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저스티스 리그-<하>

NBA는 정치적인 행동에 징계를 내리던 곳이었다. 요즘은 NBA 스타와 감독이 사회적으로 가장 시급한 사안에 목소리를 낸다. 어떻게 프로농구가 미국에서 가장 깬 스포츠 리그가 됐을까?

올해 초 어느 봄날 저녁, 나는 샌안토니오 시내 바로 동쪽의 AT&T 센터에서 취재를 하고 있었다. 경기 시작 30분 전쯤 기자들이 클럽하우스에서 우르르 빠져나왔다. 스퍼스는 플레이오프 톱 시드를 차지하겠다는 희망을 안고 레이커스와의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는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작은 시장에 속한 팀을 이끌고 NBA 우승을 다섯 번이나 차지한 포포비치가 주먹을 불끈 쥔 채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스티브 커(왼쪽), 그레그 포포비치(오른쪽) 역시 도널드 트럼프에게 비판적이다. 그리즐리의 포인트 가드 마이크 콘리 2세는 최근 멤피스 경찰청과 합동 청소년 대책 사업안을 제안했다.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아요.” 포포비치가 설명했다. “일단 그는 아무 이유도 없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모욕하고 깎아내렸어요. 큰 소리로 호객할 줄 안다는 측면에서 트럼프는 똑똑한 세일즈맨이에요. 그렇게 기반을 다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행동하면 표를 줄 사람들이 있고, 표를 끌어오려면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그는 썩 많이 알지 못하는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어요. 그리고 거짓 뉴스가 쏟아져 들어왔죠.”

NBA에 포포비치처럼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가 군인 출신인 걸 기억하면 한결 이해하기 쉽다. 그는 공군사관학교 농구팀 주장이자 득점왕이었다. 포포비치 덕분에 지금 스퍼스 라커 룸은 현대 미국사 대학원 세미나실 같다. 포포비치는 스퍼스 선수를 위해 운동가이자 하버드 대학교 교수 코넬 웨스트, O.J.의 변호사이자 이노센트 프로젝트 창립자 배리 셰크를 초대했다. 그가 하루는 선수들과 함께 1955년 살해당한 소년 에멧 루이스 틸의 다큐멘터리를 관람했다. “다들 울었습니다”라고 그는 회상했다. “그리고 저는 말했죠. ‘여러분, 여러분은 농구 선수입니다. 농구가 얼마나 중요한가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일 뿐이에요. 연봉은 은행에 넣어두세요. 가족을 보살피세요. 하지만 빌어먹을 세상이라는 게 존재합니다. 우리가 그 세상에 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해요’라고요.”

스퍼스는 미국 외 국가에서 태어난 선수를 최대 9명까지 고용했다. 때로 포포비치는 그들의 경험담을 들려주길 요청했다. “무슬림계가 권리를 박탈당한 기분을 느끼는 파리 외곽에 살면 기분이 어떤지, 토니 파커에게 물어보세요.” 프랑스 출신 포인트 가드 말이다. “마누 지노빌리로부터는 수천 명이 실종되었을 당시의 아르헨티나 이야기를 듣습니다. 언제나 그런 자리를 가져요. 다만 조용히 내부적으로 진행할 뿐이죠”라고 포포비치는 덧붙였다.

그렇게 모든 게 내부적이었다. 트럼프가 당선될 때까지는. 대통령 선거운동과 그에 딸려온 비열함이 함께 막바지에 이를 때 포포비치는 그의 반감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상당수의 사람이 트럼프에게 투표했다는 걸 알았을 때 저는 더 목소리를 높여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포포비치는 항의 편지를 받으면 직접 확인한다. 만약 순수한 독설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다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답장을 쓴다. “가령 ‘트럼프가 장애인을 조롱할 때 기분이 어떠셨습니까?’라고 물어볼 수 있죠”라고 포포비치는 말했다.

1994년 이후로 민주당은 텍사스주 전체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스퍼스 구단주 피터 홀트 일가는 반세기 전에 부를 축적했다. 1967년 1년 동안 베트남전쟁에 복무한 홀트는 미국에서 가장 큰 캐터필러 소매상인 홀트캣 소유주다. 그는 부인과 공동 명의로 전 텍사스 주지사이자 현 에너지부 장관 릭 페리에게 50만 달러를 지원했다. 한편 공화당 후원 단체인 ‘리스토어 아워 퓨처’에 25만 달러를, 공화당 전국위원회에 3만3000달러를 기부했다. 포포비치가 경멸하는 도널드 트럼프 승리 기금에도 25만 달러를 지원했다.

