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친구와 만든 집

친구 같은 아내를 만나면 집을 사는 것도 놀이가 된다.

아내를 처음 만난 건 7년 전이었다. 3년의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졌고, 어느덧 결혼한 지도 4년이 됐다. 결혼한 뒤로 우리는 줄곧 서촌이라는 동네에 살았다. 아내의 의견을 따른 결과였다. 사실 나는 옥수역이나 약수역, 금호역 인근을 원했다. 아내의 직장과 나의 직장은 지하철 3호선으로 왕복할 수 있는 구간이었고, 출퇴근 거리를 공평무사하게 나눌 수 있는 위치가 그 즈음이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오가는 직장과 집이 가까울수록 좋다는 건 <슬램덩크>를 보며 깨달았다. 서태웅이 왜 북산고에 진학했을까? 가까우니까. 그렇다. 가까운 게 진리다.

문제는 부동산에서 소개한 집들이 하나같이 눈에 들지도, 마음에 차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발품을 팔 만큼 팔았다고 느낄 즈음에 아내가 말했다. “서촌으로 가자.” 솔직히 아내와 함께 3호선 지하철을 타고 경복궁역에 도착할 때까지도 특별히 기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처음으로 찾아 들어간 부동산에서는 보여줄 수 있는 집이 하나뿐이라 했다. 그나마 우리가 생각하던 예산과 맞아떨어지는 집이라 한번 꼴이나 보자는 심산으로 부동산 사장님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집을 보는 순간 아르키메데스의 욕조가 넘쳤다. 유레카! 탁 트인 원룸 형태의 집에 방이 따로 하나 있었고, 부엌과 현관이 분리돼 있었다. 아내와 나는 당장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으므로 두 사람이 생활하기에 최적화된 공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드디어 그런 곳을 찾았다.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휘휘 걸어 동네를 구경하다 인근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신 뒤 다시 부동산을 찾아갔다. 전세 계약을 하기로 했고, 그렇게 서촌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게 벌써 4년 전 일이다.

집 - 에스콰이어

전셋집의 재계약 기간은 2년 남짓이면 돌아온다. 결혼한 지 4년이 됐다는 건 또 한번의 재계약 기간이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도 전세금을 올려서 재계약하면 될까’ 하는 생각에 아내가 물음표를 던졌다. “우리 이사 갈까?” 막연한 물음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던 고민을 재차 확인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서촌을 떠날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서촌을 떠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서 정착지로 염두에 둔 곳도 있었다. 40여 년 전에 지었지만 여전히 튼튼하다는, 3층 높이의 연립주택인 옥인연립이었다. 옥인연립을 눈여겨본 이유는 아내에게서 옥인연립을 고쳐서 사는 젊은 부부의 사례를 종종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내에게 이끌려 서촌으로 왔던 나는 다시 아내에게 이끌려 옥인연립에 매료됐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딱히 아이를 가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여전히 두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필요할 뿐이다. 집을 사기로 결심한 것도 그래서였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었다면 좀 더 큰 집이 필요했을 것이다. 장기적으론 학군이 좋은 지역에 터를 잡아야 할지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아내와 나보다는 아이를 기준으로 주거지를 고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없고, 아내 역시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이 크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두 사람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가 살고 싶은 지역을 선택하고, 우리가 원하는 집을 구상하게 됐다. 그리 넓은 집이 필요하진 않았다. 다만 아내와 나의 일상을 효율적으로 안배하면서도 정서적으로도 안온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우리에게 허락된 예산 안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옥인연립은 우리에게 기회의 땅처럼 보였다.

어느 휴일에 아내와 나는 놀러 가는 기분으로 부동산을 찾았고, 매물로 나온 옥인연립의 몇몇 집을 윈도쇼핑하듯 둘러봤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욕조가 넘쳤다. 유레카! 4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고치지 않았다는 빈집을 발견했다. 옥인연립의 초창기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마치 40여 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낡은 집에 숨을 불어넣는다는 의미까지 얹혀졌다. 좁게 나뉜 방과 베란다 벽을 철거하면 우리가 원하는 집의 형태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3층이라 천장을 트면 층고도 높아질 거라 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고민했다. 아내와 나는 심심찮게 그 집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다. 이미 우리 마음속에 들어선 집이었다. 고민에 마침표를 찍고 부동산을 찾아가 가계약을 했다. 그리고 건축가를 고용해 헌 집을 새 집으로 바꾸기로 했다. 천장을 지지하는 기둥 몇 개와 외벽을 제외한 대부분의 내벽을 철거했다. 건축가는 사실상 집을 짓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아내와 나는 많은 면에서 다른 사람이다. 아내는 언제나 시작을 도모하고, 나는 언제나 결과를 예측한다. 아내가 옥인연립이라는 공간의 가능성을 눈여겨볼 때, 나는 옥인연립에 필요한 실용적 구조를 상상했다. 결국 아내와 나의 차이가 반영된 집에는 아내와 내가 모두 있었다. 침실과 작업실과 마루와 부엌이 적절하게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계속 보고 싶게 만드는 노란 기둥과 하얀 벽과 높은 천장이 있는, 내가 원하는 구조와 아내가 원하는 풍경이 공존하는 집이 완성됐다. 살고 싶은 집을 상상하다 결국 살게 됐다. 어쩌면 집을 사고 공사를 하게 된 것 자체가 나와 아내에겐 일종의 놀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판 잘 놀다 보니 새 집이 생겼다. 생각해보면 아내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도 우리가 오랫동안 즐겁게 잘 놀 수 있는 사이일 것 같아서였다. 남은 인생에서 이만한 친구를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내라는 이름의 친구와, 남편이라는 이름의 친구로서, 매일 우리는 최선을 다해 잘 놀아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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