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원유감

누구나 미원을 먹는다. 어느 식당이나 쓰기 때문이다. 그게 문제일까?

미원(이 글에선 편의상 MSG를 미원이라고 지칭하겠다)의 제일 큰 문제는 건강에 대한 염려도, 맛의 획일화도 아니다. 바로 이것을 쓰는 이들의 심리적 위축이다. 요리사들은 늘 이 ‘마법의 가루’에 대해 신뢰와 의구심을 동시에 갖는다. 이것으로 음식 맛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맛에 까다로운 손님을 한 방에 훅 보낼 수도 있다. 한편 이 가루는 조롱의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어떤 조롱이냐고? 이런 경우다. “난 미원 넣은 건 기가 막히게 알아맞혀.”

이 손님이, 농축한 고기와 버섯, 해산물과 다시마, 간장의 맛이 들어간 음식에서 미원의 흔적을 발견한다고 믿는 건 허망한 신앙에 가깝다. 당장 내기를 해도 좋다. 적은 표본에서는 7 대 3 정도로 맞힐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표본 수가 늘어난다면 절대로, 90% 이상 적중한다는 건 신화다. 불가능하다. 내기를 해도 좋다. 의료계에서 아니라고 해도 아직도 이걸 먹으면 머리가 아프고, 졸리다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의료계의 어떤 집단이 미원 생산자에게서 연구 자금을 받았다는 증거도 없다. 물론 음식을 파는 처지인 나도 이런 주장을 하는 손님 앞에서 “아녜요, 절대로!”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물론 속으로는 ‘그건 말이오, 그대가 너무 많이 먹어서 졸리거나, 오늘 사업이 잘 안 풀려서 머리가 아픈 것일 테지’라고 말한다. 면전에서야 어림없다. 내가 그렇게 미원을 ‘옹호’하는 것으로 보이는 순간, 내 가게는 매출 감소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없는 사실도 만들어서 퍼뜨리는 해괴한 네티즌들이 있기 때문에 셰프들은 입조심을 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절대 안 쓰지만(아휴, 궁색해라), 그걸 쓴다고 죄인은 아니지요.”

그렇다. 죄인이 따로 없다. 앞서 말한 심리적 위축에 시달리는 거다. 당장 주리를 틀거나, 광장에 무릎 꿇리고 돌을 던질지도 모른다. 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솔직히 세계의 요리사치고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그러니까 ‘너희들이 죄가 없거든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는 말을 듣고 흠칫하지 않을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세계의 수많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심지어 별 셋을 받은 레스토랑 중 일부도 ‘부용’이라고 속칭하는 미원이 넉넉히 들어간 고체 육수를 쓴다.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의 고급 식당들은 그렇지 않은가? 으레 쓸 것이라고 판단되는 한·중·일식 외에도 말이다. 하얀 가루를 쓰지 않는다면 어떤 조미료도 쓰지 않는 것인가? 정말?

이 대목에서 뜨끔할지도 모를 한국의 요리사들이여, 이것이 딱히 그대들을 겨냥하고자 하는 말은 아님을 알아주길 바란다. 사실 누가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나. 그대가 구매한 베이컨 중에 미원이 안 들어간 제품이 얼마나 되나? ‘부용’을 인터넷이나 해외 출장길에 구매해보지 않은 셰프가 얼마나 되나? ‘마끼(MAGGI)’라는 태국 브랜드의 치킨 맛 부용을 비롯해 액상 또는 고체형으로 된 치킨 스톡을 써보지 않은 셰프도 있나? 굴 소스나 두반장, 일본산 조미료인 혼다시를 비롯한 온갖 사업용 혼합 액체 소스를 안 써본 셰프가 있나? 최고급 호텔은 아닐 거라고? 그렇다면 호텔의 식료품 구매 대장을 한번 까볼까? 직원들 식사용으로만 쓴다고? 믿어는 드릴게.

아무도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눈치 빠른 이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연복 셰프가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연전연승하는 비결은 냉장고를 열자마자 미원이 들어 있는 기성 재료를 선점한 덕분이다. 김풍도 슬쩍 그 신공을 배워서 쓰고 있는데, 특히 그가 라면 수프를 확보했다가 아낌없이 넣는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른 전문 셰프들도 그렇게 하면 이길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하지 못한다. 당장의 승리보다 이미지라는 후폭풍이 무섭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으레 미원을 넣는 모습을 보게 되면 매몰찬 태도를 보일 것이다. ‘저 셰프는 업장에서도 미원을 쓸 거야’라고 생각할 거다. 미원보다 이런 이미지가 더 무섭다는 걸 그들은 잘 안다. 사실 이연복 셰프는 당당하게 미원을 쓰는 양반이니까 논외로 친다고 한들 그런 그조차 프로그램에서는 하얀 가루를 직접 쓰는 법이 없다. 그저 그 성분이 들어 있다고 알고 있는 인스턴트 제품의 소스를 고르는 것이다. 결과는 같으니까.

언젠가 강연에서 주로 집에서 요리하는 여성들로 구성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집에서 미원이나 다시다(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복합 조미료를 대표해서 쓴다)를 쓰는 분! 놀랍게도 한 명도 없었다. 거의 안 쓴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미원 소비량(정확히는 MSG)은 늘어만 간다. 다들 안 쓴다는데, 사용량이 는다니? 그러니까 집에서 만든 음식에는 미원이 들어가지 않지만, 식당에서는 열심히 소비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외식이 늘어나면서 실제로 개인의 미원 섭취량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실제로 미원을 쓰고 있으면서 쓴다는 말을 못 하는, 한마디로 호부호형을 못하는 요리사들의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늘 뭔가 죄 지은 것 같고, 부정한 일을 저지른 듯하고, 넣으면서 주방 후배들이 못 보게 감추려 든다. 오픈 주방이 늘면서 혹시라도 손님이 들여다볼까 봐 이 가루들은 모두 봉지를 뜯어서 따로 통에 담아 보관한다. 그러다 간혹 눈치 없는 막내 요리사가 분류를 위해 그 통에다 큰 글씨로 ‘미원’이라고 써 붙이는 통에 쪽이 팔리기도 하고. 그리고 혹시나 ‘착한식당 감정단’이라도 와서 가게 식료품 구매 대장의 거래 명세서를 보자고 할까 봐 안절부절못한다. 그러니 이제 미원 논쟁은 까고 가야 한다. 자, 미원 쓰시는 분들, 손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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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 찬일(로칸다 몽로 셰프)
사진 정 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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