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의 시대

호리호리한 가드가 3점 슛으로 만들어낸 NBA의 새로운 패러다임.

‘Stephen’의 발음은 [sti:vn]이다.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한글로 표기하면 ‘스티븐’이다. 스테파노(스데반)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스테파노는 그리스도교 최초의 순교자다. 복음을 전파하다가 유대인들이 내려친 돌에 맞아 숨져가면서도 “주여, 그들에게 이 죄를 돌리지 마소서”라고 외쳤다고 한다. 스테파노를 그리스어로 하면 ‘스테파노스(Stephanos)’다. 그 의미는 ‘승리의 관(冠)’. 이것이 나중에는 ‘왕’ 또는 ‘왕처럼 성공한 사람’으로 뜻이 바뀌었다.

이후 스티븐이라는 이름은 가지를 쳐나갔다. 스티븐스(Stephens), 스티븐슨(Stephenson) 등. 둘 다 ‘스티븐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알기 쉽게 ‘Steven’으로 철자가 바뀌기도 했다. 독일의 슈테판,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스페인의 에스테반, 프랑스의 에티엔 등도 뿌리가 같다. 이 이름을 쓰는 유명인으로는 소설가 스티븐 킹(Stephen King),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최근 성추문으로 곤욕을 치르는 액션 배우 스티븐 시걸(Stephen Seagal) 등이 있다.

NBA에도 이름이 ‘Stephen’인 선수가 적지 않다. 다만 그 가운데 한 명은 자신의 이름을 일반적인 발음과는 다르게 부르기를 원한다. 그가 제안하는 소리를 기호로 표기하면 [sfn]. 국립국어원은 그 발음의 한글 표기를 ‘스테픈’으로 정했다. 할 일 많은 국립국어원이 굳이 모범 표기를 새삼스럽게 발표했다는 것은 그 인물이 그만큼 국내 매체에 자주 소개된다는 뜻. NBA 선수 가운데 그처럼 영향력이 크면서도 이름이 스테픈인 선수는 단 한 명뿐이다.

그렇다. 언뜻 스포츠와 관련 없어 보이는 이름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것은 워델 스테픈 커리 2세(Wardell Stephen Curry II) 또는 스테픈 커리라고 불리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천재 슈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스테픈 커리가 슛을 던지는 광경을 영상으로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두 손으로 공을 잡고 던졌기 때문이다. 그 느낌을 감동적이었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남성적인 느낌이 덜 들어서다. 지금도 커리는 그렇게 던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느낌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커리의 슛 동작을 말하려면 슛할 때 공을 밑에서 위로 들어 올리는 동작, 즉 ‘딜리버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농구 슛 딜리버리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한 손으로 공을 들어 올리면 원 핸드 딜리버리, 두 손으로 공을 들어 올리면 투 핸드 딜리버리다. 둘의 장단점은 세 가지 기준에서 뚜렷하게 나뉜다. 첫째는 타점의 높이, 둘째는 슛 거리, 셋째는 슛 각도다. 원 핸드 딜리버리는 한쪽 팔(또는 어깨)의 회전력으로 슛하는 만큼 슛 타점이 높아진다. 슛할 때 점프하기도 쉽다. 더불어 슛 각도도 커진다. 반면 멀리 던지기는 상대적으로 어렵다. 투 핸드 딜리버리는 슛 타점이 낮고 탄도의 각도가 작은 반면 두 손으로 공을 튕겨내듯 던지기 때문에 멀리 던질 수 있다. 투 핸드 딜리버리 때 슛 타점이 낮아지고 각도가 작아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두 손으로 공을 잡아서는 높이 들어 올리지 못하며 점프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투 핸드 딜리버리로 던지는 슛을 흔히 ‘체스트 슛’이라고 부르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두 손으로 공을 잡고 들어 올리면 주로 가슴 부근에서 공이 나간다. 즉 거기서부터 릴리즈된다.

