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위기가 온다

2018년 경제 전망. 위기는 방식과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언젠가는 오게 된다.

작년 이맘때 ‘2017 경제 전망’을 하면서 난 결코 한국 경제가 이대로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어떤 식이든 마지막 몸부림은 있을 것이고 달러 약세만 진행된다면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의외로 선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올해 코스피는 5년 반 동안 지수 1850~2100에 갇혀 있던 박스권을 상향 돌파하면서 2540포인트까지 그대로 내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는 60% 넘게 올랐다. 부동산의 경우 정부의 초강력 규제 정책에도 서울 아파트는 지속적으로 가격이 오르는 역설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2018년을 맞이하게 된다.

난 2018년 한 해의 경제 키워드로 ‘조작된 위기’ 또는 ‘가짜 위기’를 꼽았다. 뜻하지 않은 위기와 공포감이 우리를 짓누를 것이지만 그것은 가짜이고, 세계 각국은 결국 마지막 모르핀(경기 부양책)을 투여함으로써 극한의 버블 경제로 나아갈 것이란 시나리오다. 물론 투자는 예측이 아니라 ‘대응’이라고 했다. 따라서 우리는 내년에 정말 위기가 찾아오고 우리가 엄청난 공포로 벌벌 떨고 있는지 확인해야만 한다. 그다음 이 위기가 본격 불황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2009년의 양적완화 같은 또 다른 경기 부양이 시작될지 체크하자는 거다. 즉 일단 시작은 위기 국면이다.

2018 위기, 트럼프에서 시작된다

‘트럼프 기대감으로 오른 가격, 트럼프 실망감에 하락한다.’ 2018년 한 해 반드시 염두에 둘 흐름이다. 난 트럼프 이슈가 위기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본다. 생각해보자. 이제 곧 취임 1주년을 맞는 트럼프 정부가 실질적으로 이뤄놓은 것이 무엇인가.

그렇다.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없다. 최근 1년간 진행된 금융시장 상승 랠리는 정확히 말해 트럼프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깜짝 감세’를 전면에 내세운 트럼프의 세제 개편안이다. ‘감세 및 일자리 창출 법안’으로 명명된 세제 개편안은 취임 직후부터 화제였다. 트럼프는 현행 35%인 법인세율을 15%까지 낮출 것이라 호언장담하며 자신을 반대했던 기업들의 지지를 얻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이 세제 개편안은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오히려 법인세율 인하 역시 20%로 수정됐다. 그런데 이렇게 뜸을 들였던 트럼프의 세제 개편안이 내년 초까지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법인세율 역시 20%도 아닌 25% 정도로 타협된다면? 공화당 의원들에게도 트럼프의 감세 정책이 부담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만 가는 미국 정부의 재정 적자 때문이다.

국가 빚이 쌓여만 가는 상황에서 부자와 기업들 세금을 깎아준다고 밀어붙이는 행동을 하기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리고 이때쯤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러시아 스캔들’이 급부상할 것으로 예상한다. 정치적 이야기라 깊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미국 대선 기간 동안 러시아 정보기관과 트럼프 대선 캠프가 공모했고, 이후 트럼프 본인이 이 사실을 감추려 사법 방해를 했다는 의혹이 ‘러시아 스캔들’의 골자이다. 현재 뉴스에 자주 보도되지 않을 뿐이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총괄하는 ‘러시아 스캔들’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과거 대통령을 수사하는 미국의 특검은 촘촘한 그물을 넓게 던져놓은 후 긴 호흡으로 압박하는 스타일을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특검 수사의 파괴력은 더 커질 텐데, 경우에 따라 ‘트럼프 탄핵론’도 급부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트럼프가 무너지면 그다음은 무엇일까? 난 달러 약세가 주춤하고, 상당한 달러 강세 국면이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앙은행 ‘매파’의 진격

