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디테일이 다른 시계들

고급 시계는 디테일 역시 다르다. 괜히 고급 시계가 아니다.

롤렉스 에어-킹 600만원대. 익스플로러와 여러모로 비슷해졌다. 가격도 크기도.

롤렉스 | 에어-킹

2016년에 새로 나온 롤렉스 에어-킹이다. 에어-킹은 오랫동안 작은 케이스로 나오다 잠깐 생산을 멈추고 시계 박람회인 바젤월드 2016에서 새로 선보였다.

새로 나온 에어-킹은 크기가 커지고 자성 차단 성능이 좋아졌다. 새로운 부분도 있고 여전한 부분도 있다. 하나의 시계 안에서 보수와 진보가 적절한 균형을 이룬다는 뜻이다. 롤렉스는 이렇게 날로 새로워진다.

두께 로고가 변화라면 두께는 보수다. 롤렉스는 얇은 시계를 만든 적이 없다. 사진을 보면 측면의 곡선을 잘 살려 두께가 얇아 보이지만 사실은 뒤에 볼록 나온 부분만큼 더 두꺼운 걸 알 수 있다. 이 두께로 롤렉스는 방수 성능과 작동 안정성을 얻는다. 100미터 방수가 되고 일 오차는 2초다.


그랜드 세이코 SGBH001 700만원대. 같은 가격의 다른 시계에 비해 확실히 품이 많이 들어갔다.

그랜드 세이코 | SGBH 001

기능과 완성도를 놓고 봤을 때 롤렉스의 가장 유력한 경쟁자는 다름 아닌 그랜드 세이코다. 그랜드 세이코는 정확도와 견고함에서 스위스의 강자들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시계를 만든다.

6시 방향의 GS는 정말 좋은 시계라는 표식이다. 인지도에 큰 차이가 있고 일본 기업이 덮어쓰는 미묘한 감점이 있지만 그랜드 세이코는 렉서스처럼 꾸준히 팔린다.

다이얼 그랜드 세이코의 기본 시계는 롤렉스를 비롯한 다른 시계와 달리 야광 처리를 하지 않았다. 대신 시침과 분침의 가장자리를 한 번 더 사선으로 깎았다. 이 부분에 빛이 조금만 들어와도 반사광으로 시간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초침의 푸른색도 칠이 아니라 열처리다. 이게 다 단가다.

세공 3단 브레이슬릿의 광택 처리를 보자. 보통 시계는 가운데에 반짝이는 폴리싱 처리를, 가장자리 부품엔 은은한 브러싱 처리를 한다. 그랜드 세이코는 가운데를 브러싱 처리하고 양쪽 끝만 폴리싱 처리했다. 러그의 모서리도 남들이 한 번 깎으면 그랜드 세이코는 3단으로 깎는다. 손이 더 간다는 이야기다. 이런 것도 다 단가다.


피아제 알티플라노 900P 2억700만원. 다이아몬드 장식 때문에 조금 더 비싸다.

피아제 | 알티플라노 900P

피아제가 두께에 엄청나게 집착하던 때가 있었다. 힙합 유행에 상관없이 득음에 성공한 록 발라드 가수처럼 피아제는 얇음의 끝이라 할 만한 시계를 만들었다. 보통 손목시계는 케이스 안에 무브먼트가 들어간다.

피아제 알티플라노 900P는 케이스와 무브먼트 판이 일체형이다. 그만큼 시계가 더 얇아진다. 다만 이런 시계가 고장 나거나 파손될 경우는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앞면 피아제는 시계의 두께를 줄이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고 그 사실을 숨기지도 않는다. 시계의 구동부를 이루는 주요 부품이 뒤도 아니고 앞에 노출되어 있다. 기계식 시계가 움직이는 한 계속 좌우로 회전하는 탈진기가 시계 바로 밑에서 까딱거린다. 기술이 미적 요소로 구현되는 순간이다.

옆면 3.65밀리미터. 조금이라도 더 얇게 만들려고 노력한 결과 피아제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기계식 시계 부문에 알티플라노 900P의 이름을 올렸다. 관심 없는 사람이 보면 이게 뭐냐 싶겠지만 아이돌에게 가요 프로그램 1위의 의미와 비슷하다. 뭐가 됐든 최고는 대단한 것이다.


티파니 CT 60 3 핸즈 600만원대. 가죽 줄로 사면 가격이 좀 저렴해진다.

