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는 무엇을 판매하는가

동화 같은 스타트업 트레바리가 현실을 살아가는 법.

트레바리 - 에스콰이어

8월 11일에서 12일로 넘어가는 금요일 밤 새벽 2시. 압구정성당 근처 어느 건물에 아직 집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술을 조금 마셨지만 만취한 사람은 없었다. 서로 본 적은 있지만 아주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이런저런 각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적당 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화제는? 자신이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최근 무슨 책을 읽었는지. 연예인이나 일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사회생활에서의 일반적인 화제와는 조금 달랐다. 꽤 늦은 시간이었지 만 좀체 집에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왜?

여기는 신사동의 트레바리 아지트, 이날 집에 가지 않고 있던 사람들은 내 강연의 관객들이었다. 트레바리라는 회사를 소개하기 위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강연까지 하게 됐다. 그러니까 왜?

트레바리는 한국의 스타트업이다. 창업한 지는 2017년 8월 기준으로 23개월 됐다. 사업 모델은 독서 토론 커뮤니티. 한 달에 한 권 책을 읽고 한 번씩 만나서 토론을 한다. 총 4번, 4권의 책을 읽는다. 트레바리는 이 사이클을 한 ‘시즌’이라고 부른다. 1년이 3개의 시즌으로 나뉘는 셈이다. 토론에 참여하려면 의무적으로 독후감을 써야 한다. 독후감을 쓰지 않으면 돈을 내도 토론에 참여할 수 없다. 회비는 기본 패키징이 19만원. 4권의 책값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걸 그 돈 주고 한다고요?” 옆자리에 앉은 패션 에디터 권지원이 놀랐다. 그녀의 반응은 트레바리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반응을 대표한다. 이번 호 취재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 거의 모두가 이런 반응을 보였 다. 연천 미라클 편에 이어 이번에도 함께한 사진가 신동훈도, 다른 기획을 진행하면서 만난 다른 사람들도 모두 트레바리 이야기를 듣고서는 놀랐다. 그들이 놀란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독서 모임이라는 사업 모델이 작동하느냐. 둘째, 그렇게 비싸냐.

“그게 된다니까?” 이번 달에 소개하긴 했지만 트레바리에 대한 소문은 몇 달 전부터 여기저기서 들렸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모 대기업 직원)와 돼지갈비를 구울 때도 트레바리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대기업 직원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고. 그 친구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안 싸. 그런데 지금 사실 직장인들은 그 정도 돈은 쓸 수 있거든.” 지금 직장인들은 그 정도 돈을 쓸 수 있다.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지난 시즌은 마련된 자리 중 99%가 판매됐어요.” 취재를 위해 처음 만난 날 트레바리 대표 윤수영 이 말했다. “사업하는 입장에서 가장 아쉬운 일이 일어난 거예요. 없어서 못 판거니까요.” 즉 트레바리는 사람들의 걱정과는 관계없이 흘러간다. 심지어 잘 흘러간다. 게다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트레바리의 첫 시즌은 회원 80명의 4개 클럽에서 시작했다. 그 다음 시즌엔 회원 175명에 9개 클럽, 그다음엔 회원 340명에 18개 클럽, 그다음은 회원 660명에 34개 클럽이었다. 여기까지가 2016년 이야기.

처음에는 자본금이 0원이었어요. 돈이 필요 없었어요. 사람 20명을 모아서 독서 토론을 하면 장소만 잠깐 빌리면 되니까요.

2017년에 트레바리는 회원 수 1000명을 돌파 했다. 2017년 첫 시즌에 이들은 70개 클럽에 1100 명의 회원 수를 기록했다. 그다음 시즌은 86개 클럽 에 회원 수 1300명. 이때가 윤수영 대표가 말한 ‘없어서 못 판’ 시즌이다. 이 원고를 쓰는 현재 트레바리 는 2017년 9~12월 시즌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이미 1300명 정도 회원을 확보했다. 목표 회원 수는 2000명.

