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은 누구의 책임인가

저출산 문제의 원인은 여성이 아니다.

앞으로 30년간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아니 한국 경제의 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는 단 한 가지 악재를 꼽으라면 무엇일까. 가계 부채? 소득 양극화? 강남 집값과 높은 임대료? 반도체 이후 핵심 먹거리 산업 부재? 모두 악영향을 주겠지만 훨씬 더 파괴적이고 구조적이고 집요하면서 회복 불가능한 사안이 있다. 바로 저출산이다.

경제는 단적으로 말해 ‘쪽수 게임’이다. 한 국가의 인구가, 나아가 세계 인구가 일정 규모 이상에서 움직여야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 가령 한 생명이 태어나서 자라고 배우고 일하고 집을 사고 결혼하고 애 낳고 병들고 다치고 죽는 일련의 과정 모두가 경제행위에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각 과정마다 생산과 소비의 무한 반복이 이뤄지면서 경제가 돌아가고 또 성장한다. 그런데 저출산은 이 과정의 시작점인 생명의 탄생이 줄어든다는 걸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경제는 성장 탄력이 떨어지고 규모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임계점을 넘는 순간 그대로 무너진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세계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당분간 분위기가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이런 상황에서 꽤 많은 연구 기관이 한국의 저출산 이유를 심도 있게 파고들었다.

저출산은 누구의 책임인가

지난 2017년 국내 출생아 수는 36만여 명이었다. 2016년(40만6200명) 가까스로 지켰던 40만 명 선이 깨진 것으로, 합계 출산율은 1.2명대로 떨어져 세계 224개국 중 219위였다. 요즘 초등학교에 가보면 ‘휑’해졌다는 걸 단박에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올해 서울 시내 공립 초등학교 557곳의 입학 대상자는 지난해보다 1615명(2.05%) 감소했다. 지역적 특수성도 있겠지만 어쨌든 신입생이 50명 이하인 곳도 37곳에 이른다. 이제 한국 사회의 저출산이 시시각각 피부로 느껴질 만큼 현실로 다가왔다. 그리고 올해부터 우리 사회는 생산 가능 인구(15~64세)가 본격적으로 순감(純減)하는 ‘인구 오너스(demographic onus)’ 시대로 돌입했다. 이런 상태라면 2030년 이후 생산 가능 인구는 3000만 명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렇게 되면 당분간 한국 경제는 작년에 기록한 3.2% 경제성장률이 다시는 보지 못할 꿈의 숫자로 남게 될 것이다. 내수는 당연히 붕괴되고 무역도 흑자를 낼 순 있어도 교역 규모는 폭발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다른 문제도 있다. 지금은 극심한 취업난이지만 6~7년 후부터는 인력난이 발생할 수도 있다. 10년간 우리나라는 780여만 명의 노동 인력이 필요한데, 저출산으로 인해 실제 공급은 740여만 명에 그칠 전망이고, 그다음 10년은 더 극심한 인력 부족을 만나게 된다. 일할 사람이 없어 경제가 멈춰 선다는 뜻이다.

대체 왜 우린 세계 최악의 저출산 국가가 됐을까. 어쩌다가 자유로운 인생을 추구한다는 서유럽 국가보다 더 아이를 낳지 않게 됐는가. 연구 초기에는 출산율 저하의 핵심 이유를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에서 찾았다. 근거는 충분했다. 여성들이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니까 아이를 안 낳는다는 식의 연역적 논리. 몇몇 선진국에서 실제로 이런 사례가 확인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난 1997년 IMF 외환 위기 이후 국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꾸준히 늘었다. 저출산의 시작도 1990년대 후반부터였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추론이 상당 기간 유효했고, 일각에선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여성들이 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후 반전이 일어났다. 저출산에 대한 연구가 심화될수록 이 추론에 대한 오류가 드러난 것이다. 일단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졌기 때문에 출산율이 떨어졌다는 기존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둘째 아이 출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뿐이었다. 즉 여성이 일한다는 사실과 저출산의 상관관계는 낮으며, 단지 둘째를 낳는 것을 망설이는 여러 이유 중 하나라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57% 수준에 정착돼 있는 미국이나 60%에 달하는 독일을 보자. 정말 저출산 문제가 여성이 일하러 나갔기 때문에 심화됐다면 독일은 지금쯤 저출산 왕국이 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독일은 출산율이 1.5명으로 우리보다 훨씬 높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의 진짜 원인은 대체 무엇인가.

“왜 결혼을 안 하는지 정말 모르세요?”

다시 원점에서 출발한 연구들은 ‘한국의 경우 혼인율 하락이 저출산의 핵심이다’라는 새로운 결론에 다다랐다. 가령 인구 1000명당 출생한 인구 비율 추정치를 보면, 1990년 15.2명에서 2016년 7.9명으로 반 토막이 났다. 그런데 이 시기 혼인율도 1990년 인구 1000명당 9.3명에서 2016년 5.5명으로 급감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결국 1990년대 이후 ‘급격하게 떨어진 혼인율이 저출산의 주범’이라는 학설이 다수설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혹시 이 대목에서 “이건 밥 많이 먹으면 배부르다는 이야기 아닌가요?”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렇다. 결혼을 하지 않으니까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다. 그러나 여기엔 새로운 시사점이 내포돼 있다. 우리는 출산을 반드시 결혼과 연계시킨다. 우리 머릿속에는 ‘결혼을 해야만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이 관념화돼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 쪽에는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는 낳을 수 있다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실제 프랑스에선 비혼 출산 비율이 50%가 넘지만 우리나라는 1.8%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런 점에 착안해 한때 저출산 해법으로 호적 문제 등 제도적으로 ‘비혼(非婚)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꼭 결혼하지 않고 동거를 하다 아이를 낳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학자도 등장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돌아봤을 때 역공을 맞기에 딱 좋다. 효율성은 매우 높겠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은 해법이다.

