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진론

유해진은 단순히 관객을 웃기기 위해서만 노력하는 배우가 아니다.

“네? 오케이요?”

초짜 배우 윤재성은 감독의 오케이 사인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윤재성은 홀로 배우로서의 고뇌에 휩싸인다. 주변에선 그런 재성의 속내는 아랑곳없다. 이번 컷은 건졌고 어서 다음 컷을 찍을 생각뿐이다. 감독이 오케이를 했으면 된 거다.

윤재성은 다르다. 윤재성은 대사를 끝까지 못 했다. 원래 대사는 대강 이랬다.

“너희 구역으로 물러가지 않으면 피바람을 맡게 될 것이다.”

재성이 한 대사는 딱 두 마디였다.

“너희는! 피바람!”

감정을 너무 끌어올리는 바람에 두 마디를 겨우 던지곤 부르르 떨고 말았다. 윤재성은 스스로 전혀 만족하지 못했다. 정작 감독은 오케이를 외쳤다. 재성은 혼자 어쩔 줄을 모른다.

‘이게 오케이라니? 이게 왜 오케이지? 이게 오케이인 게 말이 돼?’

<럭키>의 한 장면이다. 배우 유해진이 단독 주연을 맡은 첫 번째 영화다. <럭키>에서 유해진은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이 단역배우 윤재성인 줄 아는 킬러 최형욱을 연기했다. 킬러가 배우를 하려니 연기가 제대로 될 턱이 없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장르가 조폭 드라마다. 험상궂은 외모가 오히려 도움이 된다. 킬러는 엉겁결에 성격파 연기자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시청자 게시판도 난리가 난다. ‘멋있다’, ‘재밌다’, ‘강렬하다’.

불안한 건 킬러 자신뿐이다. 허무하다. 걱정된다. 뭔가 부족한 것 같다.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주제에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연기에 대해 고뇌한다. 감독과 관객이 오케이여도 킬러 자신은 오케이가 아니다.

배우 유해진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이 얼마나 ‘유해진스러운지’ 안다. 유해진은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나오면 오히려 허무해하는 배우다.

“무대는 달궈진 프라이팬 같다.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배우는 무대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자신을 의심해야 한다.”

“대사는 끝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 다음 말해야 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촬영을 준비한다.”

유해진이 자신의 연기론에 대해 직접 했던 말들이다.

“너희는! 피바람!”

참 웃긴 대사다. 유해진은 감독과 관객이 웃으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배우가 아니다. 자신이 충분히 납득하지 않으면 웃기든 울리든 고뇌를 멈추지 못한다. 이 때문에 유해진은 감독과 싸운 적도 있다.

감독이 오케이를 했다. 유해진은 마음에 안 들었다. 감독한테 말했다. 이렇게 웃기는 건 억지 같다고. 나중에 편집본을 봤더니 유해진의 의견을 무시했다는 게 드러났다. 유해진은 감독한테 전화를 걸어서 따졌다. 언성이 높아질 정도였다. 유해진은 그런 배우다.

유해진론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6년 11월호

대중이 유해진에 대해 가장 크게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이것이다. 유해진은 웃긴 배우가 결코 아니다. 애드리브를 빵빵 터뜨리는 배우도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진지하고 신중한 연기 방식으론 둘째가라면 서러울 배우다.

촬영 현장에선 늘 혼자다. 스태프들과 어울리기보단 혼자 주변을 산책한다. 그동안 대사를 씹고 또 씹어서 가장 자연스러운 발성을 보여준다. 생각을 하고 또 해서 캐릭터를 몇 곱절 이해한 다음 카메라 앞에 선다.

유해진은 작정하고 웃기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웃음은 웃기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나도 웃기지 않는데 어디 하나가 이상할 때 자연스럽게 웃긴다. 웃긴 대사와 웃긴 장면으로만 이뤄진 영화는 오히려 전혀 안 웃길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럭키>는 겉보기엔 유해진스러운 영화지만 실제로는 전혀 유해진스럽지 않은 영화다. <럭키>는 설정부터가 작정하고 웃기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한칼에 사람을 죽이는 프로 킬러가 있다. 사람을 죽이고 목욕탕을 찾는다. 바닥의 비누를 밟아서 크게 넘어진다. 머리를 다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그 사건을 목격한 백수 청년이 있다. 연기 지망생이었지만 이젠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밑바닥이다. 킬러의 돈을 보고는 눈이 돌아간다. 킬러의 로커 룸 열쇠를 훔친다.