“처음에는 자본금이 0원이었어요. 돈이 필요 없었어요. 사람 20명을 모아서 독서 토론을 하면 장소만 잠깐 빌리면 되니까요.” 취재를 하기 위해 윤수영 대표를 네 번쯤 만났다. 그를 처음 만난 날 ‘트레바리 비긴스’라고 할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에게 3만원씩 받으며 베타 테스트를 하던 회사가 약 2년 만에 유료 회원 2000여 명을 바라보는 회사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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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리 지하 1층 아지트. 룸살롱 인테리어를 그대로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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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살롱의 술을 놓아두던 부분에 책을 놓아두었다. 분위기가 의외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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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곳곳에 독서와 관련된 표어가 붙어 있다. 트레바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부분.

실질적인 규모도 커졌다. 트레바리는 회원들이 모여서 토론하는 장소를 ‘아지트’라고 부른다. 트레바리 아지트는 엘리베이터 없는 4층 건물의 꼭대기 방이었다. 트레바리는 곧 그 건물 지하 1층으로까지 아지트를 넓혔다(룸살롱으로 쓰던 곳이었다. 트레바리는 룸살롱의 인테리어를 거의 손대지 않았다). 4층의 방도 하나 더 넓혔다. 이번 시즌을 맞아서는 같은 건물의 3층 방도 아지트로 쓴다.

이 성장의 구심점에 트레바리 대표 윤수영이 있다. ‘독서 모임이 돈이 될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스스로 대답한 후 트레바리를 차린 주인공이다. 그는 트레바리의 프런트맨인 동시에 사상적 기반이다. 사상적 기반은 어떤 단체가 처음 자리를 잡고 퍼져나갈 때 굉장히 중요하다. 리더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그 생각의 모양이 얼마나 아름답느냐에 따라 조직 의 미래가 처음부터 정해진다. 트레바리의 사상적 기반은 무엇일까.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윤수영은 몇 번이나 이 말을 했다. 처음 만났던 화요일의 늦은 밤에도, 원고를 쓰기 직전 마지막으로 만난 일요일 새벽에도.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는 건 트레바리를 다룬 다른 언론 인터뷰에도 지속적으로 등장한 말이다. 몇 가지 기사를 통해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나도 들었다) 트레바리의 탄생 설화는 다음과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음커뮤니케이션에 들어간 그 해에 세월호가 가라앉았어요. 학생 때는 이런 이슈가 생기면 글을 썼는데 사회인이 되니까 쓸 수가 없었어요. ‘너는 얼마나 떳떳하길래 남의 일에 떠들 수 있냐’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이 일을 하게 됐어요.”

멋진 뜻은 사람과 사람을 넘어 울려 퍼진다. 할리우드 영화나 일본 만화가 퍼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윤수영의 트레바리에서 정확히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극초반 트레바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윤수영의 강한 의지에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퍼져나갔다. “회원 수가 300명쯤 될 때까지는 제가 모든 독서 토론에 나갔어요. 술자리에도 매번 끝까지 있었어요.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끝도 없이 반복해서 말한 것 같아요. 그때 함께한 회원님들은 이런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얘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함께 보고 싶다’는.”

트레바리의 성장담을 이야기로 쓴다면 윤수영이 주인공이 될 것이다. 하지만 트레바리는 윤수영 혼자 만들지 않았다. 2017년 8월 현재 트레바리에는 총 9명의 크루가 있다. 이렇게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모두 스타트업에 있기에는 꽤 좋은 스펙을 가진 사람들이다. 윤수영의 뜻이 사람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누군가가 자신의 젊은 날을 이 남자의 꿈에 걸기 시작했다.

“세상을 바꾸는 일에 일조하고 싶었어요.” 김세희 씨가 말했다. 그는 트레바리의 두 번째 크루다. 첫 번째 크루는 윤수영이니까 말하자면 첫 직원이다. 14개월 전에 트레바리에 합류했다. 트레바리에서 일하기 전에는 tvN에서 PD로 일했다. 그는 윤수영과 우연히 만났다고 이야기했다. “개인적으로 블로그에 연재하는 ‘사소한 인터뷰’라는 기획이 있었어요. 거기서 윤수영 님을 처음 인터뷰하면서 알게 됐죠.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 얼마 있다가 함께 일하게 됐어요.”

