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 이후, 힙합계의 미래

트럼프 당선 이후, 힙합계의 미래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2016년 12월호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를 선출했던 미국은 이제 인종을 차별하고 여성을 폄하하는 돈 많은 한 백인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겼다. 혐오에 기반을 둔 주장을 펼친 인물이 가장 강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은 좀 참담하다.

백인 우월 단체 KKK단이 지지했던 트럼프의 당선은 지구인이자 시민으로서도 충격과 공포를 느끼게 했지만 힙합의 관점으로 보아도 꽤나 중요한 사건이다.

사실 미국 흑인 사회와 힙합계는 일찌감치 트럼프 보이콧을 실천해왔다.

래퍼 YG는 ‘FDT(Fuck Donald Trump)’라는 노래를 발표해 이렇게 말했다.

“난 백인을 좋아해, 하지만 당신은 아니야/ 게토의 모든 흑인은 당신과 맞서길 원하지.”

또 제이지와 비욘세는 힐러리 클린턴의 유세 무대에 등장해 클린턴과 포옹하며 지지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패배했고 대선 결과에 래퍼들이 낙심한 건 당연했다.

탈립 콸리는 “미국이 더 이상 날 실망시킬 일은 없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틀렸어. 미국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말했고, 데이비드 배너는 “너무 절망하지는 마. 오늘도 푹 자고 일어나서 내일도 미국에서 흑인으로서 살아가는 거야”라고 자조했다. 자넬 모네의 반응이야말로 가장 강렬하고 정확했다.

“미국은 여성, 약자, 무슬림, 이민자,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키는 데에 또 한 번 실패했어. 정말 역겨운 결과야.”

이렇듯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를 거국적으로 반대한 힙합계는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는 버락 오바마를 거국적으로 지지한 바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윌아이엠이 오바마의 연설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뮤직비디오 <Yes, We Can>, 제이지가 전개한 ‘Respect My Vote’ 캠페인, 디디의 ‘Vote or Die’ 운동 등 힙합계의 막강한 지원이 없었다면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 당선은 실현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인종차별과 사회적 장벽에 오랫동안 가로막혔던 흑인들에게 오바마는 흡사 마틴 루서 킹이나 맬컴 엑스를 잇는 지도자였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제이지의 이 가사는 더없이 영리하고 상징적이다. “로자 파크스가 앉아 있었기 때문에 마틴 루서 킹이 걸을 수 있었고/ 마틴 루서 킹이 걸었기 때문에 버락 오바마가 달릴 수 있었지/ 버락 오바마가 달린 덕분에 이제 아이들은 날 수 있어.”

혹자는 오바마의 당선을 ‘힙합 제너레이션의 승리’라고 평하기도 한다.

미국의 힙합 매거진 <소스>는 1965년에서 1984년 사이에 태어난 미국 흑인을 가리켜 힙합 제너레이션이라고 정의한다. 이들이 바로 ‘미국 흑인 시민권 평등 운동’(1955~68)의 끝자락, 그리고 ‘블랙 파워 운동’ 중·후반기에 피어나기 시작한 힙합과 함께 성장하거나 직접적으로 그 영향을 받으며 자란 힙합 세대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엔 힙합 세대의 범위를 더 넓혀야 할 것 같다. 1984년 이후에 태어났어도 상관없고 백인이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음악이자 문화, 삶의 방식으로의 힙합을 내면화했는지 여부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면화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거부감은 없는 세대라고 할까. 단적으로 마이클 조던이나 제이지 같은 흑인을 우상으로 여기고 자랐기 때문에 오바마가 내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백인들 덕분에 오바마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러나 힙합 세대의 승리는 8년 만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힙합의 관점에서 트럼프의 당선은 로널드 레이건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힙합이 태동기를 거쳐 뻗어나가기 시작한 1980년대 미국은 당시 대통령이던 로널드 레이건의 경제 정책, 일명 ‘레이거노믹스’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시장 중심, 친기업, 반노동, 보수 강경 등의 단어로 대변되던 레이거노믹스는 그 야심 찬 시작과는 다르게 빈부 격차를 심화시켰고 그 결과 도시 빈민들은 더욱 궁지에 몰렸다. 그리고 도시 빈민의 상당수는 바로 흑인이었다.

레이건의 재임 시절을 논할 때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사건은 ‘크랙 에피데믹’이다.

이 사건은 1984년경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미국 전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벌어진 ‘크랙’이라는 신종 마약의 공급 급증을 가리킨다. 크랙은 코카인에 비해 훨씬 저렴했기 때문에 주로 가난한 흑인 사이에서 빠르게 퍼졌고 이로 인해 도시 빈민 흑인들의 삶은 직격탄을 맞았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레이건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마약과의 전쟁’을 강하게 몰아붙인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대실패를 거두었을뿐더러 흑인에게 유독 불리하게 작용하는 모양새였기 때문에 흑인의 수감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며 흑인 사회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맥락을 감안하고 나면 남부 출신 래퍼 킬러 마이크가 ‘Reagan’이라는 노래를 만들고 “난 레이건이 죽어서 기뻐(I’m glad Reagan dead)”라고 말한 이유도 납득이 간다. 참고로 킬러 마이크는 이번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를 공식 지지하며 그와 대담까지 나눈 인물이다.

한편 마약에 대해 이야기하는 퓨처의 노래 ‘Move That Dope’ 뮤직비디오에는 레이건 가면을 쓴 한 남자가 등장하고, 힙합의 새로운 구세주 켄드릭 라마의 초창기 노래 중에는 ‘Ronald Reagan Era’라는 노래가 있다.

이렇듯 최근까지도 로널드 레이건이 힙합계의 ‘공공의 적’, ‘증오의 대상’으로 건재해온 가운데 이를 비집고 트럼프라는 진정한 ‘끝판왕’이 등장했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 흑인 사회와 힙합계는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 정말로, 좋거나 유리하거나 이로운 것이 한 개도 없어 보이는걸.

그래도 한국보다는 나아 보인다는 게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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