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는 정말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는가?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들은 이에 관해 할 말이 많았다.


JTBC의 정유라 보도는 옳았는가?   

신기주(이하 ‘신’) JTBC가 정말 판도라의 상자를 연 걸까요?!

정우성(이하 ‘정’) 전 박상현 넥스렙 이사가 좀 섹시한 표현을 썼다고 생각해요. 정확한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고.

그럼 JTBC의 이가혁 기자가 정유라를 경찰에 신고하고 그 과정을 취재한 것이 보도 윤리적으로 정당한 것이냐를 논하는 토론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비생산적이지 않죠.

박찬용(이하 ‘박’) 왜죠?!

한국 저널리즘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으니까. 우리가 보도윤리라는 걸 논할 수 있는 저널리즘을 만난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보도 윤리뿐만 아니라 저널리즘의 여러 가지 원칙이 형편없이 허물어져 있는 상태니까.

<에스콰이어>의 에이스 박찬용 에디터의 의견은 어떤가요?

(무심한 듯 시크하게) 언론 기업이 돈이 되는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JTBC도 어차피 본질은 언론 기업이다?

김태영(이하 ‘태’) 역시 한방으로 정리. 여기서 토론 접죠.

기업으로서의 언론과 산업으로서의 저널리즘을 생각할 때 이가혁 기자의 판단과 선택은 너무나도 당연한 게 아닌가.

JTBC의 보도 내용 자체는 상업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섹시했죠. 정유라를 찾아내고, 집 앞에서 해를 넘기면서 몇 시간씩 뻗치기를 하고, 경찰에 신고하고, 체포되는 과정에서 정유라가 수배 중이란 사실을 직접 경찰한테 확인해주고, 그 전 과정을 영상 카메라에 담아서 보도하고. 그만큼 돈이 된단 말이죠.

저널리즘은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비즈니스예요. JTBC의 보도는 성공 사례란 거죠. JTBC의 이가혁 기자가 신고할 거였으면 보도하지 말고 보도할 거였으면 신고하면 안 됐다고 비판하는 건 대단히 나이브한 발상입니다.

세상에 객관적인 언론이라는 게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언론사 혹은 언론 기업은 돈이 되는 뉴스라면 뭐든 만들 수 있는 건가요? 극단적인 사례지만, 언론사가 그림이 된다는 이유로 건물에 불을 지르고 불 지르는 장면을 촬영한다면? 현실적인 사례는 언론사의 유흥업소 취재겠네요. 불법 성매매를 고발한다는 명분으로 경찰의 협조를 얻어서 소형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잠입하지만 솔직히 선정적인 영상으로 시청률을 높이려는 것도 사실이니깐. 이가혁 기자가 정유라를 신고한 행위는 핵심 증인의 체포를 돕는다는 측면에서 공리적이기 때문에 괜찮은 걸까?

저널리즘은 뉴스라는 콘텐츠를 상품화시키는 산업이에요. 그러니까 저널리즘의 가치 안에서는 상업과 윤리가 대립한다는 전제 자체가 틀린 거예요. 저널리즘은 상업과 윤리를 양립시키고 균형을 찾아야죠. 이 둘이 양립하지 않으면 아무리 윤리적인 뉴스여도 상업적으로 팔리지 않아요. 그런 세상인 거죠. JTBC가 정유라 사건을 보도하는 과정에선 그동안 구경꾼에 머물러있었던 저널리스트가 행위자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요. 그걸 나쁘게 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해요.

김진호(이하 ‘호’) 전 이번 JTBC 보도를 보면서 마이클 무어가 떠올랐어요. 저는 관찰만 하는 다큐멘터리는 재미없더라고요. 마이클 무어처럼 직접 사건에 뛰어드는 화자가 있는 다큐멘터리가 좋아요.

그게 요즘 영상 저널리즘의 흐름이죠. 사실 <에스콰이어>도 그런 1인칭 저널리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린 신문기사와 달리 에디터가 직접 체험한 현장을 생각과 느낌과 사실을 섞어서 쓰기도 하잖아요. 난 이런 걸 주객관 저널리즘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기자한테 객관을 요구하고 언론한테 엄정중립을 요구하는 기계적 사고는 시대착오적이란 거죠.

20세기 저널리즘은 객관을 가장했죠. 사실 객관이란 건 없잖아요. 21세기 저널리즘은 그걸 인정하고 좀 더 이게 우리의 주관이라는 걸 보여주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언론이나 기자한테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객관적 보도의 기준을 요구하는 건 아닌가.  이번 논란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아직도 객관의 신화에 빠져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어요. 물론 객관적 사실은 존재하죠. 하지만 기자나 언론은 그런 객관적 사실을 최대한 객관적이지만 분명히 주관적으로 전달하는 존재들인 겁니다.

전 <에스콰이어>는 주관의 파티라고 생각하는데.

난 반대. <에스콰이어>는 주객관적 미디어라고 생각해요.

주객관이 뭔 말이야.

또 말장난하시네.

정리하면, 21세기 저널리즘에서 객관적 관찰자나 객관적 보도라는 신화는 깨진 지 오래다.