김세희를 움직인 건 윤수영의 비전만은 아니었다. “트레바리의 젠더 감수성 역시 이곳에서 일하면서 만족스럽게 느끼는 부분이에요. 딱히 어디를 짚어 말하는게 아니라 기존 제도권 사회에는 아직 성차별적 문화가 남아 있어요. 여기서는 제 능력의 한계랑만 싸우면 되는데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았어요.” 큰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꼭 들어야 할 말이다. 뜻이 있는 고급 인력에게 더 이상 큰 회사가 매력이 되지 못하고 있다.

대표가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다. 그 사상적 기반에 동의한 크루가 모인다. 그들이 관리하는 회원이 있다. 회원은 자발적으로 돈을 내고 자발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맞춰 모임에 참가한다. 모임에 참가하려면 미리 공부를 해야 한다. 모임 현장에서도 집중해야 한다. 누군가에겐 익숙한 생활 패턴일 수 있다. 교회다. “제가 교회를 오래 다녔어요. 실제로 그 모델을 어느 정도는 참고했어요. 저는 교회를 최고의 프로슈머 집단이라고 봤어요. 교회 신자 조직은 권한이 올라갈수록 내야 하는 돈이 많아지는 구조예요”라고 말하는 사람 역시 윤수영이다.

사상적 기반, 꿈, 이상, 뜻, 뭐라고 불러도 좋다. 좋은 뜻은 사람을 모을 수 있다. 사람을 모은다는 건 그 자체로 굉장한 힘이다. 그런데 사람을 모으는 것과, 모은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여기에 트레바리의 하이라이트가 있다. 교회를 프로슈머 집단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말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균형 감각이 트레바리의 진짜 힘이다.

“제가 매뉴얼에 미쳐 있는 건 맞아요.” 트레바리의 균형 감각은 실제 업무에서도 이어진다. 트레바리는 10명 규모의 회사라는 조직 규모에 비해 매뉴얼이 굉장히 촘촘하게 짜여 있다. 무인양품 사장이었던 마쓰이 다다미쓰의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를 윤수영이 감명 깊게 읽은 데서 비롯했다. 이 책의 주제는 ‘매뉴얼화하기 힘든 것까지 매뉴얼화할 수 있다/ 매뉴얼화해야 한다’다. 그 결과 트레바리는 고객 이벤트처럼 가변성이 큰 행사에서도 매뉴얼에 입각한 처리할 수 있는 내실을 갖추게 되었다. 창업 2년차 회사로서 이건 대단한 성과다. 트레바리 보다 더 오래되고 더 큰 조직도 제대로 된 매뉴얼이 없어서 낑낑거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트레바리에는 동화적인 선의와 열린 분위기만큼이나 엄격한 룰과 매뉴얼이 있다. 이번 기사를 위해 트레바리가 협조해준 범위가 좋은 예다. 트레바리는 전폭적으로 도와줬지만 협조 범위는 확실했다. 예를 들어 트레바리 회원들이 클럽에서 가장 많이 읽은 책에 대한 정보는 얻지 못했다. 우선 그 목록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 있지 않으며, 이 정보를 다른 곳에서도 많이 궁금해할 것 같은데, 지금 트레바리의 상황으로는 그 정보를 계속 업데이트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런 식의 합당한 이유라면 얼마든지 납득할 수 있었다.

회사는 선의로만 되지 않는 일이 가득하다. 사실 선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훨씬 많다. 윤수영은 실제로 일을 굉장히 많이 한다. 그는 극초반의 트레바리에서 자신이 뭘 했는지를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초반에는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다 엑셀에 정리했어요. 그 리스트를 모아두면 사람마다 패턴이 보여요. 줄무늬 옷 좋아함, 연인과 헤어진 것 같음. 그렇 게 회원들과 가까워졌어요. 지금도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자요. 한 달에 30만원쯤 쓰는 것 같은데 거의 택시비예요.” 실제로 그는 나와 두 번째 만난 날 오후 4 시 30분에 아지트로 오자마자 냉장고에서 핫식스를 꺼내 마셨다. 일어나자마자 마실 음료는 아닐 텐데.

