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아이들의 지도

1930년대의 아동용 지도에서도 보이는 대일본제국의 희미한 균열.

<소녀 클럽> 1930년 4월호 부록 대일본 판지도. 일본 제국 시절의 지리 개념을 알 수 있는 자료다. 그나저나 <소녀 클럽>의 부록이 지도라니 당시 소녀의 교양 중에는 대일본제국의 범위 숙지도 포함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의 책은 1930년대 대일본제국의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보던 사회과 참고 교재다. 왜 ‘일본’이 아니라 ‘대일본제국’이라는 말을 썼는지 의아해할 독자가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지점이 이 글의 주제다.

1868년에 일본은 메이지유신과 보신전쟁(戊辰戰爭)이라는 내전을 겪었다. 이때부터 일본은 류쿠인이 사는 오키나와, 아이누인 등이 사는 홋카이도와 쿠릴 열도, 사할린, 조선인이 사는 한반도, 한인과 여러 고산족이 사는 타이완과 관둥저우 등을 일본 영토로 편입시켰다. 다수의 한인과 소수의 만주인 및 몽골인이 살았던 만주국 역시 형식적으로만 독립국일 뿐 사실상 일본이 지배했다.

그 결과 일본이라는 국가의 형태가 큰 폭으로 변하게 된다. 기존의 일본은 야마토인이라는 단일민족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살던 나라였다. 그러다 여러 민족이 사는 여러 지역을 흡수한 다민족국가 대일본제국이 되었다. 일본인에게 이 상황은 겪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자국의 영토가 넓어진 건 기쁨, 갑자기 여러 민족이 자신의 나라 안에서 섞여 살게 된 건 당혹이었다.

많은 일본인이 이 상황에 혼란을 느꼈다. 국민 개개인뿐 아니라 일본 정부 안에서도 의견이 달랐다. 예를 들면 대일본제국의 모든 국민에게 일본식 이름을 주어야 할까? 한 가지 타입의 이름을 줘서 민족의 구분을 없애야 할까? 일본식 이름을 준다면 그 이름은 원래 일본인과 구별되어야 할까, 같아야 할까? 라이베리아의 독재자 찰스 테일러(그는 아프리카인이다)의 민족을 이름만으로 구별하긴 힘들다. 일본도 이래야 할까?

게이오 대학 역사사회학 교수 오구마 에이지는 이 문제를 파고들었다. 그의 저서 <일본 단일민족신화의 기원>에 창씨개명 이야기가 나온다. 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한반도 주민에게는 창씨개명을 강요했고 타이완 주민에게는 창씨개명을 선별적으로 허가했다. 같은 대일본제국 국민인데도. 한편 한반도 주민들이 창씨개명한 성씨는 가야마나 다카키 등 원래 일본인과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반면 오키나와 주민의 성씨는 일본 사람이라면 오키나와 사람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요나하나 시마부쿠로 등이었다(그래서 아직까지 일본 본토에 사는 오키나와 사람이 성씨 때문에 종종 차별을 당한다). 그런데 이렇게 오키나와인처럼 한눈에 이민족임을 구분할 수 있는 성씨를 줘야 원래 일본인의 순수성이 지켜진다고 주장한 국수주의자도 많았다.

조선인과 타이완인에 대한 징병 문제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원래 일본군은 제국에 새롭게 편입된 민족을 군인으로 삼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들 민족을 입대시킨다면 젊은이들의 피의 값, 즉 말 그대로 혈세에 상응하는 권리를 각 민족에게 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랬으니 인도인을 편성한 영국군이나 흑인을 편성한 미군에 비해 일본군은 수적 열세에 놓였다. 미국도 남북전쟁 때 남부 백인이 흑인을 차별해서 입대시키지 않다가 북부에 비해 병력이 너무 부족해지자 그제야 흑인을 군대에 편입시켰다. 대일본제국도 당시의 미국 남부와 비슷했다.

