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나의 [라라랜드]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본 나만의 [라라랜드]에 관하여.

여자 친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영화 보는 내내 어깨를 들썩였다. 마지막 장면에선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세바스찬의 마지막 피아노 연주가 긴 여운으로 끝날 때까지 모른 채 못 본채 해줬다.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내가 아닌 다른 남자 때문에 눈물 흘리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녀의 첫사랑 말이다. 그녀의 세바스찬 말이다.

그녀의 <라라랜드>에서 내게 주어진 배역은 세바스찬이 아니라 미아의 남편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다. 여자 친구의 손을 잡고 말없이 미소 지어줬다. 그것이 내가 마땅히 할 일이었다. 문득 나는 첫사랑을 잊은 지 오래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랑은 끝난다. 사랑은 끝나도 가슴은 아프다. 결국 사랑도 아픔도 그렇게 잊힌다.

그녀에겐 말해주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도 나처럼 인생을 살아나가면서 깨닫게 될 테니까. 세바스찬과 미아처럼 과거를 향해 미소 짓는 법을 배우게 될 테니까 말이다.

피처 디렉터 신기주


그녀를 놓아주었다. 나는 이미 일상을 살고 있었고 그녀는 쉼 없이 이상을 향하고 있었다. 같은 순간 다른 현재를 살았다. 세바스찬과 미아처럼.

너무 아프다. 결국 삶의 속도와 방향이 다른 것뿐이다. 사랑이란 화학반응은 인생의 물리적 영역을 침범하지 못한다. 누구나 그렇게 떠나보낸 이를 가슴에 품고 산다. <라라랜드>는 그 모든 어른을 위한 동화다.

어른의 동화는 지독히도 현실적이다. 그래서 <라라랜드>는 해피엔딩이다. 현실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란 엔딩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받은 긍정적 영향으로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만 한 해피엔딩은 없다.

결국 마지막 회상 장면을 위해 전체가 설계된 영화다. 그 몇 분을 위한 나머지 2시간의 투자가 전혀 아깝지 않다. 시각적 판타지는 지독히 도 현실적인 그의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 착각 덕분에 눈물 흘렸고 눈물을 멈추고 나니 현실이 더욱 소중해졌다.

피처 에디터 김진호


자칫 유치해질 수 있는 요소들을 자연스럽고 멋지게 풀어냈다. 모든 요소가 입체적이었다.

가령 주인공이 평범한 연기를 할 때는 2D 같지만, 뮤지컬로 전환될 때는 갑자기 3D 효과처럼 입체감이 도드라졌다. 무엇보다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다. 전혀 알지도 못하던 두 사람이 스쳐 가는 만남에서 매력을 발견하고, 짧은 시간 동안 빠르고 강렬하게 빠져든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한다는 것이다.

우리 삶은 이렇게 마법처럼 흘러간다.

마지막 순간 셉스(SEB’S) 안에서 보여준 둘의 회상 장면도 비슷한 의미다.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좋은 결말은 환상 속에만 존재할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누구나 과거로 돌아가 더 나은 선택이 가능할 것이라 후회하지만, 실제로 돌이키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후회할 땐 이미 늦었다. 그러니 기억했으면 좋겠다.

지금 더 열심히, 모든 것을 바쳐서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피처 에디터 김태영


대도시는 젊은이의 헛된 꿈을 먹고 산다. 비유가 아니다. 네바다의 볼더 시티 동네 도서관에서 영화를 보며 꿈을 키운 미아가 배우가 되려면 LA까지는 가야 한다. 도시가 내뿜는 환상에 이끌린 젊은이들이 내는 방세나 밥값이 LA 같은 대도시 지역 경제의 일부를 이룬다.

헛된 꿈은 헛되므로 거의 성공하지 못한다. 재즈의 본질을 라이브로 전하려는 세바스찬의 꿈도, 자기 이야기를 자기 연기로 남에게 보여주려는 미아의 꿈도 헛되고 헛되다. 대도시는 헛된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사랑에 빠지는 곳이다. 그 꿈과 사랑이 아주 가끔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

<라라 랜드>의 마지막 장면에서 둘의 눈이 마주친다. 마법 속으로 돌아갈 순 없다. 하지만 그 시간 덕에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서로 사랑하며 의지했기 때문에. 둘 다 그 사실을 안다. 마법과 꿈과 사랑은 언젠가 모두 끝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며 젊은이는 어른이 된다.

군중 속에서 만난 사람들(Someone in the crowd)이 별들의 도시(City of stars)에서 만나 이런저런 일을 겪고 다른 화창한 날(Another day of sun)을 맞이한다. 대도시 사람들을 건드릴 이야기. 내가 <라라랜드>를 보면서 왜 패킹이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울었는지 생각해봤는데 그래서인 것 같다.