윤수영의 동화 같은 꿈을 이루려면 심신을 다 바칠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대기업이나 좋은 직장에 가려면 어른들이 만들어둔 틀에 스스로를 어떻게든 끼워 맞춰야 한다. 개체량 조절에 성공한 복서처럼 기준에 맞는 몸을 만든 후 비슷한 사람들과 경쟁해서 몇 없는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 고밀도 경쟁을 견디지 못해 퇴사나 스타트업을 생각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이나 창업으로 성공하려면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그 틀을 뭘로 짜야 할지, 무엇이 되어야 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트레바리의 윤수영과 크루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판을 짜 나가고 있다.

선의와 균형 감각, 그 뒤에 있는 엄청난 노동이 트레바리 성장의 재료다. 그 셋이 뭉쳐졌을 때 새로운 수익 모델이 만들어진다. 트레바리의 프리미엄 상품인 ‘클럽장’ 클럽이다. 일반 클럽이 19만원인데 비해 클럽장이 있는 클럽은 10만원 더 비싼 29만원이다. 클럽장의 면면은 굉장히 화려하다.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네이버 김상헌 전 대표 등이 각자의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바쁜 사람들이 괜히 모이지는 않는다. 이 뒤에도 윤수영의 노력이 있다. 나와 몇 번 이야기를 나눴을 때 그가 털어놓았다. “이정모 관장님 같은 분은 제가 섭외하려고 아홉 번 찾아갔어요. 처음 두 번은 만나지도 못했어요.” 그럴싸해 보이는 결과 뒤에 그보다 훨씬 고된 노력이 있다.

클럽장이 있는 클럽 회원들이야 좋다 쳐도 클럽장은 뭐가 좋을까? 클럽장은 일정 수익을 받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시급이 비싼 분들이라 그분들이 돈 때문에 하는 건 아닐 거예요”라는 게 윤수영의 설명이다. 대신 클럽장들은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라이브 코멘트를 얻어 간다. 윤수영은 덧붙였다. “어떤 분은 CEO급인데 여기서 클럽장을 하면서 오랜만에 자신에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젊은이를 보셨대요. 사실 직장 생활에선 아무리 수평적인 리더라고 해도 할 말을 다 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어떤 분은 원고를 쓰는 시간이 줄었대요. 트레바리 회원들과의 대화 자체가 원고를 만드는 시간이 되는 거예요. 회원과의 문답에서 재료를 찾고, 그 대화를 정리하면 원고가 된다는 거죠.” 회원뿐 아니라 클럽장에게도 도움이 되는 상호 간의 라이브 콘텐츠를 만들어낸 셈이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라는 모델 안에서.

<에스콰이어> 에디터인 내 입장에서 트레바리는 불가사의에 가까운 현상이다. 트레바리는 요즘 사람들이 문자 콘텐츠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와 거의 모든 면에서 반대다. 사람들은 활자를 잘 읽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활자에 대해 돈을 쓰는 일은 더욱 없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중앙 정부에서 시장경제에 어긋나는 도서 정가제 같은 제도를 시행한다. 사람들이 활자를 잘 안 읽거나 활자에 돈을 쓰지 않는다면 트레바리 는 도저히 성공할 수 없다. 성공이 아니라 생존할 수도 없다.

“저도 그게 궁금해서 이걸 하게 됐습니다.” <시사인>의 간판 기자 천관율도 트레바리 클럽장이다. 그는 나와의 전화 통화에서 클럽장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시사인> 같은 경우는 정기구독자 이벤트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시사인>의 연간 정기구독료가 18만원인데 이것도 저희는 비싸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트레바리는 클럽장이 없는 클럽도 한 시즌 회비가 <시사인> 정기구독료보다 비쌉니다. 그런데도 성장하고 있잖아요. 지금의 저널리즘이나 콘텐츠 소비 패턴과는 아무래도 다릅니다. 에디터님도 그러시겠지만, 기자는 궁금한 게 있으면 가서 보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저도 클럽장으로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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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게 궁금했다. 왜 이걸 할까. 그래서 윤수영에게 트레바리의 클럽 토론에 참관할 기회를 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답은 노. 이유 역시 명확했다. “회비를 내고 독후감을 쓴 회원만 클럽 토론에 참가할 수 있는 게 저희의 원칙이에요. 그 원칙을 깰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오케이. 대신 나도 긴 원고를 작성하려면 회원들을 만나봐야 했다. 윤수영이 사상적 기반이 되 고 크루와 함께 구조를 짜고 클럽장 클럽이라는 프리 미엄 콘텐츠를 만들었다고 해도 회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한다면 트레바리가 성장하는 비결을 파악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벤트를 하시죠.” 윤수영이 말했다. “기자님께서 유료 강연을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저희 회원들이 모일 거예요. 그분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기자님이 궁금한 걸 여쭐 수 있지 않을까요?”