야생 동물 다큐멘터리 같은 것에서나 적용될 잣대가 아닌가 싶은데요?

정유라도 말 타잖아. 동물.

(째릿) 그만 좀.

동물의 왕국.

(짜증) 야.

이가혁 기자가 조금 더 기다렸어야 했던 건 아닐까? 

JTBC의 정유라 보도에서 손해를 본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보면 어때요?

박근혜? 최순실?

경쟁 언론사죠. 낙종한 기자들이고. 언론 업계 종사자라면 다 알잖아요. TV 뉴스에 얼마나 많은 연출이 들어가는지. 경찰서만 가도 범죄자 심문 장면 드라마틱하게 찍으려고 몇 번씩 연출하잖아요.

난 몰랐어. 그런 거예요?

방송 뉴스의 그림은 이미 시작부터 연출이에요.

정유라 보도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쪽의 논리는 자칫 악용될 수도 있다고 봐요. 초원복집 사건의 본질인 관건선거를 도청사건으로 프레이밍 전환하고, 정윤회 국정개입 사건을 문건 유출 사건으로 프레이밍 전환하는 식. 견지망월 전략.

왜 갑자기 문자 쓰시지?

부산 초원복집, 맛있죠.

우리 저녁 뭐 먹어요?

우리가 저녁을 왜 같이 먹어. 집에 가야지.

바로 이런 게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는데 손가락만 보는, 심각한 얘기를 하는데 초원복집 맛 타령하는, 전형적인 프레이밍 전환 전략이죠. 근데 정말 저녁 뭐 먹지.

너무 음모론적 접근 아닌가요?

적어도 JTBC 정유라 보도와 관련된 논란은 논리에선 그렇게 불순하게 악용될 수 있다고 봐요. 정유라를 신고한 기자의 시민으로서의 역할과 그 사실을 국민들한테 알린 언론의 역할이, 20세기의 유물인 객관적 보도 의무니 기자 윤리니 같은 프레이밍으로 가둬질 수 있다는 거죠. 이가혁 기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덴마크까지 올보르까지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가요. 결국 정유라의 은신처를 찾아내요. 집 앞에서 정유라가 나타날 때까지 뻗치기를 하죠. 연말이니까 정유라가 잠시 바람이라도 쐬러 외출이라도 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24시간. 48시간. 결국 해도 바뀌어. 그런데 안 나와. 과연 덴마크 경찰에 신고한 목적이 공리적 이유 때문만일까? 원래는 바깥에서 기다렸다가 나왔을 때 그림을 따려고 했겠지.

춥고 배고팠겠다.

원래 계획은 덴마크 경찰까지 부를게 아니라, 잠시 나왔을 때 정유라가 보이면 찍고 끝내는 거였겠죠. 딱 객관적 관찰자로서, 거기까지. 처음부터 시민의 의무를 명분으로 신고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 거예요. 도무지 안 나오니까 방법이 없어서 덴마크 경찰을 이용해서 정유라는 집 밖으로 끌어낸 게 아니냐는 거죠.

취재에 공권력을 이용한 거네요?

그동안 JTBC 본사와 연락하면서 취재 지시도 받고, 사내 법률팀의 법률 자문도 받고, 그래서 신고는 하지만 절대 집 안으로는 들어가지 말라던가, 그런 가이드라인도 정하고.

기자가 취재 도구를 최대한 많이 이용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뼈 속까지 시장주의자적인 논리는 늘 섹시합니다만, 제 질문은 이거예요. 이가혁 기자는 더 기다렸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루 이틀 더. 정유라도 사람인데 외출은 하지 않았을까. 조급했던 게 아닐까. 깜빡 놓칠까 봐불안했던 건 아닐까. 기자가 시민으로서 공익에 봉사하는 방법이 꼭 신고일까? 사실 언론사가 경찰과 공조해서 범죄 현장을 취재하는 경우는 흔해요. 경찰은 자신들의 공이 홍보가 돼서 좋고 언론사는 특종 해서 좋고. JTBC 정유라 보도를 그냥 간결하게 보려면, JTBC가 덴마크 경찰과 공조한 걸로 정리할 수도 있죠.

더 기다렸어야 한다면서요?

더 기다렸다면 이런 소모적인 논란은 피할 수 있었겠죠.

아니죠, 낙종 했겠죠.

사실, 판도라의 상자 안에 가득했던 건.    

오늘의 정리. JTBC 정유라 보도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아니라 TV 뉴스가 가진 우리의 환상과 언론의 객관적 보도라는 20세 기적 허상을 깬 거라고 생각합니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 그 허상이 가득했겠죠? 저는 우리가 비로소 저널리즘의 기초에 대해 논할 수 있는 보도를 봤다. 그 보도가 보도 윤리라는 단어를 상아탑에서 꺼내왔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JTBC 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은 경쟁 언론사일 뿐 시청자에겐 속 시원한 일이었죠.

TV 뉴스라는 콘텐츠에서 기자의 배역이 앞으로 더 커질 겁니다.

초원복집은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