제국의 건설과 운영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다른 지역과 민족을 병합해 제국을 만드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제국을 운영하는 일은 방금 든 예처럼 복잡하다. 다른 지역의 다른 민족이라는 다른 입장을 고려하다 보면 늘 굉장히 어려운 모순과 마주하게 된다. 그 모순은 제국의 정책처럼 크고 거대한 부분뿐 아니라 아동용 대일본 판지도(大日本板地圖)에서까지 확인된다.

대일본 판지도로 구성해본 일본 본토. 이때까지만 해도 홋카이도는 일본 본토가 아니었다.

대일본 판지도는 당시 일본의 학생용 사회과 교보재다. 지금 한국의 <사회과 부도>와 닮았다. 대일본 판지도는 잡지 <소녀 클럽>의 1930년 4월호 부록이다. 포장지 뒷면에 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이름과 학교가 적혀 있다. 나가노현 나카가와테무라에 있는 심상고등소학교 4학년 우치카와 다케하루. 이름을 보니 남자다. 누나가 잡지 부록을 동생에게 주었거나 우치카와 본인이 이 부록을 갖고 싶어서 소녀 잡지를 산 모양이다. ‘japanesegeography’, ‘Nakakawate’, ‘uchikawa’ 등의 낙서 필체를 보니 그즈음 영어 필기체 공부를 시작한 것 같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후엔 적국의 언어인 영어 학습이 금지되었지만 1930년까지는 아직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8개 조각의 퍼즐로 이루어진 조선 지방 판지도. 한반도보다 면적이 넓은 홋카이도 퍼즐이 한 조각으로 된 걸로 봐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관심이 컸던 걸 알 수 있다.

대일본 판지도 속 일본은 지금의 일본보다 넓다. 이 지도 안에는 전근대까지의 일본인 혼슈, 시코쿠, 규슈를 넘어 메이지유신 이후 획득한 홋카이도, 사할린, 쿠릴 열도, 타이완, 한반도가 모두 담겨 있다. 학생들은 대일본 판지도에 포함된 각 지역의 퍼즐 조각을 떼어내 조각 맞추기 놀이를 하면 된다. 각 지역 퍼즐 조각 뒷면엔 그 지역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즉 대일본제국이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그곳은 어떤 곳인지 알려주는 게 이 교보재의 목적이었다.

퍼즐로 된 대일본 판지도는 아무리 너그럽게 봐줘도 도저히 재미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교육적 목적이 너무 강해서 재미 요소가 전혀 없다. 게다가 타이완, 홋카이도, 사할린 등은 각각 한 조각이 통으로 되어 있다. 홋카이도는 현재의 한국보다도 넓지만 통 퍼즐 한 조각으로 되어 있다. 이들 지방에 대한 무성의함이 진하게 느껴진다.

대일본 판지도가 나왔을 때는 사할린도 일본 땅이었다. 일본어로 가라후토라 부르는 곳이 사할린이다. 사할린 남부 지역 퍼즐 뒷면에는 이곳이 러시아와의 국경임이 강조되어 있다. 대일본 판지도가 나오기 5년 전인 1925년까지는 사할린 북부까지도 일본 땅이었다. 이 사연을 알려면 올해로부터 딱 1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떠올려야 한다. 1917년 10월 발발한 러시아혁명이다.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영국, 프랑스, 체코슬로바키아, 중국, 미국, 일본 등이 러시아를 침공했다. 볼셰비키 정부로부터 권력을 되찾겠다는 백군 세력을 돕기 위해서였다. 백군 지원이라는 원래 목적에 충실한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은 시베리아에 자기 세력을 심는 데 몰두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사할린 북부를 무단 점령했다. 국제적 비난이 거세지자 1925년 마지 못해 군대를 철수시켰다.

한편 조선 지방 판지도의 한반도는 8개 조각의 퍼즐로 이루어져 있다. 홋카이도도 한 조각인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다른 외지 영토에 비해 퍼즐 조각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여타 지역에 비해 컸다는 의미다. 뒷면의 ‘주목할 점’에서는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이 정리되어 있다. “조선 지도를 간략히 그리고 나서 주요 산맥·하천·평야를 그려 넣어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조선은 저절로 세 부분으로 구분됨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해(동해) 방면에 비해 황해와 조선해협(대한해협) 방면에 평야가 많은 것은 어째서일까요? 조선의 농산물·광산물·임산물의 종류와 분포 상태를 조사하고 그 가운데 내지(內地: 일본) 및 지나(支那: 중국)에 보내지는 것을 말해보십시오.”