스퍼스의 구단주가 후원하는 후보를 스퍼스 감독이 그렇게 열광적으로 반대한다는 사실이 샌안토니오에서는 이야깃거리일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포포비치는 신경 쓰지 않는다. 정치적 신념과 사업적 투자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홀트에게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포포비치의 공개 선언에는 비용이 따른다. 어떤 냉방 설비업체는 포포비치의 선언 때문에 광고와 스폰서 비용 30만 달러 지불을 취소했으며, 업체 대표는 스퍼스 경기에 다시는 발을 들이지 않을 거라 맹세했다고 한다. 포포비치는 말했다. “한참 지나서야 알았어요. 구단주는 아무 말도 안 했고요. 이번에는 공화당에 거의 100만 달러를 기부했어요. 역시 아무 말도 안 했죠. 그래서 높이 삽니다.”

광고를 취소한 냉방 설비업체가 유일한 예외였다. 스퍼스의 3대 주요 스폰서는 H-E-B, 발레로, USAA다. 이들에게 포포비치의 발언이 문제가 되느냐고 물었을 때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미국 사람처럼 행동하고 다른 사람의 정치적 견해를 존중해야죠. 미국은 그런 나라예요.” 존 매케인의 전략가였던 슈미트가 말했다. 아니면 스폰서들이 실용적인 입장을 취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결국 포포비치는 그들보다 훨씬 더 인기가 많으니까.

그는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구단 직원이 코트로 나가라고 말할 때까지, 계속 트럼프에 대해 이야기했다. 농담이 아니다. 포포비치는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았지만 일어나 사무실에서 나와 복도를 걸었다. “농구는 농구일 뿐이잖아요”라고 말하면서.

르브론 제임스는 NBA 플레이오프에 8회 진출했다. 포포비치는 6차례 플레이오프에서 감독을 맡았다. 스테판 커리는 지난 3차례 플레이오프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누구나 아는 인물이고 그들의 지위가 흔들리지도 않는다.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르브론 제임스의 트위터 팔로어는 3830만 명이었다. 여전히 NBA의 상징적 인물인 조던조차도 감복해 행동을 취했다. 그는 경찰관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살해 및 달라스 등지에서 벌어진 경찰 살해를 비판했다. 한편 그는 흑인 인권 단체 NCAAP와 세계 경찰국장 연합에 각각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조던은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새로운 활동은 타 프로스포츠에 비해 시장이 작은 NBA에서 더 활발하다. 멤피스 그리즐리스 포인트 가드 마이크 콘리 2세는 도시에서 거의 예외 없는 존경을 받는다. 야구, 축구, 하키의 메이저리그 팀이 없는 도시이다 보니 콘리의 활약이 더 두드러진다. 그는 2016년 1억5300만 달러에 5년짜리 계약을 맺었다. 16년 묵은 프랜차이즈의 존재감이었다.

콘리는 유난을 떠는 데 언제나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삼단뛰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아마도 가장 예의 바른 사람일 그의 아버지를 본받아서 그렇다. 미국의 여느 흑인 남자처럼 콘리는 언제나 자신이 백인이 아님을 상기하며 자랐다. “하지만 인종이 전부는 아니죠”라고 그는 말한다. 인디애나폴리스 고등학교와 오하이오 주립 대학의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흑인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그는 생물학을 전공한 백인 메리 펠루소와 결혼했다. 그녀는 1960년대 이후로 인종주의가 사라졌다고 확신한다.

콘리는 그렇게 세상을 보지 않았다. “흑인 아이가 집에 무사히 돌아오려면 운전대를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현실을 이해할 수 있어요.” 시상대에서 행동을 취할 생각조차 못 한 아버지처럼 콘리도 내적 갈등을 무시했다. 그는 오랫동안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비무장 흑인 시민이 백인 경찰관에게 계속해서 총격을 당했다. 흑인과 백인 사이의 삶의 격차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왜 그래야 되는지 궁금했죠”라고 콘리는 말했다. 콘리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하면서도 흑인 인구 비율이 높은 멤피스에서 가장 유명한 운동선수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그는 시내의 경기장에서 교외의 집까지 메르세데스-벤츠 말고 지프를 몰고 다녔다. 부를 과시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콘리가 지난 시즌 원정 경기를 치르고 공항에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백인 비중이 아주 높은 동네인 콜리어빌로 메르세데스-벤츠를 몰고 가는데 순찰차가 콘리의 차를 세웠다. 새벽 1시에 운전석에 앉은 채 경찰관이 플래시로 비춘 콘리의 얼굴은 여느 흑인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는 속으로 ‘침착하자’고 다짐했다. 괜찮았다. 면허증이 트렁크에 넣어둔 배낭에 든 지갑 속에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까지는. 콘리는 내게 말했다. “생각하고 나니 긴장됐어요. 경찰관에게 ‘지갑이 트렁크에 있어요’라고 말했다면 정말 아무 문제 없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을까요?”

