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별을 품은 시계

바쉐론 콘스탄틴에서 1935년 한양의 밤하늘을 시계에 담아냈다.

보통 고가 시계의 신제품이 나오면 언론 발표 행사를 연다. 행사장은 그런 물건이 팔릴 법한 주요 백화점 본점이나 명품관이다.

지난 11월 바쉐론 콘스탄틴의 행사장은 일산 킨텍스였다. 그 비싸고 오래된 바쉐론 콘스탄틴이? 일산? 킨텍스? 피에르 가니에르 신메뉴를 만남의광장 휴게소에서 발표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무형문화재대전 참가자 자격으로 부스를 열었다. 올해 처음 열린 무형문화재대전은 전국에 산재한 무형문화재의 공예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회였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한국문화재재단과 함께 함(函)을 만든 인연으로 참가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브랜드 가치 중엔 ‘전통문화의 수호와 계승’이 있다. 한국 지사도 자연스럽게 자국의 전통을 돌아보았다. 마침 2015년은 바쉐론 콘스탄틴 창립 260주년이었다.

고급 시계는 칠순, 팔순 챙기듯 10년 단위 기념일을 잘 챙긴다. 바쉐론 콘스탄틴 한국 지사는 전통이라는 키워드로 ‘헤리티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한국의 무형문화재 세 명과 함께 함을 만들었다. 전통으로 먹고사는 동서양 업체와 단체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바쉐론 콘스탄틴 한국 지사는 여기서 좀 더 밀고 나갔다. 조선의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다이얼에 그린다는 흥미로운 발상으로 시계를 만들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과학사의 자랑으로 꼽히는 정밀한 천문도다. 중국의 ‘순우천문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 천문도라고 한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이 천문도에 담긴 1395년 한양의 하늘을 시계 다이얼에 재현했다.

고급품의 필수조건은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치밀한 디테일이다. 바쉐론 콘스탄틴도 보통 치밀한 게 아니다.

이들은 항공편으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탁본을 직접 받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띄운 1395년의 하늘과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비교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놀랍도록 정확했고, 그걸 확인한 후에야 바쉐론 콘스탄틴은 에나멜 기법으로 다이얼에 밤하늘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위스의 장인은 타협을 몰랐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하이라이트는 별 크기에 따라 별의 밝기가 다르다는 점이다. 스위스의 장인들은 그 차등적 처리까지 최대한 정밀하게 재현했다.

비교된다. 국내에서 제작했다면 “아, 그거 대충 예쁘게 해”라고 했을 텐데.

깎아내리는 거 아니냐고?

2007년 인쇄한 1만원권 지폐 뒤편의 도안도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따왔다. 거기에는 별자리의 위치와 모양에서 심각한 왜곡이 있으며 별의 밝기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 사실을 보도한 <주간 한국> 기사에 따르면 한국은행 발권국 관계자는 “원본 별자리보다 개수를 줄이거나 각도를 조금 바꾸기는 했다. (중략) 학계 최고의 전문가로부터 자문을 받아 확정한 도안이므로 내용상 별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충 예쁘게 했다’는 뜻이렷다.

이 시계를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으로는 주문할 수밖에 없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에스콰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이 시계는 소수 수집가의 요청에 따라 주문 제작으로 판매합니다. 한정 수량이라 매장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은 아닙니다. 스페셜 피스이므로 대금 납입 기준 제작 소요일은 설명드리기 어려우며, 일정의 계약금 여부 같은 질문은 브랜드 방침상 답변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정중한 답을 보내왔다. 고급품의 우아한 폐쇄성이란.

아, 이 시계 이름은 ‘메티에 다르 트리뷰트 투 더 스카이 오브 1395’다. 1395년의 하늘을 기념한다는 뜻이다. 시계 뒤편에 이 문구가 프랑스어로 적혀 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에나멜링 기법으로 재현한 1395년의 밤하늘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다. 아무튼 훌륭한 걸 만들면 누군가는 알아봐준다. 스위스의 시계 장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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