피처 에디터 박찬용


마지막에 불이 탁 꺼졌을 때 둘이 부르던 노래에는 다 지나간, 심지어 이루지 못했던, 가장 행복할 가능성으로만 가득한 시간이 꽉 차있었다. 고전적이고 동화 같은 아름다움이 세상 가장 예쁜 장면으로만 들어있었다.

우리는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다 알아서 슬펐다.

사랑이 늘 아름다운 것은 아니고, 지나간 시간이 다 추억인 것도 아니니까. 우리가 정말 아름다움으로만 가득할 수 있는 건 거짓 속에 서라는 걸, 이제 다 아니까 흐르는 눈물이었다.

상상도 회상도 아니면서, 그 둘이 그냥 그렇게 꿈을 이룬 채 행복하게 재회했다가 어른처럼 꾹 누르고 돌아서기만 했다면 그게 그렇게 슬펐을까?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다 녹아있었다. 눈물은 얼음이 녹아서 흐르는 것처럼 맺히다 흐르다 했다. 웃음은 그게 참 시원해서 입술 근처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춤도, 노래도, 미아와 세바스찬도, 영화도 사랑도 다 거짓말. 그토록 예쁘고 아름다워서, 몇 번이고 기꺼이 속고 싶은 거짓말.

피처 에디터 정우성


 

1. 세 번 봤다. 처음 볼 때보다 두 번째가, 세 번째가 더 울컥해지는 기분. 미아와 세바스찬이 처음으로 서로 에게인상을 남기는 고속도로의 경적소리. 터덜터덜 길을 걷던 미아를 레스토랑으로 이끌려 들어가도록 만드는 세바스찬의 피아노 선율.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잇고 환기시키는 반복적인 신호로 활용되고 작동하는 감각적인 신호. 결국 이 신호가 객석에 앉아 있는 나를 파블로프의 개처럼 길들이고 그 신호만으로도 울컥하게 만드는 버튼이 돼버린 느낌. 그래서 내게 <라라랜드>는 청각으로서 더욱 예민하게 다가오는 영화였다. 감각과 정서의 공명을 이끌어내는, 기이한 공감각적 체험의 영화.

2. 영화의 후반부에서 시덥잖은 포토그래퍼의 주문에 맞춰 제스처를 취하던 세바스찬이 무의식적으로 키보드 건반을 누르다 자신의 귀에 꽂힌 음들이 처음 미아와의 만남을 환기시켜주는 멜로디라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 자신이 얼마나 멀리 와버렸는지를 새삼 실감하는 그 순간의 안타까움은 같은 손으로 연주하게 되는 그 피아노곡이 들려지는 최후반부에 다다라 감당할 수 없는 페이소스로 확장된다. 그래서 그 피아노곡의 도입부만으로도 마음이 미어진다. 아이고, 이 사람아. 이걸 우짜노.

3. <위플래시>와 <라라랜드>는 내게 우주 같은 느낌의 영화다. <위플래시>는 숨이 턱 막히는 진공 상태의 긴박감으로 다가오는 영화라면 <라라랜드>는 벅차오르는 감정의 무중력으로 다가오는 영화였다. <라라랜드>에서의 천문대 시퀀스와 최후반부 시퀀스는 인생에 있어서 다시 돌려보고 싶은 순간이다. 아마도 그 장면을 다시 보고 싶어서 이 영화를 거듭 보게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4. <위플래시>에서도 언급되는 찰리 파커가 <라라랜드>에서도 언급된다. <위플래시>와 <라라랜드>는 음악이라는 공통분모, 보다 구체적으론 재즈라는 공통분모 위에 놓인 분자들인데 데미안 차젤레도 한때 재즈 드러머를 꿈꾸던 음악도였다고 한다. 국내에선 소개되지 않았지만 2011년도에 발표된 그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 <가이 앤 메들린 온 어 파크 벤치 Guy AndMadeline On A Park Bench>도 음악 그러니까 재즈와 관련된 영화인데 흑백 버전의 <라라랜드>처럼 보이는 뮤지컬 영화다. 그러니까 국내 수입사 관계자 여러분, <위플래시>와 <라라랜드> 정도의 화제성을 보면 이 영화를 늦게라도 수입해 두 영화의 이름을 걸고 홍보하면 생각보다 쏠쏠할지도 모릅니다. 좀 고려해주심이. 어지간한 재개봉 작보다 나을 겁니다.

5. 종종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라라랜드> 같은 영화를 보면 조금이나마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그러니까 당신도 봐라. 두 번 봐라.

디지털 디렉터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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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에스콰이어 편집부
사진 워너브라더스 제공
출처
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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