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이 예술이다-5 포도나무

농협이 ‘쌀밥 맛있는 집’ 1호로 지정한 ‘포도나무’. 27년째 고수하는 냄비 밥은 평범한 듯 비범하다.

포도나무 이화숙 사장이 손님을 접대하는 모습은 퍼포먼스를 연상시킨다. 밑반찬을 까는 듯하더니 빈 접시 하나를 놓고 간다. 그 접시의 용도가 무엇인지 갑론을박할 때쯤 이 사장이 움푹한 스테인리스 볼을 들고 넌지시 다가온다. 그리고 테이블 옆에 앉아 볼에 든 포기김치를 손으로 쭉쭉 찢어 빈 접시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다시 뒤돌아 간다. 그 뜻밖의 광경에 넋을 놓고 있으니 이번에는 묵직한 냄비를 들고 온다. 무언가 싶어 고개를 최대한 빼어 갖다 대는 순간 뚜껑이 열리며 뽀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마음속으로 ‘밥이다’를 외치는 순간 코끝에 달짝지근하고 구수한 밥 냄새가 와닿는다. 이 사장은 밥을 빈 공기에 빠르지만 조심스럽게 퍼주고 또다시 사라진다. 이렇듯 독특한 서비스를 고수하는 이유가 궁금하나 갓 지은 밥의 단내가 모든 신경을 잡아 끈다. 밥에 남도 김치와 젓갈을 올려 먹느라 정작 주문한 탕은 뒷전이다. 식사가 끝날 때쯤 젊은 여성이 밥이 수북했던 냄비를 들고 와 숭늉을 퍼준다. 배가 어느 정도 부른 김에 일어나려는 여성을 끌어 앉히고 서비스에 대해 물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이 사장의 딸 조아라 씨였다.

“갓 지은 밥에서 나는 냄새는 식욕을 자극하고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힘이 있잖아요. 손님들께 그 냄새를 일일이 맡게 하고 싶어 냄비 밥을 짓고, 또 냄비째 밥을 가져와 자리에서 퍼줍니다.”

1990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시작하여 서울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닌 포도나무는 맛깔나는 남도 요리와 더불어 이 냄비 밥으로 미식가들 사이에서 명성을 쌓았다. 농협이 우리 쌀로 지은 밥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도입한 제도 ‘쌀밥이 맛있는 집’ 1호점으로 선정됐을 정도.

“압력솥으로 하면 웬만한 쌀은 다 윤기가 나고 밥맛이 좋은 반면, 냄비 밥은 찰기가 적은 등 밥맛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쌀이 더 중요하죠.”

조 씨는 어머니와 다양한 쌀을 써본 끝에 영암 달마지쌀의 ‘하이아미’로 정착했다.

“저희 식사 메뉴가 모두 탕이다 보니 손님들이 밥을 말아 먹는 경우가 많아요. 이때 찰기가 지나치면 쉽게 퍼지는데, 하이아미는 쌀알이 탱탱해 잘 퍼지지 않더라고요. 쌀 향도 좋고요.”

가루를 내 고듯이 끓인 짱뚱어탕의 걸쭉한 국물과 매생이탕의 실 같은 질감이 코팅하듯 들러붙은 밥알은 씹으면 씹을수록 진한 양념 새로 은은한 단맛을 뿜어낸다. 마지막으로 말려서 빻은 누룽지에 떡밥을 넣고 끓인 뽀얀 숭늉까지 먹고 일어나면 어느새 추위가 저만치 멀어져 있다.

Address 서울 종로구 사직로 108-1
Tel 02-3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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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주연(미식 칼럼니스트)
사진신규철
출처
28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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