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존엄과 최강대국의 만남

북한과 미국의 대표가 드디어 만난다.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가 5월에 만난다. 냉전 이후 북미 정상 간 만남은 상상의 영역 혹은 계획의 영역이었을 뿐 실제 성사된 적은 한 차례도 없다. 그러니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도 당연하다.

북한의 ‘최고 존엄’과 세계 최강대국 지도자 간 만남은 순식간에 결정됐다. 결정의 과정도, 결정에 걸린 시간도 모두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성사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 간접 소통은 특사 교환 방식으로 이어졌고, 평양에서 김정은을 직접 만난 우리 대북 특사단은 곧장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3월 8일(현지 시간) 워싱턴에 도착한 대북 특사단은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호출로 백악관 오벌 오피스로 불려갔고 김정은으로부터 만나자는 메시지를 전달받은 트럼프가 ‘예스’를 말하기까지 고작 45분의 시간이 걸렸다.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고, 전례 없는 일이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트럼프의 ‘지나치게’ 신속한 결정에, 김정은의 메시지를 전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 함께 배석했던 서훈 국정원장, 조윤제 주미 대사는 매우 당황했다고 한다(당초 트럼프는 남북 정상회담이 예정된 4월에 본인도 북미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면담 후 우리 측이 말려 5월로 결정했다). 북미 정상회담은 이렇게 결정됐다. 당연히 이번 북미 정상회담 추진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흥분하고 있다. 하지만 흥분보다 긴장하는 사람도 적잖다. 바로 실패의 기억 때문이다.

지난 1999년 5월 윌리엄 페리 당시 국방장관은 빌 클린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다. 대북 제재 해제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유예 조치를 맞교환하면서 북미 간 긴장은 한풀 꺾였다. 이듬해 성사된 역사적 첫 남북 정상회담으로 대화 분위기가 이어졌고 마침내 북한 조명록 당시 국방위 제1부위원장 겸 총정치국장이 2000년 10월 9~12일 워싱턴을 방문한다. 워싱턴에 도착해 내내 양복을 입고 있다가 인민복(군복)으로 갈아입고 클린턴을 만난 조명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친서를 전달하며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한다. 이에 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정상회담 추진을 위해 같은 달 25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을 만나면서 정상회담은 거의 성사되는 듯했다. 하지만 곧이어 찾아온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가 승리하면서 클린턴의 입지가 좁아졌고, 마지막까지 방북을 저울질했던 그는 공화당 등의 반대로 결국 방북을 단념하는 대신 중동 평화협상에 마지막 에너지를 쏟게 된다. 클린턴은 이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던진다. 만약 김정일, 클린턴 간 만남이 성사됐다면 과연 어땠을까. 당시 북한은 ‘고난의 행군’(1996~2000) 시기로 수십만 명이 기아 등으로 사망하는 등 극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무엇보다 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북한의 제1차 핵실험은 2006년 10월에 있었다). 따라서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문제, 북미 간 국교 정상화 문제 등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을 것이다. 역사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정상회담 무산에 대해 여전히 큰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이후 무려 18년이 지났다. 2000년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감정은 매우 복잡하다. 일단 환영할 만한 소식임에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대화 분위기인 만큼, 또 갑작스럽게 말 폭탄이 오가는 위기 분위기에서 상황은 언제든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정치·외교 문법을 완전히 파괴하며 냉·온탕을 오가는 트럼프와 저돌적인 김정은이 만났을 때 그 결과는 특히나 극단적일 수 있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만남은 역대 역사적 만남으로 기억되는 1959년 아이젠하워-흐루쇼프 회담과 비교되기도 한다. 냉전 시작 후 처음 이뤄진 미국-소련 정상 간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1972년 중국 땅을 밟은 리처드 닉슨과 마오쩌둥의 만남을 떠올린다. 그만큼 중요하고 역사적인 만남이다. 앞으로 남은 두 달이 더욱 길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번엔, 이번만큼은!

김정은의 생각은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남북 간 또는 북미 간 정상회담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지난해 8월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 발언, 북한의 ‘괌 포위 사격’ 엄포는 여전히 기억에 생생하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의 영변 핵 시설 폭격 검토 이후 한반도 위기가 가장 고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젠 만난다고 한다. 김정은이 문재인과, 김정인이 트럼프와. 그래서 궁금해진다. 왜?

