 내놓으며 공격적인 광고 홍보 활동을 펼쳤고, 그 결과 대중이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의 차이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또한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증류식 소주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와인처럼 나름대로 기분 내고 싶을 때 마시는 ‘힙’한 술로 자리매김했다. 국세청 발표에 따르면 2012년 출고가를 기준으로 시장 규모가 95억원이었던 증류주 시장이 3년 뒤 195억원으로 급성장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 새로운 증류주 제품이 여럿 출시됐으니 이를 감안하면 2017년 증류주 시장이 출고가 기준 3000억원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사실 그중 진정으로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업체가 과연 존재하는지 따져볼 문제이지만, 일단 사람들이 여태껏 마셔온 세상 저렴한 소주가 물에다 90도 이상의 주정을 몇 방울 섞은 희석식 소주이며, 증류식 소주야말로 ‘술다운 술’이라는 인식의 변화를 이끈 사실만큼은 고무적이다. 이쯤 되니 청주를 제외하고는 전통주가 제법 선전하는 듯싶은데, 그 와중에 전통주 시장의 발전을 가속화할 제도 개편이 두 차례 있었다. 파격에 가까운 이 법 개정이 1년여의 사이를 두고 차례로 이뤄지는 바람에 전통주 시장의 공기는 사뭇 달아올랐다.

첫 번째 개편은 소규모 주류 제조 면허다. 맥주 시장에만 국한해 개정했던 소규모 주류 제조 면허가 전통주 중 청주, 약주, 막걸리로 주종이 확장돼 개정됐다. 기존에 탁주와 약주는 5KL, 청주는 12.2KL 이상 생산 가능한 설비를 갖춰야 허용했던 주류 면허를 1KL 이상으로 하향 조정한 결과가 바로 소규모 주류 제조 면허다. 단, 양조장과 함께 음식점을 겸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하지만 이 조건만 갖추면 자신의 음식점에서 하우스 막걸리나 청주를 팔 수 있을뿐더러 직접 제조해 병입한 전통주를 일반 소비자는 물론 타 업장에도 판매할 수 있다. 기존에 자신이 빚은 술을 몰래 팔아온 음식점의 경우 그 옆에 조그마한 양조장을 갖추면 법의 보호 아래 자가 제조 술을 떳떳이 팔 수 있다는 얘기다. 법이 시행된 지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한국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은 시장의 변화를 감지한다고 한다.

“양조장을 내려면 술 제조법을 숙지해야겠죠. 자연스럽게 저희 같은 교육기관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예전보다 늘어난 대기자 수가 이를 증명하지요.” 류 소장은 그새 새로 문을 연 양조장이 열을 훌쩍 넘는다고 귀띔한다. “2009년부터 주장해왔지만 이렇게 빨리 개정될지 몰랐어요. 좀 더 채비를 할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염원해온 일인 만큼 그사이 집중적으로 준비하여 진출한 업체들이 하나둘 늘어났습니다.” 류 소장은 법 개정이 소비자의 인식 변화보다 한발 앞선 점을 강조하며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안도했다. “아직 전통주를 대하는 소비자의 인식이 많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법이 먼저 바뀐 거죠. 오히려 업계가 준비할 시간을 벌었으니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류 소장은 업계가 준비해야 할 과제 중 하나로 품질 인증제의 홍보와 의무화를 손꼽는다. “앞으로 프리미엄 시장이 강세를 보일 거라고 예상합니다. 프랑스에서도 전체 와인 시장은 위축됐어도 프리미엄 와인 시장은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죠. 프랑스는 프리미엄 와인에 대해 원산지 호칭 제한(AOC) 제도 등을 통해 법적인 보호를 해주는데 우리나라는 이를 뒷받침할 제도가 없습니다. 국내에 현존하는 제도를 활용한다면 품질 인증제가 적절할 텐데, 이런 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데다 법적으로 의무화하지 않아 별 효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합니다.”

최근 ‘프리미엄’을 표방하는 막걸리가 대거 등장했다. 소비자가격이 1만~2만원을 호가하는 해당 제품을 보면 문득 의구심이 든다. 그 어디에도 가격에 대한 명분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국내산 쌀, 그중에서도 특정 지역 쌀, 그중에서도 햅쌀을 이용하고, 누룩은 직접 빚으며, 발효는 전통 방식대로 한다는 등의 명기를 구체화하고, 그 과정을 돈으로 환산했을 때 얼마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것인지 알려줘야 사람들이 좀 더 확신을 가지고 프리미엄 술을 찾지 않을까. 그러니 원료가 100% 국내산인지 아니면 수입산이 조금이라도 섞였는지에 따라 분류하는 전통주 품질 인증제가 작게나마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잠재력이 터질 듯 불발한 채 세월을 보내온 전통주가 그나마 약진했을 때를 돌아보면 그 뒤에는 대기업의 진출이 있었다.