트럼프의 트럼플레이션(트럼프+인플레이션) 정책은 이미 다양한 채널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요약하면 트럼프는 태생적으로 인플레이션을 통한 완만한 버블을 선호하는데 이를 위해 인위적인 달러 약세 정책을 펼친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지난 1년간 달러 약세 정책은 정말 제대로 실행됐다. 2016년 말 103까지 찍었던 달러 인덱스는 2017년 내내 지속적으로 하락해 90선이 붕괴될 상황까지 처했고, 연초 다수의 증권사들은 원/달러 환율이 1250원을 넘을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1100선도 위협할 정도의 원화 강세(달러 약세)가 나타났다. 특히 트럼프의 달러 약세 정책은 제롬 파월 연준이사를 차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하 연준) 의장으로 임명하면서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다. 경제학 학위도 없고 이코노미스트 경력도 없는 로스쿨 출신 행정가인 파월은 금리를 최대한 천천히 올리고, 월가를 압박하는 금융 규제인 도트-프랭크법을 대폭 수정(또는 폐기)할 것을 공언해온 인물이다. 모든 것이 착착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연준은 결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수많은 음모론 책에서 ‘악의 근원’으로 지목됐던 연준이 트럼프의 손아귀에 놀아난다는 걸 쉽게 인정할 수 없다. 우선 주목할 대목은 공석이 된 ‘연준 부의장’ 자리이다. 11월 현재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존 테일러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 같은 강력한 매파 스타일이 지명되면 연준 분위기는 확 바뀔 수 있다. 참고로 테일러 교수는 그간 금융완화 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고, 트럼프가 추진하는 금융 규제 폐지에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인물이다. 기억할지 모르지만 올 10월엔 미국 경제학계의 영원한 스승 스탠리 피셔 연준 부의장이 전격 사임했다. 피셔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빨리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강력한 매파적 발언을 던졌고 ‘달러 강세가 필요한 때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미련 없이 연준을 떠났던 거다. 그런데 이 자리에 테일러 교수처럼(또 다른 누구든) 기축통화인 미 달러화의 위상을 지켜야 한다는 매파가 등장한다면, 그리고 그 시점에 트럼프의 위상이 흔들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난 연준 내부의 반(反)트럼프 세력이 득세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리고 그간 소외됐던 매파들의 ‘달러를 지키자’는 외침이 커질 것이고 결국 급격한 금리 인상과 자산 축소에 나설 수 있다. 특히 연준이 이렇게 폼을 잡으면 한국은행을 포함한 세계 각국 은행도 각을 잡을 것이고 긴축 파괴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때쯤 우리에게 익숙한 금융 위기 시나리오가 다가올 것이다. 달러 강세, 원화 가치 하락, 양털 깎기 등등이다. 여기에 2018년 연초부터 바젤III가 본격화되고 은행들의 자기자본 비중을 높이는 규제(IFRS9)가 실행되면 위기와 공포 분위기는 더 심화될 수 있다. 아마 비슷한 시기에 그간 기세등등했던 비트코인(BTC)이 크게 무너질 것으로 전망한다.

2018년의 경제 키워드로 ‘조작된 위기’를 꼽겠다. 뜻하지 않는 위기와 공포감이 우리를 짓누를 것이지만 이것은 가짜고, 세계 각국이 결국 마지막 경기 부양책을 사용함으로써 극한의 버블 경제로 나아갈 것이란 시나리오다.

반도체 슈퍼 호황과 삼성전자, 코스피 1900

2017년 말 국내 증권업계가 내놓은 코스피 전망은 2600포인트부터 2800포인트까지 매우 긍정적이다. 코스피의 영원한 원톱인 삼성전자 전망도 궤를 같이한다. 국내 증권사 중에서는 목표 주가로 주당 380만원을 외친 곳도 있고, 외국계 증권사인 다이와 증권은 주당 410만원을 불렀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정말로 300만원을 넘어선다면 다음부터는 목표 주가가 무의미하다. 기존 메이저 주포가 끌고 가고 싶은 곳까지 올라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부정적인 쪽이다. 트럼프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고 입지가 흔들리고, 연준의 매파들이 득세하고 금리 인상 공포가 확산된다면 유동성 랠리는 멈춘다고 봐야 한다. 여기에 다들 반도체 슈퍼 호황이 3년은 거뜬하다고 하지만 솔직히 누구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2017년 상반기가 정점이었을 수도 있다. 특히 과거 모습을 보면 반도체 호황의 끝은 꽤나 비극적이었다.