어쨌든 이렇게 수많은 연구와 분석을 통해 드디어 저출산 관련 해법의 로드맵이 확정됐다. 우선 혼인율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다음에는 둘째 아이 출산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 쪽으로 나아가면 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또다시 높은 장벽에 갇혀버리고 만다. 혼인율을 높인다는 것이 절대 호락호락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지금 이렇게 반문한다. “결혼을 왜 안 하는지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요?” 정말 모르겠다면 서울에서 집을 장만하는 데 12년간 월급을 단 1원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는 뉴스를 생각해보라.

다시 막막해졌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혼인율을 높여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당분간 결코 ‘결혼 러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급격하게 떨어져만 가는 혼인율과 최대한 늦게 결혼하려는 만혼 트렌드는 단기간 극복 방법이 없다. 한국의 경제와 사회 구조를 다 뜯어고쳐야 하는, 30년 이상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한 장기 과제이다. 그럼 우리의 저출산 대책은 완전 불가능한 건가? 그냥 속수무책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나? 이렇게 저출산 해결이 암울해지는 가운데 홀연히 등장한 키워드가 있었다. 바로 ‘여성’ 이다.

이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여성’과 ‘여성의 고용 안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제야 우리는 이런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

여성의 고용 안정 vs 여성의 능력 인정

지난 2006년부터 우리 정부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쏟아부은 예산 규모는 이것저것 다 합쳐 200조원에 달한다. 12년간 200조원이나 들였는데도 세계 꼴지를 탈피하기는커녕 더 확실한 꼴찌가 됐다니. 그간 우리 정부의 저출산 정책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당국에선 10년 가까이 모든 초점을 ‘보육’에 맞췄다. 아이를 기르는 과정에만 올인해 돈을 쏟아부었다는 건데, 천문학적인 세금이 허공 속에 흩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보육료와 양육 수당은 분명 이미 아이를 낳은 가정엔 도움이 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아이를 막 낳는 건 결코 아니다.

독일도 우리와 유사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아이만 낳으면 매달 수백 유로에 달하는 양육 수당을 지급하는데도 출산율이 반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바로 ‘가임 여성이 출산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었다. 아무리 보육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상당액의 양육 수당을 지급해도 여성이 출산을 일방적인 희생이라고 느낀다면 백약이 무효이다. 아니, 그럼 “매달 아이 한 명당 50만원씩 양육 수당 줘봐, 아이 왕창 낳을걸”이라는 발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안타깝게도 이건 남성들의 생각이다. 이러한 상황은 독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여성 스스로 출산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찾아냈고 이후 역설적으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더 끌어올리자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런 해법은 적중했다. 독일의 경우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50% 후반대로 갈수록, 그리고 60%를 넘어서면서 출산율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적극적으로 일하고, 고용 안정을 느끼면서 여성들은 자신에 대한, 그리고 아이 양육에 대한 자신감이 함께 커졌고 이런 자신감이 쌓이자 본격적으로 출산율이 급반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독일의 이런 일련의 과정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겨우 40%대에서 50%대로 진입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편이 실업자가 됐어도, 싱글 맘이 됐어도 여성 스스로 아이의 양육을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이 확고해질수록 저출산의 두꺼운 방어벽이 무너질 가능성도 커진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저출산 해법의 초점을 ‘일하는 여성’과 ‘여성의 고용 안정’에 맞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정말 돌고 돌아온 길이었지만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 같다. 다만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 구조 조정의 이유가 되는 것을 막는 보완책이 시급하다. 왜 한국 여성의 경력 단절이 이토록 높은가. 역설적이게도 바로 출산 때문이다. 아이를 낳으려다 경력이 단절된 거다. 그런데 그 임신과 출산으로 생긴 단절된 경력을 꼬투리 잡는다면 경제활동 참가율과 무관하게 출산율 증가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대목에서 여성의 노동 생산성을 지적할 수 있다. 여성의 업무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말하는 사람도 있을 줄 안다. 자신의 직장에서 욕먹는 여성 동료 이야기를 꺼낼 수도 있고, “여성 스스로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냉정하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논쟁과는 별개로 아이 양육에 남편보다 아내가 더 많은 에너지를 할애하는 우리 현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런 불공정만큼은 보정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이스라엘은 2010년 이후 줄곧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부동의 출산율 1위이다. 여성 1인당 3.09명을 낳았다. 우리나라의 2배가 훌쩍 넘는 수치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스라엘 여성은 세계에서 가장 독립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 결국 여성이 더 자신감을 가질수록, 더 독립적이 될수록 저출산 문제는 빠르게 해결될 수 있다. 사족(蛇足). 혹시 몰라서 덧붙이자면, 이런 결론이 곧 남성이 자신감을 상실하고 의존적이 되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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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정 철진(경제 칼럼니스트)
출처
3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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