티파니 | CT 60 3핸즈

이번에소개하는티파니와롤렉스, 그랜드 세이코는 각자 서로의 흥미로운 대조군이다. 시간만 보여주는 기본적 시계라 해도 방향성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

티파니의 방향성은 기계식 시계의 대표(롤렉스)와 다른 건 물론 집념의 금속 세공 강자(세이코)와도 다르다. 티파니 시계의 특징은 적당히 반짝이는 광택감과 복고적인 다이얼 레이아웃 구성에서 비롯된 익숙함이다.

폰트 시계 다이얼에 숫자를 넣느냐 안 넣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엄청나게 달라진다. 티파니는 20세기의 빈티지 티파니 폰트를 사용해 안에 금박을 집어넣었다. 이렇게 티파니의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시계 다이얼에 얹혔다. 요즘 시계의 경향 중 하나인 복고 무드도 만족시킨다. 영리한 디테일이다.

브레이슬릿 보석의 아름다움은 반사광에서 온다. 티파니는 그걸 다루는 법을 너무 잘 안다. 빛에 대한 통찰은 CT60의 브레이슬릿에서도 드러난다. 티파니는 여느 시계 브랜드와 달리 브레이슬릿을 이루는 조각의 위아래를 깎았다. 반사광을 받을 부분이 넓어진다. 더 반짝거리고 잘 보인다. 영리하다.


까르띠에 탱크 솔로 410만원. 스트랩 개당 18만9000원. 줄만 바꿔도 시계를 바꾼 기분이 든다.

까르띠에 | 탱크 솔로 XL

까르띠에는 고급 시계 브랜드의 무기를 다 갖췄다. 기술력에 기반한 신제품, 전통에 기반한 아이콘, 이 둘로 라인업을 끝없이 늘리는 게 까르띠에만의 저력이다.

탱크 솔로 XL은 까르띠에의 아이콘 탱크 중 가장 크다. 남자도 찰 수 있다. 가격은 생각만큼 비싸지 않다. 좋은 브랜드는 사고 싶게 하지만 진짜 좋은 브랜드는 사게 한다. 탱크 솔로 XL이 그런 시계다.

상징 탱크 솔로는 S, L, XL로 나뉜다. S와 XL은 길이가 1센티미터 가까이 차이 날 정도로 크다. 같은 디테일을 나눠 쓰기 때문에 이들은 남매처럼 똑같아 보인다. 사각 다이얼에 꽉 들어찬 로마자 인덱스, 가장자리에 요철을 새기고 푸른 스피넬로 마무리한 크라운. 이 상징이 계속 반복된다.

확장 강력한 상징성은 아이콘의 명예인 동시에 멍에가 된다. 물건을 만들어 파는 입장에선 때마다 바꿔 내야 하는데 아이콘은 바꿀 수가 없다. 까르띠에는 다양한 스트랩이라는 묘안을 냈다. 도구 없이도 쉽게 갈아 끼울 수 있는 스트랩이 14종류나 된다.


불가리 옥토 피니씨모 3100만원대. 얇고 세공이 잘된 시계는 비싼 시계라는 뜻이다.

불가리 | 옥토 피니씨모

불가리는 늘 조금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은 수준을 준수한다. 너무 화려하면 질리고 너무 은은하면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사이에 자리해야 고객의 손이 간다. 농구의 파울 라인처럼 불가리만의 부담 한계선을 만들었다고 봐도 되겠다.

불가리 옥토 피니시모는 날카로운 각을 깎고 내부 광택은 은은하게 처리했다. 불가리풍 밸런스다.

무브먼트 시계가 얇아지려면 무브먼트가 얇아야 한다. 불가리는 2.23밀리미터 두께의 무브먼트를 만들었다. 기본적 기계식 시계에 쓰는 ETA2824의 두께에 비하면 반도 안 된다. 얇아도 고급 시계니 시계의 동력 잔량을 보여주는 파워 리저브 게이지까지 설치되어 있다.

두께 기술에도 유행이 있다. 2014년의 유행은 누가 더 얇게 만드느냐였다. 그 결과 옥토 피니씨모는 두께가 5.5밀리미터밖에 안 된다. 불가리의 뛰어난 금속 세공술은 옆에서 봤을 때 더 잘 드러난다. 머리카락 두 개쯤 되는 두께에도 굳이 각을 깎고 폴리싱과 브러싱 처리를 섞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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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박 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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