김정은이 유화 공세에 나선 배경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가장 흔한 얘기는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대북 제재에 소극적이던 중국도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개발한 북한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중국의 적극적 동참으로 어느 정도 제재가 성과를 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처럼 북한이 극한 위기에 처한 경우는 과거 여러 차례 있었다. 오히려 과거에 비하면 지금의 경제 사정은 훨씬 나은 상황이다. 제재론만으로 설명이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김정은의 자신감이다.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서 자신감을 얻은 김정은이 현재 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남북, 북미 회담 모두 김정은이 제안했고, 또 성사됐다. 각자 다른 이유로 회담에 응한다고 하더라도 김정은이 형식을 주도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련의 흐름을 김정은 집권 초기부터 짜인 큰 그림으로 본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이후 권력 기반 없이 정권을 잡게 된 이 어린 지도자는 경험도 없고 세력도 없어 몇 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기대 혹은 전망과 달리 김정은은 2018년 현재 확고한 ‘최고 존엄’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삼촌인 장성택을 처형할 만큼, 형인 김정남을 독살할 만큼 강력한 실행력이 있고 남북 정상회담 장소를 ‘남측 평화의 집’으로 정할 만큼 대범하기도 하다.

김정일 시대만 하더라도 남쪽에 북한 최고지도자가 발을 내딛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갑작스럽게 잡은 권력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김정은은 대내외적으로 더욱 공세적일 수밖에 없었고 극단적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만 6년이 지난 현재, 오히려 대화를 제안할 정도로 체제 안정성과 튼튼한 권력 기반을 다졌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과 단서는 그의 확고한 리더십을 어느 정도 증명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상회담 제안과 비핵화 의지 표명은 포기, 항복의 의미라기보다 역으로 자신감의 반증일 수 있다.

트럼프의 생각은

‘작은 로켓 맨’, ‘병든 강아지’, ‘핵무기를 가진 미치광이’ 등이 그동안 트럼프가 ‘친애하는 김정은’에게 던진 비난과 조롱이다. 그랬던 그가 김정은과의 만남을 결정하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난 3월 8일 대화에 소극적이던 틸러슨 국무장관과 전화 통화를 한 뒤 정의용 실장을 만난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날 것’이라고 답하기까지는 ‘찰나의 시간’이 흘렀다는 표현(군사 분석가 제임스 제이 카라파노)까지 나온다. 그렇다면 왜?

역시 가장 흔한 설명으로, 입지가 약해진 트럼프가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외교적 성과를 내는 데 욕심을 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2016년 대선 기간부터 현재까지 트럼프를 옭아매고 있는 러시아 스캔들을 비롯해서 백악관에 데리고 들어온 딸 이방카와 사위 등 친인척과 존 켈리 비서실장 간 갈등으로 대변되는 권력 다툼, 백악관을 차례로 떠나는 측근들까지 트럼프에 우호적인 상황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최근 우방국까지 포함한 철강, 알루미늄 관세 폭탄 부과 조치 등 납득하기 어려운 경제정책에 대해 소속 당인 공화당 의원들마저 공식적으로 항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우외환이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에게 김정은의 제안은 하나의 돌파구로 보였을 것이다.

물론 혹자는 이런 고상한 설명을 거부한다. 다만 트럼프의 ‘대통령놀이’에 의심을 보낼 뿐이다. 제이 카라파노는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까지 수십 명의 세계 지도자를 만났고 이는 그를 매우 대통령처럼 보이게 한다”고 일갈했다. 보여주기,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트럼프의 개인 캐릭터가 이 같은 엄청난 결정을 가능하게 했다는 설명이다. 외교적, 전략적 선택 같은 전통적인 문법으로 해석하기보다는 트럼프의 자아가 정상회담을 가능하게 했다는 해석이다. 그가 현 상황을 민간인 시절 출연했던 리얼리티 쇼 방송으로 착각한다는 조롱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일단 기대감을 가져본다. 그것이 역사에 대한 예의일지도 모른다. 트럼프의 표현대로 전임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기존 관행과 관습에 젖지 않은 색다른 방법 말이다. 트럼프의 다소 무모한 이번 시도가 의외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믿음의 배경이다. 모든 가치의 중심을 이익에 두는 이명박, 아니 트럼프 입장에서도 전쟁보다 대화가 훨씬 남는 장사일 것이다. 희망 고문이어도 견딜 만한 고문이다.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