두 번째 개편은 전통주 온라인 판매다.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온라인 판매를 철저히 규제했던 주류 중 유일하게 전통주만 예외를 뒀다. 전통주 시장이 열악하고 그것이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라 해도 전통주에만 특혜를 준 건 너무 파격적인 결정이 아닌가 싶지만 류인수 소장은 그것이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 했다. “전통주는 사실 예전부터 농협, 우체국 쇼핑몰, 그리고 양조장 자체 웹사이트를 통해 거래가 이뤄졌습니다.” 불현듯 양조장 홈페이지를 통해 술을 구입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이는 전통주를 지역 특산물로 여긴 결과다. “기존에 온라인 판매하던 전통주를 일반 온라인 쇼핑몰로 판로를 확장한 거지, 전혀 새로운 법 규정은 아니었습니다.”

현재 온라인 판매가 가능한 술은 중소기업 혹은 영세 업체에서 빚는 전통주가 유일하다. 전통주라 해도 대기업 태생이면 온라인 판매는 여전히 불가능하다. 일각에선 전통주를 신호탄으로 다른 주종과 대기업 제품 역시 온라인 판매가 허용될 거라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류 소장은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일축한다. “계승해야 할 문화유산인 전통주의 꽉 막힌 판로를 열어준다는 명분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지, 다른 주종은 청소년 보호법 때문에 규제를 풀기 어려울 거라 전망합니다.” 류 소장의 견해와 달리 소셜 커머스와 오픈 마켓은 현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혈안이다. 시장이 작고 이윤이 적은 제품군임에도 그들이 전통주 판매에 발 벗고 나선 이유는 결국 다른 주종도 규제가 풀릴 거라고 예측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온라인 판매가 다른 주종에까지 허용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일단 전통주업계는 제도 개편에 따른 변화의 바람을 타기 위해 분주하다. 특히 추석이라는 대목을 앞두고 더욱 그런 인상이다.

우리는 대자본, 즉 대기업이 시장을 만들고 이끄는 사례를 수없이 봐왔다. 전통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잠재력이 터질 듯 불발한 채 세월을 보내온 전통주가 그나마 약진했을 때를 돌아보면 그 뒤에는 대기업의 진출이 있었다. 특히 신세계백화점이 본점을 리뉴얼하며 문을 연 우리술방은 궁극적으로 기업의 이윤을 위한 선택지였지만, 업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낳았다. 고루한 디자인은 전통주가 풀어야 할 고질적 문제였고, 그 해답의 예시를 우리술방이 제시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기존 전통주에 우리술방이 입힌 패키지 디자인이 농림부 산하의 한국전통주진흥협회에 기부한 것이라 협회에 등록된 유통사를 통하면 다른 업장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롯데백화점 등에서 우리술방의 디자인을 그대로 입은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수입 와인과 달리 라벨부터 콘셉트까지 관여한 전통주에 애착이 커요. 그래서 처음에는 다른 유통사에서 판매한다고 했을 때 서운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는데, 막상 가서 보니 자부심이 드는 것과 함께 전통주의 선전을 진심으로 기원하게 되더라고요.” 신세계백화점 조은식 바이어의 말이다. 추석을 앞두고 우리술방은 남한산성소주를 새로 선보인다. “기능 보유자 아버지에게 전수받은 아드님이 명맥을 잇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썼지만 한 달에 몇십 병밖에 생산할 수 없었어요. 저희 회사 산하의 식품과학연구소가 제조 시설 점검에 필요한 절차를 도와 공장을 증설, 현재 2000병까지 제조할 수 있게 됐지요.”

조 바이어는 통화 말미에 우리술방의 술이 백화점 추석 선물 카탈로그 도입부에 장장 3페이지에 걸쳐 소개됐다고 강조했다. 물론 최근 업계에서 큰 이슈였던, 신세계백화점에서 전통주가 와인에 이어 매출 2위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잊지 않고 전했다. 나는 이번 제도 개편을 기점으로 외부의 관심이 자본 유입으로 이어져 전통주 시장이 이번만큼은 확실히 묵은 때를 벗고 쇄신의 길을 걷기를 바라본다. 한때 업계에 발을 담갔던 종사자로서 애정을 담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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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 주연(미식 칼럼니스트)
사진 정 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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