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보양식

진짜 몸을 챙겨야 할 때는 한 여름이 아니라 날이 급격히 선선해지는 바로 지금 이 시기다. 에디터들이 직접 가보고 추천하는 가을 보양식 맛집 네 군데.

남도식당

알루미늄 문이 바깥으로 한껏 열려 있건만, 선뜻 들어가기엔 망설여지는 입구다. 한 자리에서 추어탕을 40년간 만들어왔다는 정보를 갖고 주말 저녁 한 상 차지하고 앉았다. 숱하게 오가던 정동길에서 이곳 간판을 그냥 지나친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추어탕은 여느 프랜차이즈 식당의 정제된 맛과는 달랐다. 남원의 조리 방식대로 미꾸라지를 갈아서 시래기와 함께 끓였는데, 간간히 미꾸라지 뼈가 씹히고 시래기도 투박하다. 무엇보다 된장을 주로 써서 맛을 낸 것이 남도 식당 추어탕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청양 고추 슬라이스, 고추, 산초가루가 작은 항아리에 담겨있다. 김치와 나물 반찬도 소박하다. 스테인리스 밥그릇과 물그릇, 두께가 얇고 길이가 짧은 옛 수저도 마음에 든다. 오래된 한옥집, 노란 장판, 작은 밥상 모두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시간 여행자로 만든다. 덕수궁 옛 터의 모습이 남아있는 정동길과 잘 어울리는 곳이다. 가게 바로 옆에는 중명전이 있다. 주류 메뉴에는 맥주는 없고 소주만 있다. 흥청망청 취할 일도 없다. 밤 8시30분까지만 문을 연다. 오로지 추어탕에 집중하는 식당이다.

가격 추어탕 1만원 주소 서울 중구 정동길 41-3 전화 없음

남해굴국밥

보양식을 즐겨 먹지 않는다. ‘보양식’이란 수식어가 붙은 음식들은 하나같이 무겁다. 싫어해서가 아니라 평소에도 ‘무거운’ 음식을 즐겨 먹기 때문에 굳이 챙겨 먹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다. 삼계탕이나 장어따위 챙겨 먹지 않고도 여름만 잘났다. 챙겨 먹지 않은 거지 아예 안 먹은 건 아니다. 이맘때가 고비다. 공기가 차가워지면 몸도 마음도 헛헛해진다. 기력이 확실히 딸리고 자칫하면 몸살이 찾아온다. 여름보다 가을의 문턱에 보양식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가을이 시작할 때마다 굴국밥을 먹는다. 굴국밥은 일종의 신호다. 좋아하는 석화를 시도 때도 없이 먹을 수 있는 계절이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굴에는 영양 성분이 풍부하게 들었다. 실제로도 몸에 좋겠지만 플라시보 효과도 크다. 굴을 먹으면 힘이 나고 정신이 맑아지고 활력이 넘친다. 게다가 맛있다. 신선한 굴에 물만 넣고 끓여도 진국이다. 은근히 굴국밥을 파는 곳이 많지 않다. 일부러라도 전문점인 남해굴국밥을 찾아 간다. 매일 통영에서 신선한 굴을 받는다고 한다.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신선한 굴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가격 굴국밥 7000원 주소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28길 42 전화 02-548-6917

두어마리

20대 땐 추어탕, 어죽, 달걀밥처럼 식재료를 으깨 갈아 만든 어중간한 식감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30대가 된 후엔 몸에 좋은 걸 이것저것 때려 넣고 믹서기에 왕왕 갈아 먹는 게 편하다.(아마 회사와 육아로 지친 심신이 씹는 것조차 귀찮아진 모양) 특히, 더운 공기가 차갑게 변하는 가을쯤 생각나는 탕이 있다. 바로 장어탕. 장어를 갈아 4시간 동안 푹푹 끓인 요놈, 아주 진국이다. 걸쭉한 국물이 전부라 건더기를 기대했던 사람은 처음에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은은한 약재향이 묻어나는 장어탕을 한 수저, 한 수저 먹다 보면 어느새 드러난 뚝배기 바닥이 아쉽기만 하다. 장어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칼슘도 풍부해 골다공증을 예방해준다는데… 됐고! 그냥 쉽게 말하면, 몸을 위해 마사지 한번 받은 듯한 기력이 살아난다. 8000원이란 착한 가격도 마음에 들고.

가격 장어탕 2만원(점심 8000원) 주소 서울 강남구 언주로 146길 7 전화 02-3444-8777

보성 양탕

양탕이라는 음식을 아는지. 전라남도 향토 음식 중 하나로, 흑염소 고기를 우린 육수에 토란, 머윗대, 고춧가루, 된장 등을 넣고 푹 끓인 뒤 흑염소 고기를 올려 내는 것이다. 보성 군청 근처에서 69년간 양탕을 끓여온 전문 식당 ‘보성 양탕’은 신혼여행 중에 발견한 뒤 여러 번 다시 찾은 곳이다. 양탕을 받으면 냄새를 먼저 맡게 된다. 진득한 고기 냄새와 후추의 홧홧한 향이 올라오면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색은 고춧가루의 빨간색이 아닌 암갈색을 띤다. 된장으로 맛을 냈기 때문이고, 그래서 구수한 맛이 난다. 국물은 걸쭉하고, 머윗대는 푹 고았는지 매우 부드럽게 씹힌다. 흑염소 고기의 육질은 돼지고기, 쇠고기와는 비교도 안 되게 결결이 부드럽고 촉촉하다. 끝내는 단맛이 난다. 깍두기와 김치는 묵은 것이 아니라 풋내가 나는데, 이것이야 말로 이 식당의 가장 큰 오점이라 할 수 있지만 괜찮다. 갓김치에 주목하면 되기 때문이다. 갓김치의 향과 알싸한 맛은 사람의 마음을 홀리고, 구수한 양탕과 함께할 때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양탕 한 그릇을 뚝딱하고 나면 아랫배에서부터 뜨끈한 기운이 올라와 온몸을 감싼다. 이것이 바로 흑염소가 주는 ‘불끈 솟는 힘’의 원천이 아닐까.

가격 양탕 1만원, 염소 수육 5만원 주소 전남 보성군 보성읍 신일길 13-5 전화 061-852-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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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한지희, 김진호, 윤다랑, 조한별
사진한지희, 김진호, 윤다랑, 조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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