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 THE BOY, LET THE MAN..

벼락 스타가 된 키트 해링턴은 지금부터 진정한 남자의 게임을 시작하려 한다.

키트 해링턴, 왕좌의 게임 - 에스콰이어

슈트, 셔츠, 타이 모두 엠포리오 아르마니.

인기 있는 TV 쇼에는 어김없이 그의 얼굴이 등장한다. 그의 헤어스타일을 좋아하는 팬만 해도 웬만한 배우의 팬보다 많을 것이다. 하지만 <왕좌의 게임>이 이제 끝에서 두 번째 시즌을 향해 가는 상황에서 키트 해링턴은 딜레마를 마주하고 있다. 과연 다음 단계의 경력으로 넘어가기 위해 존 스노우라는 캐릭터를 버려야 할까? 그리고 키트 해링턴은 매일같이 보블헤드(Bobblehead) 인형들에게 시달리고 있다. “매일 하나씩 새로운 보블헤드가 나타난다. 농담이 아니다. 실제로 ‘이번 건 어때? 좋아 보여?’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어쨌거나 보블헤드 인형인데 날더러 뭘 어쩌라고’라는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다.”

사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얼굴에 털이 수북한 해링턴의 특징을 플라스틱 인형에 담아내는 건 루브르 박물관 관리 담당자 만큼의 집중력과 주의력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고생도 곧 끝날 것이다. 머지않아 해링턴이 말끔하게 면도하고 머리를 자를 수 있게 될 테니까. 북아일랜드 벨 파스트에서 진행되던 <왕좌의 게임> 시즌 7 촬영도 이제 다 끝났다. 그리고 지금 그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내 맞은 편에 앉아 있다. 카무플라주 셔츠에 두꺼운 선글라스, 그리고 야구 모자를 쓴 채 방금 피우고 온 듯한 담배 향을 희미하게 풍기며 말이다. 이제 저 덥수룩한 헤어스타일도 <왕좌의게임>의 완결과 함께 사라지겠지만 그가 10년에 걸쳐 연기한 얼어붙은 영웅 존 스노우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해링턴이 연기한 존 스노우 보블헤드 인형의 대량생산도 한동안 멈추지 않으리란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동시간대에 존 스노우를 볼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어쨌거나 올해를 마지막으로 이 드라마와는 작별을 고하려고 생각 중이다.” 존 스노우를 연기하는 해링턴의 말이 이러니까 말이다.

해링턴은 대화하는 내내 상냥했고 여유로웠다. 하지만 단 한 번 그의 자신감이 흐트러진 것처럼 보인 적이 있었다. 바로 개인적인 추억으로 간직 하고자 <왕좌의 게임> 세트장에서 찍은 자신의 사진을 마지못해 보여주기로 한 순간이었다. 가죽으로 만든 카메라 가방을 잡으려고 손을 뻗은 그가 창백해진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방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눈이 휘둥그레진 그는 접이식 나이프처럼 허리를 굽혀 테이블 아래는 물론 그 주변까지 샅샅이 뒤졌다. 소중한 추억을 잃어버릴 것이 걱정돼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만약 그 사진들이 온라인으로 유출된다면 아직 방영 전인 미니 시리즈에 대한 끔찍한 스포일러가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근처 벽 쪽에 놓여 있는 의자 위에서 가방을 찾았을 때 “와,젠장!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던 그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키트 해링턴, 왕좌의 게임 - 에스콰이어

슈트, 셔트, 타이 모두 루이비통

“나는 20대의 시작과 끝을 <왕좌의 게임>과 함께했다. 그리고 서른이 됐다. 이젠 나를 ‘왕좌’로 이끌어준 그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다시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나갈 때인 것 같다.” 그러다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물론 존 스노우는 늘 내가 연기하고 싶었던 역할이었다. 확실히.” <왕좌의 게임>은 분명 매력적인 시리즈다. 하지만 2011년 처음 제작을 논의할 때만 해도 HBO 입장에서는 엄청난 도박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에 버금가는 CG가 필요했고, 그 만큼 엄청난 비용이 필요했다. 조지 R.R. 마틴의 원작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는 근친 상간을 포함한 섹스를 비롯해 거세와 같은 폭력적인 장면으로 점철돼 있기도 했으며 영화화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지나치게 복잡한 구조라는 평을 들어왔다.