대일본 판지도에는 역사 이야기도 있다. 함경북도 퍼즐 뒷면에는 임진왜란 첫해인 1592년에 가토 기요마사가 여기서 조선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을 잡았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평안남도 퍼즐 뒷면에서는 평양이 임진왜란과 청일전쟁의 전적지였다는 사실이 언급된다. 충청남도 퍼즐 뒷면에도 성환과 아산이 청일전쟁 당시 전쟁터였다고 적혀 있다. 선별적으로 적어둔 역사에서 교보재를 만든 사람들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대일본제국의 어린이들에게 주입하려던 한반도의 이미지가 이런 것이다. 한반도는 곳곳에 일본이 승리한 흔적이 남아 있는 땅이라는 것. 그러니 일본의 한반도 지배도 당연하다는 것.

오키나와는 물론 대만도 제국의 일부였다. 그나저나 아무리 봐도 재미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대만을 볼 차례다. 대만 지방 판지도 뒷면의 ‘주목할 점’에는 타이완에서 공업이 농업보다 발전한 이유를 묻는다. “이 지방에는 어떤 특산물이 있습니까? 또 이제까지 가장 번성했던 농업을 공업이 능가하게 된 것은 어째서입니까?” 타이완 총독부가 타이완의 공업화에 힘을 기울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타이완섬 퍼즐 뒷면에 실린 행정구역 설명 중 타이난주 항목을 보자. “동부 지역에 있는 신고산(新高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그 높이는 3950m다.”

이 부분이 흥미롭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나라’는 ‘대일본제국’이다. ‘대일본제국’ 전의 ‘일본’이었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은 후지산이 되어야 한다. 대일본 판지도 속 후지산의 설명은 “다섯 호수는 풍경이 아름다워 내외 사람들의 상찬을 받는다”에서 끝난다. 일본 정신을 외치는 민족주의자라면 인정하기 어려운 정도의 취급이다. 이런 면에서 대일본 판지도의 의도는 명확하다. 이 지도를 만든 사람들은 단일민족국가 일본이 아닌 다민족국가 대일본제국의 현실을 가르쳐주고 싶어 하고 있다.

뒤표지에 실린 시 ‘일본 지도를 읊다’. 일본이 제국적 영토는 가졌지만 제국 경영자적 사고방식은 가지지 못했다는 증거.

그러나 대일본 판지도 곳곳에서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사람의 갈팡질팡하는 태도가 보인다. 이 지도 뒤표지에는 ‘일본 지도를 읊다’라는 시가 수록됐다. 이 시에는 타이완과 한반도와 사할린 남부, 즉 새로 대일본제국에 편입된 영토 이야기가 없다. 남신 이자나기와 여신 이자나미가 바다 위에 만들었다는 일본을 칭송할 뿐이다. ‘일본이야말로 시로 읊어 칭송해야 할 곳이다. 대일본제국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고 싶지 않다’는 인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 시는 사이조 야소(西條八十)가 지었다. 그의 이름인 야소(八十)부터 일본 열도를 가리키는 야소시마(八十島)에서 따왔다. 이름부터 국수주의적인 사람의 국수주의적인 시가 국제적인 지도책에 나온다. 내용과 표지 사이의 불일치, 일본과 대일본제국 사이의 인식의 불일치다.

대일본제국은 거창한 이름을 지탱할 만한 논리가 부족했다. 통일된 인식도 없었다. 그 결과 대일본제국의 일본인은 새롭게 제국의 국민이 된 민족을 계속 차별했다. 이 점에서 대일본제국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러시아, 미국 같은 제국과는 조금 결이 다른 제국이었다. 차별의 끝은 좋지 않다. 대일본제국은 붕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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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 시덕(문헌학자, 작가)
사진정 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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