그래서 제목이 <럭키>다. 두 사람의 인생이 바뀐다. 백수 청년은 킬러의 인생을 산다. 킬러는 무명 배우의 인생을 산다.

10년 전이었다면 유해진은 작정한 코미디의 주인공 역할을 거부했을 게 틀림없다. 유해진은 <주유소 습격사건>의 양아치 역할로 주목받았다. <신라의 달밤>과 <공공의 적>에서도 감초 역할을 맡았다. 이른바 신 스틸러였다. 출연 분량은 많지 않지만 워낙 웃기거나 강렬해서 관객의 뇌리를 사로잡는 역할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해진은 영화의 MSG였다. 두부와 된장과 고기가 된장찌개의 맛을 구성한다. 여기에 조미료를 넣으면 맛이 살아난다. 유해진이 등장하면서 영화가 더 맛깔나졌다는 얘기다. 다들 유해진 얘기만 했다. 된장찌개를 먹고 나서 다들 두부나 고기보다 조미료 맛을 더 오래 기억하듯이 말이다.

정작 조미료만 갖고는 된장찌개를 못 끓인다. 두부와 된장과 고기가 주재료다. 유해진은 자신이 조미료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유해진 같은 MSG 배우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주재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급하게 주연으로 나섰다. 대부분 코미디 영화였다. 하나같이 개연성 없는 전개와 억지웃음으로 점철된 수준 미달 영화들이었다. 그렇게 조미료는 주변에서 하나둘 퇴출됐다.

유해진의 행보는 달랐다. 그가 스스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역할 가운데 하나가 드라마 <토지>에서 연기한 김두수다. 박경리 선생의 원작 <토지>에서 김두수는 악인이지만 매우 입체적인 인물이다. 유해진은 김두수 역할을 통해 정극 연기자로서 자리매김한다. 희극 연기와 정극 연기 사이에 우열이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배우로서 오래가려면 조미료가 아니라 주재료가 돼야 했다. 유해진한텐 주재료가 잘 주어지지 않았다. 스스로는 이젠 “정이 들었다”고 말하지만 워낙 개성 있는 마스크를 가진 데다 스크린 데뷔를 웃기게 했기 때문이다. 제작자도 감독도 관객도 유해진을 보면 웃을 준비부터 한다. 유해진은 조금씩 그들을 설득해나갔다.

연기 경력을 이끌어온 방식만 놓고 보면 유해진은 기타노 다케시와 닮아 있다. 실제로도 유해진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기쿠지로의 여름>이다. 유해진도 다케시 같았다. 자신을 웃음으로 소비하려는 영화를 마다하진 않았지만 그런 웃음으로 마모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타짜>의 고광렬이나 <전우치>의 초랭이 같은 역할도 맡았지만 <혈의 누>의 독기나 <트럭>의 트럭 운전사나 <이끼>의 마을 주민 같은 역할을 맡으면서 웃음기를 뺀 연기를 계속했다. <극비수사>의 김중산 역할은 배우 유해진의 재발견이었다.

<토지>의 김두수로 정극 연기에 도전한 지 10년 만에 유해진은 자신의 배우 경력을 재정의하는 데 성공했다.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무명 도사지만 유괴된 아이를 살리려고 동분서주하는 김중산을 연기하면서 명배우 김윤석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연기 대결을 벌였다.