게다가 마틴의 연작 소설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다. 그 당시 원래 계획돼 있던 7권의 책 중에서 5권까지 출간돼 있었고, 시리즈가 방송되기 시작한 3개월 후에야 그다음 권이 출간됐다(이는 계획보다 몇 년 늦어진 것으로, 마틴은 다음 작품을 언제 볼 수 있을지 더 이상 약속하지 않았다). 덕분에 <왕좌의 게임>은 엔딩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드라마로 제작된 보기 드문 작품이 됐다. 심지어 시사회용 필름을 만드는 데만도 500만~1000만 달러가 들었다고 알려졌다. 결국 시즌 1을 완성하는 데에만 약 6000만 달러가 투여됐고, HBO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간 드라마가 됐다. 하지만 이런 투자가 즉각적인 효과로 이어진 건 아니었다. 시즌 1의 첫 번째 에피소드의 시청자 수는 2200만 명 정도에 그쳤고, 이는 당시 HBO의 인기 시리즈였던 <보드워크 엠파이어>의 절반 수준이었다.

하지만 입소문과 시청 후기를 통해 시청자 수는 점점 늘어났고, 시즌 5 마지막 편에서 존 스노우가 죽는 장면은 실시간 시청자수가 800만명에 육박했다. 그리고 존 스노우가 되살아난 시즌 6이 시작된 뒤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을 무렵에는 미국에서만 에피소드별로 평균 2500만 명의 시청자를 기록했다. 또한 <왕좌의 게임>은 다양한 기록을 갱신했다. 일단 에미상 시상식에서 그 어떤 TV 시리즈보다도 많은 상을 수상했는데 자그마치 110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38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또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불법 다운로드 된 드라마이기도 한데, 2015년 시즌이 끝날 무렵에는 약 1440만 회를 넘겼다.

<왕좌의 게임>의 각본을 집필해온 데이비드 베니오프와 D.B. 와이스는 이 작품의 출연진 가운데 가장 유명한 배우였던 숀 빈이 시즌 1의 마지막화에서 죽을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때부터 왕좌를 둘러싸고 비겁한 술수를 부리는 무리의 반대편에 서 있는 영웅적인 존재인 존 스노우에게 관심이 몰릴 것임을 예상했다. 그런 만큼 존 스노우 역을 맡을 배우는 너무나도 고결해서 오히려 쉽게 분노하고 쉽게 사랑에 빠지는 남자를 표현해내야만 했다. 원작자인 마틴은 존 스노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스노우는 어려운 역할이다. 책은 그가 등장하는 대부분의 대목에서 내면의 목소리를 서술한다. 책에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TV에서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배우 자신이 깊고 미묘한 내면의 갈등을 전부 표현해내야만 한단 말이다.”

키트 해링턴, 왕좌의 게임 - 에스콰이어

슈트, 셔츠, 타이 모두 디올 옴므. 시계 태그호이어. 슈즈 보스.

2009년 해링턴이 처음으로 오디션장에 불려 왔을 때, 그는 사실 카메라 앞에 제대로 서보지도 못한 신인이었다. 21세였던 2008년, 런던에서 촬영한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물에서 말에 집착하는 평범한 병사 역할을 한 것이 연기 경력의 전부였다. 그런 그에게 성공은 생각보다 쉽게 찾아왔다. 사실 내면적 갈등이란 당시 그의 사전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존 스노우 역을 따내던 당시 그는 로열 센트럴 스쿨에서 드라마를 배우고 있었다. 주디 덴치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등이 그의 동문인 셈이다. 웨스트 런던에서 편안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동네 사람들이 자신의 삼촌이나 아버지의 이름 끝에 ‘경 (sir)’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을 들으며 자랐다. 그리고 자신의 핏줄이 영국 왕 찰스 2세까지 연결돼 있다는 사실에 놀란 적도 있었다. 한때 극작가였던 어머니는 연극에 관심을 보이는 아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줬으며, 부모가 모두 배우가 되고자 하는 아들의 꿈을 지지했다. 해링턴은 말했다. “만약 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 현재의 어머니에게 입양돼 자랐다고 대답한다면 훨씬 흥미로운 사람 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그냥 평범하게 자란 편이다.”

<왕좌의 게임> 오디션 당시 해링턴의 눈은 멍들어 있었다. 맥도널드에서 그와 함께 있던 여성을 모독한 손님과 싸움이 벌어진 탓이었다. 어쨌든 오디션 이후 관계자와의 두 번의 통화 이후로 그는 존 스노우를 연기해보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즉시 수락했다. “어마어마하게 운이 좋았던 거지.” 사실 각본가인 베니오프와 와이스에게는 경험보다 존재감이 더욱 중요했다. 그들은 이메일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일단 외모가 느낌이 좋았다. 짙은 우울함, 우월한 신체 조건, 적대적인 분위기까지.”