별일 없이 상황을 모면했지만 콘리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어느 날 아침 팀 연습을 마친 콘리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저는 의견을 더 잘 밝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즐리스가 (포포비치의 스퍼스에게)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뒤 콘리는 남부의 뙤약볕을 피해 여름을 나려고 오하이오주로 여행했다. 그는 콜럼버스 인근에 별장을 갖고 있다. 그리고 2016년 7월, 미네소타에서 필랜도 캐스타일이 경찰관에게 총격을 당하는 비디오를 보았다. 캐스타일은 신호 대기 중이었으니 콘리가 겪은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콘리는 고뇌에 시달렸다. “왜 이런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걸까요?” 그는 울부짖었다. “왜 일단 총을 쏘고 보는 걸까요?” 머릿속의 갈등이 너무 큰 나머지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콘리는 멤피스에서 가장 위험한 동네에서 3 대 3 농구 경기를 열기로 했다. 각 팀은 경찰, 청소년, 그리고 그리즐리스 선수로 구성되어 있다. 맥락을 따지지 않으면 경찰 선수 리그 경기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콘리는 경찰이 일상적인 상황에서 흑인 남자를 쏴 죽인 사건 이후에 나온 경기를 계획했다. 그는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권위 있는 인물의 개입을 원하는 시내 공동체에 다가가고 싶었다. 콘리는 “경찰과 10대 흑인이 서로에 대한 편견을 고칠 기회를 마련해야죠”라고 말했다. 그는 멤피스 경찰청장 마이클 레일링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콘리가 운동가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샬러츠빌 사건 이후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냈다. 콘리가 뛰는 그리즐리스 감독 데이비드 피즈데일은 백인 우월주의자의 행진에 대한 트럼프 만평을 ‘역겹다’고 규정했다. 말도 안 되게 말수가 적은 스몰 포워드 케빈 듀란트까지 워리어스가 트럼프의 백악관 초대를 거부할 거라 발표했다. “트럼프가 물러나지 않는 한 진보는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NFL도 NBA가 다진 기초를 바탕으로 조금씩 캐퍼닉에게 호응한다. 이번 가을, 단체 무릎 꿇기로 보여준 항의의 메시지가 좋은 예다. 그린베이 패커스의 스타 쿼터백인 에런 로저스는 과의 가장 최근 인터뷰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NBA선수들의 자유를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차세대 농구 스타도 NBA 선배들을 지켜본다. 디애런 폭스는 나에게 “목소리를 내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여름 5순위로 새크라멘토 킹스에 지명됐다. 나이는 19세. 켄터키 주립 대학을 1학년만 마치고 NBA에 발을 들였다. 그와 나는 맨해튼의 헌터 대학에서 만났다. NBA 최상위 지명 선수를 초대해서 해외에 주둔하는 미군에게 줄 선물을 꾸리는 행사였다. 의무적인 행사는 아니었지만 리그는 선수들에게 참석을 권했다. 프로 계약을 맺기도 전에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라고 요청받은 셈이다.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에게 줄 선물 카드에 사인하는 행위가, 잠깐일지라도 선수들에게 기쁨을 안겨준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폭스는 정치적 개입을 운동선수의 특권이자 성공의 특혜라고 믿는 게 분명했다. 제임스는 32세, 커리는 29세다. 농구 세계에서는 폭스보다 한 세대 위 선수들이다. 제임스와 커리는 정치적인 활동을 벌이기 전에 NBA의 간판으로 자리 잡았고, 조던은 본격적인 중년이 될 때까지도 머뭇거렸다. 폭스와 동료들은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리그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들이 스포츠 밖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는 것을 보았고, 그게 스타의 행동 양식이라 이해했기 때문이다. “최고의 선수들이 행동에 옮기잖아요.” 폭스는 강조했다. “그들에게는 수단이 있어요.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겁니다. 흘려듣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고, 귀를 기울이고 행동을 하겠죠.”

폭스는 선물 카드에 사인을 하다 멈추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프로 운동선수도 할 수 있어요.” 그는 말했다.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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