말이야 맞지만 과연 내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까 싶었다. 너그럽게 봐도 나는 조금 유명한 매체의 무명 에디터였다. 내 아빠라도 박찬용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3만원이나 내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도 기사를 위해서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필요했다. 사람들을 모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자극적인 발제를 달았다. 주제는 ‘침몰하는 잡지 시장’. 시간은 8월 11일 금요일 저녁 7시 40분. 정원은 20명. 강연 4일 전인 8월 7일 저녁에 공고가 올라갔다. 트레바리 자체 콘텐츠의 힘을 알아볼 수 있는 실험이라고 생각했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강연 정원이 2시간 만에 매진됐다.

강연은 굉장히 즐거웠다. 사람들은 놀랄 정도로 집중했고 놀랄 정도로 친절했다. 총 3시간 정도로 예정된 프로그램은 나의 강연 1시간과 문답 2시간 정도로 나뉘어 있었다. 끝나고 나면 뒤풀이를 한다고 들은 터라 뒤풀이 시간이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내가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왜 트레바리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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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이벤트에 모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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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이벤트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트레바리 회원들.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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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리 <에스콰이어> 독자 이벤트 현장. 지적 대화가 취미가 되는 순간.

실제로 회원들을 만나보니 트레바리는 일종의 프리미엄 커뮤니티 서비스였다. 트레바리의 엄격한 룰은 프리미엄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다층 필터라고 볼 수도 있었다. 회비를 낸다. 책을 읽는다. 독후감을 쓴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나온다. 이 네 가지 요소는 지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사중 구조 필터였다. 그 결과 트레바리는 쉽게 나누기 힘든 대화가 가능한 커뮤니티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보통 친구들끼리 만나면 옛날 이야기를 해요. 일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일 이야기만 해요. 내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은 없어요.” 이 자리에 참석한 화장품 홍보 문혜진 씨의 말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트레바리가 찾아낸 프리미엄 시장이다. 지적 화제를 콘텐츠 삼는 프리미엄 비즈니스. “다른 데서 하면 ‘진지충’ 소리 듣는 이야기도 트레바리에 오면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한 이현미 씨의 말도 새겨들을 만했다.

“가격이 싼 건 아니지만 콘퍼런스 한 번 간다고 생각하면 비슷해요.” 이 부분도 굉장히 중요하다. 독서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인 트레바리의 경쟁자는 직장인의 여가와 관련된 모든 것이다. 트레바리의 경쟁자는 책 혹은 다른 커뮤니티를 넘어선다. 콘퍼런스, 외국어 학원, 혹은 주말 해외여행도 트레바리의 경쟁자일 수 있다. 역으로 트레바리가 찾아낸 시장이 무엇인지도 이 대답 안에 들어 있다. ‘의미 있는 여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잠재 수요가 트레바리가 찾아낸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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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리 지하 아지트에 쓰인 글.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

공통의 화제가 모이는 데에서 커뮤니티가 태어난다. 한번 태어난 커뮤니티는 튼튼한 식물과 비슷해서 초반에 잘 키우면 어느 정도까지는 건실하게 자라 난다. 트레바리에서 커뮤니티를 잘 키우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각 클럽의 마스터다. 마스터는 클럽 운영이라는 디테일한 일을 맡아서 한다. 회원에게 모임 일시를 공지하고 독후감도 걷는다. 트레바리라는 모임에는 엄격한 룰이 있다. 마스터는 그 룰의 집행자다.