촬영 현장에서 출연진과 스태프들은 형제자매처럼 보일 정도로 금세 가까워졌다. 해링턴은 종종 베니오프나 와이스에게도 장난을 쳤는데, 그들의 휴대폰을 몰래 가져다가 함께 출연한 동료 배우에게 ‘역겹고 불쾌하지만 배꼽 잡게 만드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 제작진 역시 그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장난을 쳤다. 이를테면 해링턴의 대본에 존 스노우의 얼굴이 화상으로 일그러지는 가짜 신을 넣어둔 다음, 그에게 “HBO는 이 힘없는 아웃사이더 영웅의 얼굴이 너무 해리 포터 같아 보일까봐 걱정하고 있다”고 자못 진지하게 농담을 던졌다. 한편 제작진은 언제나 배우들을 칭찬하는 만큼 질책도 가했다고 한다. “키트 해링턴의 이름값이 올라서 기고만장해지지 않게 만들어야 지속적으로 캐릭터의 힘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지난 8년간 해링턴은 결코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기울지 않았다.”

해링턴의 동료 출연자들 역시 이런 식의 농담에 굉장히 익숙해 보였다. 대너리스 타르가리엔을 연기한 에밀리아 클라크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헤어스타일과 잘생긴 외모에 대한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일단 그 헤어스타일은 모든 것을 압도했다. 손으로 직접 짜서 만들었다는 내 이상한 가발 따위로는 감히 그 옆에 설 수조차 없었지.” 제이미 라니스터 역을 맡았던 니콜라이 코스터왈도 역시 이렇게 말했다. “키트가 있으면 방 안에 있는 여자들의 관심이 남달라진다. 덕분에 다른 남자들은 괜히 모욕당한 기분을 느끼지.” 다보스 시워스 역의 리암 커닝 햄은 “아마 해링턴의 머리카락만 따로 운반하는 트레일러가 있는 걸로 아는데” 라며 농담을 던졌다. 이토록 질투 넘치는 반응은 드라마 대본에까지 반영된다. 알몸인 채 누워 있는 존 스노우의 시체를 본 캐릭터 중 한 사람의 대사는 이렇다. “세상에 어떤 신이 저렇게 조그만 물건을 달고 있담.” 베니오프와 와이스는 그 대사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키트 해링턴이라는 존재에게도 단점은 필요하니까. 안 그런가? 그래야 공평하지. 잘생긴 데다가 재능있고 똑똑하고 뼛속 깊은 곳 까지 품위가 넘친다. 대체 그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나? 미칠 노릇이지. 결국 우리에게 가능한 건 작은 물건이라는 누명을 씌우는 것 정도였다.” 해링턴은 이런 온갖 짓궂은 말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모두 타락한 영혼들이라니까.”

한때 TV의 시대가 끝났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이제 TV는 소수의 팬층만을 노려야 한다느니, <로스트>처럼 거대한 대중적 지지를 받는 프로그램은 멸종 위기에 처했다느니 하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왕좌의 게임>은 이런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드라마가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두었는지에 대한 척도 중 하나는 이 작품이 수많은 이에게 영감을 부여했고 실질적인 행동 의지를 유발했다는 점이다. “<왕좌의 게임>이 브라질의 정치 현실을 보여주다”, “<왕좌의 게임>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어떻게 설명해주는가”, “<왕좌의 게임>은 세균성 전염병의 창궐을 암시하고 있는가”, “<왕좌의 게임>: 미국에 대한 비유” 등등.

마틴은 자신의 책과 이 드라마가 지구온난화에서 도널드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온갖 토론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즐거워했다. 마틴은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변태적이면서도 힘의 광기에 사로잡힌 철없는 왕 조프리를 언급하며 “지금 미국의 왕은 마치 조프리 같다. 조프리는 13세 때부터 성질이 고약하고 비이성적인 아이로 자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링턴은 자신의 역할을 미국 정치판에 빗대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을 믿을 뿐이지.” 언젠가 그는 “숀 펜이 포클랜드 영유권 문제에 끼어들기로 결심했을 때 굉장히 화가 났다. ‘그건 당신과 상관없는 문제잖아. 숀 펜 선생, 제발 좀 꺼지라고’라며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있다. “도널드 트럼프 씨? 나는 그 사람을 도저히 대통령이라 부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냥 도널드 씨라고 부른다. 어쨌든 지금 당신의 나라 정점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은 그냥 사기꾼 같다.”

