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향 한 모금

입안 가득 은은하게 퍼지는 쌀 향을 음미할 수 있는 술.

1. 화요

종류 증류주 도수 17, 25, 41, 53%

날카롭고 화한 알코올 내를 뒤따라 은은한 쌀 향이 조심스레 고개를 든다. 그런데 막상 입에 머금으면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알코올 냄새보다 달큼한 쌀 향이 더 빠르고 넓게 퍼진다. 화요는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국내 증류주 중 단연 가장 자연스럽고 담담한 쌀 향이 난다. 그 비결은 감압 증류와 옹기 숙성에 있다. 낮은 기압에서 술을 증류하는 감압 증류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데, 이를 선택한 이유가 비단 비용 절감만은 아닐 터. 감압 증류를 하면 향기 성분의 함량이 낮아진다. 그만큼 향이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것. 증류 후 옹기에서 180일가량 숙성하는 과정도 한몫한다. 향이 복잡다단하고 풍성한 술도 좋지만, 가끔은 질리거나 물리지 않는 화요가 반갑다.


2. 삼해소주

종류 증류주 도수 45%

‘쌀 향이라는 것이 입안에서 폭발한다.’ 삼해소주를 처음 마시는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이다. 입에 머금었다가 꿀꺽 삼킨 후 입을 다시 여니 입술 새로 강한 알코올기가 빠져나가는 가운데 쌀 향은 그대로 입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쌀의 단 향이 혀에 착 하고 들러붙은 느낌이라고 할까? 김택상 명인은 그 향의 여정을 ‘몽우리 맺은 꽃이 삼키는 순간 활짝 피어난다’고 표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삼해소주는 밑술에 덧술 과정을 세 번 거친 사양주를 증류한다. 보통 삼양주도 찾기 힘들며, 술을 증류하면 양이 5분의 1로 줄어들기 때문에 이 병 하나에 쌀 한 포대가 담겨 있는 격이다. 그 향은 꽃과 과일을 닮기도, 찐 땅콩의 고소한 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3. 경주법주 초특선

종류 청주 도수 16%

우리는 사실 술을 빚을 때 쌀을 도정하지 않는다. 대신 ‘백세(百洗)’라고 하여 쌀을 백 번 씻었다. 술을 빚을 때 쌀을 도정하는 문화는 일본에서 왔다. 쌀에 들어 있는 단백질, 지방 등의 영양 성분은 술이 익는 과정에서 특유의 향을 내는데, 일본 사람들은 그걸 잡내라고 여긴다. 우리나라 청주가 일본 사케보다 맛과 향이 거친 건 안타깝게도 사실이다. 경주법주 초특선은 일본 사케처럼 쌀을 도정해 쓴다. 그것도 55%나 깎는다. 그리하여 굉장히 깔끔한 풍미를 자아낸다. 뚜껑을 여는 순간 화사한 과실 향이 올라오고, 한 모금 머금으면 그 향이 입안 가득 화사하게 퍼졌다가 일순간 알코올기와 함께 사라진다. 쌀에서 난다는 과실 향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4. 담은

종류 탁주 도수 6%

갓 지은 밥처럼 뽀얀 색에 감탄하며 한 모금 머금자 아주 고운 입자들이 입안을 살포시 감싸 안는다.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입자들이 보드랍게 내려앉으며 입안을 적시자 은은한 단맛이 혀에 천천히 스며든다. 그러는 동안 기포 한 방울 일지 않으며 차분하고 얌전하다. 만약 여태까지 솜사탕을 염두에 두고 구름 맛을 상상했다면 이제는 프리미엄 생막걸리 ‘담은’을 떠올려도 무방하겠다. 이는 불린 쌀을 빻아 만든 가루를 높은 열을 가해 죽이나 떡, 밥의 형태로 변형시키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발효했기 때문에 낼 수 있는 맛과 질감, 색이다. 그리하여 밥보다는 설탕을 살짝 넣어 쪄낸 뽀얗고 깨끗한 맛의 백설기를 연상케 한다.


5. 풍정사계 춘

종류 청주 도수 15%

전통주 중에서 최근 가장 영접하기 힘든 술이 ‘풍정사계 춘’이다. 지난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만찬주로 쓴 까닭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다이어트 콜라를 마셨지만. ‘춘하추동’ 사계절을 콘셉트로 청주, 과하주, 탁주, 증류주를 빚는 풍정사계는 답보 상태의 전통주업계에서 확실히 독자적인 행보를 보인다. 술 빚을 때 굉장히 어렵다는 백설기 형태로 쌀을 가공하며, 궁중 누룩의 한 종류인 향온곡을 직접 빚어 쓰는 풍정사계의 술은 장인 정신을 논할 만하다. 청주는 특유의 꽃 향, 과실 향, 이끼 향에 누룩 냄새가 살짝 돌아 쌀 향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없는 한편, 증류주에 해당하는 ‘동’은 향수를 만들 때처럼 상압 증류를 이용해 쌀 향이 풍성하다.


6. 복순도가 손막걸리

종류 탁주 도수 6.5%

프리미엄 막걸리 시대를 연 복순도가 손막걸리는 맛볼 때마다 ‘튼실하다’는 단어가 생각난다. 막걸리 한 병에 들어간 쌀의 양이 배 이상이라는 사실은 일반인들도 단박에 알아챌 정도. 발효가 살짝 덜 끝난 상태에서 밀봉하여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기포 때문에 간과할 수 있으나 목으로 넘길 때마다 묵직한 질감이 느껴진다. 액체가 품을 수 있는 최대치의 무게 같다고 할까? 특히 막걸리를 직접 빚어본 사람이라면 그 향이 밑술에 고두밥을 섞기 위해 손으로 치댈 때 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즉 개인이 집에서 만들 듯 정성껏 빚는다는 이야기. 실제로 복순도가 손막걸리는 누룩을 직접 빚고, 매우 드물게 모든 과정에서 스테인리스 용기가 아닌 옹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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