남자 선수들은 주로 슛을 던질 때 원 핸드 딜리버리를 선택한다. 안젤로 ‘행크’ 루이세티라는 20세기 초·중반의 전설적인 농구 선수가 원 핸드 점프 슛을 처음으로 선보인 이후로 정착된 관행이다. 농구 만화 <슬램덩크>의 “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그 유명한 대사 또한 원 핸드 딜리버리 때의 슛 동작을 설명하는 말이다. 강백호도 남자다. 여자 선수들이 주로 투 핸드 딜리버리를 선택한다.

그런데 스테픈 커리는 실은 어린 시절에 투 핸드 딜리버리로 슛했다고 한다. NBA 스타 출신인 델 커리의 아들답지 않게 몸이 작고 힘이 모자라 한 손으로는 공을 멀리 던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그 폼으로도 ‘슈팅 천재’라는 명성을 얻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다 한계를 절감한 것은 고등학생 때. 당시 커리의 키는 농구 선수치고는 작은 180cm였다. 그런데 슛의 타점이 낮고 슛 각도까지 완만해서 던지는 족족 슛이 블로킹에 막혔다. 그 블로킹은 커리의 대학 진학의 길마저 막았다. 농구 선수로서 그를 환대한 곳은 데이비슨 대학, 단 하나뿐이었다.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에서는 명문 대우를 받았지만 농구라는 관점에서 보면 듣도 보도 못한 그야말로 무명 대학이었다. 그때 커리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농구를 사랑하는 만큼 연습도 열심히 할게요.”

이 말은 많은 걸 시사한다. 그 전까지는 연습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뜻이며, 그래서 슛 동작이 정체돼 있었다는 의미다. 아닌 게 아니라 커리는 이후 많은 노력으로 동작을 개선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투 핸드 딜리버리와 원 핸드 딜리버리를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타점을 높이고 슛 각도가 가파르게 솟는 슛 동작이 만들어졌다. 스테픈 커리만의 독특한 슛 동작이 이렇게 탄생했다.

커리의 슛 모션을 보자. 일단 두 손으로 공을 들어 올린다. 이때 두 손과 공을 꼭짓점으로 삼아 선을 이으면 거의 정삼각형 모양이 된다. 앞에서 여자 선수처럼 슛한다는 말이 반은 옳고 반은 틀렸다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 뒤 번개처럼 빠르게 한 손으로 공을 쭉 던진다. 아니, 던진다기보다 마치 밀어올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허공으로 치솟은 공은 타고난 재능과 수많은 연습 덕에 정확하게 림을 가른다. 커리는 그 슛으로 무명의 데이비슨 대학을 NCAA 토너먼트 리그 8강까지 끌어올리는 거짓말 같은 위업을 이뤘다.

그를 슈퍼스타의 반열에 밀어올린 원동력은 성공률이 50%에 육박할 만큼 정확한 3점 슛이다. 2015~2016 시즌 커리가 성공시킨 3점 슛은 모두 402개. 이전까지 한 시즌에 300개 이상 성공시킨 선수조차 없었음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다.

이후 그가 NBA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지명된 뒤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는 짧은 문장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 “역대 최초 정규 리그 만장일치 MVP(2015~2016 시즌).”

두말할 것도 없이 스테픈 커리는 현재 NBA를 대표하는 스타 선수다. 마이클 조던 이후 대가 끊겼던 NBA 슈퍼스타의 계보를 이어나가리라는 점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단 한 가지. 그가 NBA 농구의 새로운 경향을 이끌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먼 옛날, NBA 리그는 센터 중심의 단순한 농구가 대세였다. 키 크고 미들 슛 좋은 센터들이 공수에서 대활약하며 팀의 승패를 좌우했다. 역사상 최강의 수비형 센터로 불리는 빌 러셀, 한 발 점프로 자유투 라인에서 덩크를 성공시켰다는 전설적인 득점왕 윌트 체임벌린, LA 레이커스 왕조 시대를 연 카림 압둘 자바 등이 그 시대를 대표하는 슈퍼 센터들.