키트 해링턴, 왕좌의 게임 - 에스콰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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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이 시즌 7로 접어들면서 정치적 상황에 대한 공명심은 더욱 깊어졌다. 부유하고 사치스러운 가족이 왕좌를 차지하고 있고, 왕국의 국경에는 망명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바다 건너로부터는 용만 한 크기의 닭들이 쉴 집을 찾으러 돌아오고, 과거에 노예였던 자들은 엘리트들과 맞서고 있다. 그리고 해링턴이 맡은 부활한 영웅 존 스노우가 이런 시대 배경 속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왕좌의 게임>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은유하는데 활용되고 있지만 그 안에서 단 하나의 진리만을 발굴하자면 그건 바로 간절히 힘을 원하는 사람이야 말로 그 힘을 절대 가져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존은 힘을 가져야 마땅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런 힘을 전혀 원치 않으니까.”

사실 <왕좌의 게임>에서 존 스노우의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해링턴의 미래에 드리울 그림자 역시 짙어진다. 그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만약 내가 <왕좌의 게임>과 경쟁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아마도 마블 영화나 아마존의 대작 시리즈 혹은 HBO에서 제작하는 차기작에 출연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거고, 그럴 경우 엄청난 추락에 대비해야 할 거라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선배들은 그다지 좋은 선례가 못된다. 한때 TV 스타였던 이들은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선택했다. 물론 의 조지 클루니나 <21 점프 스트리트>의 조니 뎁처럼 화려하게 성공한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배우란 예측 불가능한 인생을 사는 존재다. 예상 밖의 히트작에 출연한 이후 박스오피스에서 참패하고 계약 취소와 복귀를 위한 갖은 노력을 벌인 사연이 차고 넘친다. 또 오늘날에는 스트리밍 서비스와 글로벌 관객이라는 구조적인 변화에도 기민하게 대처해야 한다. 스타의 지위가 예전 같지 않다.

조심스럽게 얘기하자면 해링턴 역시 아직 그럴듯한 성공담을 추가하 진못했다.<왕좌의 게임> 시즌 사이사이에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경험을 쌓아보려 했지만 경력면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2012년에는 호러영화 <사일런트 힐: 레버레이션>에, 2014년에는 칼과 샌들이 난무하는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 2015년에는 금세 잊힌 스파이 스릴러 <스푹스: MI5> 와 가벼운 판타지 영화 <7번째 아들>에도 출연했다. 그나마 같은 해에 출연한 로맨스 영화 <청춘의 증언>을 통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영화에서 상대역을 맡은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해링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캐릭터에 독특한 감성을 불어 넣었다. 특히 그 눈빛! 혹시 그 남자가 시를 쓴다는거 알고 있나?” 영화 외의 프로젝트 역시 배우로서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계기가 됐다. 앤디 샘버그와 함께 출연한 HBO의 슬랩스틱 테니스 모큐멘터리 <세븐 데이즈 인 헬>에서 해링턴은 “자연스러운 이성애자 남성의 모습을 휴 그랜트와 같은 방식으로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말했다. 물론 이에 대해 베이노프와 와이스는 “휴 그랜트 처럼 지겨운 남자로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평했지만. 그리고 작년에 그는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크리스토퍼 키트 말로우의 <닥터 파우스트> 현대판 공연을 위해 다시 런던 무대에 섰다. 하지만 해링턴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약간 후회가 남는 부분이 있다고 인정했다. “사실 몇 년 전에 이미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충분히 재미있는 스토리를 연기해보고 싶다’고 말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링턴은 올해 28세가 된 영화계의 신성, 자비에 돌란이 연출하는 <더 데스 앤 라이프 오브 존 F.도노반>이라는 영화를 차기작으로 선택했다. 그는 제목에 등장하는 캐릭터 존 F. 도노반을 연기할 예정이다. 상대역은 제시카 차스테인과 내털리 포트먼이다. 해링턴은 그가 맡은 역에 대해 “가슴을 두근 거리게 만드는 연기를 하는 유명한 TV 배우”라고 설명했다. 게이인 도노반은 어느 날 그와 11세 팬이 주고 받은 순수한 편지를 문제 삼는 기자로 인해 아동 성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독립 영화에 출연하는 모험을 감수하는 와중에도 해링턴은 자신의 운을 십분 활용한다. 현재 그는 인피니티의 홍보 대사이며 곧 돌체&가바나의 남성용 향수 모델이 될 예정이다. “어쨌건 지금으로선 그다지 무거운 부담을 지고 싶진 않다.”

