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믿을 수 있다는 것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결말이 벅차게 다가오는 이유.

“포스를 믿어라(Trust force).”

어머니는 어린 딸에게 말한다. 위협적인 존재가 다가오는 것을 직감한 부모는 어린 딸을 피신시키고자 한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던 순간이었고, 어린 딸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딸은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결국 멀리서 그 광경을 훔쳐보던 딸은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뒤 어디론가 달아나기 시작한다. 그리곤 바위로 위장된 벙커 속으로 들어가 숨을 죽인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을 무렵, 한 남자가 벙커 문을 열고 소녀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우린 갈 길이 멀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이하: <로그 원>)은 미스터리에서 시작되는 영화다.

소녀의 아버지가 제국군에 끌려간 건 그가 유능한 과학자 겔렌 어소(매즈 미켈슨)였기 때문이다. 그는 도시 하나를 괴멸시킬 수 있는 행성 무기 ‘데스 스타’를 완성해 우주를 지배하려는 제국군의 야심 아래서 부역하지 않기 위해 숨어 살았지만 운명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의 어린 딸 역시 기구한 운명에 빠져들었다.

벙커에 숨은 덕에 목숨을 부지한 소녀는 15년 동안 가명을 쓰고 신분을 위장한 채 살아오며 살아온 세월만큼의 회의감을 쌓아왔다. 제국군도, 반란군도, 우주의 운명도, 그녀에겐 성가신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소식은 그녀를 흔든다. 반란군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아버지도 알고 자신도 아는 가까운 지인에게 전달돼 있음을 알게 된 그녀는 반란군에 조력해 그 메시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그녀의 이름은 진 어소(펠리시티 존스), 바로 <로그 원>의 주인공이다.

<로그 원>은 <스타워즈> 시리즈 최초의 스핀오프 물이다.

구체적으론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이하:<시스의 복수>)와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이하: <새로운 희망>) 사이에 놓인 작품이다.

그러니까 <스타워즈 에피소드 6: 제다이의 귀환>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이하: <깨어난 포스>)가 <스타워즈>라는 세계관의 미래로 나아가는 작품이라면 <로그 원>은 이미 완료된 서사 속에서 생략된 어느 부분을 확대해 보여주는 작품인 것이다.

<로그 원>에서 라이트 세이버를 휘두르는 제다이가 등장하지 않는 것도 제다이의 씨가 말라버린 <시스의 복수> 이후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스타워즈> 시리즈의 성실한 팬이라면 <로그 원>의 결말부가 <새로운 희망>의 도입부 직전까지의 이야기라는 것을 손쉽게 알 수 있다. 레아 공주가 등장하는 결말부에선 탄성을 지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로그 원> 은 단순히 시리즈 사이에 끼워 판매된 부록처럼 기억될 만한 작품이 아니다.

기이할 정도로 숭고한 감상을 부르는 작품이다.

솔직히 <스타워즈>를 잘 몰라도 이 영화를 충분히 재미있게 볼 것이라 장담하긴 어렵다. 시리즈의 전통이란 것을 손쉽게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로그원>은 <스타워즈>라는 시리즈가 품고 있었던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을 보편적인 정서로 담아내고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 작품이다.

이를 테면 <로그 원>에선 ‘희망’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저항군에게 희망이란 막강한 제국군의 화력을 이겨낼 마지막 무기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들에게 희망은 최후의 보루다.

문제는 그 희망이란 것이 실물로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손쉽게 무기력해진다. 결국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을 담보로 완성되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희망이란 언제나 두 발로 딛고 설 수 없는 신기루처럼 일컬어질 뿐이다.

결국 그 희망을 구체화시키는 건 용기다.

<로그 원>은 영화상에서 우연히 언급하게 되는 ‘로그 원’이라는 팀명을 의미한다.

명확한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게다가 용기가 없다면 기회가 온다 해도 선뜻 나아가기 쉽지 않다. 데스 스타의 설계도를 탈취하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 희망을 잡으려면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우세한 화력을 지닌 제국군의 본진까지 가서 싸움을 걸고 설계도까지 탈취한다는 건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너무 비좁은 희망이다.

그러나 당장 그 희망을 잡지 않으면 결국 절망만이 남는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다만 자신을 던질 용기가 없을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희망을 잡기 위해 용기를 내어 스스로를 던진다. 진 어소를 필두로 적진에 잠입하길 희망하는 인원이 모인다. 우연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그 원’이 결성된다.

사실 첫 만남은 그리 좋지 않았다.

제국군의 감옥에 수감된 진 어소를 탈출시킨 저항군의 대령 카시안(디에고 루나)과 그의 드로이드 K-2는 진 어소를 신뢰하지 못한다. 진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딱히 대화도 매끄럽지 않다. 게다가 개중의 누군가는 모종의 비밀을 숨긴 채 작전을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닥뜨리고, 그런 위기를 돕는 새로운 일행이 생긴다.

그러다 보니 예상치 못한 팀워크가 생긴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불분명한 이들이 한데 모여 서로 간의 갈등이 불거지기도 하지만 공통의 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연대의식을 제공하고, 암묵적인 화해가 가능해진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모종의 신뢰가 싹트기 시작한다. 의도치 않게 팀워크가 형성된 것이다.