반도체 1차 호황인 1993~1995년이 끝나고 한국 경제는 IMF 외환 위기를 맞았고, 2차 호황이었던 2002∼2004년 후엔 2008년 말 세계 금융 위기가 찾아왔다. 물론 나도 삼성전자 주식이 300만원을 돌파하고 코스피도 2600선 이상으로 튀어 오르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투자자라면 정반대 상황도 염두에 두길 바란다. 자칫 반도체 경기에 이상 신호라도 나온다면 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게 코스피이기 때문이다. 지수 전망은 항상 조심스럽지만 ‘조작된 위기’ 관점에서 보면 1900포인트는 만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작된 위기 다음은? 불황이냐 모르핀이냐

앞서 난 내년 한 해를 관통하는 경제 키워드에 대해 ‘조작된 위기’ 또는 ‘가짜 위기’라고 했다. 이 키워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분명 위기는 위기인데 이게 정말 불황으로 가는 위기인지, 아니면 위기와 공포감을 핑계 삼아 한 번 더 양적완화 같은 모르핀을 투약할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난 후자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있다. 2017년에 나타났던 자산 가격 상승이 불황 직전에 나오는 버블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과거 경험상 이 정도 인플레 상황에서 시장이 무너지는 경우는 없었다. 결국 완전히 망가지려면 그 전에 하이퍼 인플레이션 수준의 더 큰 버블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는 2018년 시장의 모습은 주가도 한 20% 넘게 조정받고, 부동산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공포감이 빠르게 확산된다. 달러 가치도 튀어 오르고, 원/달러 환율도 달러당 1250원 선을 넘으면서 과거 ‘양털 깎기’의 괴로운 추억이 다시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난 이때쯤 반전이 나올 것으로 본다. 내년 연말쯤 미국을 위시한 세계 각국은 시장이 무너지면 안 된다며 머니타이제이션(monetization, 중앙은행과 정부가 상호 채권, 채무를 소각하는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초강력 모르핀을 투여한다는 예측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대응이 나오려면 위기가, 사람들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할 공포가 찾아와야만 한다. 물론 중요한 경제지표를 통해 상황을 계속 체크할 필요는 있다. 가령 달러 인덱스가 다시 103포인트를 상향 돌파하고 그대로 슈퍼 달러 시대로 간다면, 원/달러 환율이 1250~1290원 선을 깨고 1300~1350원 선 위로 올라가버린다면, 이때는 위기가 조작된 위기가 아닌 진짜 위기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반면 원/달러 환율이 1300원 선을 넘지 못하는데 겁만 주고 있다면 이건 조작된 위기이고 곧 모르핀이 투약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 경우 1900선 대로 떨어졌던 코스피는 어디까지 오를지 알 수 없다. 3000포인트도 어렵지 않을 텐데, 이때 비로소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나올 수 있다. 어떤 쪽이든 2018년 투자로는 달러 인덱스와 원/달러 환율로 잡으면 좋을 것 같다.

국제 유가와 국제 금값도 핵심 지표이다. 단적으로 말해 세계경제가 위기와 공포 속에 ‘달러 유아독존’이 되는지 아닌지를 살펴야 한다. 만약 달러 가치가 오르는 달러 강세인데 국제 유가와 국제 금값도 함께 오른다면 이건 조작된 위기일 가능성이 높다. 위기가 장기 불황으로 이어진다면 최고 자산은 달러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가와 금값도 함께 오른다는 건 달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고, 어디에선가 경기 부양의 모르핀을 준비하고 있다고 통찰해야 한다. 짧게 부동산 투자를 언급한다면 주식과 비슷한 대응을 염두에 두면 될 것 같다. 만약 2018년에 찾아오는 위기가 조작된 위기라면 조정은 있어도 마지막 시세 분출이 남아 있는 것이고, 진짜 위기라면 부동산 경기는 2006년과 2017년 쌍봉을 찍고 완전히 무너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지난 2012년부터 ‘달러 시대의 종말’을 꾸준히 주장해왔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미 달러는 건재하다. 내년 연초부터 중앙은행들이 긴축을 몰아친다면 달러는 더 기세등등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끊임없는 의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세계 역사상 몰락하지 않은 기축통화는 없었고, 기축통화가 무너질 때는 예외 없이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으니까. 2018년의 위기를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사악한 거대 자본 세력에 많은 것을 빼앗기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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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정 철진(경제 칼럼니스트)
출처
27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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