하지만 보통 이런 행운에도 끝은 있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할리우드의 상황이 점차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요즘, 해링턴은 현명하게도 자신의 성공을 새로운 열정의 재료로 삼고 있다. 다른 스타 배우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프로덕션인 ‘트라이커 필름’을 설립한 것. 그리고 빠른 속도로 첫 삽을 떴다. 그의 대학 친구인 댄 웨스트, 그리고 1605년 국회의사당을 폭파시켜 왕을 죽이려 했던 가톨릭의 음모를 다룬 BBC의 신작 미니 시리즈 <건파우더>의 작가 로난 베넷을 영입했다. 아직 언제 공개될지 알 수 없지만 해링턴은 <왕좌의 게임> 시즌 7 촬영을 마무리하는 대로 새로운 작품의 촬영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차기작이 어떤 것이 됐든 한가지 만큼은 확실하다. 그가 어떤 상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 “오스카 수상 같은 걸 바라는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런건 내 방식이 아니다. 그리고 어쩌면 차기작은 코미디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일종의 광기가 사그라지는 걸 즐기고 싶은 마음도 있고, 몇년 정도 다시 무명으로 돌아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어쩌면 불필요한 기대감을 누그러뜨리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고, 자신에게 걸린 베팅액을 줄이고 싶거나, 아니면 정말 진심에서 우러난 얘기일 수도 있다. 혹은 그 셋 모두일 수도 있고.

지난 몇 년간 그와 함께 글을 쓴 댄 웨스터와 런던의 한 아파트를 공유했지만, 이제는 헤어질 때가 됐다. 해링턴이 능글맞게 말하는 ‘의식적인 결별’을 치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웨스터는 그의 여자 친구를 따라나서는 거고 나는 내 여자 친구와 함께 사는 거지.” 여기서 그의 여자 친구란 바로 <왕좌의 게임> 시즌 3에 등장해 존 스노우의 동정을 빼앗아간 붉은 머리의 야만족 여인 이그리트 역의 로즈 레슬리다. 그 장면에서 존 스노우가 애무하고 있을 때 그녀는 신음하듯 이렇게 말했다: “너는 아무것도 몰라. 존 스노우… 아아!” 이 장면은 GIF 파일로 제작된 뒤 숱하게 유포됐고, 다양한 기사의 제목으로 수 차례 인용됐다. 이를테면 <버즈피드>의 ‘존 스노우가 절대 모르는 26가지’ 같은 기사. 심지어 <존 스노우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포괄적인 컬렉션>이라는 제목의 책까지 출판됐는데 그 책의 내지는 텅 비어 있다고 한다.

어쨌든 두 배우 모두에게 처음이었던 그 섹스 신은 2012년 벨파스트에서 촬영됐다. 그것이 그들의 첫 데이트로 이어졌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그는 대단히 방어적인 편이다. 심지어 얼마나 오래 만났는지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 해링턴은 그녀와 관련한 대화를 정중하게 끊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 관계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관계에 대한 얘기이기도 한 만큼 나 혼자 두 사람의 입장을 모두 얘기할 순 없으니 양해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분명 매우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그게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다.”

그런데 그의 오른손 근처에 놓여 있던 휴대폰이 그를 배신했다. 우리의 대화는 문자니 전화니 관심을 달라고 끊임없이 울리는 휴대폰 진동 때문에 자주 끊어졌고 결국 해링턴은 두 손을 들었다. 그는 대화를 산만하게 만든 것에 대해 사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그와 레슬리가 함께 살기로 결심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이번 여행은 뉴욕이 두 사람을 위한 터전이 될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도 포함돼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오늘 오후 부동산업자와 맨해튼의 한 아파트를 구경하기로 약속해놓은 상태였다. 그는 절대로 휴대폰을 건드리지 않겠노라 맹세했지만 그의 눈길은 계속 그곳을 향해있었고 결국 딱 한 번의 통화 혹은 단 한 통의 문자만을 보내고 오겠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바보 같은 웃음은 그의 금욕주의적 시도가 모두 거짓이었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셈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통화를 한뒤 그는 검은 울 코트를 걸치고 야구 모자를 고쳐 쓴 뒤 문을 열고 늦겨울 뉴욕의 찬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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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interview_LOGAN HILL
사진NORMAN JEAN 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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