그래서 <럭키>는 가장 유해진스럽지 않은 영화다. 반면에 <럭키>를 선택했다는 것부터가 배우 유해진이 이젠 정극 연기의 짐을 좀 내려놓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럭키>는 일본 영화 <열쇠 도둑의 방법>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열쇠 도둑의 방법>은 일본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다지만 그렇게 촘촘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일단 목욕탕 낙상으로 킬러와 백수가 인생이 바뀐다는 발상부터가 대단히 개그적이다. 유해진은 그런 개그판의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웃기려고 작정한 코미디 <럭키>에서조차 유해진은 웃기려고 들지 않는다. 감독도 시나리오도 관객도 웃기라고 하는데 유해진만 저항한다. 이런 식이다.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킬러는 주민등록상의 나이가 자기 나이인 줄 안다. 서른두 살이다. 자기 나이를 서른두 살로 소개하고서도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는다. 유해진은 이때 그저 거울을 보면서 수줍어할 뿐 작은 애드리브 하나 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 여배우 조윤희가 황당하다는 개그적 표정을 지을 뿐이다. 유해진은 알고 있다. 자신은 스스로가 서른두 살이라고 믿어야 한다. 믿기지 않지만 믿어버리는 그 순간 상대 배우도 관객도 웃는다.

유해진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냥 보통 사람인 겁니다. 다만 딱 한 가지 웃긴 코드를 갖고 있는 거죠. 거기서 웃음이 나오는 거고.”

웃기지 않아야 더 크게 웃긴다.

일본의 코미디 코드는 한국의 코미디 코드와 매우 다르다. 한국의 코미디가 가학적이라면 일본의 코미디는 해학적이다. 일본 코미디에서는 처음부터 황당한 캐릭터를 설정해놓고 상황 속에서 연거푸 웃음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많다.

<노다메 칸타빌레> 같은 드라마가 웃긴 건 노다메라는 웃긴 캐릭터를 구축해놓았기 때문이다. 일본 코미디가 소동극처럼 전개되곤 하는 이유이다. 한국 코미디는 좀 더 공격적이다. 특정 캐릭터를 공격하거나 캐릭터가 자학할 때 웃음보가 터진다.

한국식으로 각색되면서 <럭키> 역시 한국 코미디와 일본 코미디의 하이브리드가 됐다. 일본식 소동극의 설정을 빌려왔지만 본질적으론 유해진의 자학과 가학에서 웃음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영화는 유해진을 계속 못살게 군다. 유해진을 이용해 자꾸 웃기려고 든다. <럭키>에서 유해진은 전혜빈을 앞에 두고 이런 대사를 한다.

“네가 없는 그곳은 나에겐 정말로 지옥이었어.”

전혜빈이 말한다.

“너무 무서워요.”

극 중 드라마 촬영의 한 장면이다. 예고편에도 나왔던 장면이다. 막상 영화를 보면 하나도 안 웃기다. 유해진이 특유의 개성파 마스크로 인상을 잔뜩 쓰고 전혜빈 앞에서 힘을 줘서 대사를 내뱉을 때 모두가 알고 있다. 이건 작정하고 웃기려는 순간이다. 그걸 전혜빈은 무섭다고 받아친다. 한국 코미디의 전형적인 자학과 가학이다.

<럭키>는 유해진의 유해진에 의한 영화지만 결코 유해진을 위한 영화는 아니다. <럭키>에서 유해진은 안 웃기려고 애쓰고 영화는 웃기려고 애쓴다. 둘 다 목적은 웃음이지만 유발되는 웃음의 품질이 다르다.

<삼시세끼>를 통해 유해진의 웃음에 매료된 관객들한텐 충분한 보상이 될 수 있다. 유해진을 재료로 본격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감독과 제작자를 위한 영화일 수도 있다.

<럭키>에서 유해진은 코미디와 누아르와 멜로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변화무쌍한 연기 폭을 보여준다. 정작 그 모든 연기는 <럭키>에선 그저 웃음을 위한 장치에 불과해진다. 스스로를 소모하고 있단 말이다.

흐지부지되는 영화의 결말부로 가면 유해진이 아까운 영화란 게 분명해진다. <럭키>는 배우 유해진의 단독 주연작이다. 솔직히 준비 중인 유해진의 공동 주연작이 더 기다려진다.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에선 1980년 우연히 광주까지 외국인 손님을 태우고 가야 하는 택시 운전사를 연기한다. 안 웃기지만 웃긴, 제대로 유해진스러운 역할이다. 유해진의 유해진에 의한 유해진을 위한 영화는, 아직 오케이가 아니다.

  • Kakao Talk
  • Kakao Story

Credit

에디터
일러스트 최 신엽
출처
12179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허스트중앙에 있습니다.