결국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그들은 서로에게 헌신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고, 그 용기가 비좁은 희망을 뚫어보겠다는 의지로 발전된다.

결국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후반부의 대규모 전투신이 볼거리의 쾌감을 넘어 감정적인 희열을 느끼게 만드는 건 바로 그런 개개인의 성장을 바탕에 둔 헌신적인 신뢰와 희생을 불사하는 용기 그리고 희망에 대한 믿음, 이런 원초적인 단어들을 실물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감동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뢰, 용기, 헌신, 희망, 하나 같이 너무 순진하게 들려서 되레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단어들. <로그 원>은 바로 그 단어들이 품은 원형의 가치를 재현하고 전달한다. 그리고 이는 <스타워즈>의 세계관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로그 원>의 특별한 장점으로 기능한다.

사실 <스타워즈>는 항상 가장 기본적인 믿음을 강조하는 영화였다.

‘포스가 당신과 함께 하길(May the force be with you).’ 이는 우리가 너무 순진하다고 생각하는 가장 순수한 가치에 대한 믿음이 우리 스스로를 가장 강력한 존재로 만들 것이라는 기도와 같은 것이었다.

<로그 원>은 그런 기도문 같은 믿음을 설득력 있는 이야기의 형식에 담아낸, 새로운 시대의 복음인 셈이다.

한편, <로그 원>에서는 지금까지의 <스타워즈> 세계관 안에서 설명되지 않았던 정보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팬들에게도 반가운 작품이 될 것 같다.

이를 테면 제다이들의 성지로 불리는 카이버 사원이 있는 ‘제다’ 행성과 저항군이 주둔한 ‘야빈 4’ 행성 등이 등장하고, 흰색의 아머를 착용한 ‘스톰트루퍼’들과 다른 유광 블랙 아머를 착용한 ‘데스트루퍼’와 황색 아머를 착용한 ‘쇼어트루퍼’가 등장한다.

또한 저항군 전투기인 ‘X윙 스타파이터’ 외에 새로운 전투기종인 ‘U윙 스타파이터’가 등장하며 ‘해머헤드 코르벳’ 등 새로운 형태의 비행선들이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여주며 볼거리를 풍요롭게 만드는 인상이다.

한편 제국군의 드로이드 ‘K-2SO’가 비인간 캐릭터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중요한 활약을 펼치기도 하고, <스타워즈> 사상 최초의 동양인 캐릭터인 치루트(견자단)와 베이즈(강문)가 인상적인 역할을 맡았다는 점 또한 이색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이런 변화는 새롭게 <스타워즈>에 입문하는 관객들에게도, 기존의 팬에게도 동등한 흥미로 작동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다스베이더가 등장해 적색의 라이트 세이버를 휘두르며 전진해오는 신에서 발생하는 압도적인 긴장감은 이 영화를 본 관객 누구에게라도 인상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로그 원>은 <스타워즈>라는 세계관을 지탱해온, 아버지의 중력을 거부할 수 없는 2세의 운명론적 사연이란 점에서 시리즈의 맥락을 계승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2015년에 공개된, <스타워즈> 6부작의 속편 격인 <깨어난 포스>와 마찬가지로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고 유색인종과 동양인 캐릭터를 비중 있는 역할로 조명한다는 점에선 구태의연한 시리즈의 관습에서 탈출한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조지 루카스가 연출한 6개 에피소드가 스카이워커 부자의 비극적 갈등과 필연적 대결을 그리며 아버지를 부정하는 아들의 고뇌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과 달리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깨어난 포스>와 <로그 원>은 한결 같이 아버지의 영향력을 부정하지 않고 되레 그 존재감을 통해 자신의 삶을 회복해 나가는 의지를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에서도 기존의 세계관과 선을 긋는 인상이다.

영화의 말미에 제국군으로부터 탈취한 데스스타 설계도를 레아 공주에게 전달하는 병사는 그것의 정체를 묻는다. 그러자 레아 공주가 답한다.

“희망이지.”

정말 벅찬 결말이다.

그러니까 결국 <새로운 희망>의 희망이란 <로그 원>에서 용기를 내어 희생을 불사한 이들의 역사를 통해 계승된 것이다. 희생을 각오한 용기를 통해 희망을 쟁취했다는 교훈 뒤에는 희생을 결심한 이들의 결연한 얼굴과 죽음을 불사하는 단단한 전진이 존재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로그 원>이 특별한 건 기존의 세계관이 품고 있던 가치를 보다 숭고하게 끌어올린 동시에 보편적인 이야기로서의 완성 도마저 확보해냈다는 점에 있다. 그러니까 <로그 원>은 결국 <스타워즈> 팬들을 위한 서비스를 넘어 시리즈의 수준을 한 차원 드높인 성과다.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숭고한 한 점을 찍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쉬운 건 이 작품의 속편이 나올 수 없다는 것. 맥락상 이해는 하지만 이렇게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저버릴 수밖에 없다니, 아쉽고 아쉽다. 그러니 “포스는 나와, 나는 포스와 함께 한다(I’m one with the force, and the force is with me)”라는 기도라도 계속 읊어댈 수밖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망하지만 추모를 남긴다. 캐리 피셔를 위하여.

그곳에서도 포스가 함께 하길.

R.I.P. Carrie Fisher A.K.A Princess Reia. May the for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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