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째 1위 스포츠카 페라리

하늘이 높고 깊었던 9월의 어느 날. 30여 대의 페라리가 제주도 서귀포시의 한 해안 도로 주차장에 모였다. 사람이 많은 대도시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여러 모델로 구성된 색색의 페라리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 장관을 연출했다.

이들에겐 미션이 있었다. 12대의 페라리가 모여 하나의 숫자를, 20여 대의 페라리가 또 다른 숫자를 만들어야 했다. 모두가 서둘러 움직였다. 너 나 할 것 없이 간격을 맞춰 좌우로 줄지어 섰다. 그렇게 완성된 모습을 드론으로 촬영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여러 대의 페라리로 만든 것은 ‘70’이었다. 페라리 오너라면 기념할 만한 숫자였다.

1947년 페라리의 첫 도로용 양산 차가 이탈리아 마라넬로 공장을 나섰다. 그러니까 페라리가 창립한 지 올해로 70년 됐다. 페라리 오너라면 당연히 모여서 축하해야 할 일이다. 페라리 본사가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열리는 월드 투어를 계획했다. 창립 70주년 기념 랠리. 제주도에 30여 대의 페라리가 모인 이유였다.

“이렇게 많은 페라리가 제주도에 모인 것은 처음이에요. 배를 이용해 섬으로 여러 대의 페라리를 옮긴 것도 공식 행사로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해요.” FMK 관계자의 말처럼,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이번 행사는 의미가 있다. 그렇게 30여 대의 페라리와 70여 명의 페라리 오너들이 1박 2일간 제주도를 (거의) 한 바퀴 도는 랠리에 나섰다.

페라리는 개성이 뛰어난 제품을 만든다. 당연히 행사를 위해 모인 30여 대의 페라리 중 똑같은 모델은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고객 맞춤으로 만드는 제작 특성상 같은 기종일지라도 똑같은 조합으로 만든 차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실제 오너들도 이 점에 큰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다른 차들을 살펴보고 조합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면의 감각, 엉덩이로 느껴지는 차체의 움직임 정보가 생생하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 같다. 이게 페라리다.

페라리는 겉으로 보고 상상하는 것과 실제 감각이 크게 다르다. 페라리는 자동차 공학 측면에서 최고의 기술을 추구한다. 엔진은 높은 출력뿐 아니라 감성적인 떨림과 소리를 만들어내도록 설계했다. 변속기는 1000분의 1초 단위로 변속을 마칠 만큼 정교하고 빠르다. 자동차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전자제어 장치의 반응은 혀를 내두를 만큼 세밀하다. 공기역학에 누구보다 신경 쓰고 실제로 디자인에 반영한다. 모든 제품이 경주 차 그 자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창업자 엔초 페라리는 자동차 경주를 위해 차를 만들었다. 스포츠카를 만들어 양산을 시작한 것도 어디까지나 경주 차 팀을 운영하기 위한 자금 때문이었다. 페라리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순수한 스포츠카로 분류되는 이유다. 물론 최신형 페라리는 단지 빠르게 달리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성격이 완전히 바뀐다.

스티어링 휠에 달린 마네티노 스위치(주행 모드)를 돌릴 때마다 차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강함과 부드러움, 유연함과 단단함, 재미와 편안함같이 상반되는 조건을 스위치를 돌려 모두 만족시킨다. 스포츠카 시장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물론 그래도 페라리의 진가는 속도를 높일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내가 탔던 GTC 4 루쏘 T는 V8 3855cc 엔진을 얹고 610마력(77.5kg·m)을 발휘하는 투어링 모델이다. 성인 네 명이 탈 수 있는 실내와 넉넉한 트렁크 공간이 특징. 페라리의 라인업 중 가장 편하고 다목적인 차에 속한다. 그런데도 달리는 감각은 정교하고 날카롭다. 커다란 차체와 폭이 넓은 타이어가 노면을 강하게 쥐고 고속 코너를 짜릿하게 통과하게 돕는다. 스티어링 휠로 전해지는 노면의 감각, 엉덩이로 느껴지는 차체의 움직임 정보가 생생하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 같다. 이게 페라리다.