그와 같은 패러다임은 마이클 조던이 등장하며 요동쳤다. 센터도 아닌 것이 코트를 종횡무진 누비며 경기 향방을 멋대로 조종했기 때문이다. 특히 득점이 반드시 필요한 결정적 순간에 조던의 득점력은 빛을 발했다. 그로써 NBA 농구는 센터의 시대에서 ‘스윙맨’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스윙맨이란 사전적으로는 ‘좌우 엔드 라인 양쪽을 오가며 슛하는, 슈팅 가드와 스몰 포워드를 겸하는 선수’를 의미한다. 그러나 조던의 경우에는 범위가 더 넓어진다. 엔드 라인 양쪽뿐 아니라 양쪽 45도 각도에서도 슛을 던져댔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정면 말고는 코트 거의 대부분을 장악하며 득점을 일삼는 선수, 그것이 바로 조던의 스윙맨이다. 스윙맨이라는 개념을 조던이 창출해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조던 이전에도 줄리어스 어빙이라는 놀라운 스윙맨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던은 그보다 더한 영향력으로 NBA 리그 전체가 스윙맨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조던이 코트를 떠난 뒤에도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았다. 스윙맨의 시대는 여전히 이어졌다. 조던 이후 스윙맨의 계보를 이은 대표적 선수가 LA 레이커스의 코비 브라이언트다. 브라이언트는 2016년 4월 은퇴했으니 그가 은퇴한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윙맨의 시대가 계속되었다는 의미다. 브라이언트를 비롯해 스타 선수는 많았지만 코트의 패러다임까지 뒤바꾸는 진정한 슈퍼스타는 없었던 것이다.

현재 그 요지부동의 경향을 뒤흔드는 선수가 바로 스테픈 커리다. 커리의 포지션은 다름 아닌 가드. NBA 역사상 단 한 번도 전면에 나선 적이 없던 ‘작은’ 포지션이다. 그 포지션이 커리 덕분에 현재 리그의 선두에 서 있다.

그를 슈퍼스타의 반열에 밀어올린 원동력은 성공률이 50%에 육박할 만큼 정확한 3점 슛이다. 2015~2016 시즌 커리가 성공시킨 3점 슛은 모두 402개. 이전까지 한 시즌에 300개 이상 성공시킨 선수조차 없었음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다. 2점도 감지덕지인데 경기마다 3점 슛을 5개 이상 성공시키니 승패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버저가 울리기 직전 하프라인 근처에서 던져대는 3점 슛은 팬들을 자지러지게 만들기 충분하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점 하나. 아무리 좋은 슈터라도 수비수가 집중 마크한다면 3점 슛을 성공시키기 힘들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할까? 정답은 쉽다. 위크 사이드(수비가 약한 지역)의 동료 선수에게 패스해 슛 찬스를 열어준다. 덕분에 커리는 어시스트도 많다.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가공할 돌파력으로 수비수를 젖힌 뒤 중거리 또는 레이업 슛을 성공시킨다.

그렇게 커리는 NBA의 새로운 경향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그 경향은 ‘3점 슛 전성시대’ 또는 ‘가드 전성시대’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데미언 릴러드,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의 러셀 웨스트브룩 등도 득점력이 뛰어난 가드들이다. 더불어 커리는 리그 전체의 인기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NBA 해설위원 케니 스미스의 평가는 커리의 위상을 증명한다는 면에서 인용할 만하다. “덩크 대신 3점 슛을 던지는 이 시대의 새로운 마이클 조던.”

나는 이 글을 2017~2018 시즌이 개막한 지 한 달이 좀 더 지난 시점에 쓰고 있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여전히 강력하고 스테픈 커리는 변함없이 슛과 어시스트를 성공시킨다. 현재 시점에서 기록을 짚어보면 26.3점으로 평균 득점 4위, 6.6개로 어시스트 10위. 자신을 스테픈이라 불러달라는 이 사내가 이번 시즌, 아니 앞으로 5년(워리어스와 계약한) 동안 연봉 총액 2억100만 달러의 값어치를 해낼지 어떨지,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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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 유준
사진 © GETTY IMAGES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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