트레바리에는 지적 유희를 나눈다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다. 이 클럽의 회원들은 각자 소중한 돈과 시간을 써서 그 자리에 왔다는 공감대를 이룬 사람들이다. 트레바리에서 중요한 건 그 공감대이므로 그 사람의 배경 같은 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실제로 트레바리의 모든 사람들은 ‘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같은 클럽이라면 나이와 직업에 상관없이 서로를 님이라고 부른다. 독서라는 개인적인 일을 함께 한다는 면에서 러닝 클럽과 비슷할 수도, 서로의 배경을 묻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나눈다는 점에서 알코올 중독자 모임과 비슷할 수도 있다. 아무튼 트레바리는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돈을 쓸) 준비가 된 사람들 을 모으는 데에 성공했다. 유료 회원 1300명이라는 수치는 트레바리의 선의와 모델이 어느 정도는 괜찮게 작동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트레바리 커뮤니티는 어느 정도 원숙기에 접어 드는 모양새다. 다른 과제가 생겨야 한다는 뜻이다. 윤수영은 회원이 1000명이 넘어가기 시작한 후부터 각자의 모임에 덜 나간다고 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클럽장이 없어도 자체적으로 지적 성장이 가능한 클럽 모델을 만드는 것’이라고도 했다. 사실 트레바리 클럽이 원숙기에 접어들었다는 가장 큰 증거가 박찬용 에디터의 강연일 수도 있었다. 지금의 트레바리는 유명 잡지의 무명 기자가 이벤트를 열어도 입장료 3만원짜리 이벤트의 정원 20명을 다 채울 수 있을 정도의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다. 실질적으로도 의미적으로도 대단한 재산이다.

이런 교훈을 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보냈다. 사람들이 왜 트레바리에 가입하는지, 이 공간과 커뮤니티에서 무엇을 얻는지, 취재 자료를 얻겠다고 갔지만 내가 훨씬 더 많이 배웠다. 모든 이야기를 전할 순 없지만 하나는 확실히 느꼈다. 콘텐츠가 커뮤니티 구축의 접착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수단으로 콘텐츠를 활용한다면 앞으로의 콘텐츠 비즈니스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 될 수도 있다는 것.

여기서는 짧게 이야기하고 넘어가지만 트레바리가 성립된 기술적 배경도 무척 중요하다. 트레바리는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이 없었다면 성립할 수 없는 모델이다. 트레바리의 유일한 광고 집행 창구는 페이스북이다. 윤수영은 평소에도 100개 이상의 카카오톡 대화창을 활성화시킨다. 트레바리의 클럽이 개설 될 때마다 새로운 카카오톡 단체방이 만들어진다. 카카오톡과 모바일 디바이스가 없었다면 트레바리라는 서비스도 없었을까? 나는 그렇다고 본다.

트레바리의 미래 역시 낙관적이다. 윤수영을 비롯한 크루들이 엄청나게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서는 역시 아이디어보다는 실행력이에요” 라고 말한 윤수영의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계획보다 대응. 그리고 저희는 작은 회사이기 때문에 스피드가 중요해요.” 그 말대로다. 삼성전자도 빠른 대응 속도와 실행력 덕분에 성공했다. 어쩌면 한국의 회사 혹은 한국형 회사가 성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 둘이 아닐까. 속도와 실행력.

트레바리에 조금 더 그럴싸한 의미를 부여하며 마무리할까 한다. 트레바리의 출현은 새로운 세대의 기업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볼 수도 있다. 기존의 한국 기업가는 돈밖에 모르거나 꿈밖에 몰랐다. 전자가 신격호라면 후자는 이재웅이다. 모든 단체는 존경받으면서 생존해야 건강하게 오래갈 수 있다. 존경만 받으면 오래 못가고 생존만 하면 건강하지 못하다. 트레바리에게는 뜨거운 이상과 냉정한 현실 인식이 있다. 철없는 꿈이 있는 동시에 노회한 조직 운영의 노하우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4개월에 19만원만 내면 대화가 통하는 친구를 만날 수 있다. 요즘에 이것처럼 귀한 게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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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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