첫째 날, 일행은 제주도를 반으로 갈라 서쪽을 한 바퀴 일주했다. 한라산 주변의 고지대를 넘고, 굽이치는 산길을 지나 가슴이 뻥 뚫리는 해안 도로를 따라 달렸다. 앞서 달리는 페라리가 뒤의 페라리를 끌어당겼다. 그렇게 모두가 내 차가 아닌 남의 차를 바라보며 황홀한 드라이브를 즐겼다. 누군가 말하길, 자기가 페라리 오너지만 페라리가 달리는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서 자세히 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만큼 제품의 희소성이 높다는 의미였다. ‘단 한 대라도 수요보다 적게 만든다.’ 지난 수십 년간 페라리가 고집한 철학이다. 희소성은 곧 가치다. 페라리는 가치를 유지하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안다.

두 번째 날, 제주도 남쪽 서귀포항에서 동쪽 섭지코지를 향해 달렸다. 곧 비가 내릴 것처럼 하늘이 흐렸다. 그러다 간간이 비가 내렸다. 하지만 30여 대의 페라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랠리를 이어갔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제주도 북쪽 제주항에 모든 페라리가 도착했다. 저마다의 페라리에 태극 마크를 붙이고 시작한 70주년 기념 랠리가 그렇게 마무리됐다.

랠리에 참여하는 동안 나는 그동안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왜 사람들은 페라리에 열광할까? 페라리는 어떻게 독보적인 존재가 됐을까? 페라리의 기술이 뛰어나서? 마케팅을 잘해서? 물론 모두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볼 때 페라리는 처음부터 달랐다. 비슷한 질문에 페라리 창립자 엔초 페라리가 살아생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페라리는 남보다 나은 게 아니다. 다르다. 페라리를 만든 사람들의 머리와 피가 이 땅(이탈리아)에서 나온 것으로 이뤄졌으니 사람들이 페라리를 보면 재료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게 페라리다.”

꿈으로 채운 행사

어떤 회사든 70년을 유지하는 건 어렵다. 게다가 희소성을 파는 회사라면 더욱 생존율이 희박하다. 비즈니스 세계는 먹이사슬보다 복잡하고 비정하니까. 페라리는 그 세계에서 70년을 버텨냈다. 단지 연명만 했을까.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속에 ‘빨간 스포츠카’를 하나씩 심어놓았다. 지갑을 움직이기 전에 마음에 파고든 셈이다. 언젠가 생의 마지막 순간 차고에 그 차가 있기를, 사람들은 상상했다. 페라리가 70주념 기념행사를 열 수 있는 이유였다.

보통 몇 주년 기념식은 뻔한 구석이 있다. 쌓아 올린 업적을 치하하고 나아갈 비전을 제시한다. 그 과정을 모두 주최 측이 준비하고 선보인다. 그건 그것대로 좋지만 생일잔치로는 조금 건조하다. 원래 생일잔치는 초대받은 사람도 뭔가 준비하지 않나. 페라리는 달랐다. 페라리 성지라 할 수 있는 마라넬로, 그 마을에 있는 페라리 피오라노 서킷에 들어서자 깨닫게 됐다.

서킷을 무대 삼아 클래식 페라리가 열 맞춰 전시됐다. 페라리 박물관에서도 못 볼 장관이다. 페라리가 공 좀 들였구나 싶겠지만, 사실 페라리는 판만 깔아줬을 뿐이다. 피오라노 서킷에 전시된 클래식 페라리는 모두 주인이 있다. 페라리는 ‘콩쿠르 델레강스’라는 제목만 붙였다. 콩쿠르 델레강스는 클래식 자동차의 보존 상태를 뽐내는 경연 대회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클래식 페라리 소유주가 나서서 자신의 차를 뽐내는 자리다. 심사받는 소유주의 표정을 보는 것도 행사의 재미였다. 누군가는 자부심을, 누군가는 뿌듯함을, 누군가는 설렘을 품은 표정이다.

기념행사의 한 축인 소더비 경매도 마찬가지였다. 페라리 소유주가 팔고, 페라리를 품고 싶은 사람이 손을 들었다. 페라리는 기념행사라는 판을 차려 둘 사이를 이어줬다. 경매에 올라온 클래식 페라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볼거리가 되는 행사였다. 그 과정 자체가 70년 동안 쌓아온 페라리의 가치를 증명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페라리 본사가 아닌 페라리 소유주가 채웠다.

페라리 70주년 기념행사는 일반적인 행사와는 격이 달랐다. 완전무결한 듯 꽉 짜이진 않았지만 적당히 느슨해 더 친근한 그런 느낌. 수많은 부품이 정밀하게 움직이는 자동차가 다분히 감성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페라리는 자동차를 팔지 않고 꿈을 판다고 했다. 페라리 70주년 기념행사에는 꿈을 품은 사람과 품고 싶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알게 모르게 꿈이 싹튼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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